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속좌담1-①] 대선과 이후 전망
        2013년 01월 02일 04: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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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레디앙> 사무실에서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사회학)와 서강대 손호철 교수(정치학)와의 대선 평가와 이후의 전망에 대한 첫 좌담회를 가졌다. <레디앙>은 세차례 정도의 연속 좌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총론적인 ‘평가와 전망’을 내다보는 첫째 좌담회에 이어 ‘민주당과 중도세력에 대한 평가와 전망’, ‘진보정치세력의 현재와 이후’라는 주제로 연속 좌담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첫째 좌담회는 조희연 손호철 교수 외에 젊은 세대의 의견을 반영하자는 취지로 레디앙 20대 좌담회에 참석했던 한신대 대학원생 박재형씨가 참여했다.

    이날 좌담회에서 조희연 교수와 손호철 교수는 큰 틀에서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제2의 유신의 등장으로 규정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박근혜 당선의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미묘하지만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왜 대중은 박근혜를 선택했는지, 왜 문재인 후보는 낙선한 것인지, 그리고 대선 결과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떤 실천적 방향을 정립해야 할 지에 대해 폭 넓은 대화가 진행되었다. 진보정당에 평가와 전망과 관련해서는 애정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며 진보세력의 재정립과 복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2013년 진보정치의 재편과 재건과 자기 정립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귀를 열고 들을 가치가 있는 듯 하다. 1차 좌담을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좌담 정리는 장여진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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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권: 이번 18대 대선의 의미가 무엇인가. 박근혜 승리의 정치공학적 설명이나 득표력에 대한 분석보다는 박근혜 후보의 당선, 박근혜 정부의 출범이 가지는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달라

    조희연 “박근혜는 두 체제의 실패를 딛고 출현한 신우파 세력”

    조희연: 87년체제, 97년체제라는 담론도 있지만 이번 2012 대선은 87년형 민주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일종의 포스트 87년체제 또는 민주주의의 방향을 둘러싼 대격전의 의미를 갖고 있다. 무엇으로 표현하든지 정치적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87년형 민주주의체제가 이미 대중의 요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균열이 생겼고, 87년 이후 체제를 둘러싼 각축의 과정이 진행된 것이다.

    흥미로운 건 두 번의 실패를 배경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87년형 민주주의가 균열되었는데 거기에는 2개의 실패가 있었다. 반독재 민주정부 즉 중도 자유주의 정부의 실패가 있었고 또 하나는 반독재 민주정부의 실패를 딛고 출현한 이명박 정부, 일종의 새로운 보수정부, 우파정부의 실패가 있었다. 두 개의 실패라는 의미는 국민들은 반독재 민주정부, 반독재 자유주의 정부의 실패에 대한 불신이 있는 거고 신우파 정부로써 이명박 정부의 실패에 대한 대중적 분노와 비판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2개의 실패를 배경으로 박근혜 정부가 출현한 것이고, 2차 신우파 정부의 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말하자면 두 실패 위에 출현하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방향에서 일종의 ‘수동혁명’적 재편의 한 계기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전면화되는 상황에서 87년 민주주의 체제의 한 주체인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그것에 제대로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확대, 비정규직 확대 등 다양한 계급적 균열이 초래되고 그것이 대중의 좌절로 나타났다. 그 분노가 어떤 형태로 표출되든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걸 87년체제를 민주주의 1.0이라 한다면 포스트 87년체제를 민주주의 2.0이라 규정하고 싶은데, 이 민주주의 2.0의 정치적 주도권 투쟁에서 신우파 세력이 승리하고 범중도 범진보의 연합군이 패배한 사건이 이번 대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보면 민주주의 2.0의 성격이 일정 정도 위로부터 보수적 개혁으로 규정되는 한 전기를 맞았다고 평가한다.

    정종권: 바로 그 다음 주제와 연결될 것 같다. 그런 평가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배경으로 출범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를 단순한 이명박 정부의 2기로, 연속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견해인 것 같다.

    조희연: 나중에 더 이야기 하겠지만 기본 입장은 그렇다. 그리고 기존의 선거가 사실은 일정하게 3자 구도로 전개됐던 것에 비해 이번 대선은 완벽하게 양자 구도로 진행됐다. 진보좌파가 주변화되면서 재결집한 보수와 재결집한 중도/진보의 연합으로 선거가 치뤄졌고 거기서 재결집한 보수연합이 승리한 것이라 본다.

    박재형 “민주당의 선거 전술은 10년째 인질극 뿐”

    박재형: 저는 우선 민주당에서 반성이 없었다고 본다. 02학번인데 그때부터 이제 10년이 됐는데 (민주당의) 전술은 일관되게 ‘인질극’이었다. 운동진영에서도 맨날 하는 이야기가 반한나라당 투쟁을 하자는 것이고, 민주당의 논리도 결국 단순하게 박근혜, 이명박 안되게 하려면 우리(민주당) 찍으라고 하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그게 안 먹혔다고 본다. 저같은 경우에도 문재인 후보를 안 찍어서 주변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 매국노 소리를 듣기고 하고.

    대선이 끝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졌다라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 보면 누가 되든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으면 지금 송전탑에 올라가있는 분들도 다 내려왔을 거고 밀양 송전탑 문제도 해결됐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박근혜가 당선되지 않았다면 천국이 왔을 꺼라고 얘기하며 현재의 결과에 대해 절망을 하는데, 과도한 기대와 심리라고 생각한다.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한다면 분명 대선에서 진다고 많은 사람들한테 얘기했고 문재인 캠프에 있는 아는 사람한테도 그렇게 말했다. 제가 민주당쪽에 아는 친구들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대선 패배 이후) 내부에서 다시 한명숙 추대해야 한다는 소리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진짜로 반성이 없는 거다. 그래서 왠지 내가 죽을 때까지 계속 야당은 협박하는 것 말고 다른 전술은 없을 것 같다.

    또 야권에서 선거 전략을 독재 대 반독재로 가져가는 바람에 지금껏 이야기했던 메니페스토 같은 건 아예 실종했다고 본다. 민주당도 마찬가지지만,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도 대선 토론회에 나와서 작정하고 박근혜를 유신공주로 몰아 갔다. 물론 노림수가 있었을 거다. 이런 얘기 하면 지인들 중에는 지금 그게 왜 문제냐고 질타하기도 하는데 난 생각이 다르다. 대의제 선거를 왜 하나? 결국 민주주의하자는 거 아닌가? 그런데 진보정당이라는 곳조차도 선거 승리를 위해서 정책선거를 포기하는 건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는 행위라고 본다.

    손호철 “연합정치에 동참한 진보정당이 야권패배의 공범”

    손호철: 생각이 좀 다르다. 난 민주주의 2.0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87년에서 2012년까지 민주주의가 한 축이었는데, 2012년이 새로운 시기와 체제의 전환점이라고 주장하려면 그 근거가 뚜렷해야 하는데, 그런 주장의 사회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 공통점이 뭐고 새로운 점이 뭐냐는 것이다. 87년 체제랑 아무 상관없는 거다.

    좌담회 모습(사진=장여진)

    출발점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원조 신자유주의 세력(신자유주의 좌파)과 2기 신자유주의 세력(신자유주의 우파, 이명박 정부)의 실패라고 본다. 이것은 다 97년 체제의 변형에서 나온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빠진 것이 가장 핵심인 복지문제, 경제문제 등이다.

    쉽게 표현하면 3가지가 결합된 실패이다. 신자유주의 우파(이명박 정부)의 몰락, 신자유주의 좌파(민주당)의 자살, 진보정당의 공범. 이 3개의 실패로 국민들이 결국 대안으로 찾은 것이 21세기형 박정희였던 것이다. 민주당이 혁신을 못하고 스스로 자멸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거고, 진보정당의 공범행동도 그 결과를 낳은 주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이번 대선을 한 마디로 말하면 노무현의 저주, 이명박의 저주의 결과이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지고 나서 정말 혁신했는데 민주당은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그렇게 계속 바닥을 치고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동정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그 때문에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스스로 혁신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겹치니까 민주당 스스로 혁신하지 않아도 지방선거 때 이겨버린 것이다. 기고만장해진 것이다. 결국 노무현과 이명박이 민주당의 혁신을 막아버린,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진보정당의 공범행위라는 것은 진보정당이 민주당의 혁신을 막았다는 점이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5060세대가 대선에서 결집한 것은 이정희 후보의 TV발언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지적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더 중요한 건 ‘연합정치의 저주’라고 볼 수 있다.

    이미 통합진보당 사태 등에서 진보정치는 개판을 쳤지만, 이미 그 이전 총선에서부터 지방선거까지 진보정당과 민주당은 다 연합정치를 했다. 그러니 국민들은 다 한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정희 후보가 사퇴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으면 오히려 상황은 더 나았을 것이다. 연합정치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싶은 사람도 통진당과 민주당을 동일시하게 만들어서 부담을 준 것이다.

    재밌는 게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이겼던 두 번의 선거인 97년, 02년은 모두 연합정치를 안했다. 97년은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로 02년의 선거보다 의미가 더 크다. 그럼에도 연합정치를 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2002년 나왔을 때 3% 얻었다. 그럼에도 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이겼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더 옳았다고 본다.

    제3의 후보가 있고 독자노선을 견지하면서 계속 민주당을 공격했기 때문에 오히려 민주당의 중도적 이미지를 강화시켜준 것이고 중도표를 끌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정희는 오히려 박근혜만 공격하면서 결과적으로 박근혜 표만 모아준 셈이다.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 비판의 강도만큼 문재인 후보도 몰아세웠어야 했다. 정치공학적으로 보더라도 그게 옳은 것이다. 97년과 02년을 보면 다 중도세력을 끌어안으면서 김대중과 노무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연합정치 담론이 활성화되고, 2010지방선거에서부터 이미 연합정치를 시작했다. 그걸 국민이 다 알았다. 사후적으로 터졌지만 통진당 사태가 터지고 북한 미사일 발사 사건이 생기고, 이정희 후보가 TV 토론 나와서 박근혜 떨어뜨린다고 하면서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비판도 하지 않고, 그러니 통합진보당에 대한 불안 심리는 그들과 한 몸이었던 민주당에 대한 불안 심리로 옮겨지면서 중도층의 견인을 어렵게 만든 것이다. 당연히 연합정치의 실패이다. 결국 진보진영은 독자노선을 가야 한다.

    딜레마인데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합정치가 필요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선과 같은 전국 단일선거에서 연합정치는 오히려 독이 된다.

    대선 패배 원인, “연합정치” vs “범보수의 좌경화”

     조희연: 나는 연합정치를 하냐 안하냐가 대선 패배의 중요한 기준점이라고 보지 않는다. 연합정치는 일종의 반보수 연합의 성격이 있는 거고,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의 힘 관계와 구성, 상호관계의 문제인 것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범보수연합과 범중도/진보연합에서 범보수연합이 승리했다고 봐야 한다.

    범보수연합이 왜 이겼냐면 그 첫번째는 박근혜 전략의 승리이기도 한 것이다. 보수나 우파가 따옴표 친 의미에서 이른바 “좌경화”을 했다.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입지가 확 좁아진 것이다. 여기서 중도자유주의세력이 다 좌경화를 하면서 전체 지형을 급진화시킬 수도 있지만, 문제는 범좌파진영이 몰락한 상황에서 중도자유주의 세력이 이른바 좌경화를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분단체제 하에서의 대중적 사회적 지형에서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좌경화는 제한되어 있다.

    대선이라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의 투쟁을 통해 사회의 정치적 대중적 지형이 어느 정도 변화했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각축하는 것이다. 지난 5년동안 대중들이 굉장히 분노하고 좌절하면서 사회의 지형이 일정하게 “좌경화”했지만, 범보수도 어느 정도 좌경화를 하게 되니 중도자유주의세력이 더 좌경화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거기에 자신의 계급적 한계가 중첩되어 대중의 눈과 의식에서 볼 때 필요하고 가능한 것들이 보수세력들에 의해 충족될 수 있겠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

    손호철: 그렇게 분석하면 애당초 새누리당이 좌경화하면 민주당이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구조결정론적인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동의하기 어렵다.

    조희연: 이번 대선은 거의 50:50의 구도였다. 이는 로버트 달(Robert A. Dahl)이 말하는 다두제적인 보수양당 내지는 다두제적인 다원적 정치엘리트들의 경쟁구도가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새누리당이 계속 집권할 일은 없다고 보고 오히려 미국식의 엘리트 다원적인 경쟁질서가 출현한 것이 더 맞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 때문에 보수의 공신력이 추락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전략적 실패도 있는 거다. 좌경화를 더 할 수 없는 대중적 지형의 구조적 한계와 계급적 한계, 전술적인 면에서의 한계도 있는 거다. 또 보수가 자신의 지지자들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도록 한 도덕적 정당성이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특전사 출신의 문재인과 여성 박근혜의 대립 같은 것도 지지자 동원의 충성심을 강화할 수 있게 한 기제이기도 하다.

    또한 여성대통령이라는 전략적 지점이 온정적 보수의 이미지를 일정하게 형성했다고도 본다. 무상보육이나 복지 강화 등의 의제들도 온정적 보수라는 이미지를 형성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토론해야할 주요 지점 중의 하나가, 대중들이 범보수와 범진보개혁을 선택할 때 새로운 기준의 하나가 ‘통치세력으로서의 신뢰성’이라는 점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에 의해 자유주의세력의 통치능력도 불신당했고, 신우파 세력으로서의 이명박 정부도 통치세력으로서 신뢰를 잃었다. 이 두 균열의 유산을 안고 박근혜와 문재인이 경쟁했던 것이다.

    박근혜, 누군가에겐 경제발전의 선망, 누군가에게는 독재의 공포 기억

    정종권: 조희연 교수의 발언을 보면 이명박과 박근혜의 연속성보다는 단절성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반면 손 교수는 박근혜를 이명박의 연속선에서는 보는 관점이 더 강한 것 같다. 개인적 느낌으로는 소위 486과 그 이전 세대에서는 박근혜 당선을 이명박 당선 때보다 더 최악의 상태로 받아들이면서 그래서 더 절망하는 것 같은데, 2030세대에서는 정서적으로 그 질적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다고 보여진다.

    박재형씨

    박재형: 주변의 친구들 보면 반반인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데모 버젼(Demo Version)이었다라는 말이 있다. 게임을 출시하기 전에 테스트 버젼이라는 의미이다. 박근혜 당선으로 망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고, 누가 되어도 당장 지구가 망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다. 국회에서 일했을 때 들었던 말 중에 박근혜는 의회주의를 엄청 싫어한다는 얘기들도 있었다. 예전 박근혜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자신이 먼저 탈당하면 나머지 지지세력들도 탈당하기로 했는데 아무도 따라오지 않은 경험을 통해서 의원들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쌓였다는 말이다.

    분명히 선거할 때는 박근혜가 ‘나는 이명박이랑 다르다’고 갈라치기 했다고 보는데, 나는 그 둘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물론 이미지는 다르다. 이런 이야기하면 어디 가서 돌 맞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신자유주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김대중 정부 때부터 이명박 정부 때까지 같은 선상에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기조로 본다면 박근혜 정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트위터나 나꼼수의 열혈 청취자들은 조금 견해가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누가 된다고 해도 당장 나라가 망할 것 같지는 않다. 이 말은 거꾸로 보면 누가 되더라도 그들 모두가 신자유주의자라는 점에서는 어떻게든 나라가 결단날 거 같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건 넘어가자.

    아무튼 박근혜는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개발독재의 명암을 유산으로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경제 발전에 대한 선망과 기대의 대상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독재로의 회귀,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공포의 대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20대 일부에게는 박근혜가 486 이상 세대나 지식인층에게처럼 독재의 기표로 작용했을지도 몰라도, 대부분의 20대는 그냥 이명박이 싫었기 때문에 대안으로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항마인 문재인에게 표를 몰아줬다고 본다. 이건 박근혜를 이명박의 연속선에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그런 거고.

    연속선에 있지 않다고 보는 친구들은 박근혜가 이명박과 차별화를 해서, 진짜 보수라고 생각해서 찍은 경우도 많다. 물론 TV 토론회 이후에 이정희는 젊은 층으로부터 시원하게 말 잘한다고 지지를 받았고, 일각에서는 소위 말하는 종북문제를 총알받이가 돼서 껴안고 간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사퇴함으로써 문재인과 한 편이라는 인상을 주게 됐다고 본다. 예전 486 세대가 습관처럼 청년은 새 것에 민감하고, 불의를 참지 못한다고 되뇌였지만, 그건 그렇게 규정지은 것 뿐이다.

    손호철: 연속성과 단절성을 같이 봐야 한다. 무엇이 같고 다른지. 거꾸로 보면 사실은 박근혜와 이명박의 단절성 문제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노무현 정부나 김대중 정부와의 단절성은 또 무엇인지, 신자유주의라는 측면에서 얼만큼 차이가 있는 것인지도 지적되어야 한다. 최근 노동자들이 계속 죽고 있지만 사실 지금보다 더 많이 죽은 게 노무현 정부 초기였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봐야한다. 따라서 (이명박과 박근혜는) 일정하게 차이도 있지만 연속적인 부분들이 있다고 봐야 한다.

    정종권: 이명박과 박근혜의 차이가 무엇인지?

    손호철: 문재인과 민주당이 가장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큰 틀을 반MB로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반MB의 1인자는 민주당이 아니라 박근혜였다. 이명박이나 박근혜의 차이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흐름과 다르게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21세기형 박정희라 말했지만 박근혜는 박정희의 틀은 있지만 컨텐츠는 다르다.

    어느 정권을 이해하고 평가할 때 두가지 측면을 봐야 한다. 이념적인 것과 통치자의 스타일이나 심리상태이다. 어쩌면 후자가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통치자의 스타일과 심리적 측면을 볼 때 역설적으로 나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하다 못해 안철수의 공통점을 본다. 이들은 다 순교자적인 멘탈을 가진 이들이다. ‘나는 순교자다’라는 멘탈은 결국 대중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대화한다. 나름의 역사적 소명의식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오히려 더 크게 사고를 칠 수 있는 캐릭터들인 것이다.

    노무현도 ‘대통령은 21세기인데 국민들이 19세기여서 문제다’라고 하고, 항상 비주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은 늘 주류와 싸워왔다고 규정한다. 이명박도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말하고. 박근혜도 주류의 순교자이다. 좌파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다는 순교자적 멘탈을 갖고 있다. 무서운 게 그것이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박근혜가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 라고 말했는데, 이거 본인이 할 이야기가 아니잖나.

    어떤 책에서 ‘진리를 등대 삼아 고난을 친구 삼아’라는 구절을 봤다. 난 그걸 김근태가 쓴 줄 알았는데 박근혜가 쓴 표현이었다. 부모 둘이 총에 죽고 자기도 칼로 얼굴을 다치는 삶의 궤적을 보면 나름 이해는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후보들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 중의 하나가 성장 과정이다. 심리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있어야 사고를 안 친다. 문재인도 그렇지만 문재인과 박근혜의 공통점은 클래스다. 격이 있다. 절제와 신중함(Prudence)를 가지고 있다. 박근혜의 중요한 장점의 하나이다. 노빠들은 얼마나 싸가지가 없냐.

    그런데 박근혜가 인수위에서 사람 쓰는 거 보면 윤창중, 김중태, 김경재 이런 사람들이다. 정말 싸가지 없는 사람들만 기용했다. 나는 이것이 나름 심리적 보상행위가 아닌가 싶다. 본인은 표출하지 못하고 절제해야 하는 감정과 심리를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표출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희연, 온정적 보수주의의 이미지 형성

    조희연: 이명박과 박근혜는 우파 신자유주의세력으로 기본적인 동질성은 있다. 그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연속성이 있다고 해도 좋을 꺼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하에서 변화된 대중들이 있다. 변화된 대중들과 변화된 정치지형 때문에 중도자유주의세력과 보수세력의 사회경제적 지향 같은 것들이 일정하게 수렴되는 지점이 있었던 것이다.

    조희연 교수

    이명박은 보수에게도 대단히 치욕적인 세력이라고 본다. 권력을 극단적로 사유화하고 극단적인 친재벌의 포지션을 취한 보수다. 그게 정상적인 보수라고 보기도 하지만 대중의 눈에서보면 보수의 극단적인 버젼이었고 그래서 대중들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본다.

    그런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우파보수, 즉 이명박 통치 하에서 좌절하고 분노한 대중들이 지금 존재하고 있는데, 이 대중들의 분노와 좌절을 좌파가 전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명박식 극단 보수와는 다른 페이스로 변신한 박근혜식 보수가 이를 전유했다. 이를 ‘온정적 보수주의’로 볼 수도 있는데 박근혜는 일정하게 온정적 보수주의 이미지를 가진다.

    물론 그런 지향이 실현되지는 않을 거라고 보지만 최소한 이명박식의 극단적 친재벌과는 좀 거리를 두고, 반독재적 태도와도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온정적 보수주의 이미지를 대선과정에서 창출했다.

    하지만 이것은 박근혜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다. 이명박의 실정이 없었다면 박근혜도 이명박이랑 똑같이 갔을 건데 대중의 좌절과 분노가 보수를 위협했고, 문재인도 변신하려는 이미지 만들려고 했지만 박근혜도 그런 변화의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대중의 지지를 받은 형국이었다고 본다.

    박재형: 막 이명박정부가 출범했을 때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나라꼴이 엉망이 되더라도, 차기 선거에서 박근혜는 이명박의 보수를 못된 보수정치로 규정하고, 자신이 진짜 보수정치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차기 대권을 박근혜가 가져갈 것 같다는 얘기를 저주처럼 말했던 걸 기억한다. 그 때는 그저 사람들이 (이명박 당선에 대한) 자조적인 의미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결과를 놓고 보면 정말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그럼 지난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높은 지지율로 대통령이 되었던 원인은 뭐였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참여정부의 실패도 큰 원인이었지만, MB의 성공신화를 대중이 소비하려고 했던 측면도 있었다고 본다. 잘 살게 해줄 것이라는 욕망 또는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작동한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손목을 자르고 싶다고 통곡하긴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유권자들은 과거에서 전혀 배우지 못했다.

    물론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가 이명박과 자신을 차별화 하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50대의 압도적인 지지는 성공신화를 소비하고 싶은 (이명박 지지 때와 같으면서도) 다른 버전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라는 기표에는 독재에 대한 공포도 포함되어 있지만, 개발신화와 성공이라는 것도 같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정종권: 조희연 교수가 말하는 것은 일단 신자유주의세력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모두 똑같은 기조의 연장에 있고, 그 맥락에서는 신자유주의 좌파(김대중, 노무현)와 신자유주의 우파(이명박, 박근혜)의 차별성이 크지 않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하지만 대중들의 좌경화, 현 상태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일정하게 수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박근혜는 이명박과 다르다는 지적인 것 같다. 그걸 좁혀서 말하면 이명박 정부는 보수세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보수의 기준과 수준에서 미달한다는 지적이고, 박근혜의 등장과 당선은 이러한 보수 내부의 불만에 대한 보수 나름의 답변이고 변화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조희연: 그것이 온정적 보수주의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손호철: 정확히 말하면 온정적이 아니라 법치주의인 것이다. 온정적인 것은 복지문제이고. 프로세스는 마찬가지이다. 결과물로서 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을 우파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할 것이냐고 제기한다면 난 다르게 본다. 민주주의나 대북정책 관련 의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경제나 복지라는 의제를 본다면, 박근혜가 실제로 실행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약속한 박근혜의 정책들이 김대중, 노무현보다 우측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좌파 신자유주의, 우파 신자유주의라는 구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최소한 박근혜의 정책과 스탠스는 김대중, 노무현보다 더 좌측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람들이 좌파가 아니라 시대와 대중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경제정책이나 복지정책에서 좌경화된 측면은 있지만 박근혜의 정치적 스탠스가 노무현, 김대중보다 우측에 있기 때문에 우파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조희연: 동의한다. 97년의 좌파 신자유주의와 2012년 우파 신자유주의가 있는데 2012년의 우파 신자유주의가 97년의 좌파 신자유주의보다 더 좌측에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손호철: 신자유주의의 다양한 지점과 맥락이 있기 때문에 짚은 것이다.

    정종권: 그렇다면 두 분 다 동의하시는 것이 박근혜의 등장을 제2의 유신을 규정해서는 안되고,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극한적 신자유주의보다 더 강한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로 갈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인가?

    조희연, 손호철: 그렇다.

    조희연: 현 단계에 있어서 온정적 보수주의 담론을 만들고 추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온정적 보수주의 노선이 현실화될 수 있는 지는 다른 성격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실에서는 온정적 보수에서 의사파시즘까지 다양한 편차가 있을 것이다. 법치주의를 강조한 것처럼 말이다.

    대중의 분노와 위협과 좌절때문에 박근혜가 온정적 보수주의라는 좌파신자유주의보다 한 단계 더 좌경적인 공약을 했다. 그것은 보수블럭 전체의 기조와는 일정하게 충돌할 수 있는 딜레마적 모순을 갖고 있다. 벌써 뉴데일리안 등 강경보수세력들은 공약은 말 그대로 공약일 뿐이라는 논리를 퍼뜨리고 있고, 김종인은 인수위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훈수를 하고 있다. 이것은 박근혜(의 정책기조)를 범보수의 평균 수준으로 축소 제한하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리는 박근혜에게 자신의 공약을 지키고 실행하라고 요구할 필요도 있다.

    경제민주화, 복지 담론이 실종된 이유는?
    조희연 “정치의 대중적 지형을 변화시킬 추동력이 없어진 것이 문제”
    손호철 “안철수의 정치개혁안이 정책 선거 실종 시킨 것”

    정종권: 이번 대선 이전에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제일 주요한 화두였던 것 같은데, 실제 대선에서는 과연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가장 중요한 화두와 정책이었던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손호철 교수

    손호철: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대선의 중심적 화두가 아니었다고 본다. 두 가지 지점이 있는데 우선 안철수의 저주이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과정에서 깽판치고 나가고, 이후 다시 안철수가 재등장하면서 민주당이 구세주를 기다린 것처럼 되는 모양이 됐다. 그런데 안철수가 나오면서 핵심 화두로 정치개혁을 들고 나왔다. 정치의 핵심적인 주제는 복지와 경제문제인데, 그 의제들이 사라져버리고 국회의원 정수 축소 문제로 선거의 논점이 이탈했다. 그런 의미에서 안철수의 저주이다. 복지문제나 경제개혁과 변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박근혜와 차별화를 했어야 하는데, 그 싸움의 의제와 장이 사라져버렸다.

    두번째 지점은 박근혜 당선을 수동혁명의 계기라고 하는 것은 지배세력 스스로가 자기 변신을 하고 나오니깐 경제민주화 싸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복지인데, 과연 이번 대선에서 그것이 쟁점이었냐? 아니었다.

    결국 가장 우려되는 태도는 ‘우리가 왜 실패했냐, 우리가 좌경화해서 실패했다, 중도를 못 잡았다’는 류의 것들이다. 범보수세력이 승리한 건 중도세력을 더 많이 뺏었기 때문이다. 거기서 진보가 실패한 것인데, 경제민주화와 복지 문제의 실종과 더불어 더불어 북한과 안보 문제도 있다. 결국 경제와 복지 이슈에서는 제대로 싸움을 벌이지도 못했고, 북한과 안보 문제에서는 통진당에 발목이 묶여서 중도층을 뺏기면서 패배한 것이다. 일전에 나는 결국 북한문제가 총선과 대선에서 저주가 될 거라고 했는데 결국 실현이 된 것이다. 대선 패배에는 북한의 저주라는 맥락도 있다.

    조희연: 저는 정치의 사회적 대중적 지형 문제를 말씀드렸던 것이다. 정치의 대중적 사회적 지형을 어떻게 진보화시키고 좌경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과 계획이 필요하다. 그것이 시민운동과 좌파정치의 과제이고 역할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대중적 지형을 왼쪽으로 변화시킬 추동력이 없어진 게 진정한 문제이다. 지형이라는 좀 거시적 맥락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계획하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박근혜의 공약을 말 그대로만 실시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중산층 70% 공약? 그런 사회는 없다. 룰라나 차베스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중요한 게 복지, 의료, 교육, 노후 등의 문제이다. 기존에는 가계부채나 의료복지, 교육복지, 노인복지에서 보수가 반복지세력이었고 민주세력은 복지세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박근혜도 반복지가 아니라 나름의 복지론을 주장한다. 보수가 반복지에서 (선별적) 복지세력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런 것이 지형의 변화라고 본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복지 문제가 퇴행할 수도 있고, 또 실제로 퇴행한다면 보수의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오히려 보수의 헤게모니가 균열되는 계기가 되고 이것은 진보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박근혜는 현실적 복지를 택했다. 의료복지만 하더라도 문재인 후보가 거의 모든 의료중증질환에서 무상의료를 주장했지만 박근혜는 4대중증질환만 무상지원하겠다고 했다.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한다고 했고 0-5세 보육비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거의 ‘반복지 대 복지’에서 ‘현실적 복지 대 전면적 복지’의 대치구도로 전환했다. 대중은 전면적 복지를 선호하지만 경제담론 등의 영향으로 그 실현가능성에는 의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운동과 좌파정당이 정치, 사회적 정치적 지형을 지속적으로 좌경화 급진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정종권: 두 교수 모두 정치의 사회적 대중적 지형 자체가 이명박 정권 때보다 좌경화됐다고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박근혜는 우파이지만 그가 수용하고 수렴해야 하는 대중들의 상태와 정치지형에서 일정하게 좌경화하는 정책과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인 것 같다. 박근혜 개인의 정치적 입장도 그런 전체 정치사회적 지형과 대중들의 상태에서 분석하고 바라봐야 한다는 의견으로 보인다.

    손 교수가 말씀하시는 요지는 복지와 경제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져야 하고, 그 의제를 둘러싼 싸움판이 더 크고 강력하게 형성되도록 방향을 잡아야 했는데, 안철수의 등장과 안철수의 정치개혁이라는 화두가 싸움의 틀과 프레임을 바꿔버렸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그걸 안철수의 저주라고 표현한 것 같다.

    손호철: 좌경화를 하다가 실패했으니 중도를 잡는 전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민주당 내에서는 주장하던데 왜 실패했나? 복지 의제를 제대로 논쟁하다가 패배했던 것인지, 대중이 갑자기 바뀐 것인지를 제대로 짚어봐야 한다. 민주당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패배했을 때와 분위기와 똑같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와 주류들은 중도층을 잡기 위해서 복지가 아니라 성장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민주당 플랜이라는 당시의 주장도 그걸 포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방선거에서는 전부 반대로 나왔다(대중들이 좌경화하고 성장이 아니라 복지를 선호하고 지지했다는 의미).

    정치사회적 지형의 변화들은 조 교수의 말대로 ‘운동의 몫’이기도 하지만 ‘정치의 몫’이기도 하며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현실의 몫이고 결과’이다. 민중과 대중들이 복지를 지지하고 선호하게 된 것은 정치와 운동의 역할 때문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처참하고 극단화된 현실의 결과가 낳은 것이기도 하다.

    항상 정치라는 것에 대해 흔히 익스피리언스experience(경험)와 미닝meaning(의미부여)라고 하는데, 경험한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운동이고 담론이고 정치이다. 박근혜의 변화도 나름 삶의 체험과 경험, 변화에 대한 의미 부여이다.

    김대중 정부의 사회적 안전망도 IMF패키지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복지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복지이냐의 문제 설정이 필요하다. 2004년인가 한나라당 대표 집무실 벽면에 ‘인권과 반핵’이라는 구호가 크게 적혀 있었다. 물론 그것은 북한 인권과 북한 핵 반대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그 담론들도 보수주의자들의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단순한 논리로 싸울 대는 지나갔다. 이길 수 있는 내공이 있어야 하고, 그 내공을 겨룰 수 있는 싸움의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장 자체가 서지 않은 것이다.

    박재형: 그런 의미에서 민중들은 늘 저항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운동권적인 사고 방식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낙관적인 전망을 가져야 하겠지만, 야권 일각의 시각이나 방식은 여전히 7, 80년대에 머물러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종권: 조희연 교수는 정치사회적 지형 자체의 급진화와 좌경화를 추동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강조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추동의 주체로서 시민사회와 좌파정당을 제기했다. 손호철 교수는 싸움의 쟁점과 의제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 같다. 지형에 대한 과잉 의미 부여에 대해서는 좀 비판적인 것 같다. 지형이 중요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운동과 정치의 몫보다는 현실의 규정이 더 크다는 지적도 그런 맥락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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