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아이가 잘 읽고 있는 걸까요?
    [메모리딩의 힘-11]아이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던 엄마
        2012년 12월 24일 0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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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 6살, 3살 아이를 둔 최은경 어머니는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책을 잘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모르겠다는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아이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었다. “잘 읽고 있는지는 모르고 독서량만 많다”는 말에서도 엄마의 이런 마음은 잘 나타난다. 이 밖에도 강의 초기에 최은경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서 남긴 이야기를 모아보면 부정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일단 요약하는 걸 힘들어했고 두 번째는 아이의 기질인데 자기 생각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해요.
    자기 생각을 말하고 더 이상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엄마가 이야기해. 모르겠어’라고 했어요.
    워낙 내성적이어서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기 생각을 드러내지 못해서 첫 한 줄은 베끼거나 다른 사람 이야기를 따라하는 경향이 있어요.
    동생이 이야기를 듣는 것조차 거부반응을 일으키기도 해서 걱정이에요.
    처음엔 그냥 읽었고 두 번째는 숙제처럼 여겨졌어요.
    책 읽고 나서 자꾸 교훈을 주려고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걸 고치는 게 힘들었어요.

    최은경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애인이 배우자로 바뀌면 좋았던 점이 싫었던 점으로 바뀌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오랫동안 아이에 대한 단점 정보가 입력돼 있어서 몸이 바로 반응하게 된다.

    내 아이 민준이의 경우도 동생을 잘 괴롭히는 일, 반찬 투정을 잘 하고 편식하는 일, 떼쓰는 일 등을 자주 보다 보니 내 몸이 습관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문제는 아이 역시 엄마에 대해서 많은 단점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몸으로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런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관성에 빠진다. 관계 전환을 위해서는 칭찬이나 놀이 등의 자극이 필요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책읽기 교실(사진=성남중앙도서관 홈피)

    엄마가 숙제를 해야 하는데, 도와주지 않겠니?

    독서프로그램을 시작할 즈음 두려움도 앞섰다. “엄마가 평소에 책 한 번도 안 읽어주다가 하면 의심할텐데, 엄마가 숙제라고 해도 되나요?”라고 질문을 하기도 했다. 아이에게 툭 터놓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숙제라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은 좋은 생각이다.

    엄마는 아이를 교육시켜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일방적인 관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엄마와 아이가 친구가 되는데, 친구가 되기 전에 조금씩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엄마는 필요하다면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도 있다. 아이는 엄마를 도와주고 엄마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과정에서 자신도 엄마를 도와줄 수 있고, 엄마를 도와줬다는 뿌듯함은 아이의 자존감이 커지게 만들어준다.

    엄마를 도와주는 방식은 “시연”(Rehearsal)이라는 방식과 연결해서 많이 활용했다. 이 방식은 1960년대 미국 메인주의 National Training Laboratories of Bethel은 각기 다른 교수법을 써서 학생들의 암기 효과를 테스트하는 한편 다른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기도 했다. 배운 내용을 곧바로 활용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친 학생들은 24시간이 지난 후에도 배운 내용의 90퍼센트를 기억해내는 결과를 나타냈다.

    국내의 경우도 <꿩 새끼를 몰며 크는 아이들>의 저자인 아버지 황보태조씨는 5남매를 서울대 의대 2명, 경북대 의대, 포항공대, 약대에 보낸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수학을 잘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수학 코치 노릇을 했다. 아이들의 수학책을 보고 새로운 공식이 나올 때마다 ‘아빠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쉽게 이야기해줄 수 있겠니?’ 하고 몇 번씩 졸랐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것을 나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 공식을 완전히 소화해내곤 했다.”(177면)

    최은경 어머니의 방식을 여러 엄마가 아이에게 적용해서 효과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모르는 척’하면서 물어보았을 때도 아이들은 효과적으로 반응했다. 책의 내용을 가지고 빙고 게임을 했을 때 아이가 외친 단어가 어디 있었는지 궁금하다며 물어보면 아이는 단어가 나온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회상하기도 하고, 책의 내용을 찾아보기도 한다.

    이것은 보고 듣는 뇌와 설명하는 뇌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한 방식이었다. 엄마의 숙제를 도와 달라는 최은경 어머니의 전략은 좋은 효과를 거두어서 아이들을 책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고, 이제까지 책을 안 읽어준 엄마에 대해서 의아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칭찬의 힘으로 아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다

    같이 수업을 듣는 수강생 엄마들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독서활동지에 기록된 글에서 경희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고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어른들도 못하는 한줄 요약을 훌륭하게 했다고 칭찬해주기도 했다. 경희 엄마는 “다른 분들이 요약을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을 들으니, 내가 너무 재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줄에 잘 뽑았다고 표현하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에 대한 인상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엄마 사용법>을 읽고 나서 경희 엄마가 경희에게 정성스럽게 쓴 글에 대해서 경희는 단 두줄로 댓글을 달았다.

    “원래 생명장난감은 생각이 없는데 현수 엄마는 생각이 생겼잖아. 그런데 파란 사냥꾼은 장난감은 마음이 생기면 안 된다고 했어.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보니까 재미있어.”

    경희 엄마는 “이렇게 썼으면 경희도 뭔가 정성스럽게 쓸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다. 경희가 쓴 구절과 책을 면밀히 검토하고 다음 수업 때 이에 대해서 크게 칭찬해주었다.

    “마음이 없는 장난감일지라도 사랑을 불어넣어주면 마음이 생긴다는 게 책의 주제인데, 이것을 잘 표현했네요. 칭찬해주고 싶어요!!”

    경희 엄마는 처음에는 이 평가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선생님이 잘 봐주신 거 아닐까요?”라고 반문할 정도였다. 나는 처음 경희가 쓴 글을 보았을 때 무슨 뜻인지 몰라서 10번 정도 읽었고,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 해서 책도 보고 해서 봤다고 설명했다. 마음이 없을지라도 관심과 사랑을 담으면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주제를 경희가 제대로 포착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고, 다른 수강생 엄마들에게 나의 생각에 대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수강생 엄마는 “마음을 잘 잡으신 것 같아요.”라고 동의해주었다.

    어른 말로 표현할 때는 문장이 중간에 빠진 것 같지만, 이것이 아이 말의 맛이고 그 마음을 표현한 거고, 옆의 엄마에게 동의를 얻었으니 의미가 있는 말을 덧붙였다. 경희의 독서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칭찬과 발견은 경희 엄마에게 큰 영향을 준 강의 후반부에 이렇게 말했다.

    “아이에 대해서 칭찬해주고 훨씬 잘 파악됐다고 하고 여러 어머니들이 칭찬해주니까 내가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대목이 기발하게 보게 되었어요. 짧게 표현하면 표현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저렇게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성찰하는 엄마의 모습

    세 번째 강의가 끝나고 네 번째 강의를 할 즈음부터 경희 엄마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숙제에 대한 목적의식을 놓으니 편안해졌다”고 운을 뗀 뒤, 내가 강의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답을 해주었다.

    “이 수업을 통해서 제가 느낀 것은 아이들을 대하고 대화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 관찰이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집중하거나 들여다보지 않는 것은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유용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잠깐 보거나 대화를 할 때도 세심하게 정성을 다해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해서 일상생활에서도 노력하고 있어요.”

    경희 엄마는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결과물을 내려고 했는데, 이제는 제법 편안해져서 책을 통한 관찰과 책을 매개가 된 대화를 이해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놀아주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일상에서 실천한 사례를 들려주었다.

    경희 엄마는 아이들을 차에 태울 때가 많은데 차에서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9살 6살 두 아이가 논쟁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사용법>을 읽은 두 아이는 “현수는 어디서 태어난 걸까?”라는 주제로 공방을 벌였다. 경희 엄마는 ‘누구나 엄마한테서 태어나지, 알에서 태어나진 않았을 거다.’라고 운을 떼는 데 머물렀다.

    여섯 살 짜리는 “엄마가 현수를 낳고, 갓난아이가 잠을 자는 동안 엄마가 죽었을 거야.”라고 주장했고, 경희는 마지막에 아빠가 데려 온 엄마가 진짜 현수 엄마고, 현수의 꿈에서 벌어진 헤프닝이라고 주장했다. 서로 네가 옳네 내가 옳네 논쟁을 하다가 끝이 안 나니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책에 다시 한 번 물어보자. 그 궁금증을 가지고.”

    칭찬놀이 역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바꿔서 해보았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칭찬릴레이라는 게임을 한다고 한다. 칭찬놀이를 하던 날에 경희 엄마는 짜증을 내는 경희에게 지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앞서 지적하고 칭찬하려니 조금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희는 짜증을 자주 내는 것만 빼고는 성격이 좋아.”라고 칭찬했다. 경희는 이 말투를 흉내내 “엄마는 요리를 못하는 것만 빼고는 다 좋아.” 이렇게 칭찬했다. 경희는 센스가 있는 똑똑한 친구였다.

    경희 엄마의 사례를 보면 엄마가 어떻게 바뀌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경희가 짧은 글로 책을 잘 표현했을 때, 경희엄마는 좀 더 길게 쓸 것을 주문하길 요구했는데, 경희는 더 생각이 안 난다며 방어 행동을 했다.

    경희엄마뿐 아니라 대부분의 부모들이 육아를 하면서 이런 경우를 맞게 된다. 이 때 만약 경희의 짧은 문장을 평가해주고 칭찬을 해주었다면 경희의 태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경희는 또 칭찬을 받을 곳이 있는지 생각하면서 다른 표현을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머금으며 자라기 때문이다. 칭찬을 해야 할 상황에서 지적을 받는다면 아이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MBC 인기드라마 <대장금>에서 어린 장금(조정은)이가 난처해하며 했던 명대사처럼 말이다.

    “홍시 맛이 나니 홍시 맛이 난다고 했는데, 왜 홍시 맛이 나냐고 물으시면…….”

    필자소개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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