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한 섹스를 추천합니다
    [서평] 『라라피포』(오쿠다 히데오/노마드북스)
        2012년 12월 22일 10: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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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함과 무력함에 책을 찾았습니다. 이 책 저 책 펼쳐 읽어 내려가다가 덮기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 뭐라도 읽어야 해소될 것 같았던 답답함이지만, 쉽게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결국 집어든 책은, 언제나 읽고 나서 후회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라라피포>입니다.

    <라라피포>는 야한 책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든 얽혀있는, 서로 다른 여섯 명의 ‘야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명문대 출신 대인공포증 환자 ‘히로시’는 도청 장치를 통해 이웃집 ‘구리노’와 여자들의 밤을 엿듣습니다. 그는 구리노와 여자들의 ‘뜨거운 밤’을 엿들은 후, 그 흥분을 도서관에서 만난 ‘사유리’라는 여자에게 풀 곤 합니다.

    명문대 출신인 히로시는 ‘비계 덩어리’(그의 표현입니다)인 사유리와 만나는 것, 그리고 자신을 만나줄 여자는 사유리밖에 없다는 사실에 심한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사유리는 어느 작가가 구술한 야한 소설을 원고로 옮기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부업으로 (아니 어쩌면 이것이 본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성생활을 몰래 녹화해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로 팔고 있습니다. 히로시와의 만남도 그런 식으로 포르노 비디오 테이프화(化) 되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히로시의 옆집에 살고 있던 구리노는 이사를 가버리고 맙니다. 구리노는 카바레 클럽의 스카우트 맨입니다. 그는 자신이 스카우트한 여자들을 포르노 업계로 넘겨 큰 마진을 남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녀 비빔밥’이라는 포르노에 자신이 스카우트한 두 여자를 출연시키기로 합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낸 허락이기에 그는 뿌듯하기만 합니다. 촬영장에서 만난 두 여자, 도모코와 ‘요시에’는 실제로도 모녀 관계였습니다. “어떡할래?”, “……”, “모른척할까?”, “응…….” 그렇게 모녀는 서로 모르는 척 포르노를 찍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요시에가 포르노를 찍기로 결심한 이유는 일상의 단조로움 때문으로 보입니다. 어느 날부터 요시에는 모든 가사노동을 그만둡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브라운관을 응시하고 레토르트 식품을 꺼내어 먹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풍기는 악취와 득실거리는 구더기 때문에 슈퍼마켓에서 대량 구매해 놓은 살충제를 집안 곳곳에 뿌립니다.

    사실 ‘악취’는 2층에 감금되어있는 누군가의 사체에서 풍기는 악취입니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병수발에 지친 요시에는 어느 날 시어머니의 방문을 잠그고 약 1주일간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집을 치우는 것을 그만둡니다. 그녀는 지나가던 청년에게 자신의 집을 불태워달라고 부탁합니다.

    지나가던 청년은 노래방에서 일하는 ‘고이치’입니다. 그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몇몇 건달들이 그가 일하는 노래방에서 성매매를 해도 괜찮냐는 부탁에 그만 ‘오케이’ 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노래방에 성매매를 위해 ‘게이지로’가 들릅니다. 게이지로는 야한 소설을 씁니다. 아니, 구술 작업을 하기 때문에 야한 소설을 ‘말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그러나 <라라피포>는 사실 야한 책이 아닙니다. ‘섹슈얼’한 것으로 얽혀 있는 여섯의 삶이지만, 핵심은 ‘섹슈얼’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삶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답답합니다. 다들 견딜 수 없는 일상의 단조로움, 우울, 답답함에 내몰려 벼랑 끝에서 그저 ‘몸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옮긴이는 이를 ‘그들은 모두 육체의 세계로 회귀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무기로, 최후의 보루로 삼고 달려간 여섯 주인공의 삶. 하지만 그 최후의 처참함에 한참이나 먹먹합니다.

    ‘라라피포’는 ‘A lot of people’의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쓴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서 사유리가 말합니다. “울건 웃건 어차피 인생은 계속되는 것. 내일도, 모레도……. (중략) 며칠 전, 어떤 백인이 노래하듯 중얼거리던 말이 떠올랐다. ‘라라피포’” 작가는 어차피 ‘라라피포’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 아니겠느냐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자며 툭 하고 던져버리고 맙니다.

    우울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야한 책이나 읽자고 생각했던 저였습니다. 그러나 낯 뜨거운 언어로 쓰인 <라라피포>는 저를 더더욱 우울하고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이 책을 읽지만 또 후회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울은 우울로 다스려지는 건지. <라라피포>는 왠지 모르게 늘, 큰 위안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의 답답함, 무력함, 우울함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야하지만, 동시에 가장 야하지 않은 <라라피포>를 읽고 우울해지기를 추천합니다.

    필자소개
    학생. 연세편집위원회 편집위원 hwangji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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