• 동지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기고] 1월 5일 희망버스로 다시 희망의 온기를 만들자
        2013년 01월 03일 05:56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대한민국. 하루에도 몇십곡씩 신곡들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도 사랑, 저기도 사랑. 사랑이 참 중요한 것인가 보다. 사람의 감성 중 사람들의 마음을 지옥에서 저 하늘까지 끌어올리기도 하고 반대로 뚝 떨어뜨리기도 하는 그것, 사랑. 가요의 99%는 이 사랑을 노래한다.

    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흔한 사랑노래는 부른 적이 없다 내 노래의 99%는 아마 동지애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것들일 것이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뭐 이러면서 동지애를 사랑보다 몇 단계 위쯤으로 얘기하며 노래를 해왔다.

    그런데 나, 그리고 우리, 그렇게 살고 있는 건 맞나?

    2012년의 끝자락. 눈 내리고 추운 날 마석 열사묘역에 갔다, 안 온 사이에 비어있던 묘자리가 또 다른 누군가로 채워져 있었다. ‘아…이 분!.. 아…이 사람!’ 아는 얼굴들이 늘어나고 먼저 누워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지고 난 이제 그의 누나나 언니뻘이 돼서 또다시 동지애를 노래로 부르고 있었다.

    용산참사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지민주씨

    많은 일들을 경험하면 익숙해진다고 하는데 왜 이렇듯 동지들이 떠나버리면 익숙하기는커녕 내 생명도 조금씩 단축되는 느낌이 드는 걸까? 진짜 드라마의 대사처럼 심장이 딱딱해지면 더 냉정해질텐데, 이놈의 눈물은 예전에도 한바가지 쏟아서 마를 줄 알았는데 오늘도 한바가지가 나오는 걸 보면 사람은 사랑도 있고 눈물도 많은 여린 존재인가보다.

    ‘왜 갔냐고, 왜 먼저 갔냐’고 수도 없이 물어봤다. ‘너만 힘드냐고, 나도 힘들다’고 ‘그렇게 아팠으면 얘기하면 되잖냐’고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게 무엇 때문일까? 절망, 진짜 그거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절망은 누가 주는 걸까? 적어도 적들은 아닐 것이다 원래 그런 놈들이었으니까. 몇십년을 일했는데 지들 멋대로 쫒아내고 억울해서 농성이라도 할라치면 어디서 시커먼 깡패들 돈 바리바리 싸들여 모셔 놔두고 이리 패고 저리 패고 하는 그 놈들한테 절망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분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에게 절망은 인간의 최고의 감성인 사랑, 그보다도 레벨이 높다고 자부하는 동지애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동지가 희망이었는데 그 희망이 떠나버려 절망이 뒤이어 찾아온 것이다.

    절망. 어쩌면 난 묘지안의 사람들에게 절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손조차 내밀 수 없이 먼 곳에 있는… 연대란 것을 말로만 구호로만 내뱉다가 시간이 지나면 따듯한 내 집으로 들어가 내일 있을 약속을 생각하고, 아이들과 이번 방학엔 어디로 여행을 갈지 생각하는 내가 당신들에겐 절망일 수 있었던 거야… 그렇게 보낸 사람이 아니 동지가 얼마나 많은가.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다가 뜻을 못 이뤄 ‘멘붕’이란 말로 며칠씩 술 퍼마시고 힘들어 죽네사네 할 때도 여전히 동지들은 철탑 위 또는 굴다리 위, 결코 사람이 있어선 안될 곳에 둥지를 틀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희망이라는 말 참 진부하다고 다른 말로 이 얼음장 같은 세상을 헤쳐나가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사랑이 절대적이듯 희망도 절대적일 수밖에 없더라. 이순간 그것마저 말하지 못하고 안아주지 못하면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 수 있겠는가.

    한진중공업 김진숙 동지가 1년 가까이를 버티다 따낸 전원 원직복직. 그때 희망이 그녀에게로 갔고 우리에겐 김진숙은 희망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하지만 최강서는 복직되지 못했고 생활고라는 내용의 뉴스만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 희망은 어디로 사라져버렸나…무엇이 절망으로 변해버린 거였나.

    늦지 않았다. 아니 이제 우리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다시 달려갈 것이다. 조직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된다. 천명이면 좋겠지만 하나 혹 둘이어도 된다. 그 자리에서 만나자. 울산의 등대지기로 70일 넘게, 돌아가야 할 공장을 망부석처럼 바라보는 동지들 곁으로, 열사들의 눈물과 동지들의 땀으로 빛바랜 하늘색 작업복이 푸른 바다처럼 싱싱하게 차오를 세상을 살아서 만나보자.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1월 5일. 체온이 닿지 않는 철탑 위지만, 바닷바람 강한 영도 조선소지만 우리가 가서 37도가 아닌 40도 정도는 너끈이 넘겨버릴 동지애라는 온기를 전해주자. 동지들이 조금 더 깊은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필자소개
    노동가수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