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명 지르는 침묵을, 바라본다는 것
    [서평] [유진 리처즈](찰스 보든, 유진 리처즈/ 열화당)
        2012년 12월 29일 1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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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인지 올림픽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세계인’의 축제가 열리던 날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고, 이따금 거실로 나오라며 나를 부르곤 하였다. 나는 거실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중계방송 특유의 부산함을 애써 무시하며 내방에서 이 작은 사진집을 붙들고 있었다.

    검은색 정사각형으로 빳빳하게 제본되어 단단한 느낌을 주는 책, 그리고 이 제본에 이 색감과 단단함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무거운 내용물. 나에게는 활자와 이미지에 쇼크에 가까운 기억이 배어있는 책 중의 하나이다. 그때 그날 이후로 마음이 두려워 열어보지 못했던 책을 다시 열어본다.

    뉴욕거리 한복판, 한 남자가 하반신을 하수구에 담그고 어딘가를 매섭게 노려본다. 동시에 사람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거리를 오간다. 이 사진에 덧붙여지길, “그는 다가가서, 힘없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빼앗으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에 사냥하러 나서는 길이고, 그녀는 편안하고 멋진 구두를 신고 이런 일은 전혀 있지도 않다는 듯이 거리를 걷는다.”

    세르비아 군병원, 바닥이 흥건하도록 피를 쏟은 청년은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몸에 의료용 기구들이 잔뜩 연결되었고 누군가가 사진 중앙을 가로질러 청년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여기에 현실의 냉혹함은 다시 덧붙여진다. “다시 한 번 어두운 밤으로 돌아가는 유럽의 중심에서 나는 끝없는 고통을 찍게 되지만, 그것이 세르비아의 고통이고, 그들은 별로 인기가 없어서 그들의 고통도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잡지사는 이런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학대>라는 이름의 사진, 한 남자가 눈을 부릅뜨고 아이의 목을 조르고 있으며 아이는 신문지가 깔린 바닥 위에서 혀를 내밀고 괴로워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메시지, “사랑은 힘들 수도 있고, 사랑은 잘못될 수도 있고, 부모가 아이를 잔혹하게 다루면서도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곳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알아야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

    <장님의 아이들>, 사진 오른쪽에는 아프리카의 꼬마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사진 정면에 놓인 판때기에 아이들의 그림자가 비쳐 아른거린다. “아주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 그림자는 장님들을 위해 안내견처럼 사용되는 아이들이고, 이 지역 사람들은, ‘여보게, 우린 못생기고 바보 같은 애들만 골라서 일을 시키지’ 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 중 한 아이는 남는 시간을 호텔 로비에서 보내면서 CNN 방송을 보고, 그런 식으로 너덧 개의 언어를 배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 눈에 띄고, 그래서 지금은 런던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이 책에는 포토 저널리스트 유진 리처즈의 사진 쉰다섯장이 찰스 보든의 문장과 함께 실려 있다. 유진 리처즈의 사진은 보는 이에게 참혹한 현실을 여과 없이 마주하게 하는 동시에 죄의식을 동반한 날카로운 미적 유희도 느끼게 한다.

    찰스 보든의 짧은 줄글은 그저 사진의 내용을 나열식으로 전달할 뿐이지만 어딘가 문법적으로 엉성한 문장은 그 자체로 시가 되어 억제된 비명을 내지른다. 사진의 침묵과 문장의 침착함이, 그리고 그 둘의 칼날 같은 미학과 현실인식이 조응하여 독자를 시적 혼돈에 빠뜨리고 만다.

    모두가 자신의 생을 이끌어가기에 벅참을 안다. ‘타인의 고통, 특히 나와 무관한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고통을 내가 왜 느껴야하는가.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안다는 사실이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라도 하는가.’ 이런 물음들 앞에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는 말은 무력해진다.

    책의 서문을 보면 작가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사진에 대한 불확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사진은 그저 침묵하고 있으며 침묵하는 사진 앞에서 자신 또한 침묵할 뿐이라고 한다. 그는 말한다. “나는 미칠 지경이었다. 끔찍한 침묵이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찍었다. (중략) 이상하다. 사진들이 점점 더 말을 잃어 간다. 사람들은 당연히 사진이 말을 한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다. 사진의 침묵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게 중요하다는 확신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바라보기 힘든 그 무엇은,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찰스 보든이 자신의 사진에 불안해하는 유진 리처즈에게 “이것이 당신의 일이기에, 당신은 그만 둘 수 없다.”고 말했듯, 이것이 이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이기에 우리 역시 바라보기를 그만 둘 수 없다.

    나는 우리가 끔찍하게 침묵하는 사진 앞에서 침묵하고 또 침묵하며 방향 없는 고통이라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한순간만 흥미가 떨어져도 쉽게 채널을 돌릴 수 있는 감상자로만 머물 수는 있겠지만 우리 발밑에 이미 핏물은 고여 있으니.

     

    필자소개
    연세편집위 수습편집위원. mizsor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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