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의 좌파 ②
    맑스주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비판과 비평] 홉스봄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2013년 01월 02일 01: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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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의 정치적 상속자들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2부는 마르크스의 후예들의 역사를 다룬다. 이 부분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1880~1914년, 1929~1945 기간의 반파시즘 시대, 1945~2000에 이르는 전후 마르크스주의 성장과 퇴조의 시기가 그것이다.

    홉스봄은 이 책에서 역사유물론의 이론적 발전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정치운동과 지식인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만 논의를 전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2부는 마르크스주의의 운동사이자 수용사라 하겠다.

    앞에서 보았듯이,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독립된 정치조직이라면 그 성격을 문제 삼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만으로 구성된 혁명정당의 건설이라는 쟁점은 레닌주의의 영향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 점에서 홉스봄은 마르크스 사후 만들어진 제2인터네셔널의 정당들과 전후 사민주의 정당들도 마르크스가 예상했던 형태의 조직은 아닐지라도 마르크스주의의 유산을 부분적으로라도 상속한 정당으로 보고 있다.(18쪽) 볼세비즘에 토대를 둔 공산당만이 아니라 서구 사민주의도 마르크스의 동등한 계승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사민주의정당은 1950년대에 이르러 마르크스주의를 공식적으로 폐기하지만 말이다.

    볼세비즘이든 서구 사민주의 정당이든 공유하는 정서가 있는데, 그것은 노동자들은 독립된 정당조직을 통해 사회변혁과 개혁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볼세비즘은 혁명정당으로서 체제변동을 추구했지만 사민주의는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홉스봄이 비록 사민주의 정당에 대해 근본적으로 비판했을지라도 그가 이들을 노동자 운동 내에서 연대 세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던 것은 분명하다.

    1890년대 수정주의가 대두되고, 제2인터네션널의 정당들이 볼세비키화를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안주하려 했을 때, 그 중심에 선 것은 다수 노동자들의 지향이었다.

    홉스봄에 따르면 서구에서 사회적인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조차 다수의 노동자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거부했다는 점이다.(415쪽) 이는 1930년대에도 그랬고 1970년대에도 그랬다. 그들은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을 선택했다. 자본주의는 그들에게 참정권이 부여하고,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정당이 집권할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체제내화했다. 이는 물론 사민주의 정당들이 개혁세력으로서 자본주의의 방어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렇게 된 측면이 없지 않다.(417쪽)

    이것과 관련하여 1930년대의 인민전선의 경험은 매우 시사적이다. 반파시즘 인민전선은 분명 노동자계급의 지도하에서 다양한 계급들을 동맹시킴으로써 반파시즘, 반자본주의 전선을 확대하려 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체제이행을 이끈다는 것이었다.(315쪽) 적어도 디미트로프 테제나 이를 수용한 톨리아티의 관점은 그런 것이었다.(316쪽) 그러나 실제 반파시즘전선은 그 자체로 ‘이행’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 파시즘의 패퇴를 우선적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다.

    1936년 프랑스 노동자들의 6월 총파업 모습

    파시즘 패퇴가 급박한 과제라는 점이 있긴 하지만 반파시즘 전선에 참여한 세력들은 의식적으로 사회주의적 이행을 추구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파시즘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방어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실천을 수행했던 것인가? 이에 대한 홉스봄의 판단은 민주주의를 방어한 것만으로도 반파시즘 인민전선은 굉장히 큰 의미 있는 실천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323쪽)

    더불어 유추해 보면, 전후 서구 공산당이 유로코뮤니즘으로 이행한 것은 공산주의자들조차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급진적 개혁정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서구에서 사민주의와 볼세비즘이 개혁주의로 수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수렴은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 세계에서의 좌파정당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것으로 참담하게 귀결된다.

    서유럽 사민주의는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옹호자가 되었고 유로공산주의를 대표하던 이탈리아 공산당은 민주당으로의 전환되었으며 프랑스 공산당은 몰락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하의 좌파정당들은 공산당이든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든 개혁정당으로 수렴되었고, 직접적인 혁명적 노선을 구체화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 해체이후 그 조차도 우파로 전향하거나 해체의 상태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지적 상속자들

    비공산권 세계에서 마르크주의는 사회운동으로서 큰 족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주요한 이론으로 확립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이론이 최초로 탄생했을 때부터 수많은 논쟁의 대상이 됨으로써 스스로를 세련된 방향으로 정교화해 왔다.

    20세기 전 역사에 걸쳐 학문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분명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학에서는 언제나 마르크스주의가 찬밥 신세였지만 우리는 루비니와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조차 ‘마르크스, 당신이 옳았소’라고 칼럼에 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역사학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흔적을 남겼다. 시대구분이나 역사 변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제외하고는 논의할 수 없는 상태이다.

    심지어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주창했다고 여겨졌던 미시사가들조차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전제라고 주장한다. 사회학에서 마르크스는 그 학문을 창시한 고전 이론가들 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철학에서는 역사유물론이 사회철학으로서 강력한 토대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전전의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는 그 존재양태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전전 마르크스주의의 국제적인 버전은 소련에서 제시한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였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공식 버전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화 하지 않은 다수의 마르크스주의가 존재했다. 레닌, 트로츠키, 로자의 마르크스주의(고전적 마르크스주의)가 있었고, 그로스만, 판넨쿠크, 파울 마틱의 마르크스주의(이른바 평의회 마르크스주의), 오스트로 마르크스주의와 카우츠키의 마르크스주의(제2인터네션널의 마르크스주의)가 있었다. 또한 그람시/코르쉬/루카치의 마르크스주의(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도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학계에 남아 있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니라 공산당 활동가였고 혁명적 실천에 참여하던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당대의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변혁의 이론으로 활발하게 수용되었다. 이 시대의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적 실천과 결합된 마르크스주의였던 것이다.

    반면 전후 마르크스주의의 지적 발전은 주로 대학에 자리 잡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 마르크스주의는 한편으로 주류 지식인 사회에 영향을 주고, 다른 한편으로 다른 지적 원천들로부터 자양분을 얻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마르크스주의는 이제 다양한 학문들과 교류하고, 상이한 지적 흐름을 결합시켜 발전했으며, 뚜렷이 ‘무엇이 마르크스주의다’라고 정의하기 힘든 상태로 변화되었다.(377쪽)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계승자들은 노동자계급 운동이 체제와 타협했다고 이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새로운 변혁주체를 탐색하려 나섰다. 루이 알튀세르는 스피노자, 정신분석학, 구조주의 등을 절묘하게 수용하여 마르크스주의를 혁신하려고 했다. 물론 이 혁신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은 당대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그 나름의 해법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다. 홉스봄은 서구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 세계에서 발전했다고 썼지만, 이 전통은 분명 1960년대 ‘거리의 사상’이었다. 미국에서든,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든, 혹은 라틴아메리카에서든 서구 마르크스주의는 ‘전사’들의 이념이 되었고, 실천의 지침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서구마르크스주의는 지적 발전에 조응하는 만큼 노동자대중과의 결합력을 높이지는 못했다. 이 이론들은 1960년대 급진화된 학생들에게는 매력적이었지만 노동자계급이 이를 수용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다.(378쪽) 그것은 보다 대중적인 이데올로기로 번역되어야만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활동가 지식인들에게 요구되는 과제임은 분명하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논하는 과정에서 홉스봄이 지속적으로 다루는 문제가 있다. 그는 변혁운동이 영향력이 확대될 때는 언제나 지식인들을 대량으로 마르크스주의로 끌어들이거나 그 지지자로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287쪽)

    지식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운동은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기가 훨씬 쉽다. 공산당들이 파시즘에 저항하며 보편적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었을 때 지식인들은 공산주의를 강화시키는 자양분이 될 수 있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연과학에서조차 많은 학자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크게 호감을 가졌다는 점이다.(302쪽) 아인슈타인도 그렇고 멘하탄 프로젝트를 이끌던 오펜하이머도 그렇다.

    전후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운동, 사회운동이 보편적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을 때, 이 운동은 지식인들을 끌어들였으며, 지식인들을 끌어들이면 들일수록 사회운동은 더 크게 성장했다. 오늘날 지식인 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소멸된 것은 노동자운동이 보편적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대의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지식인들의 배신’이 더 큰 문제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1980년대에 이르면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은 심각하게 약화된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신우익의 등장, 시장 근본주의의 확대는 급진주의를 논의할 수 있는 토대를 근본적으로 침식했다. 더불어 서구의 권위주의적 질서에 대항하며 자유를 외쳤던 신좌파들은 시장이 제공하는 자유에 물들어 버렸다. 그들이 원한 개인의 자율성은 시장체계 하에서 소비의 자율성으로 대체되었고, 지식 세계에서는 소위 포스트주의가 범람하게 된다. 모든 것이 상대화되고 이론들은 하나의 ‘이야기’로 전락해 버린다.

    노동운동이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반체제적인 문제의식은 지식인세계에서도 대중운동 속에서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노동운동의 토대였던 전통적인 육체노동자가 감소함으로써 노조의 영향력은 뚜렷하게 약화되었고, 그 약화된 틈을 매운 것은 종교 근본주의와 민족주의였다.(406쪽) 21세기 초반은 자본주의 경제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급진적인 반체제 운동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산사태라고 홉스봄은 쓰고 있다.

    홉스봄의 마르크스주의?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21세기에 접어든 시점에서 마르크스주의가 퇴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끝을 맺는다. 그는 마르크스의 정치론과 사회구성체론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20세기 마르크스주의의 전개와 그와 연관된 노동자운동, 정당운동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글의 끝맺음은 어떤 새로운 전망도 제시하지 않은 채 단기에 있어서 변혁적 전망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만다. 페리 앤더슨이 [미완의 시대] 서평에서 쓰고 있듯이, 그는 자신이 ‘패배한 좌파’라고 인정하는 것 말고 어떤 희망적인 전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패배의 인정 속에서도 홉스봄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미완의 시대]에서 그는 자기 스스로 영국 공산당을 탈당하지 않은 이유로 세계혁명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볼세비키적 신념을 단 한순간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정작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쓰는 시점에 이르러서 그는 볼세비키에 대한 논의는 거의 하지 않는다. 심지어 볼세비키 혁명이 조건의 성숙 없이 일어남으로써 종국에는 실패로 돌아갔다고 쓴다. 이는 [극단의 시대]에서 미국보다 소련사에 대해 훨씬 많은 분량을 할당하는 것과 뚜렷이 대조된다.

    70년대 중반 이탈리아 공산당의 베를링게르 서기장(왼쪽)

    더불어 그는 전후 마르크스주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유로코뮤니즘의 역사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탈리아 공산당에 대해서도, 다소간 경멸했던 프랑스 공산당에 대해 단 한마디도 쓰지 않는다. 이들은 그저 스쳐지나가며 언급될 뿐이다. 반면에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적 유산은 구체적인 이념과 상관없이 대중적 노동자 정당의 존재 그 자체라고 반복해서 강조할 뿐이다.

    그는 [극단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서도 심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반파시즘 인민전선이다. 반파시즘 인민전선에서 공산당들은 보편적 대의와 문명을 대변하는 세력이었다.(294쪽) 그는 공산당이 체제 변혁을 추구했기 때문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적에 맞서 사회적 정의를 수호했다는 점을 줄기차게 부각시킨다. 더불어 이시기 러시아 혁명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볼세비키들이 진보와 이성, 과학을 대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관점은 홉스봄이 마르크스주의를 계몽주의적 유산의 계승자로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계몽주의는 이성, 진보, 인간해방을 추구한 사상이었고 자유주의가 몰락하던 시절에 마르크스주의는 계몽주의를 대변함으로써 지식인들을 공산주의의 대의 속으로 끌어들였고, 피억압대중들을 지도할 수 있는 윤리적 주체가 되었다는 것이다.(296쪽)

    홉스봄의 이런 경향은 징후적이다.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부각시키고 노동운동의 존재를 옹호하면서도 노동자 대중들이 혁명의 편에 단 한 번도 선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체제 변동의 이념이라기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적 가치와 노동의 존엄’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가 보기에 현실은 [극단의 시대]에서 그리고 있듯이 산사태의 상태에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초래한 파국에서 힘을 얻는 것은 종교적 근본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반동적 이데올로기들이다. 이 상태에서 홉스봄은, 마르크스주의의 과제는 체제변동이 아니라 근대성이 이룩한 문명을 방어하고 사회체제가 해체되는 것을 막는 것에 두고 있다.

    이는 국가에 대한 그의 언급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마르크스가 묘사적인 수준에서 부르주아 국가를 자본가계급의 집행위원회라고 했지만 21세기의 국면에서 그것은 공공성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424쪽) 국가는 시장이 만족시킬 수 없는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것이다. 홉스봄은 이행을 상대화시키면서, 그러니까 볼세비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며 부르주아체제가 달성한 개혁을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홉스봄은, 앞에서도 보았듯이 사회주의가 없어도 노동운동은 존재할 것이라고 단언한다.(423쪽) 그가 보기에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조직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더 큰 사회적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람시를 특권화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책에서 그람시는 평의회 마르크스주의자 볼세비키로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구성하는 이론가로서 인용된다. 그는 그람시의 실천철학을 소개하며 노동자들이 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사회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332쪽) 노동자들이 혁명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홉스봄은 그만큼 미래의 역사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나오며: 비판적 평주

    홉스봄은 어떤 점에서 전형적인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근본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회주의로의 변동을 정당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당면 과제는 서구 사회가 이룩한 자본주의적 진보를 방어하는 것이다.

    내가 그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한 것은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이 글 어디에서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이론적 혁신과 조직적 혁신을 제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이다. 그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전개를 논하면서 오늘날의 마르크스주의는 창시자들의 그것과 같을 수 없으며, 모든 마르크스주의는 그가 직면하고 있는 정세에 맞게 재창조되어야 함을 정당하게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늘날 직면한 위기에 걸맞게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전망조차 제시하지 못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논하고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이를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 침묵한다.

    그가 고전적 문제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도 고찰할 수 있다. 그는 1970년대 신좌파를 논하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생태주의 운동 등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와 경쟁하는 새로운 운동이라고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마르크스주의 내부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천착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노동자 운동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특히 그가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일관된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대중적으로 조직화될 가능성이 없는 운동에 대해서는 변혁적, 개혁적 잠재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볼세비키의 풍모를 지닌 듯하다.

    이는 [미완의 시대]에서 신좌파의 성과를 완전히 기각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말하자면 그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성장이라는 국면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어떻게 전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저 정세에 맞게 정세가 요구하는 과제를 실천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창조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만을 강변하다.

    더 나아가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당 형태의 운동이다. 당이라는 정치조직이 존재함으로써 변혁이든, 개혁이든 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인정한다. 노동자들이 정치적 실천의 주체가 됨으로써 사회의 헤게모니 세력으로 구성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당이라는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정치의 전화를 위해서는 조직 형태의 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새로운 국면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조직적인 관점에서도 실험적 실천을 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그 단초는, 3절에서 보았듯이, [공산당 선언]에 나타난 마르크스의 조직론일 것이다. 홉스봄이 이와 같은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이 21세기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가 보다 심층적으로 논했다면 이 책은 더 큰 의미를 지녔을 지도 모른다.

    더불어 마르크스주의가 단지 계몽적 유산의 방어자로서만 의미 있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는 분명 계몽주의의 후예이고, 마르크스주의 프로젝트는 계몽을 급진화시키는 수단이었다. 이성을 옹호하고, 과학의 진보를 믿으며, 대중이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마르크스주의의 거역할 수 없는 구성 부분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홉스봄이 그리고 있듯이, 자본주의적 관계 하에서의 ‘인간적 가치’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계몽의 급진화는 노동자계급과 인민의 자기해방의 실천이자 체제변동을 의미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명의 가치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이다. 이행이 단지 특정 국가에서의 국가권력의 장악과 이를 방어하는 것만으로 제한되지 않고, 반체제적 운동들의 세계적 영향력의 확대라는 측면으로 사고한다면 계몽의 급진화는 여전히 부르주아적 상상력을 넘어선다. 물론 이런 급진적 프로젝트의 재생은 작고한 노역사가에게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몫일 것이다.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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