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타 인종‘
[서평] [인종주의는 본성인가](알리 라탄시/ 한겨레출판)
    2012년 12월 29일 12:27 오후

Print Friendly

사실 이제 인종주의는 조금 낡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사람들이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거치고 또 마틴 루터 킹 등의 흑인 인권 활동가의 목소리로 흑인들은 투표권을 얻었으며, 이제는 “버스에 백인과 나란히 앉아도 폭행을 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종주의라고 함은 “백인”들과 “흑인”들이 많은 서구에서 크게 다뤄져야할 문제이지, 한국 사회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주제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음악 잘하고 춤 잘추는 멋진 흑형”들의 모습이 조명되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인종주의는 이미 만연하다, 단순히 백인과 여타 유색인종과의 선호도 비교보다도, 실제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선에서 인종주의는 철저하게 드러난다.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을 둘러싸고 새누리당의 이자스민 의원이 격렬히 공격받았던 것도 인터넷에서 손꼽을 이슈였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이자 체류기간 외에도 계속 남아있는 범법자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조선족 범죄 소식과 중국인 인육 루머 등과 합쳐지면서 범법자에 이어서 “잠재적 범죄자”로 확대되었다.

여기에 한국의 순혈주의와 합쳐지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더욱 뒤틀린다. 한국에 온 것도 모자라 정착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살구색은 “살색”으로 통하며, 이주노동자와 “혼혈”들은 한국 사회 내에는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에게 “피를 흐리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리고 흑인 및 아시아계 혼혈과 서구계 혼혈 사이의 차별, 미식축구 하인즈 워드 등 사회적으로 인지도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에 대해 비춰지는 한국식 인종주의의 모순은 이제 뻔하다.

한국의 인종주의자들이 특수한 소수인지는 의문이다. 우선 인종주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종주의는 철저하게 제국주의와 같이 발전해왔다. 흑인들에 대한 착취, 개종에 대한 강요 등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인종주의는 끊임없이 심화되어왔고 여러 상황들과 얽히면서 점점 복잡해지고 모순을 드러내왔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편향적인 조사로 인종주의를 굳건히 하려는 노력도 끊이지 않았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인종주의적인 관점들은 당연한 것인냥 또 사실인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왔다. 그리고 인종주의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주변부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점차 내재되어왔다. 그리고 이런 배제와 차별이 더욱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사회의 문제시되는 영역으로 밀어내왔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발생시킨“ 타인종을 보면서 인종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편견을 더욱 더 공고히 한다.

따라서 인종주의는 본질적으로 배제와 편견에 따른 차별이다. 그리고 인종주의를 통해 더욱더 공고히 된 타인에 대한 배제는 점차 다른 대상에 대한 차별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점차 커져가기도 한다. 인종주의의 폭력은 문화. 종교, 성 정체성, 장애인, 여성 등 다양한 소수자들에게 나타나는 폭력과 상당히 유사하다. 저 사람은 “빨갱이”, “종북좌파”니깐, 동성애자니깐, 지체장애인이니깐, 이슬람교도니깐 등과 같은 다양한 수식어 뒤에 붙는 차별과 폭력에 대한 당위는 인종주의자의 변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와 같은 부류가 아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다고 인정한 부류가 아니며 결국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배제는 결국 편견과 차별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런 소수자성은 모두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또 주류가 아닌 사람을 배제하려는 것 역시 모두에게 조금씩 사회를 통해 내재화되었다.

흑인들이 참정권을 얻는 등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직 인종주의는 여러 주류의 관점에서 해석된 것의 흔적들과 함께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있다. 세계사 시간에 우리들은 당연하게 ‘신대륙 발견’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역사 흐름의 중심지는 서구와 중국 그리고 ‘여러 제국의 식민지 국가‘이다. 또 세계사에서 다루는 배경도 서구 사람들의 인식이 전쟁과 식민지 점령을 통해 넓혀가는 것과 같은 속도로 확장된다.

주류의 헤게모니를 통해 인종주의를 내재화시켜왔지만 사실 그 피해자는 우리들이다. 영화 “블랙 비너스” 혹은 지식채널e의 “이상한 쇼”에서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사르키 바트만를 괴롭히는 모습은 생각보다 괴물같지 않다. 평범한 우리의 모습들이다. 인종주의자는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평범하고, 우리 안에도 이미 너무나도 평범하게 존재한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노수석생활도서관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