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패배, "민주-독재 프레임의 잘못"
    [좌담회] 20대들의 대선 평가와 진보정당의 전망-1
        2012년 12월 24일 02: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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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대 대선이 끝난 뒤 22일(금) 낮 여의도 모처에서 20대들의 좌담회를 마련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진보신당 당원이었다. 하지만 진보신당 내부의 시각이나 평가라고 할 수 없는 20대들의 사고틀을 읽을 수 있는 자리였다.
    모인 이들은 야권의 대선 패인 요인을 민주 대 독재라는 프레임을 잘못 운용한 것을 꼽았다. 박근혜 당선인이 경제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을 자극했다면, 문재인 낙선자와 야권에서는 독재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했고 이는 50대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 대 독재 프레임 자체가 일정한 교육 수준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요한 문제로 다가갈 수 있는, 이른바 엘리트주의적인 접근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박근혜 당선인이 가지는 독재에 대한 상징성은 인정되지만 박근혜 당선인이나 새누리당이 형식적 민주주의에 비교적 잘 적응한 당이었다는 점도 지적하며, 이같은 문제 접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패배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진보정당들에 대한 평가는 다소 간결했다. 진보정의당의 경우 민주통합당과 한축으로 묶는 경향이 컸다. 실제 당으로서 그 조직력이 부족했던 탓도 있고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 기반이 없던 탓도 있었다. 통합진보당의 경우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이다. 또한 그간의 활동방향을 보건데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얻을 것이라는 평가이다.
    진보신당의 경우 조금 암담했다. 김소연, 김순자 후보로 양분된 상황에서 당 내 갈등이 커졌다는 점과 이같은 문제의 원인은 당내 지도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들은 절망감보다는 희망적이었으며 야권의 대선 패인 요인 분석부터 시종일관 냉정한 시선에서 당내 상황을 평가하고 향후 방향성에 대해서도 대중조직력을 키우고 지역 거점 활동이 재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터뷰 사회와 정리는 장여진 기사가 담당했다. 좌담회는 2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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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여진: 각자 소개 짧게 부탁한다.

     아이유: 대학원생이고 29세이다.

    김성우: 23세이고 대학교 4학년생이며 진보신당 당원이다.

    강은하: 23세에 대학에 다니고 있고 성소수자이다. 최근에 <레디앙>의 ‘종로의 침묵’이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햇다.

    수지: 24세이고 그냥 지내고 있는 사람이다. 최근에는 글을 쓰고 평론하기도 한다.

    장여진: 이번 대선에 대한 총평을 해달라.

    아이유: 선거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대로 계속 가면 문재인이 진다고 생각했고, 또 주변에 그렇게 주장을 하기도 했다. 아니다 다를까 욕을 많이 먹었다. 내 생각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못 보는 게 많았다. 문재인을 찍지 않겠다고 하니깐 압박도 많이 받았다. 너네 같은 애들 때문에 망한다는 말도 들었다.문재인의 패배요인 중 가장 큰 건 야권이 무능력하고 무책임했다고 본다. 나를 찍지 않으면 박근혜 될 꺼라고 민중을 인질로 잡아 협박질했던 모습도 하나의 패배 요인이라 본다.

    강은하: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가 어느 정도 이기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면서 온갖 개새끼론이 난무했다. 군소후보자부터 20대, 노인 개새끼론 등. 4.11 총선에는 20대 여성 개새끼론이 많았었다. 이런 상황이 조금 우려스럽다.

    문재인 찍어서 박근혜 막자는 열기가 있었는데 대선이 일주일도 안 남은 상태에서 민주당의 김진표 의원이 수구 기독교인들에게 표를 구하기 위해 동성애허용법을 막겠다고 약속했다. 당사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을 뽑겠다고 했는데, 박근혜를 막기 위해 소수자들에게 닥치라고 하는 행태도 목격했다. 이런 거 보면서 대선 끝나고 박근혜 되고나니 서로 개새끼론 주고받고 노인들 빨리 죽어야 된다고 막말하기도 하고 근거도 없이 젊은 세대를 욕하고 있는 것 같다.

    수지: 문재인을 찍었다. 민주당이 진 건 구조적 문제이다. 민심이나 시대흐름 요구가 있었는데 민주당이 자기 기득권 놓지 않으려고 한 건 문재인이나 친노가 의지가 없었다는 걸 넘어서 87년 체제를 만들어낸 세대 자체가 기득권화 된게 아닐까한다.

    50대들은 그 오만함과 엘리트주의 진영론에 굉장히 불쾌해하면서 박근혜 지지로 갔다고 생각한다.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여기에 몰빵하라는 폭력이 이른바 나꼼충(나꼼수 열성팬)들로부터 나왔다. 박근혜 지지하는 일베충, 좌파에게는 입좌파가 존재하듯이 말이다.

    왜 문재인을 찍냐,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똑같은 신자유주의자라는 논리를 가지고 자기만의 도덕성이나 잣대를 갖고 자기만 옳다는 주장도 불편했다. 문재인을 찍은 건 정권교체의 필요성도 있지만 김소연 또는 김순자가 아무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 다 지금 우리 세대에게 굉장히 낡게 보였고, 얼마나 희망 줄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김성우: 수지씨가 나랑 비슷한 이야기 한 것 같다. 진보진영의 후보를 먼저 평가하자면, 김소연 후보 같은 경우 변혁적 계급정당 건설하자는 이야기 이전에 대승적으로 진보진영에서 다같이 노동자후보전술을 하자고 했던 건데 합의가 잘 안됐다. 노동 현장파 그룹 위주로 후보가 꾸려진 거고 진보신당이 애매하게 배제 아닌 배제가 됐다. 대승적인 합의과정이 없었다고 본다.

    또한 김소연 후보는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후보라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특정 정파 후보라고 보였다. 김순자 후보의 경우 진보신당 당 내에서조차 합의가 되지 않은 후보였다.

    두 후보 자체가 노동진영을 아우르는 후보가 아니었기에 큰 의미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잘 되길 바랬지만 결과는 처참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선거결과에 대해 페이스북을 보니 제대로 평가를 안하는 것 같더라. 정신승리 한다고 할까나.

    대선 결과를 통해서 계급정당으로 나아가야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대중이 지지할지, 부르주아 정치틀에서 큰 의미를 부여되지 않는 정치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합의를 어떻게 얻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 같다.

    사실은 김소연을 찍을가 말까 하다 문재인 찍었다. 이는 박근혜가 당선됐을 때 진보진영에 어떤 파급이 있을지를 고려한 결과이다. 오늘만 하더라도 한진중공업에서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고 장기투쟁사업장은 더 힘든 상황인데도 박근혜나 문재인이나 다 똑같다고 하는건 몰 정세적이라 판단해 문재인을 지지했다. 박근혜가 되면 정말 힘들겠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20대 좌담회의 모습(사진=장여진)

    장여진: 문재인 후보나 김소연 후보나 둘 다 진보신당의 후보가 아닌데 지지했다. 왜 문재인이 아니라 김소연인지, 왜 김소연이 아니라 문재인인지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강은하: 나는 처음 문재인을 찍으려 했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니깐 일부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문재인에게 표를 주는건 정치적으로 순결성이 파괴되는거고 타락하는 것이라고 해 적잖은 불쾌감을 느겼다.

    김소연 후보를 찍게된 건 이런 생각이 있었다. 표 하나씩 모아서 결과를 만드는건데, 내 표 하나때문에 누가 떨어지는건 아니기 때문이다. 박근혜 낙선을 바랬다. 문재인도 책임져야 할 문제가 많은 사람이지만, 박근혜의 경우 좌우파를 떠나 가해자의 승리가 되버린다. 박근혜는 독재와 국가폭력의 공모자이고 피해자들과 생존자들에게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까지 할 수 있다는 현실을 막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에게 표를 주려했는데 김소연 후보의 선거 과정을 보게됐다. 선거운동이 불법집회로 규정당하고 대통령 후보에게 이렇게까지 탄압받을 수 있는지, 완전히 기본이 파괴된 세상이라고 느꼈다. 그게 눈에 보이니깐 그렇다면 나는 저 사람을 응원하고 저 사람과 싸우기 위해서 표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성우: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박근혜의 낙선이 목표였는데 그럼에도 김소연을 찍지 못한 거는 이런 고민이 있던거다. 대선에 나온거고 주어진 정치판에 나왔으면, 그리고 그 비싼 돈을 들여 나왔으면 얼마나 대중들에게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를 쉽게 풀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지지받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길 바랬는데 아쉬웠다.

    청와대 앞에서 선거운동하겠다는 거를 저는 이해하지만, 그건 대선기간 아니더라도 할 수 있지 않나. 지지하는 사람을 만나 선거운동을 했어야 하는건데 본인들의 합의할 수준에서만 했던 것 같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박근혜가 되면 안되는지 더 몰두하다보니 그런 절박함에 김소연을 찍는 것보다 일단 문재인 찍고 이후 진보진영의 정치공간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해보자라고 판단해 표 하나를 문재인에 얹어준 것이다.

    김성우씨

    아이유: 저는 두 가지 생각이다. 하나는 정당의 당론이라는 측면이다. 우리가 정당운동 왜 하는가이다. 사표와도 관련이 된 건데. 당 내부적으로 문제가 된 건 많지만 당에서 김소연 후보를 찍자라고 해서 찍는거다. 그런데 주변에서 내가 문재인을 안찍겠다고 하니 난리가 났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생각을 해봐라, 나는 내 돈 내고 정당활동을 하는데 당에서 하자는 대로 안 할거면 왜 정당활동하겠냐”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공산당이냐고, 네 의지는 없는거냐고 몰아붙이는데 당 결정에 따르겠다는 판단도 내 의지인 것이다.

    제가 속해있는 S당협 운영위에서 구진보신당계랑 구사회당계랑 김소연 지지와 관련해 싸우다가 중앙당 결정에도 불구하고 각자 꼴리는 대로 하자고 합의됐다. 그런데 이걸 내부 단속용으로 하면 되는데 중앙당 게시판에 공개해버렸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해당 댓글에도 남긴 거지만, ‘그러면 그 하위단위인 우리 J지역당협에서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논의를 거친 후 상급조직인 S당협 결정에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게 안 한다고 하면 되는 거냐’라고 따졌다. 아무튼 이후 S당협은 그 같은 결정은 철회됐지만, 정당인데 당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정당이 아닌거다.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정당운동 하자고 하는 거지 운동하자고 정당 만든 게 아니잖나. 주변에 몇몇 당원은 무장혁명 하자는 사람도 있던데 그러면 정당이 아니라 운동단체를 만들어야지. 노동운동 하자는 게 나쁜 게 아니라 그럴꺼면 왜 당을 만드는 건지 어이가 없다.

    둘째로 사표 문제인데. 김소연이나 김순자 표가 사표 아니냐 하는데. 반대로 김순자, 김소연 표 다 모아도 문재인 안 되는거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선거는 1등 아니면 원래 다 사표되는거다. 그러니 그냥 때로 몰려가서 원하는 사람 찍으면 되는거다. 50대가 우르르 몰려가니 박근혜가 당선됐듯이. 물론 김소연 선본에 동의 안되는 부분 많다. 전대협 진군가 로고송이라던지.

    장여진: 궁금한게, 그렇다면 당 방침이 문재인을 찍으라는 것이 방침이었다면 문재인 찍었을 건가?

    아이유: 그렇다. 하지만 그쪽이 진보신당한테 같이 하자 말자가 없는데 내가 왜 문재인을 찍나. 그쪽에서 먼저 오퍼 넣은 것도 없는데.

     수지: 나도 당이라는 조직에 있는 사람이고 당 결정에 따르는 것이 당 강령에 동의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문재인을 찍었지만 문재인 잘 할 꺼라고 절대 기대하진 않았다.

    진보진영, 진보정당에 냉정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던 거다. 진보정당이 통진당까지 쳐서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있는건데 선거전술이 양극단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좌편향으로 정신승리할 껀지, 더이상 구심력 못 만드니 민주당에 투항할 건지…

    진보정당 전체가 리더십이나 자기 구심력을 잃었다. 사실상 괴멸한 거라고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내가 김소연이나 좌편향된 사람들에게 기대하기 힘들 뿐더러 진보신당의 당원인 것을 떠나서 진보의 일원으로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뭘까했을 때 일단 박근혜를 막고야 된다고 봤다.

    그리고 김소연 후보가 청와대 앞에서 그렇게 당했던 게 슬프기도 하고 분노도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기동부랑 똑같다고 봤다. “우리가 당했어, 국가폭력에 당했어 우리는 피해자야, 우릴 찍어줘” 똑같다고 본다.

    장여진: 이야기를 듣다보니 궁금한 것이 있다. 왜 박근혜가 되면 안되는 것인가? 박근혜의 어떤 면에서 박근혜는 막고 보자는 판단이 들었는지 말이다. 이명박도 그랬지만 형식적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것은 과도한 공포 아닌가. 이명박도 형식적 민주주의를 벗어나는 행동은 많이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이런 박근혜에 대한 공포를 가지는 것인가.

    김성우: 너무 관념적일 수 있는데, 이명박 정권과 민주당이 큰 흐름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본다. 근데 박근혜가 당선된다면 형식적 민주주의 자체도 후퇴할 꺼라는 느낌이다. 유신정권의 계승자이고 스스로 역사의 반성보다 자기가 유신정권의 적자라고 천명한 후보이고 그래서 그가 집권했을 때 미칠 영향이 이명박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자본 정권을 넘어서 파쇼같은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자유주의 자체로 후퇴하는 느낌. 자유주의자는 아니지만 사회주의 이후 대안 이념도 자유주의 바탕에서 대결하는 과정인데 무너지는 느낌이라서. 관념적인 공포일 수 있지만 이명박과는 다르다고 느낀 것이다.

    장여진: 그러니깐 그 관념적인 유신독재의 이미지 말고는 이유가 없는 것인지. 과도한 공포 심리는 아니었던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수지: 대선 후보라는 게 단순히 정책과 공약으로만 판단하는 게 아니라 그 후보가 체현한 역사와 시대정신을 봐야한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사람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친 걸 공감했던 것은 87년체제 이전으로 돌아갈 것 같은 위기감 때문이다. 이명박이 상징하는 게 뭔 줄 봐야하는데, 박근혜는 더 보수적이고 더 퇴행적일 거라는 것이다. 그녀가 상징하는 역사를 보건데, 이점들을 놓치면 이해가 안될 거라는 생각이다. 민생이 먼저냐 민주주의가 먼저냐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는데.

    2-30대는 노무현 실망해서 이명박 찍었지만 이명박도 지랄맞았던 거고 노무현에 대한 적개심을 일정하게 거둬들여진 과정이 있는데 50대는 여전히 친노그룹으로 상징되는 것에 대해 적개심이 있었다. 또한 민생문제는 박근혜가 가장 많이 말했다. 문재인, 안철수가 정치개혁만 말할 때 민생문제는 박근혜로 확 쏠렸다.

    김성우: 예전에 학교에서 학회 세미나를 하면서 많이 느낀 게 박정희가 산업화, 경제성장의 주역이었고 이에 대한 비판은 민주화 프레임으로 하는 이분법적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박정희가 반인권적이고 반민주화적인 건 맞지만, 경제를 살렸다라는 평가가 있는데 다시 경기침체 현상이 장기화 되면서 박정희가 (경제살리기의) 표상으로 그 프레임 자체가 먹힌 것이다. 더불어 민주화라는 프레임 자체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헤치지 못했다. 민주화 세력이 독재정권에 대해 나이브한 도덕적 비판만 했다. 그러다보니 진보진영이 더 파고들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오히려 반동으로 흐른 거라 본다. 그래서 앞으로 잘 해야된다. 민주와 반민주라는 프레임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고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수지: 2-30대 득표율을 보면 400만표로 문재인이 이겼지만 50대에서 박근혜가 500만표로 이겼다. 50대에서 압도된 거다. 아까 한 말을 이어서 하면 경제, 민생 위기에 대해서는 박근혜가 던졌다. 그리고 요새 조희연, 임지현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유신시대에) 탄압과 독재가 있었지만 산업화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 대중도 있었다 라는 지적들이 많다. 이 문제를 간과할 것이 아니다.

    장여진: 야권의 반독재 프레임이 틀렸다는 것인가?

    수지: 그렇다.

    김성우: 386세대의 자의식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반독재라 말했지만 오히려 박정희 향수만 자극시키게 된 꼴이다. 학교에서 청소노동자 문제에 연대 활동했는데 그들의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엄청나다. 박정희 시절 공장에서 시다도 하며 본인 스스로 착취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박정희 향수속에서 어쨌든 나라는 잘 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잘 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따라서 산업화 프레임을 단순히 독재라고 할 게 아니라 착취 경험들이 박정희와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설득력있게 지적했어야 된다.

    아이유: 장여진이 말한 것처럼 민주당이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을 쳤다고 본다. 사람들 인식 속에서 독재의 기표가 작용한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민주 대 반민주 프레임이 나한테 어떤 것이 이득인지에 대해 설명하지를 못했다. 독재라는 말은 50대 이후 분들에게는 엄청 잘살게 해준 기표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해줬는데 딸도 잘해줄꺼라 생각도 있는 거다. 박근혜 지지자들에게는 구체성이 필요없다. 문재인이 독재는 안된다고 할 때 ‘그래서 어떻게’가 없었다. 그래서 프레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매력적이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강은하: 반독재 프레임 자체가 잘못됐다고는 생각을 안하지만 사람들이 그 얘기를 하는 방식에 잘못된 게 있었다. 어떻게 나에게 폭력을 다가올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과거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박근혜가 어떤 공모자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그녀가 당선됐을 때 우려되는 걸 말하기보다는 과거에 이랬다,

    과거에 우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했는데 너희 20대 이렇게 해야하며 문재인한테 몰빵해야 한다라고만 말했다. 그러면서 반독재 이야기할 때 상호 광기의 측면도 있다. 밖에서 조망했을 때는 나한테 다가오는 것도 없었다. 그렇게 된 것 같다.

    장여진: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그간 형식적 민주주의를 어긴 적이 있었던 걸까?

    아이유: 박정희가 일종의 기표로서 있는 건데 그 박근혜가 박정희에 대해 계속 평가를 했었다. 문제가 없었다고. 사람들이 소름끼쳤던 게 있었는데, 박근혜가 대선 캠프 출범하면서 내세운 캐치프레이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였다. 난 소름 끼쳤다. 유신정권에 대해서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고 말할 때 박근혜가 상징적으로 독재를 호명했다고 본다.

    광주에 도청이 있는데 아무 것도 아닌 그저 콘크리트 건물일뿐이지만 그걸 철거하겠다고 했을 때 광주시민들이 반대했던 이유는 5.18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실체가 무너지면 정말로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인 박근혜는 동시에 유신과 독재와 박정희를 환기시키는 기표로 작동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가 되면 박정희가 도래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혔다고 본다. 젊은 세대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공간에서 살았기에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고 나꼼충이나 트윗 등에서 집단 광기로 나타났던 것 같다.

    수지: 20대부터 40대까지는 ‘박근혜는 아니다’라는 게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 대 박민주 프레임을 치면 안 된다라고 생각한 게 그것을 합의할 놈이 있고 아닌 놈도 있는데, 아닌 사람들을 어떻게 데려올 것이냐 라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좀 더 나아가면 민생문제라는 것들이 주 전선이 됐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됐다. 50대 89%가 투표했고 박근혜에게 몰표 준 것은 단순히 박정희에 대한 향수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근혜가 독재하면 뭐 어때라는 정서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한테 더 믿음이 간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여진: 20대의 30% 이상은 박근혜를 찍었다. 이는 어떤 경우일까?

    아이유씨

    김성우: 20대 안에서도 계급차이가 있다. 고등교육 받지 않고 먹고사는 데 급급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박근혜가 뭐 어쨌다는 건데’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박근혜가 여성대통령이냐라는 논쟁 때도 그들에게는 딱 봤을 때 박근혜는 여성이다. 여성주의적 고민을 하는 친구들은 그나마 대학가서 공부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박근혜가 여성대통령이 아니라는 주장은 엘리트주의적으로 비춰진다는 것이다.

    TV광고에서 문재인은 의자에 편히 앉아 와이프가 갖다주는 음식 먹는 등 가정 내 가부장의 이미지가 그대로 재현됐다. 그런 면에서 여성들이 박근혜에게 여성적 유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20대 안에서도 월 소득 200백만원 이하의 70%가 박근혜 지지했고 하위계층이 지지한 것 같다. 그래서 반민주라는 게 지금 생각해보니 소위 중산층만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던가 라는 생각도 든다.

    아이유: 선거에서 나왔던 기조들이 엘리트주의를 근거로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한다. 이를테면 제가 고민했던 부분은 20대 안에서도 박근혜 찍은 사람은 뭐냐는 건데. 안보 문제에 있어서 박근혜가 더 나았을 꺼라는 사람도 있었을 거고 독재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은 사람도 있는 건데.

    한국 민주주의가 어떤식으로도 뒤로 후퇴하지 않을 꺼라는 믿음때문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는 나랑은 상관없기에 경마처럼 투표하는 것이다. 사표를 방지한다는 1등할 표에 몰아준다는 심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왜 누구는 박근혜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했을 때 그건 나한테 해를 끼친 게 없기 때문이다.

    강은하: 독재에 대한 공포감을 못 느끼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문재인측이 박근혜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대중의 공포 심리를 자극했던 것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에 대한 과거 표상이 있었고 문재인한테 일단 표를 주자라는 사람들이 박근혜에 대한 독재 공포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당선되자마자 “위기를 넘고 싶은 여러분의 뜻에 따라 이 자리에 올랐다”고 말했다. 박근혜는 미래를 이야기했고 실질적인 경제적인 공포나 내가 겪을 이야기들을 이야기했다. 민주당은 독재의 공포심을 새누리당은 경제의 공포심을 자극했고 후자가 더 잘먹혔던 것이다.

    장여진: 정리하자면 문재인 또는 민주당이나 야권에서 박근혜에 대한 독재 프레임이 먹힐 사람한테만 먹힌 것이고 그 프레임 자체가 잘못됐기 보다는 그 이상을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이고 그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하는 것 같다. 박근혜 당선 이후 과도하게 집단 우울증에 빠지거나 공포 심리를 자극하는 사람들에 비해 굉장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평가인 것 같다.

    그간 이야기를 종합해서 야권의 결정적인 패인 요인에 대해 짧게 말해 달라.

    김성우: 새누리당 자체가 형식적 민주주의에는 잘 적응한 정당이라는걸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과거 향수만 가지고 말하는데 어떻게 실력으로 이길 것인지에 대해 정치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박근혜는 누구보다 형식적인 민주주의에 잘 적응해서 당선된 건데 이를 잘 분석하지 않으면 똑같은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도 어떻게 보면 대의제 안에서 대중적 지지 모을 수 있었기에 당선됐다고 본다. 정몽준도 끌어들이고.

    이제 민주당에 사망선고가 내려진 건데, 박근혜랑 새누리당 정권이 누구보다도 형식적인 대의민주제에 잘 적응했던 세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박정희 독재 향수만으로 민주화투쟁만 강조하다보니 경제위기에 대한 대중들의 공포 심리를 포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유: 매력이 없었던 게 가장 큰 문제이다. 박근혜가 싫으면, 새누리당이 안 되게하려면 나 찍으라는 패턴만 계속 강조하다보니 거기에 매력 못 느낀 사람이 많은 것이고 결국은 그게 문제였다고 본다. ‘닥치고 투표’ 이거 얼마나 기분나쁘냐. 바짓가랑이 붙잡고라도 구걸해야지.

    수지: 같은 이야긴데 오만이라 생각한다. 민주진보진영 전체의 오만이라고 보는데. 벌써부터 50대 개새끼론 나오는데 50대들이 대학간 비율이 20%가 안되니 무식하고 박정희 향수에 젖은 사람들이라고 몰아붙이는 싸가지 없음이 문제다.

    강은하: 공포감에 대해 실질적으로 대중들이 뭘 두려워하는지 파악을 못한 것이다. 학생운동 시작하면서부터 느낀 건데 합리적인 선택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잘난 나를 따라오라는 건 안 먹힌다. ‘깨시민'(깨어있는 시민) 프레임에 당한 것이다. 나에게 믿음도 주지 못하면서 무조건 자기만 따라오라는 거 불쾌했다. 싸가지도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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