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정치인 '아베'의 귀환
[일본의 일상] 1216 총선거의 내면과 속살들
    2012년 12월 17일 07: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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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의 사실이겠지만 일본은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고, 총선거는 정권을 만드는 선거이다. 일본에서 정당정치의 오랜 전통이 쌓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인물보다는 정당에 투표해야하는 내각책임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로운 흐름이 되고 있는 난립하는 신생정당 이외에는 일본에서는 50년 이상된 오래된 정당들이 정치를 해왔다.

2012년 12월 16일 실시된 일본의 46회 총선거에선 예상을 뛰어넘은 규모로 일본민주당이 참패(57석)하고 자민당이 294석으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그 이유를 여러모로 생각해보고, 또 이 총선거로 구성될 일본 국회의 풍경을 조금 짚어보기로 한다.

 난립하는 다수 정당

이번 일본 총선거에서는 14개의 정당이 난립했다. 마케팅 이론에서 8개 이상의 동일 항목은 금지된 숫자이다. 선택지가 8개 이상이면 합리적 판단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최적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선택지는 6개라는 건 이미 마케팅 이론에서는 정석에 속한다.

대표적 극우 정치인 아베, 하시모토, 이시하라(위에서 시계방향)

14개의 정당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거대 양당 이외의 정당들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특히 공산당과 사민당을 제외한 소위 제3국면이라고 불리는 신생정당들은 각지에 후보를 내면서 조금씩 일본민주당의 표를 갉아먹었다. 신생정당들은 각지에 분산된 형태로 민주당의 표를 빼앗아 결과적으로 자민당을 도왔다. 아사히 신문은 이 결과를 놓고 ‘자민당의 어부지리’라고 표현했다.

정당 난립의 결과는 또한 유권자를 지치게 했다. 안정적인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선거에서 유권자는 보수적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가장 익숙하고 오래된 인물들이 약진했다.

제3국면의 신생정당들

3년 4개월전 치러진 총선거에서 54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이후 일본 정계에선 대혼란이 벌어졌다. 그 혼란의 결과가 신생정당의 난립으로 나타났다. 정치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이합집산이 분주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자민당 일당독재를 구심점으로 오랜동안 뭉쳐왔던 보수세력의 분화가 뚜렷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54석을 차지해 법안 단독상정도 가능하게 된 일본유신당은 최저임금폐지와 기업규제완화, 평화헌법개정 등을 주장하는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당으로 자민당의 가장 오른쪽 성향의 나이 든 정치인들과 새로 등장한 젊은 정치인들의 결합이었다.

한편으로는 ‘미도리노가제’(녹색바람)등 기존의 정당과는 약간 성향이 다른 정당들이 등장하여 특히 탈핵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는 새로운 경향을 보였다.

14개의 정당 중에 자민당과 공명당, 민주당, 사민당, 공산당, 오키나와사회대중당 등 여섯개를 제외한 정당들은 전부 2005년 이후에 등장하였고, 특히 작년과 올해만 ‘미래의 당’, ‘신당대지’, ‘일본유신당’, ‘미도리가제’ 등 네개 정당이 새로 생겼다.

그리고 2009년 총선거를 전후로 자민당에서 갈려나와 생긴 정당은 ‘신당개혁’과 ‘민나노당’ 두개이고 2005년 고이즈미 정권 당시에 민영화에 반대하며 자민당에서 갈려나온 정당이 ‘국민신당’과 ‘신당일본’ 두개이다.

2005년에 생긴 두개의 정당은 고이즈미와 정책적 견해의 차이에서 생긴 흐름이나 2008년 이후에 생겨난 여섯개의 정당은 미도리가제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주장을 들고나온 이외에는 전부 기존 정당에서 정치생명 유지를 위해 분화를 꾀한 경우이다. 이 사이에도 몇개의 소그룹에 가까운 정당들이 존재했고 그들 대부분은 일본유신당이나 미래의 당 등으로 각각 흡수되었다.

이런 현상은 보수진영 내에서도 자민당 내의 당권독식등에 불만을 가진 정치인이 늘어났고, 좋은 혈통을 타고나 자연스레 권력의 중수에 앉은 아베같은 인물에 대한 불만이 제3국면이라는 흐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투표율

투표율은 전국 59.23%를 기록했다. 지역의 경우는 55%에 미치지 않는 지역도 나타났고, 전국이 골고루 낮았다. 이는 1945년 패전 이후에 가장 낮은 투표율로 1996년 59.65%의 기록을 갱신했다.

정당이 난립하는 가운데 민생이 실종되고 유권자들이 진지하게 선거에 관심을 둘 수 없었던 것이 저조한 투표율로 나타난 것이다. 참고로 3년 4개월전에 치러진 지난 총선거보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최소 8%, 가장 격차가 심한 지역에서 16.86%이상의 차이를 나타냈다.

나쁜 타이밍

3년 4개월 동안 이어온 민주당 정권은 마지막 몇개월을 남겨놓고 심한 레임덕과 압박을 겪었다. 연내 해산을 목표로 다른 정당들은 민주당에게 국회해산을 종용했고, 민주당은 결국 레임덕 방지를 위해 서둘러 해산했다. 이 와중에 소비세 국면이 발목을 잡았다.

민주당은 매니페스토를 위반하고 소비세를 증세하겠다는 발표를 올해 초 내놓았고, 소비세증세를 위해 각당 협의를 진행했다. 이례적으로 강경한 태도로 소비세 증세를 추진하면서 다른 문제들에서는 각 당에 상당한 양보를 했고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전제로 추진된 소비세 증세에 각 당의 협의를 일단 이끌어냈다.

그러나 정면돌파는 항상 정권이 유지될 때 유효한 법이라서 소비세 증세 정책으로의 전환에서 일관되게 강경 정면돌파를 선택한 민주당은 결과적으로 소비세 증세가 가장 커다란 이미지로 남은 상태에서 국회해산이 이루어졌고, 소비세 증세는 유권자의 가장 커다란 반발을 낳았다.

소비세 증세를 찬성하는 유권자층에서도 매니페스토 위반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서 민주당의 신뢰가 크게 손상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 하나의 나쁜 타이밍은 한국 대선국면이었다. 한국 대선 국면에서 어김없이 불어오는 북풍은 한국 대선이 아니라 엉뚱하게 일본 총선을 강타했다. 북한이 쏘아올린 위성용 로켓은 일본민주당을 격침시켰다.

두 개의 이슈

이번 총선거의 가장 커다란 이슈는 ‘탈핵’과 ‘소비세 증세’였다. 결과를 보면 탈핵은 외면당하고 소비세 증세는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집권했던 민주당이 추진했던 소비세 증세 법안에 대해 실제적으로는 협의가 끝난 상태이다.

절차적으로 자민당이 소비세 증세를 추진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애초 민주당이 소비세 증세를 상정할 때 심하게 반발했던 자민당이 증세를 계속 추진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소비세 증세를 중심으로 볼 때 증세에 반대하는 당은 공산당, 사민당, 미래당, 신당 대지, 신당일본, 미도리카제였고,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 당은 자민당, 국민신당이었다. 일본유신당은 증세에 찬성하나 그 전제로 증세분을 지방세로 편입하자는 의견이었고, 공명당은 증세를 전부 재해복구에 사용한다는 전제를 내세웠다.

탈핵은 또 다른 중요 이슈였다. 탈핵을 전면에 내세운 미도리카제가 등장하고, 민주당과 공산당, 사민당, 민나노당, 미래당, 신당대지, 신당일본 등은 탈핵파였다.

그러나 이 두개의 이슈는 결과적으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생각하면 유의미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증세에 대해 애매한 스탠스를 취한 당들은 대부분 약진했고, 탈핵을 내세운 당들은 전부 참패했다.

특히 탈핵과 증세에 대해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표명하던 경단련은 자민공명연립에 대해 가장 반색을 표명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향후 일본 국회의 주요한 숫자들

241 : 241은 일본 중의원 480명의 과반수이다. 찬반을 결정하는 이 과반수를 넘는 의원 294명을 자민당은 확보했다.

320 : 320은 헌법등의 주요사안에 대한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숫자로 의원 총수의 3분의 2에 해당하는데,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으로 이 숫자도 확보되었다. 또한 북조선과 중국 문제로 인해 자주 등장하게 된 평화헌법 개정을 들먹이는 일본유신당과의 연계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51 : 51은 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동의수이다. 일본유신당은 이번 선거에서 57석을 확보하면서 단독으로 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북한이나 중국의 핵에 대해 핵무장도 불사해야만 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 적도 있는 일본유신당이 내놓을 법안은 어떤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어디로 갈까?

정말 모르겠다. 노다 총리는 선거유세 내내 “낡은 일본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졌으나 일본 유권자에게는 노다 역시 낡아보이기는 마찬가지였고, 정치력의 부족이 여실한 민주당의 모습은 일본 유권자들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주었다.

조용하게 일어난 3년 3개월전의 정권교체는 그 기대만큼의 실망으로 돌아왔을뿐, 재해와 고난을 겹겹이 겪어야 했던 일본유권자에게는 지난 3년이 그다지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곱씹으면서 자민당체제로 돌아가버린 일본에 뭐 그리 대단히 영화로운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는듯하다. 지나치게 싸늘한 유권자들의 반응이 그렇다.

14년을 일본에 살면서 이렇게 무관심한 선거는 처음 본 거 같다. 유권자들에게는 투표한 어제는 일요일이고, 오늘은 그저 변함없는 월요일인 것이다. 희희낙락하는 자민당 정치인들을 뉴스화면에서 보면서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월요일인 것이다.

정치가 축제가 되지 못하면, 정치가 유권자들의 것이 되지 못하면 그다지 밝은 미래가 없다는 당연한 교훈이 남았다.

첨각제도(센가쿠제도)와 독도, 북조선,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의 복잡한 관계는 여전히 각 나라의 국내정치용 선전으로 전락하고 그 와중에 우왕좌왕하는 건 각 나라의 국민들이 될 것이다.

덤으로 하나 덧붙히자면, 사민당은 세력이 축소되어 이번 선거에 2석을 겨우 확보했다.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다. 공산당은 9석에서 8석으로 축소되었으나 전부 비례당선이라는 점은 공산당의 전통적 지지층은 크게 빠지지 않았고, 대신에 세력 확장에는 실패했다는 의미이다. 전통적인 진보좌익진영에서의 사민당과 공산당의 역할은 정체되거나 축소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필자소개
토끼뿔
일본 후쿠오카에서 14년째 살고 있으며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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