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쟁과 선동의 시인 송경동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아름답지 못한 시대에 시인의 시는...
        2012년 12월 31일 04: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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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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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시가 넘쳐난다. 책받침에, 책갈피에, 고층 빌딩의 벽에, 지하철역의 유리창에 예쁜 글씨로 새겨진 아름다운 시들은 이 세상이 온통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고 설파한다.

    꽃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고 떠나온 고향의 정취를 되살리는 그런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서 나는 가끔씩은 고개를 끄덕이긴 하지만 그런 시의 허위에 분노를 삭이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삶 자체를 위협하는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시인들, 그리고 그런 시인들이 쓴 싸구려 조화같은 시를 온갖 장소에 덕지덕지 붙여 놓는 문화직업인들을 나는 단연코 사기꾼들이라고 규정한다.

    쌍용차 사태로 죽은 수십 명의 추도식장이 있는 대한문과 부당해고에 맞서 5년 이상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재능교육 본사 바로 아래에 있는 서울시청역 곳곳에 붙여져 있는 아름다운 시들은 노동자들을 능욕하는 시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들의 어려움을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달콤함을 말하는 시들을 나는 야만적인 더러운 시라고 생각한다. 나는 넘쳐나는 더러운 시, 야만적인 시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럽고 야만적이라는 사회라는 사실을 되풀이 확인한다.

    더러운 세상에서 더러움에 분노하는 시는 좀체 보이지 않고 그래서 그런 시는 더욱 소중하다. 요즘 나는 이런 소중한 시를 거리의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송경동의 시에서 찾는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시인의 역할은 다듬은 언어로 세상을 노래하면서 사람들의 감정을 정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시인의 꿈은 이런 역할을 함으로써 가람들의 기억에 남는 시를 쓰고 싶어 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송경동도 이런 꿈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나도
    여느 시인들처럼
    꽃을, 사랑을 노래하고 싶다
    한 잔의 진한 커피
    한 잔의 맑은 녹차와 어우러지는
    양장본 속 아름다운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 중)

    그러나 송경동은 자본권력이 쓰레기처럼 버린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일손을 빼앗긴 350만 농민들과 미군기지 건설 때문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을 져버릴 수 없기에 아름다운 시, 문학사에 기리 남는 시를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 시대의 노동자 시인 송경동

    현실이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없게 한다면 아름다운 시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현실이 투쟁을 요구한다면 투쟁의 시를 쓸 수밖에 없다고 송경동은 말한다. 위의 구절이 나오는 송경동의 시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는 양장본 문학전집이 보기 좋게 진열된 서재나 응접실에서 혼자 명상하면서 읽는 시가 아니다.

    이 시는 투쟁의 현장에서 투쟁을 선동하는 시이다. 이 시는 사실상 2006년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에서 처음 읽혀졌었고 그런 모임과 비슷한 목적으로 모인 집회에서 거듭 읽혀졌다. 아름다운 시 쓰기를 포기한 송경동은 자신의 시가 투쟁의 시이고 선동의 시임을 내세운다.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없는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에서 송경동은 이 시의 메시지가 민중의 삶을 유린하는 권력과 그런 권력의 횡포에 반대하는 것임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빌어먹을 이런 개똥같은 게 세계화라면
    나는 내 온몸에 불을 싸지르고라도
    전 세계의 반민중적 세계화를 반대한다
    이것이 21세기 선진 세계시민사회라면
    나는 정중히 그 세계시민사회에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 중)

    이 시의 선동적 메시지는 단순히 침략적 자본의 길을 터주는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진술이 아니다. 송경동은 직접 투쟁을 선동한다. 그 투쟁은 오욕의 과거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꾸는 투쟁이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한 손으로 미사일 버튼을 잡고
    한 손으로 조약서를 들이미는 것이 자유무역협정인가
    오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완용의 잔재들이여
    너희의 역사의식 속에서
    을사조약은 여전히 구국을 향한 결단이었으니
    오호, 아직 끝나지 않은 김영삼의 잔재들이여
    너희의 역사의식 속에서 IMF 신탁통치는
    여전히 어쩔 수 없는 세계화의 대세였으니
    오호, 민중이여!
    이제 우린 다시 갑오농민전쟁가를 불러야겠구나
    오호, 다시 오늘의 이 땅을 죽음이라 부르고
    87년 6월과 7, 8, 9월의 함성을 준비해야겠구나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 중)

    이 구절에서 송경동은 한미자유무역협정이 미국의 자본 권력이 한국의 민중에 대한 무력 강탈임을,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한국의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이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들임을 일깨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민중은 외세의 침략과 봉건수구세력에 맞서 죽창 들고 봉기했던 갑오농민전쟁의 농민군과 같이, 그리고 독재 정권에 빼앗긴 인민 주권을 되찾기 위해 항쟁을 일으켰던 87년의 시민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송경동은 외친다.

    고졸 출신의 노동자 시인으로서 구로노동자문학회 등의 문학 모임을 함께하며 시를 쓰던 송경동은 2006년에 시집 <꿀잠>을 냈고 2009년에는 시집 <사소한 물음에 답함>을 냈다. 2011년에는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 간다>를 냈다. 노동자 시인으로서의 송경동은 <노동의 새벽>을 냈던 박노해, <만국의 노동자여>를 냈던 백무산 등으로 대표되는 80년대의 노동문학 또는 노동시의 흐름을 2000년대 이후인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송경동의 <꿀잠>이나 <사소한 물음에 답함>에 실려 있는 시들은 80년대의 노동시의 중요 주제인 노동문학의 계급성과 서정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송경동의 시가 80년대의 노동시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최근 시에 나타나는 선명한 현장성과 투쟁의 선동에서 확인한다.

    앞에서 언급한 「한미 FTA는 내 시도 빼앗아간다」가 집회 현장에서 읽기 위한 시이듯이 최근에 쓴 그의 다른 시들은, 예를 들어 집회 현장에서 경찰에 타살당한 건설일용노동자 하중근의 추도식장에서 읽기 위하여 쓴 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나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죽은 황유미를 추도하기 위한 시 「누가 황유미를 죽였나요—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 노동자 황유미님께」는,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의 악랄함을 비판하면서 노동자들의 연대 투쟁의 절박성을 호소하고 있다.

    송경동이 노동자의 절박한 정서를 바탕으로 노동자의 해방 투쟁을 선동하는 시인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땅의 박해받는 노동자 농민으로서는 든든한 동지 하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송경동은 시인이면서 시인을 넘어서는 투쟁의 전사이다. 송경동은 투쟁을 선도하는 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노동자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이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대량 해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크레인에 올라 1년 가까이 고공 농성을 했던 김진숙을 지원하기 위해 그리고 박해받는 노동자들도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임을 일깨우기 위해 기획된 2011년의 희망버스는 송경동이 없었다면 애초부터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송경동은 희망버스를 기획하고 이를 성공시킴으로써 김진숙과 그의 동지들인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은 크레인 고공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고 결국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해 정부차원의 해결책을 강제할 수 있었다.

    희망버스 기획과 맞먹는 노동자와 시민의 연대투쟁 기획으로 송경동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의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에도 깊이 개입되어 있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문자메시지 하나로 덜렁 해고통보를 받았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을 위하여 김소연이라는 노동조합 지도자의 지도력도 필요했었지만 송경동의 투쟁 기획과 선전활동 역시 필요했었다.

    안으로는 투쟁 조직을 정비하면서 밖으로는 이 투쟁을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하였던 송경동이 없었다면 이 투쟁은 이어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성공시키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기륭전자비정규직 투쟁에 대하여 쓴 시 「너희는 고립되었다」에서 송경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는 2년 동안 쓰고 버리는 64만원짜리 싸구려 기계같이 보이겠지만 함께 뭉친 노동자들은 “차별없는 세상, 평등한 세상”을 이룩하기 위한 “860만 비정규직의 해방을 위해 달리는 전사”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송경동에게 시와 투쟁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이다.

    시인이 시만 쓰고 노동자가 일만 하고 학생이 공부만 하고 교수가 연구만 한다면 그리고 그 들 각각이 자신이 하는 일 이외의 일은 알 바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기계의 부품이다.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은 끊임없이 자기의 일이 아닌 것에 관심을 끊으라고 한다. 기계의 부품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인 것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며 전체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 받는 사람들과 함께 투쟁하는 시인 송경동은 우리가 왜 함께 사는 사람이어야 하는 지를 행동으로 일깨운다.

    필자소개
    .민교협 회원,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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