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 한국영화의 8가지 키워드
        2012년 12월 31일 04:18 오후

    Print Friendly

    * 2012년 12월 31일 마지막 날 부터 ‘영화잡론’ 의코너를 문석 <씨네21>편집장과 함께 김성훈 <씨네21>취재기자가 함께 꾸려나간다. <편집자>
    ——————————

    2012년 한국영화계는 다사다난했다. 좋은 일도 있고, 아쉬웠던 일도 있었다. 분명한 건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다이나믹한 해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올 한 해 한국영화계의 주요 사건과 소식을 8가지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한국영화 1억명 관람시대

    올해 한국영화는 승승장구했다. 두 편(<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었고, 무려 9편(<늑대소년>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내 아내의 모든 것> <연가시> <건축학개론> <댄싱퀸> 등)의 영화가 400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돌파했다.

    개봉했다하면 “100만 관객은 기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100만 관객 이상 동원한 한국영화도 수두룩했다(무려 28편이다!).

    한국영화의 눈부신 선전 덕분에 올 한 해 동안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1억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성적을 두고 한국영화가 호황기에 접어들었다고 속단하긴 아직 어렵다. 그러나 지난 2005, 6년부터 지난해까지 계속된 한국영화의 불황에서 조금씩 벗어나 상승국면에 접어든 건 분명하다.

    영화관객 1억명 돌파 기념행사(사진=문화체육부 공식 블로그)

    물론 2012년 한국영화의 대호황은 어디까지나 스탭과 제작사의 뼈를 깎는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스탭의 처우 개선과 고용 안정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어쨌거나 한국영화의 상승세가 2013년에도 지속될지는 영화산업의 여러 구성원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감독들의 수난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곧 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낭만’적인 시절은 없다. 현장을 지휘하는 영화감독 얘기다. 시작은 충무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이었다. 지난 5월, 그는 <미스터K>(현재 제목은 <협상종결자>)의 해외 촬영분의 일부 장면을 두고 제작사인 JK필름과 갈등을 겪다가 프로젝트에서 하차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9월에는 박신우 감독이 <동창생>을 촬영하던 중 제작사인 더 램프와의 이견 충돌로 메가폰을 내려놓아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임순례 감독은 <남쪽으로 튀어>의 막바지 촬영을 하다가 제작자의 연출권 간섭 문제로 잠시 프로젝트에 하차했다가 현장으로 복귀한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는 제각기 다르고,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세 경우 모두 감독의 고유 권한인 연출권이 침해당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후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사건 당사자인 제작사에 사과를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산업을 움직이는 힘의 균형이 대기업 투자배급사에 기운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말라는 보장은 없는 게 현실이다.

    정치영화 붐

    변화에 대한 열망은 컸다. 대선의 해였던 것만큼 정치영화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현재 극장에 걸려있는 <26년>(감독 조근현)은 강풀의 동명 웹툰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80년대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했다. 여러 정치적인 외압을 겪으며 엎어지고, 재개하기를 반복하다가 7년 만에 가까스로 제작에 들어간 영화는 그 사실만으로 나름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12월28일 현재 290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동원하면서 3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을 정도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남영동 1985>는 영화 내내 제대로 쳐다보기가 괴로운 영화였다. 잘 알다시피 영화는 고 김근태 의원이 남긴 수기 <남영동>을 모태로 한 작품이다. 정지영 감독은 이 책의 이야기 중 22일간 벌어진 고문의 과정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다. 영화를 지켜보기가 괴로웠지만 야만의 현장이 어떤 모습인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밖에도 박정희 정권의 고문에 의해 조작된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유신의 추억 :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와 온갖 거짓말과 궤변을 일삼은 이명박 대통령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MB의 추억>도 있다.

    어쨌거나 대선은 끝났고, 우려했던 소식만 기다리고 있다.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퍼스트 레이디>는 얼마 전 제작발표회를 가졌고, 11년 전 벌어진 연평해전을 소재로 한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은 내년 초 크랭크인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재개관

    그토록 염원하던 보금자리가 다시 생겼다. 사단법인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은 지난 3월 서대문구 신문로에 위치한 미로스페이스와 정식 임대 계약을 체결해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인 5월29일 인디스페이스가 재개관하며 광화문 시대를 열었다.

    인디스페이스가 어떤 곳인가. 2007년 11월8일 옛 중앙극장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자리를 잡았던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2년 간 운영되다가 2009년 12월30일 ‘잠정 휴관’했다. 당시 영화진흥위원회 조희문 위원장이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자를 새로 공모한다고 발표했고, 이것이 이명박 정부의 노선인 ‘좌파 문화단체 배제’의 일환으로 나온 것임을 알게 된 인디스페이스는 이 공모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민간의 힘으로 재개관하기 위해 3년 가까이 험난한 여정을 치러온 그들이었다. 그러니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출발했던 지난 2007년과 달리 관객, 영화인, 독립영화인 등 많은 사람들의 힘이 자발적으로 모아져 설립됐다는 게 이번 재개관의 의미라면 의미다.

    아이돌 배우 전성시대

    수지, 최시원, 탑, 택연, 박재범, 김재중, 동준, 손나은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아이돌 그룹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이들은 아이돌 그룹과 연기를 병행하는 ‘연기돌’이다.

    아이돌이 노래만 부르는 시대는 갔다. 생각해보라.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아니었다면 첫사랑의 풋풋함을 제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을까.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의 최시원은 또 어떤가. 톱스타 특유의 뻔뻔함과 거만함을 제대로 살려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은 그였다. 그렇다면 탑은? 박재범은? 저마다 재능과 능력이 조금씩 차이는 있겠으나 영화계가 배우로서의 아이돌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과거에는 아이돌이 영화에 출연하면 외도처럼 보였는데 최근 들어 아이돌과 배우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는 반응이나 “아직까지 아이돌의 출연이 관객의 티켓 구매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연기로 인정받은 아이돌은 기존의 배우 못지 않은 연기력과 자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어쨌거나 노래와 연기를 병행하는 시대에서 피곤해진 건 역시 아이돌이다.

    IPTV를 비롯한 부가판권시장의 급성장

    비디오 가게를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없는 영화가 없었다. 극장 개봉 중인 영화부터 거장의 오래된 영화까지 리모컨 하나면 간단히 골라볼 수 있다. 가격도 합리적이다. 보통 편당 3500~4000원, 극장 동시 개봉작인 경우 1만원이면 다 해결된다. 비싼 거 아니냐고? 천만에. 대중 교통을 이용해 극장가서 영화티켓 끊고, 영화보고, 커피마시면 기본 5만원은 각오해야 된다. 1만원으로 가족 모여 앉아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한 거다.

    그게 요즘 사람들이 IPTV를 비롯한 VOD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보는 이유다. 덕분에 IPTV를 비롯한 부가판권시장이 급성장했다.

    2012년 11월 기준으로 IPTV 가입자 수가 6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자료 ‘IPTV/디지털 케이블TV 연도별 가입자 현황’에 따르면, IPTV를 비롯한 케이블IPTV를 비롯한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수가 총 2200만명에 이른다.

    그리고 2011년 IPTV와 디지털케이블TV의 영화 총매출액은 1014억원 정도로, 2010년의 213억원에 비해 무려 476%나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726억원을 기록했다고 하니 연말쯤에는 지난해의 매출액을 가뿐히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부가판권시장의 성장이 관객에게는 자유로운 콘텐츠 접근의 기회를 주고, 한국영화산업에게는 작은 숨통을 틔워줄 것 같다.

    김기덕의 귀환

    여러 의미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컴백이었다.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로서 한국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해외에서 환대를 받고 돌아온 <피에타>는 9월6일 국내 개봉했다. 그가 연출한 작품이 한국에서 개봉하는 건 2008년 <비몽> 이후 거의 4년 만이다. <비몽>과 <피에타> 사이에 <아리랑> <아멘>이 있었지만 김기덕 감독은 그 두 편의 영화가 한국에서 정식 개봉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봉한지 27일 만에 <피에타>는 60만여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을 불러 모았고, 김기덕 감독은 “작은 영화에 상영 기회를 주겠다”는 말을 남기며 <피에타>의 조기 종영을 선언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독과점 폐해를 비판해온 그였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김기덕의 <피에타>는 갖가지 이야깃거리로 대중의 이목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현재 김기덕 감독은 제작자로서 신연식 감독의 <배우는 배우다>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중이다.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영화팬들에게 2012년은 기다림의 해였다.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감독이 올 한 해 동안 할리우드 프로젝트 혹은 유사 할리우드 프로젝트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스토커>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단둘이 살고 있는 딸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브스카)와 엄마 이블린 스토커(니콜 키드먼) 앞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삼촌 찰리(매튜 구드)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영화는 2013년 1월20일 북미 개봉한 뒤 2월 국내 개봉한다.

    봉준호 감독의 첫 해외 프로젝트인 <설국열차>는 프랑스 출신의 장 마르크 로세트가 그리고 자크 로브가 쓴 동명의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기상 이변으로 지구에 강추위가 찾아와 사람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미래가 배경이다. 겨우 살아남은 자들은 식량이 있는 설국열차에 올라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물과 식량이 고갈되고, 기차 안은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며 무법지대로 변한다.

    <설국열차>는 제작 전부터 화려한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크리스 에반스를 비롯한 존 허트, 틸다 스윈튼, 제이미 벨, 옥타비아 스펜서, 이완 브렘너, 송강호, 고아성 등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영화는 2013년 여름 개봉 예정이다.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 <라스트 스탠드>는 “<다이 하드>와 <하이눈>의 결합과도 같은 느낌”의 영화다. 마약조직의 보스 버렐(피터 스토메어)가 법정에서 탈출해 레이싱카를 타고 멕시코 국경을 넘으려고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가장 빠른 차가 국경에서 가장 느린 마을 소머튼에 이르러 보안관 레이 오웬스(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맞닥뜨린다. 그때 보안관과 마약밀수업자들의 대결이 펼쳐진다. 영화는 1월18일 북미 개봉한 뒤 상반기 국내 개봉한다. 어떤가.

    세 감독의 신작만으로도 2013년이 기대되지 않은가.

    필자소개
    씨네21 취재기자. 한때는 곽경택, 장률 감독의 조감독이었다. 매주 월요일 밤마다 축구팀에서 공 차고, 주말마다 온라인 리그에 출전한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