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 대한 반대를 반대한다
[빵과 장미] "다른 이의 존재 부정하거나 판단할 권리 없다"
    2012년 12월 18일 12: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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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을 언제까지 써야 하나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차별의 역사가 한 인간의 삶보다 길다는 걸 떠올리면 아마 사는 동안은 계속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소수자에 대한 당당한 증오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세력을 지킬 수 있는 사회라면 더욱 내버려둘 수 없는 문제다.

1.

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지난 13일 ‘종교특위 기독교위원회’ 명의로 연 회견에서 “앞으로도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 드린다”라고 말했다. ‘동성’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고 단어로 바꿔보자. 그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랑과 결혼이 ‘허용’되는 법이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한 셈이다. 누구에게나 본능적으로 너무 끔찍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라기 보다 ‘동성’이라는 성적 취향에 초점을 맞추면 갑자기 의견이 갈라진다.

‘정상적인’ 사랑, 연애, 섹스, 그리고 결혼이라는 개념은 이성애자의 전유물로 굳어졌기에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걸 지당하게 여기는 이성애자들이 많다. 허용, 인정, 반대 등으로 타존재에 대해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성애자는 특권을 가지고 있으니 폭력이 따로 없다.

게다가 보수적인 종교인들이 존재를 반대하고 사랑을 반대하면서 신의 이름을 파는 용기는 제발 거두어주었으면 한다. 사랑도 못하게 하는 신을 믿고 있다면 아마 사탄에게 홀린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하는 것도 믿는 이들이 왜 뻔히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을 부정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착각도 정도껏 하길. 신을 믿는 이들이 혹시 스스로 신이라고 착각하는 걸까. 정말로 신을 믿는가. 그렇다면 판단하지 마시라. 판단은 신이 할 테니. 주제파악이라는 말은 아마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게다.

성적 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존재’를 허용하고 반대하고 할 권리는 아무도 없다. 존재를 반대한다는 건 그야말로 오지랖이다. 이성애자가 성소수자를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하루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누구도 다른 이의 존재를 판단할 권리는 없다.

2.

공교롭게 프랑스에서도 요즘 어느 때보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논쟁이 뜨거운 상황이다. 이번 주말에도 동성결혼 합법화를 지지하는 시위가 크게 있었다. 16일인 일요일 바스티유 광장에는 10만 명 정도의 시민들이 모여 행진했다.

가까운 벨기에나 네덜란드에 비하면 성소수자를 위한 정책이 보수적이었던 프랑스에서 동성부부는 그 동안 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 즉 시민연대협약이라는 이름으로 동거만 가능했다. 그런데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건 올랑드의 대선 공약이었다. <동성애와 사회주의HES(Homosexualités et socialisme)>라는 동성애 인권단체가 꾸준히 사회당과 연대하며 정치세력화 되었고 <Inter-LGBT>와 같은 성소수자 단체가 강경하게 목소리 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재 결혼뿐 아니라 동성부부의 아이 입양 합법화까지 추진하고 있고 내년에 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식 문서에서도 ‘남편mari’과 ‘아내femme’라는 단어를 없애고 ‘배우자époux’로 바꾸기로 했으며 ‘엄마mère’와 ‘아빠père’라는 단어도 사라진다. 이성애 중심의 가족에 기반한 언어를 공식문서에서 없애고 모든 형태의 부부와 가족에게 해당되는 언어로 새로 바꾸는 중이다.

프랑스 동성결혼 찬성(위)과 반대(아래)시위 장면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다. 지난 달에 동성 결혼 반대 시위가 파리를 비롯하여 몇몇 대도시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보수적 카톨릭과 이슬람 단체, 극우 진영에서 반대가 거세다. 결혼이란 남녀의 결합이기에 가정에는 반드시 ‘엄마’와 ‘아빠’라는 날개가 양쪽에 있어야 균형이 잡힌다고 주장한다. 프랑스에서 극우와 이슬람 단체가 의견이 하나로 모이는 모습까지 발견되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반대자들은 주로 성소수자는 존중하지만 ‘결혼’은 안 된다고 하며 특히 ‘입양’을 강하게 반대한다. 그런데 “존중하지만”이라고 하면서 ‘결혼mariage’은 이성끼리의 결합으로만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딘가 이상하다. 또 “존중하지만”이라고 하면서 그들이 자식을 키우는 건 아이들에게 좋지 못하다는 주장은 더욱 이상하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존중은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그들끼리’ 살아가는 건 상관하지 않으나 ‘우리 이성애자’의 제도 속으로 들어오지는 말라는 주장이다. 이건 제도 바깥으로 밀어내는 행위이다. 이렇게 특정 존재에게 배제된 삶을 강요하는 것을 ‘존중’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성애자들은 ‘존중’이라는 언어를 제대로 사유해야 한다.

나아가 이런 주장도 한다. 지금도 동거인으로 지위를 가질 수 있는데 왜 굳이 ‘결혼’을 하려고 하는가, 이성애자들도 요즘은 결혼을 안 하고 동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굳이 결혼이라는 그 구태의연한 제도 속으로 들어오려고 하느냐, 다양한 성적 취향을 존중 받길 원하면서 왜 더 진보적 자세를 가지지 않고 오히려 더 보수적인 결혼제도 속에 들어오고 싶어 하느냐……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결혼과 동거 중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입장과 애초에 선택을 차단당한 입장 사이에 바로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성애자의 제도 속으로 편입되겠다는 뜻도 아니며 결혼이 목적도 아니다. 현재 성소수자를 배제한 채 이성애자 가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제도를 바꾸길 원하는 것이다. 모든 형태의 가족이 제도권에서 차별 받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다. 그렇게 차별 없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동거를 하든 결혼을 하든 각자의 선택이 자유롭다.

또한 아이 입양이 가장 반대에 부딪히고 있지만 이미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이 부모의 성적 지향이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혀왔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굳건히 믿고 있는 이성애 중심의 가족 속에서 과연 모든 자녀가 행복하고 안전하게 성장하고 있는가. 아니다. 자녀양육에 있어 중요한 건 부모의 지속적 관심이지 그들의 성적 지향이 절대적 조건이 될 수 없다.

3.

동성결혼과 자녀 입양 문제가 구체적으로 정치쟁점화 되어서 그에 대해 머리 터지게 논쟁을 하는 건 차라리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기도 전에 한국에서는 동성애 그 자체를 두고도 ‘허용’이나 ‘반대’를 운운하고 있다. 후진적인 인권의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것도 모자라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성소수자들을 향해 “분노를 유보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건 얼마나 폭력적인가. 차별당한 이에게 참아라 말아라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무 말이나 해도 되는 권리를 도대체 어디서 부여 받았나.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 그리고 이 사안을 슬그머니 넘기려는 일부 (진보를 표방한다는) 언론 간에 맺고 있는 끈끈한 침묵의 동맹을 씁쓸하게 지켜보고 있다. ‘당신들의 정권교체’는 바로 이렇게 많은 비인간적 행위들 앞에서 침묵한다는 걸 발견한다.

물론 우선은 정권교체를 이루고 그 다음 싸우자고 한다. 하지만 ‘닥치고’ 정권교체가 ‘대의’가 되어버린 이들이 과연 그 대의를 이룬 후에 소수자와 연대할까. 물론 그럴 수 있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김진표 의원의 발언 후 며칠이 지나도록 민주당은 아무런 공식 입장도 없다. 계산기 두드려서 표 계산을 해보니 성소수자를 무시해서라도 동성애 혐오자와 보수 기독교인의 표를 끓어올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익이라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과연 사람이 먼저다! ‘이익을 주는 사람’이 먼저라는 얘기다.

* 현재 프랑스에서 진행중인 ‘동성결혼합법화’를 위해 사용되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le mariage pour tous’, 즉 ‘모두를 위한 결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성결혼 합법화’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결혼의 합법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맞는 한국어 표현이 없기에 이 글에서는 한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동성결혼’이라는 용어로 통일해서 적었다. 하지만 ‘동성결혼’과 ‘모두를 위한 결혼’이라는 용어 사이에는 세심한 차이가 있으므로 정확히 밝혀두고 싶다.    

 

필자소개
이라영
집필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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