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유동성 함정 빠지지 않으려면
    강력한 확대 재정정책 집행이 필수
    [분석] 불투명한 유로존의 미래③ - 급진좌파 지지와 유로존 잔류의 딜레마
        2012년 05월 29일 05: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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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연재분을 보시려면

    유럽판 양적 완화, 장기 자본 재확충 기금 운용의 성과와 한계

     물론 2011년 12월 유럽 중앙은행 총재가 바뀌고 드래기 총재가 장기 자본 재확충 기금(Longer Term Refinancing Operations; LTROs)을 운용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유럽 중앙은행이 유로존 민간 은행들이 원하는 액수의 유로화를 보다 덜 엄격한 담보물을 내걸고서도 거의 아무런 제한 없이 빌릴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유럽 중앙은행은 2012년 3월 들어 또 한차례의 기금 운용을 단행했고, 이 두 차례의 운용을 통해 총€1000 billion의 장기 유동성이 유로존 민간 은행에 투입되었다.

    우선, 장 클로드 트리체 하의 유럽 중앙은행의 입장과 비교할 때 이것은 대단히 전향적인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와 같은 조치 덕분에 유로존 중심부에서 은행간 단기 자본 시장의 경색이 상당 부분 완화되었다. 더불어 이 조치가 취해진 이후 그리스를 포함한 남부 유럽 국가들이 발행한 정부 채권의 이자 부담율이 떨어지고 상당 기간 동안 안정화된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 중앙은행 관리들은 이 조치가 민간 은행들이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던 급격한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쉽게 말해 계속해서 유동성이 높은 금융 자산을 축적하기만 하고 민간 경제 주체들, 특히 비금융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는 행위를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유럽 중앙은행 관리들의 이와 같은 근거없는 기대와는 달리, 중앙은행에서 막대한 돈을 거의 공짜로 빌린 거대 민간 은행들은 자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거나 (이탈리아, 스페인 및 포르투갈 은행들), 아예 빌린 돈을 중앙은행 계정에 다시 예치시켜 두고 있을 뿐이다 (독일과 프랑스 은행들). 다시 말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에서 일단 돈을 빌린 다음, 민간 경제 주체들에게 신용 대부를 해주기는커녕 그 돈의 대부분을 안전한 금고 (유럽 중앙은행 계정)에 보관해 두고 있는 것이다.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 점은 2009년부터 미 연준이 2차에 걸린 대대적인 양적 완화 조치를 취한 이후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는 일종의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 현상과 유사한 것이다. 혹은 1990년대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이후 일본 중앙은행이 은행 산업들에 대한 강력한 통폐합과 구조 개혁을 단행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돈을 찍어 좀비 은행들에 대주기만 했던 상황에 비견될 수 있다.

    미국의 거대 은행들은 미 연준에서 거의 공짜로 돈을 빌어다가 자국내 민간 경제 주체들에게 신용 대부를 늘리는 대신 해외 원자재와 식량에 투기를 벌이거나 각종 채권과 주식을 사고파는 투기적 행태를 보여왔다. 정작 기업 운영이나 소비를 위해 신용을 필요로 하는 민간 경제 주체들에게 신용 대부를 해주지 않으니, 실물 경기는 계속해서 경기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고, 그러한 가운데 자산 가격만 오르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유로존의 개별 정부나 유로존 차원의 단일 재정 정책 집행 기구가 대대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취하고, 민간 은행들에 대한 주식 보유 지분을 지렛대로 삼아 그 은행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비금융 기업들에게 대출을 하라고 행정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미래의 불확실성과 각종 금융 시장 규제의 불확실성에 대처한다는 이름으로 막대한 예비 자금을 보유하려고 하는 은행들의 유동성 선호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유럽 중앙은행의 장기 자본 재확충 기금 운용은 이에 걸맞은 확대 재정 정책이 집행되지 않는 한 영국과 남부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이중 경기 침체(double dip recession) 또는 장기간 지속되는 극심한 불경기를 역전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정체의 변화 때문에 발생한 또 다른 불확실성 앞에서 유럽 금융 시장이 남부 유럽 국가들의 채무 불이행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유럽 중앙은행의 장기 자본 재확충 기금 운용과 실제 사용 사례

     

    유로존 주요국의 분기별 공식 실업률 변화, 2001 1분기에서 2012년 1분기

    그리스의 총선 결과 – 새롭게 펼쳐진 정치정세는 과연 사태를 바꿀 수 있을까?

     

    그리스 시민들은 지금까지 추진되었던 일련의 재정 긴축과 구조 개혁 조치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강요된 구제 금융 조건을 거부하거나 재협상을 벌이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던 급진좌파연합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그렇지만 그리스 시민들은 이와 동시에 유로존에서 이탈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 이상이 그리스가 유로존에 잔류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머물면서도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추가적인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시리자의 당수 치프라스는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이탈할 경우 발생할 파국적인 결과 때문에 독일이 그리스를 유로존 밖으로 강제로 내몰지 못할 것이고, 바로 이 때문에 독일과 재협상을 벌여 연금 삭감이나 공무원 임금 동결 등과 같은 몇 가지 조치들을 완화하거나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를 모두 얻을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데 있다. 그리스와 프랑스의 정치정세가 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독일의 보수당 정부 관리들과 중앙은행가들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강요해왔던 남부 유럽 국가들에 대한 긴축 정책을 철회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원하는 대로 기존의 긴축 위주의 구제 금융 조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정치적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가 이끄는 사회당이 다음 달 10일에 열리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압승하여 프랑스의 정치 지형을 바꾸고 강력한 힘으로 독일을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로 독일의 좌파들이 2013년에 열리는 연방 및 지방의회 선거에서 현재의 기독 민주연합 (Christian Democratic Union; CDU)과 기독 사회연합(Christian Social Union; CSU) 중심의 보수주의 연립정부를 해체시키고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독일과 프랑스의 차기 좌파 정부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유로존의 장래와 남부 유럽 재정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이와 동시에 그리스를 포함한 남부 유럽 국가들의 정치정세가 급반전하여 프랑스와 독일에서 세워질지도 모르는 이 좌파연합 정부와 구제 금융 조건에 관해 전면 재협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럽연합 정상회담, G-7 그리고 G-20 등의 각종 정상회담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보수당 정부가 지금까지 추진했던 것과 같은 긴축 위주의 경제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강력한 압력이 행사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정책적으로는 이 모든 정치정세의 변화가 현재 남부 유럽 국가들에게 강요되는 긴축 정책에 정반대되는 정책, 다시 말해 재정 및 금융 정책 모두에서 경기 부양을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 바뀌어야 하고,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남부 유럽 국가들이 민간 부문의 투자와 소비를 증진시키고 무역수지를 점차 개선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하며, 중장기적으로 남부 유럽 국가들의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금융 지원, 재정 지원을 해나가는 데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의 변화, 특히 그리스와 스페인 은행권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인출 사태를 고려할 때, 이 모든 조건들이 이른 시일 안에 그것도 동시에 충족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오히려 시리자를 제2당으로 뽑아준 그리스 시민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리스와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이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필자소개
    신희영
    뉴욕 뉴스쿨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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