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리해고 자제' 발언,
현대차 비정규직에서 증거 보여라
[현장편지] 경제위기 오면 비정규직 대량해고 … 현대차 비정규직 경제민주화 시금석
    2012년 12월 28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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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지혜와 고통 분담에 나서주실 것을 부탁한다.”

12월 27일자 신문에는 박근혜 18대 대통령 당선자가 재벌 회장들을 만난 자리에서 정리해고 자제를 요청했다는 기사로 도배되었습니다. 재벌 2·3세가 골목상권까지 침범하는 것을 자제하라는 발언도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주요 언론들은 박근혜 당선자를 ‘대기업 프렌들리’의 이명박과 비교하며 ‘중소기업 대통령’이라고 칭했고, 경제민주화의 시작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박근혜의 정리해고 자제 발언은 대선 이후 단 일주일 만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한 조각의 희망도 발견하지 못하고 ‘죽음의 벼랑’으로 뛰어내린 사건을 밀어내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재벌이 정리해고 자제 발언에 긴장하지 않는 이유

그런데 말입니다. 높으신 ‘재벌 회장님’들께서 박근혜 당선자의 정리해고 자제 발언에 긴장하셨을까요? 부유세 때문에 외국으로 떠난다는 프랑스 부자들처럼 앞으로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며 걱정하셨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미 노동자의 55%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사용하고 있고, 아무 때나 쓰다 버릴 수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경제위기로 자동차나 배가 팔리지 않고 핸드폰이나 TV 판매가 감소해도 일단 사내하청 노동자를 비롯해 비정규직을 대거 잘라내면 되는데 왜 긴장하겠습니까?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가 한반도 덮쳤을 때 현대자동차와 한국지엠자동차는 1천명이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공장에서 쫓아냈습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같은 조선소에서도 수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잘려나갔습니다. 소리 소문도 없이 말입니다.

2008년 경제위기 소리 소문 없이 잘려나간 사내하청

박근혜 당선인의 말처럼 “사회양극화의 핵심은 비정규직 문제”이며,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없이 경제민주화는 없습니다. 이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에 현대자동차가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두 번이나 승소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체감기온 영하 20도를 밑도는 40m 철탑에 매달려 70일이 넘도록 절규하고 있는 곳, 바로 현대자동차입니다.

12월 7일 현대차본사 앞에서 열린 금속노조 집회(사진=노동과세계)

박근혜 당선자가 전경련에 가서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을 만나던 날, 현대자동차에서는 연내에 비정규직 문제가 타결될 것이라는 소식이 현장을 휩쓸었습니다. 회사가 12월 27일 15차 교섭에서 정규직화 방안을 제출할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현대자동차가 2016년까지 8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서 3,500명을 신규채용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사내하청 경력과 근속을 인정하고, 규모를 4,000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최종안을 낼 것이라는 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노사 간의 핵심 쟁점인 신규채용이냐 정규직 전환이냐의 논란을 정리하고 근속을 인정하는 신규채용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2016년까지 사내하청 50% 근속 인정한 신규채용?

그러나 2010년 7월 22일과 2012년 2월 23일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라는 자동흐름방식의 자동차 조립생산에서는 합법적인 도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내 도급 즉, 사내하청은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동차의 생산 공정에는 사내하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해법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현대자동차에 사내하청을 사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직접 생산 공정이든 간접 생산 공정이든, 1차 하청이든 2~3차든, 2년 이상 근무자든 2년 미만이든 사내하청이라는 ‘불법’ 노동을 중단하면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지난 해 8조1천억원의 순이익을 올렸고, 올해에는 10조가 넘는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자동차에게 이 비용은 ‘껌 값’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마치 자신들은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고 있는데, 비정규직노조에서 ‘전원 정규직화’만 고집하고 있다며 연신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불법을 하지 않으면 되지, 무슨 양보를 한다는 말입니까? 다 같이 현대자동차를 만들었는데 누구는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누구는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말입니까?

법원에서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아동노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결정하고, 인신매매를 하면 안된다고 판결하면, 협상을 해서 일부는 아동노동과 인신매매를 하고, 일부는 불법을 중단하라는 겁니까?

대법원 판결은 사내하청 사용 금지

현대차가 신규채용에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속을 인정하는 신규채용이 노사합의가 된다면 최소한 네 가지를 얻게 됩니다.

첫째, 현대차는 지난 10년간 불법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했다는 사회적 비난에서 벗어나게 되고, 노사합의를 통해 불법을 저지른 정몽구 회장은 면죄부를 받게 됩니다.

둘째, 정규직 정년퇴직으로 인한 인원 부족을 숙련된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우면서 사상 최대 규모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는 사회적 여론을 얻고, 신규채용으로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언론에 홍보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 노사합의를 통한 공정재배치를 통해 4천명 이상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 시비에서 벗어나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야금야금 더 많은 사내하청을 공정으로 들여올 수 있고, 경제위기를 이유로 언제든 자를 수 있습니다.

넷째, 골칫거리인 비정규직노조가 와해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회사 맘대로인 채용기준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핵심이었던 간부들을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정규직에서 제외된 활동가들은 조용히 해고시키면 됩니다.

근속 인정 신규채용으로 현대차가 얻는 것은?

그러나 27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사 교섭을 막아 노사합의에 대한 회사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연말 노사 대타협을 통해 박근혜 당선자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고 싶었던 정몽구 회장의 기대는 물 건너가고 말았습니다.

노사합의에 실패한 현대자동차는 일방적인 신규채용을 강행해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징계와 해고를 통해 핵심 조합원들을 협박할 것입니다. 회사는 늘 그랬듯이 전직 노조 간부들을 회유해 조합원들을 흔들고, 정규직노조를 통해 비정규직노조를 고립시킬 것입니다.

비정규직 교섭위원들이 반대해도 다수결로 노사합의를 강행하겠다고 협박했던 현대차 정규직노조 문용문 지부장은 이날 “교섭 봉쇄는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긴급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때마침, 울산지방법원은 송전철탑 농성을 중단하지 않으면 1인당 하루 30만원을 한국전력에 지급하고, 현대차의 동의 없이 철탑 아래 주차장을 사용할 수 없고, 철탑 아래 천막을 모두 철거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공권력 투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느 때보다도 힘든 겨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둠이 깊어갈 수록 새벽은 가까이 온다고 했습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고, 불의가 정의를 물리칠 수는 없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대법원 판결조차 휴지 조각으로 만드는 재벌, 법 위의 현대차에 맞선 싸움의 아름다운 결말의 시간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절망과 한숨 속에서 살아가는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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