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회 극우-우익세력의 득세,
리버럴의 지리멸렬, 진보의 게토화
[분석] 아베 자민당 정권의 등장과 동아시아, 그리고 한일관계
    2013년 01월 03일 10: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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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4일 일본의 신정권인 아베 내각으로부터 박근혜 당선인 측에 파견하는 특사가 방한한다. 언론들은 아베 내각이 선거 기간 중 제시한 극우적인 공약들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경제문제와 같은 내치에 집중할 것으로 본다. 반면, 대외관계는 영토문제와 같은 민감한 이슈를 보류하고 ‘북한 문제’와 같은 안보 현안을 중심으로 협력을 모색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전망에는 나름 근거가 있다. 내각 출범 후 아베 신조 총리의 언행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대내외적 환경이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사회경제 구조재편으로 인한 후과는 경제, 사회, 정치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게다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국면은 지속되고 있다. 아베 내각이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제시한 정책이 ‘양적 완화’인 것은 대내외 환경에 대한 대응 차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이 현실이 되거나, 혹은 아베 내각의 초기 움직임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감안되어야 할 변수가 적지 않다. 또한, 당연하게도, 역사문제 등을 보류하고 ‘북한 문제’를 축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한 한일 관계의 전개 양상인가에 대한 질문도 제기되어야 한다. 한편에서는 현상유지로 평할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숙제를 미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극우-우익정치세력 일본의 제도정치권을 점령하다

 우선, 일각의 예측들이 현실화되거나 혹은 지속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의회 구성을 보면 분명히 드러난다(그림 참조). 자민당의 압승도 그렇지만, 극우파시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전 도쿄도 지사)와 그에 못지않은 극우적 성향을 보여 온 일본유신회(일본어 공식명칭은 ‘ニッポン維新の会’. 그렇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일본유신회로 번역하고 있지만 ‘닛뽄유신회’라고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가 개헌선이라고 하는 3분2를 훌쩍 넘어섰다.

이것은 개헌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미 자민당은 보수정당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해 우익정당으로 보는 것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할 때, 일본 의회와 제도정치권은 극우와 우익이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후 최강의 우익정치권력의 등장으로 봐도 무방하다.

아베 내각의 구성을 보면 더 분명해 진다. 내각에는 우익성향의 인물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예를 들면, 작년 ‘독도 방문’ 강행 쇼로 유명해진 의원들 3인(총무상 신도 요시타카, 행정개혁상 이나다 토모미, 방위성 정무관 사토 마사히사)이 모두 입각했다. 또한, 문부과학상 시모무라 하쿠분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망언 전력이 있고, 공안위원장인 후루야 게이지는 미국을 방문해 ‘위안부 기림비’ 철거를 요구했던 인물이다. 방위상 오노데라도 ‘영토 문제’의 매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정치인들 개개인의 면모나 정당보다 더 주목해야 될 것은 전반적인 경향성이다. 예컨대, 일본 자민당의 경우 최근에는 전통적 의미의 파벌 정치보다는 한국에서 얘기하는 계파정치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아베 내각의 구성에서는 오히려 배후에 초당적인 우익파벌의 영향력이 작동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사주간지 <슈칸 겐다이(週刊現代)>에 따르면 초당파 의원 모임인 ‘창생 일본(마찬가지로 일본어 공식명칭은 ’소우세이 닛뽄’이다)’이 아베 내각의 배후 파벌이라고 보도했다(2012년12월27일자).

‘일본판 신보수’ 정치인들을 망라하고 있는 ‘창생 일본’은 10명을 입각시켰고, 총리 관저(한국식으로는 청와대)에 들어간 현직의원들은 전원 ‘창생 일본’의 회원들이다. 또한, 자민당이나 일본유신회, 그 이외의 소수 보수정당들에 속해 있는 ‘창생 일본’의 회원들까지 감안하면 일본 제도정치권의 최대 파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이들은 인터넷과 사회 저변에서 영향력을 확장해 가고 있는 각종 우익그룹들과 직간접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자위대의 전투구역 파견을 환송하는 장면

물론, 일본 보수정치의 재편은 90년대 중후반부터 진행되어왔다. 고이즈미, 아베, 아소로 이어졌던 시기에 이르러서는 ‘경무장, 경제우선’- 이른바 ‘요시다 노선’으로 ‘평화헌법’의 채택, 경제중시, 안보의 미국 의존 -을 기본노선으로 삼아왔던 전후(戰後) ‘보수본류’는 인물도, 가치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금번 자민당의 재집권과 아베 내각의 출범은 그와같은 경향성을 재확인시켜 준 것에 다름아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선거 기간 중 자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의 ‘자주 헌법’ 제정에 대한 신념을 내세우면서, 헌법 개정에 대한 의욕을 밝힌 바 있다(특히, 전쟁포기와 전력보유 금지를 명시한 9조의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국방군화, 집단적 자위권 인정). ‘창생 일본’과 같은 (극우)우익정치인 그룹이 제도정치권의 헤게모니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일본의 ‘포스트 전후체제’가 향하고 있는 방향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멸렬 리버럴, 게토화의 가속 진보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극우-우익 정치세력을 견제할 변변한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다.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등의 보수그룹이 당 내에서 리버럴 그룹을 대체해버린 ‘또 하나의 보수정당’ 민주당의 몰락은 차지하더라도, 민주당과 연립정권 파트너였던 사민당도 2개의 의석을 가진 미니정당으로 전락했다.

작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탈원전 총리 관저 포위 시위’의 열기와 청년 실업, 빈곤 문제, 경제격차 등의 사회적 이슈의 확산을 배경으로 의석 확대를 노렸던 공산당은 오히려 1석 줄어든 8석의 의석을 획득하는데 그쳤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리버럴 세력의 지리멸렬과 90년대를 거치면서 진행된 일본 혁신세력(진보세력) 게토화의 가속화이다. 사민당은 제도권 정당으로서의 존재감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고, 공산당은 10석 이내의 의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고정지지층만의 정당이라는 위상에 고착되어 있다.

일본 시민사회의 리버럴 그룹들이 기대를 걸었던 일본미래당(日本未来の党)의 경우도 9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일본미래당은 민주당을 이탈한 오자와 이치로 그룹과 다른 리버럴 소수정당들과 ‘탈원전 연대’를 구축해 선거에 대응했다. 음악가이자 평화․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카모토 류이치(영화<마지막 황제>OST작곡자)와 같은 유명 인사들이 공개지지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오히려, 일본미래당에 대한 일본 리버럴 인사들과 지식인들의 열렬한 지지는 그야말로 ‘닥치고 탈원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탈원전’ 의제화에 관심있는 이들이 주목한 정당이 일본미래당이다. 탈원전을 전면에 내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사회학자 출신의 카다 유키코(嘉田由紀子) 사가현 현지사가 탈원전을 전면화한 창당 의도는 평가할만하다. 그들이 우선적으로 연계한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에 대해서도 다양한 평가가 있으니 별도의 문제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도 탈원전의 선봉이론가로 알려진 이이다 데쓰나리(飯田哲也, 일본미래당 대표대행)는 이시하라 신타로와 합당함으로써 극우정치인 커밍아웃을 한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과 연결된 인물이다. 또 다른 연계세력인 나고야시장 카와무라 다카시(河村たかし)는 ‘난징학살 부정’ 발언과 왜곡된 역사관으로 문제를 일으킨 인물이다.

한편, 일본미래당 창당 찬동자에 이름을 올린 이나모리 카즈오(稲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는 경영난에 빠진 일본항공(JAL)의 회생역을 역임하면서 노동자 대량해고를 양산한 장본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향신문은 그를 아예 ‘경영의 신’이라고까지 평가했다. 2012년11월28일자).

일본사회의 향방과 동아시아

그렇기 때문에, 일본미래당에 대한 일본 (리버럴)시민그룹의 열렬한 지지와 기대감의 표출은, 오히려 전후 일본 리버럴 세력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로 보인다.

역사, 노동, 민주적 교육 등의 문제의식은 뒤로하고 탈원전으로 모든 정치세력을 규합한다는 발상은 ‘미국+보수본류’와의 타협을 통해 일본 전후체제를 주조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던 리버럴 그룹이 일본 전후체제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일부 언론들은 소선거구제가 중심이고 약간의 비례대표로 보완하는 일본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대표적으로 도쿄신문). 실제로 자민당은 정당지지율보다 월등히 많은 의석을 차지함으로써 과다대표의 선거결과를 얻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례대표에서조차 자민당이 1위, 일본유신회가 2위를 한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객관적 기준으로 봤을 때 유럽의 ‘극우파시스트 정당’에 가까운 일본유신회가 정당지지율 2위를 한 것은 일본 사회의 전반적 보수화와 우경화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아베 내각의 대외관계를 전망할 때는 보수화된 일본의 정치사회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정치가 반드시 국제정치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정치가 국내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국내정치가 국제정치를 규정해버리는 경우도 우리는 자주 목도해왔다. 일본의 경우도 내치에서의 정치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보수적 정체성의 정치에 의존하는 정치엘리트들의 모습이 자주 나타났다.

특히, 장기간 우익-보수가 지배적 지위를 구가해 온 정치의 산물인 일본의 사회적-문화적 환경은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에 활용함에 있어 즉각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견제세력도 없는 ‘극우-우익 지배의 정치’, 그리고 보수적 담론과 우익 데마고그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사회의 향방을 가늠한다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가까운 예가 지난 대선 기간 논란이 되었던 일본 아사히TV의 프로그램이다. 한 프로그램에서 한국 대선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박근혜-일본에 우호적 VS 문재인-반일(反日)’이라는 식으로 표현을 한 것이다.

일본사회의 한국 관련 담론, 동아시아 관련 담론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언제부턴가 일본 언론이나 지식인들, 게다가 일반국민들도 ‘반일(反日)’이라는 표현을 쉽게 쓴다. ‘反日’ 레이블링도 빈번하다. 그런데, 그 근거라는 것이 자의적이고 감정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관련해서도 국내정치적 이용을 위해 독도를 방문했다는 보도 일색으로, 자신들이 ‘영토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이슈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성찰하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리버럴 미디어로 알려진 아사히신문조차도 은근슬쩍 한국과 한국 국민들의 ‘강한 내셔널리즘(그 실내용은 반일감정)’을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담론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들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일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모두 ‘반일’이라는 범주로 덤핑해버리는 것은 자국의 역사나 현재적 행태에 대한 자성(自省)이 자리할 곳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국과의 관계 맺기, 타국 국민과의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도쿄대 강상중 교수의 지적처럼, 일본이 동아시아에서의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아베 내각의 대외관계와 한반도

아베 내각은 ‘영토 문제’, ‘역사 문제’와 다른 이슈 영역을 분리한 접근을 시도하고자 할 수 있다. 이미, 그런 징후가 보이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을 국가차원의 행사로 치루는 것을 유보했고, 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도 유보적 입장이다. ‘무라야마 담화’는 답습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에 대해서는 재검토를 지시해 놓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위대의 국방군화를 필두로 한 헌법 개정을 의제화하고 있다. 그것과 함께, 미일 동맹의 강화와 한일 관계의 복원에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 이슈’와 중국에 대한 견제를 축으로 미일한의 안보협력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특사의 메시지도 그러한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오바마 1기 행정부 시기부터 ‘아시아로의 축의 이동(Pivot to Asia)’을 선언한 미국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진다. 또한, 보수정권인 한국의 새 정부와도 이해관계와 가치가 맞아 떨어질 수 있다. 전두환-나카소네에 이은 두 번째 한일 보수 연대가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레이건 요소는 빠지지만). 이는 동아시아 냉전 유산의 해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역행이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 등은 또다시 회피되어야 할 문제, 보류되어야 할 문제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일부에서는 북일 관계 개선 움직임이 동아시아 정세의 판을 흔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한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내각의 관방장관 시절 납치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만들기 위해 북한과 비공식 접촉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일본의 내부에서 북일 관계 개선의 동력을 찾는 것은 요원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설사, 일시적인 움직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북일 양국 관계의 동력만으로 그것이 동아시아 질서를 흔들 수 있을 정도(예를 들면, 90년대 초의 북일 수교 협상 국면, 고이즈미의 방북으로 성사된 북일 정상회담)로 진전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동기부여를 할 수밖에 없다. 북미 관계, 남북 관계의 진전이 그것이다. 한일, 중일 관계의 경색과 미중 관계의 상호견제와 미묘한 긴장감이 구성하고 있는 현재의 동아시아 질서에 대한 평화적 현상타파는, 역설적으로 단절된 남북 관계의 복원과 북미 관계의 진전에서 그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의 새로운 정부는 이미 나와 있는 해답을 현실 속에서 착실하게 수행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해답과는 정반대로 역주행하게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전자이든, 후자이든, 혹은 다른 그 무엇이든 한일 양국 모두 (우익)보수정권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치는 우리에게 만만치 않은 과제를 던져주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자민당의 재집권 과정에서 드러난 일본의 사회적-문화적 환경의 보수우경화는 우리에게 반면교사임과 동시에, 시민사회 차원의 연대를 추진함에 있어서도 새로운 사고와 전략을 요구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필자소개
평화네트워크에서 정책실장으로 일했으며, 진보정당에서 정책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한반도문제와 동아시아평화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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