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하지만 가난한, 세상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사람들의 이야기
    [책소개] [인간의 조건] (한승태/ 시대의 창)
        2012년 12월 29일 12: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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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누군가의 노동으로 인해 살아간다. 먹고 입는 것도, 잘 곳도, 모두 누군가의 땀과 맞바꾼 것이다. 우리가 편하고 다채로운 생활을 하는 데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담보된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우리 삶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내 앞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2년,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이 주목을 받았다.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미국의 워킹 푸어들이 살아가는 그대로 체험하며 쓴 생존기다. 에런라이크의 생생한 글솜씨에 감탄하고 가난이 더 큰 비용을 부르는 역설에 한탄하면서, 많은 한국 독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한국에도 이런 이들이 있을 텐데, 다들 어떻게 먹고살고 있을까?’

    누군가의 삶에서, 이 세상에서 소외된 자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온당한 자리에 서는 것.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지만 가난한, 가장 과소평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이 이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시작일 수 있다. 그 역할을 맡은 책이 <인간의 조건>이다.

    나는 누구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법한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꽃게잡이 배 선원이나 양돈장 똥꾼처럼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우리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 서문에서

    이 책은 20대 후반의 저자가 2007년부터 전국 각지를 떠돌며 일한 경험을 기록한 르포다. 함께 일한 사람들의 숙소는 어느 정도 크기인지. 여름엔 얼마나 덥고, 겨울엔 얼마나 추운지. 사람들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꿈은 무엇인지. 식사로는 어떤 음식이 나오고 급여는 어느 정도인지. 작업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도구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등등…… 알고 싶어도 접할 수 없었던, 깨알 같은 이야기들이 놀랍도록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모티브로 이 책을 썼다는 저자는, 신인 작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생동감 넘치는 필력을 보여준다.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사실적 묘사는 물론, 웃음과 슬픔, 안타까움 같은 다양한 감정들을 맛깔나게 버무리며, 가슴이 뻥 뚫리는 진한 풍자도 선사한다.

    또한 주목할 것은 젊은 화자의 심리 변화다. (책의 화자인 한승태는 저자이지만, 현실 속 저자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저자가 투영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독립된 주인공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주인공이 사람다운 취급을 받지 못하면서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탁월하게 그려냄으로써, 저자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에 기본적인 생활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한다.

    세상이 이따위인 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쓸모없는 놈들이라며 손가락질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은 의지의 결핍이 아니라 희망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노력한 만큼 삶이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말이다. 체스의 졸은 한 번에 한 칸씩 전진하는 것밖에 못하지만, 그런 졸이라도 상대편 진영 끝에 도달하게 되면 여왕으로 변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남의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선 졸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평생 졸에 머무르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나는 조금 두려워진다.
    ― 본문에서

    지금은 퀴닝 할 수 있는 시대인가? 이곳은 퀴닝이 가능한 사회인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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