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운명을 바꾼 이야기
[문학으로 읽는 우리시대]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 텐징 노르가이>를 읽고
    2012년 12월 18일 10: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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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山)’을 생각하면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나 산사람들의 고된 등정 과정을 떠올린다. 또한 ‘산’은 속세를 떠나 탈속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종교적 공간으로 연상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산’이라는 상징을 매개로 하여 남다르게 자신의 생의 형식을 완성해간 이들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곤 한다. 특히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설산 히말라야에서 삶을 완성해간 이들은 우리를 각별한 곳으로 인도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연전에 읽은 책 <히말라야의 눈꽃 – 썬다 싱의 생애>(홍성사, 1990)는 이러한 영웅적 삶의 한켠을 감동 깊게 보여준 실례이다. 죽음의 히말라야를 걸어 올라가는 한 인간의 의지에 대한 기록인 이 책은, 봉인된 나라 티벳에서 선교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한 위대한 성자를 우리에게 각인하고 있다.

촛불과 성경만 가지고 고행과 공포를 이겨낸 한 선교사의 삶과 죽음은 ‘히말라야’라는 원시의 공간이 성소(聖所)로서의 상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임을 선명하게 알려준 바 있다. 이러한 성소로서의 ‘산’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영웅적 표상으로서의 ‘산’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책이 바로 에드 더글러스의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 텐징 노르가이>(시공사, 강대은․신현승 옮김)이다. 여기서 ‘히말라야’는 한 셰르파가 위대한 자기 성취를 이룬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의 모습

이 책은 에베레스트를 인간이 정복한 지 꼭 5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여 출간된, 진정한 인간 승리의 상징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의 생애를 담은 결실이다.

가난하고 평범한 삶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우뚝한 상징으로 거듭나기까지의 한 셰르파의 삶과 사랑 그리고 빛과 그늘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전체적으로 인물 평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인 에드 더글러스는 영국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이며 그 자신이 등반가로서 화려한 경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 같은 저자의 식견과 경험이 아마도 이 책으로 하여금 거대한 산악 자료로서의 가치도 내장하게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료(史料)로서의 성격 역시 이 책을 비중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주인공 텐징이 저 광활한 평야에서 가장 높은 산정을 올라가는 수직 상승의 과정을, 한 인간의 의지가 가혹한 운명을 바꾸면서 영웅적 생을 완성해간 과정의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 아니 그 은유적 독법이야말로 이 책의 동기를 완성하는 독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방식이 될 것이다. 이처럼 텐징 노르가이의 삶은 자신의 의지를 통해 운명을 바꿔간 한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실물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인도 북동쪽, 네팔과 티벳 접경에 솟아 있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기 위해 인류는 많은 시간과 목숨을 산에 바쳤다. 거기에 왜 올라가느냐고 묻는 말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영국 원정대원 조지 맬러리의 유명한 말은 인간의 정상 정복 욕망이 때로는 맹목에 가까운 어떤 열망이었음을 말해준다.

그 에베레스트를 올라가는 데 걸린 세월은 첫 등정 시도 이후 33년이었다. 이처럼 에베레스트는 인류에게 오래도록 도전과 좌절의 상징으로 존재하였다. 드디어 1953년 5월 29일 11시 30분, 뉴질랜드 출신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인 텐징 노르가이가 바로 그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에베레스트 정복 50주년 기념으로 나온 이 책이 유독 기념비적인 까닭은 백인 등반가가 아닌 셰르파 텐징을 주인공으로 부각시킨 데 있다. 셰르파의 사전적 의미는 “네팔 동부에 살고 있는 티벳의 한 종족으로서 산을 잘 타 히말라야 등산에서 짐을 나르며 안내하는 인부”로 나와 있다.

따라서 셰르파는 정상 정복의 한 조력자일 뿐, 그 자신이 고산 등정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하였다. 말하자면 주인공 자리는 모두 거대한 자본을 가진 강대국 사람들이 차지해왔고, 정작 그들 뒤에서 묵묵히 산을 오른 셰르파에 대한 이야기는 전무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백인 등반가들의 조연으로만 여겨졌던 셰르파가 이 책에서 당당한 주연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바로 ‘셰르파’라는 주변인을 중심에서 그린 최초의 책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그동안 등반가와 셰르파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 한 가지 빠진 것이 그들 사이의 신뢰와 우정이었는데, 이 책은 그 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우정을 매우 웅숭깊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기억될 만하다.

또한 이 책은 힐러리가 밝힌 놀라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가 있다. 두 사람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텐징이 정상을 눈앞에 두고도 뒤처진 힐러리를 30분이나 기다려주었고, 궁극적으로 힐러리는 정상에서 텐징의 사진만 찍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때 힐러리가 찍은 텐징의 사진은 이 책의 맨 앞머리에 담겨 있는데, 이 사진에 나와 있는 텐징은 방한용 웃옷, 두꺼운 장갑, 눈더미, 산소통으로 가려져 있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다. 이를 두고 저자는 “누구든 사진 속의 그가 될 수 있다.”(9쪽)라고 말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텐징이 될 수 있다는 은유를 저자는 이 사진에서 읽고 있는 것이다.

힐러리가 찍은 텐징 노르가이의 모습

텐징은 “벼락치는 곳”(25쪽)이라는 의미를 지닌 다르질링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영국령의 고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고원의 여왕”(26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먼지투성이 평원과 녹색 정글 위에 떠 있는 순백의 영묘한 산의 정상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 것”(55쪽)이라고 저자는 예단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곳에서 신화와 사실은 서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59쪽)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 환경이 텐징에게 영묘한 상상력과 의지를 준 것이다.

“극도로 빈곤하게 생활했던 젊은 시절에 텐징은 인정받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법을 깨달았다”(63쪽). 그래서 그는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97쪽)을 남모르게 키운다. 그는 첫 아내인 다와 푸티와 함께 다르질링을 떠나게 되는데, “산을 향한 텐징의 열망”(107쪽)은 그렇게 첫 발을 내딛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족을 사랑했던 텐징은 그들이 비록 문맹과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일지라도 본능에 가까운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남다른 것이었다. “나는 일곱 차례나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적을 물리치는 병사의 긍지와 기력이 아니라 어머니의 무릎에 오르는 아이의 사랑으로 매번 산을 다시 찾았다.”(83쪽)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는 “에베레스트에 있을 때면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오직 더 멀리 가고 싶을 뿐이다. 그것은 나의 타고난 꿈이요, 욕구요, 열병이다.”(123쪽)라고 말했다. 아내가 죽고 나서 텐징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산 속에서 사고를 만나 종종 요절한 것이 한때 셰르파들을 “숙명론자”(226쪽)들로 만들기는 했지만, 그리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원한이라는 인간적 결함이 상존하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크 목동의 천막에서 보티아인의 아들로 태어나 부잣집의 하인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텐징은 스위스 원정대에 끼친 공헌과 네팔의 국위를 선양한 공로로 프라탑 바르닥 훈장을 받았다.”(258쪽)

그래서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은 명성, 지위, 영예와 부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텐징은 이런 점을 깨달은 최초의 셰르파였다. 따라서 그 이후에야 비로소 산 정상이 다른 셰르파들에게도 가치 있는 목표가 되었다.”(29쪽)라고 저자는 텐징의 변모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1953년 5월 힐러리와 텐징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잰 모리스는 “마치 기린처럼 점잔을 빼며 행동하는 큰 키의 뉴질랜드인과, 빈틈없이 차려입고 고용한 등반가들이 아주 빨리 자신을 좋아하도록 만드는 빛나는 미소와 열정을 가진 보티아인”(278쪽)이라고 그들 커플을 묘사했다.

저자는 “텐징이 성공한 순간의 모습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그를, 슬로프에 굳게 딛고 서 있는 그의 다리를 보았다.”(302쪽)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감격적으로 “아마도 텐징의 가장 큰 힘은 용기와 불굴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일관성, 끈기는 우리가 좋아하더라도 오늘날 매력적인 특성으로 여겨지지 않지만, 텐징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나긴 따돌림과 개인적 비극에 맞서 그는 계속해서 나아갔고 소년 시절 에베레스트 가까이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 아버지의 야크떼를 바라보면서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지위를 마침내 성취했다.”(393쪽)라고 기록하고 있다.

저자의 눈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텐징은 “진정한 영웅”(394쪽)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그를 불멸로 만들고 있는 것은 동료였던 힐러리의 진실성과 저자 더글러스의 해박한 식견 그리고 그 자신의 의지이다.

텐징은 말한다. “많은 것들이 정치와 국적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산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곳에서 생명은 너무 현실적이며, 죽음도 너무나 가깝다. 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304쪽)라고. 이처럼 진정한 영웅의 삶은 정치나 이념의 매개를 거치지 않고, 죽음의 공포와 직접 대면하면서 운명과 싸우는 불멸의 의지에서 가능한 것이다.

결국 이 책은 한 평범한 인물의 의지가 운명에 저항하고 결국은 그 운명을 바꾼 자기 성취 과정의 기록이다. 1977년에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장을 맡았던 김영도 씨도 책의 추천사 ‘다시, 에베레스트를 생각하며’에서 “2003년 5월, 에베레스트는 초등(初等) 50주년을 맞는다. 그토록 멀고 험했던, 그리고 완강히 인간의 접근을 거부해온 세계 최고봉이 오늘날 그 산록 빙하지대로 모여드는 트레커 군상과 정상을 노리는 등반대들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미지와 공포의 세계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했던 알피니즘의 진수는 이제 힐러리와 텐징으로 끝났다. 미천한 몸으로 히말라야 오지에서 출발하여 세계 정상에 오른 텐징의 이야기는 오늘날 난숙할 대로 난숙한 문명 속에서 허둥거리는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의 뜻은 여기에도 있다고 본다.”라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산’은 지상에서 솟구친 그저 단순한 높은 땅이 아니라, 삶의 완성을 표상하는 눈부신 상징이고 신성의 거소(居所)이기도 한 것이다. 역사의 상징은 이처럼 가혹한 운명을 가열한 의지와 노력으로 이겨낸 자들의 기록으로 남아 우리에게 묻는다. 왜 거기 오르느냐고.

 

필자소개
한양대 교수. 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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