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 때 돌아보는 정치영화들(3)
    [영화잡론] 영화같은 현실, 현실 다룬 영화들
    By 문석
        2012년 12월 17일 01: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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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야흐로 한국은 2012대선의 한 복판에 서 있다. 선거와 정치는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현실의 대선 시기에 영화로 선거와 정치를 다루었던 작품들에 대해 문석 <씨네21>편집장이 글을 보내왔다. 현실같은 영화, 영화같은 현실이다. 글이 너무 길다. 그래서 3회에 나누어 게재한다. 선거 때 돌아보는 정치영화들(1)(2)보시려면 여기를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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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서 소개한 영화들보다는 정치적 문제의식이나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는 다소 떨어지나 괜찮은 정치/선거영화를 함께 간략히 소개한다. 진지하고 묵직한 주제를 던지지만 아쉽게도 헛다리를 짚은 <맨 오브 더 이어> 같은 영화에서부터 시작부터 끝까지 재앙이지만 자기파괴적인 유머의 묘한 매력이 존재하는 <헤드 오브 스테이트>까지, 정치의 계절에 보면 심심풀이 이상의 무언가를 안겨줄 수 있는 영화들이다.

    * 데이브❘Dave❘1993❘아이반 라이트먼❘케빈 클라인, 시고니 위버, 프랭크 란젤라

    국정보다 개인사(이를테면 섹스)에 관심이 많은 현직 대통령은 보좌진에게 자신과 닮은 대역을 구하라고 지시한다. 그 결과 발탁된 인물은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데이브 코비치(케빈 클라인)다. 그가 공식석상에서 대통령을 연기하는 동안 진짜 대통령은 비서와 섹스를 즐기다 뇌졸중을 일으켜 코마 상태가 된다. 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 비서실장 밥 알렉산더(프랭크 란젤라)는 대통령의 뇌사를 발표하는 대신 데이브에게 대통령 연기를 계속 시킨다. 이제 데이브의 대통령으로서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데이브>는 얼마 전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바로 그 영화다. 기본적인 설정은 놀랍게도 비슷하다. 대통령과 사이 나쁜 영부인(시고니 위버)과 친밀해진다거나 경호실장(빙 레임스)과 인간적 교류를 갖는다는 대목까지 말이다.

    하지만 중반을 지나면서 <광해: 왕의 된 남자>와는 다른 이야기 줄기를 좇아간다. 물론 우리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고스터 버스터> <트윈스> <주니어> 같은 썩 나쁘지 않은 코미디 영화를 만들어온 아이반 라이트먼 감독의 재능은 여기저기서 잘 발휘된다.

    결국 데이브는 비서실장이 그어놓은 금단의 선을 넘어 자신의 뜻을 국정에 반영한다. 그건 정치가로서의 포부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으로서 살아온 경험과 체험에 바탕을 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평범한 미국인(물론 중산층 화이트 칼라 백인)의 눈으로 워싱턴을 바라보는 프랭크 카프라 식의 낙관주의는 이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다.

    데이브의 아마추어리즘이 현실 정치에서 먹힐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안이라는 식으로 역설한다는 것이다. 순진함이라는 탈을 뒤집어 쓴 이 영화의 무지몽매는 간혹 짜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대통령의 연인'의 한 장면

    * 대통령의 연인❘The American President❘1995❘감독 롭 라이너❘출연 마이클 더글러스, 아네트 베닝

    민주당의 앤드류 쉐퍼드 대통령(마이클 더글러스)은 재선을 위해 이런저런 기반을 다지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가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은 총기 규제와 화석연료 소비 감축이다. 쉐퍼드가 더 관심을 쏟는 쪽은 총기 규제 법안인데, 그는 공화당의 반대를 의식해 ‘범죄 규제’라는 아리까리한 이름으로라도 꼭 의회를 통과하기 원한다.

    이 상황에서 환경단체의 로비스트로 고용된 시드니 웨이드(아네트 베닝)가 백악관에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웨이드의 아름다움에 한 눈에 반한 홀아비 쉐퍼드는 그녀에게 구애 공세를 펼친다.

    <대통령의 연인>은 대통령과 한 여인의 사랑이라는 로맨스 위에 살벌한 워싱턴의 정치 공작이라는 흥미로운 요소를 가미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각본을 쓴 아론 소킨이다. 이 영화로부터 4년 뒤 백악관을 무대로 삼은 드라마 시리즈 <웨스트 윙>을 만든 바로 그 아론 소킨 말이다.

    <대통령의 연인>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을 통해 그가 <웨스트 윙>의 밑그림을 그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아론 소킨은 앞서 언급한 <불워스>의 각본 작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쉐퍼드가 시종 느긋하고 당당한데 비해 백악관 보좌진은 대통령이 친 사고를 뒷수습하느라 분주한데 이 구도는 <웨스트 윙>과 유사하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 비서실장으로 출연하는 마틴 신은 <웨스트 윙>에서 대통령 역할을 맡기도 했다.

    어쨌거나 웨이드와의 관계 때문에 쉐퍼드는 곤란을 겪는다. 대통령의 연애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는 기독교 단체야 큰 골치거리가 아니라 해도 웨이드가 젊은 날 성조기를 불태우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쉐퍼드의 지지율은 뚝뚝 떨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범죄 규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화석연료 소비 감축 법안을 포기하기로 하면서 웨이드가 그의 곁을 떠난다. 마무리가 너무도 뻔하디 뻔해 다소 아쉽지만, <대통령의 연인>은 심각하면서도 로맨틱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지한 구석이 있는 영화다.

    * 딕❘Dick❘1999❘감독 앤드류 플레밍❘출연 커스틴 던스트, 미셸 윌리엄스, 댄 헤다야

    벳시(커스틴 던스트)와 알린(미셸 윌리엄스)은 워싱턴 DC에 사는 15살 소녀다. 머릿 속이 텅빈 벳시에 비해 알린은 조숙한 면이 있지만 둘은 베프로 지낸다. 어느날 알린의 아파트에 함께 있던 두 소녀는 알린이 짝사랑하는 남자아이에게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수상한 남자들이 건물에 침입했음을 알게 된다. 알린의 아파트가 있던 건물은 다름아닌 워터게이트 빌딩이었고 바로 그때 이름도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워터게이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만 두 소녀는 그 사실도 모른 채 백악관 견학에 나선다. 그들은 백악관에서 전날 워터게이트 빌딩에서 만났던 사내를 만난다. 당황한 사내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되는 문서를 흘린다. 게다가 사이코 같은 닉슨 대통령(댄 헤다야)은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소녀를 백악관 개 산책사로 임명한다. 더 황당한 일은 알린이 딕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닉슨을 짝사랑하게 된 것이다.

    <딕>은 황당무계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골때리는 코미디다. 이 영화에서 정치나 선거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지만 간간이 보여주는 정치 코미디의 수위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이상이다. 이 영화의 무정부주의적인 유머감각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세상에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틴조차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린다(밥 우드워드를 연기한 윌 페렐은 정말 웃긴다).

    아무튼 이 영화가 주장하는 바를 진지하게 옮기자면, 15살짜리 두 소녀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두 기자에게 알린 ‘딥 스로트’였고 당시 백악관의 정책은 두 소녀가 실수로 가져다 준 과자(대마초가 듬뿍 들어간) 때문에 바뀌었다는 것이(지만 어차피 유머 아닌가)다.

    <딕>은 정치를 도마에 올려놓고 마구 칼질하면서 크게 한번 웃어보자는 영화지만 그 쾌감은 적지 않다. 지금은 대배우가 된 두 여배우의 10대 시절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즐겁고 반갑다.

    '헤드 오브 스테이트'의 한 장면

    * 헤드 오브 스테이트❘Head of State❘2003❘감독 크리스 록❘출연 크리스 록, 버니 맥

    워싱턴 DC의 시의원 메이스 길리엄(크리스 록)은 지역민들과 항상 소통하는 소박한 풀뿌리 정치인이다. 융통성은 없는 편이라 애인에게도 차이고 의회에서도 쫓겨나는 신세가 되지만 , 그는 위험에 처한 할머니를 구조하면서 언론에 알려진다. 그 와중 그가 속한 당의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당 지도부는 어차피 자기 당 후보가 8년동안 부통령을 지낸 상대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면서 당면한 선거를 아예 포기하려고 한다. 차기 또는 차차기를 노리자는 것. 대신 첫 흑인 대통령 후보를 만들면 흑인들의 환심은 사놓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그들의 눈에 신문에 난 길리엄이 들어오면서 길리엄은 마침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헤드 오브 스테이트>의 구도는 닳고 닳은 것이다. 순진한 주인공이 노련한 정치가들에 의해 발탁된다는 이야기는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 시절부터 수없이 반복됐다. 이 영화는 그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를 참신하지 않은 방식으로 끌고 나간다. 당연하게도 길리엄은 당 지도부에 끌려가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게 되고, 지도부가 이를 견제하자 대중과 함께 이를 막아낸다는 이야기, 안 봐도 비디오다.

    이 영화가 발표되던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스탠드업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개인기가 볼거리라면 볼거리지만 뭔가 김빠진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게다가 불과 5년 뒤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됐으니 지금 와서 보면 ‘미국 최초 흑인 후보’ 어쩌고 하는 드립도 시시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매력이 있다면 그건 흑인문화 친화적인 이야기 전개라 하겠다. 이 영화는 흑인 하위문화적 요소를 무더기로 끌어온다. 힙합 같은 흑인음악, 마약에 대한 옹호, 총기에 대한 애매한 입장, 여성을 비하하는 뉘앙스, 불량기의 발산 등등.

    후보 토론회에서 길리엄이 펼치는 연설의 한 대목은 그런 전략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가난한 적이 없었다면 어떻게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늘상 빨고 다니지 않았다면 어떻게 마약정책을 세우겠습니까? 제가 진정한 미국인입니다. 나는 약에 취해도 봤고 강도도 당해봤습니다. 파산도 해봤습니다. 내 신용도는 끔찍합니다. 오죽하면 내가 주는 돈도 받지 않을 정도라고요. 미국이 여자라면 가슴 큰 여자입니다. 모두들 가슴 큰 여자를 사랑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길리엄이 미국 대통령이 되냐고? 너무 신경쓰진 마시라. 어떻게 결말지어지든 이 후진 영화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진 않을 테니까.

    * 웰컴 프레지던트❘Welcome to Moosetown❘2004❘감독 도널드 페트리❘출연 진 해크먼, 레이 로마노, 모라 티어니, 마사 게이 헤이든

    역대 최고의 지지율을 기록하던 대통령 먼로 콜(진 해크먼)은 퇴임 후 별장이 있는 시골마을 무스포트로 이주한다. 미국 대통령 사상 최초로 임기중 이혼한 그는 아내의 위자료 청구에 시달리다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마침 무스포트 시장은 사망한 터라 마을 유지들은 콜에게 시장직을 맡아달라 간청한다. 콜 또한 법령을 고치면 아내로부터 별장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이를 수락한다. 한데 문제가 하나 생기니, 그건 철물점 사장이자 배관공인 선량한 시민 해롤드 해리슨(레이 로마노)이 시장에 출마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의 만류에 시장 출마를 포기하려 하지만, 대통령이 여자친구 샐리(모라 티어니)에게 집적대자 홧김에 출마 결심을 굳힌다. 전직 대통령과 배관공의 대결이라니 과연 상대가 될까?

    이 코미디는 정치영화라기 보다는 잔잔한 소동극에 가깝다. 하지만 이 작은 선거를 치르기 위해 워싱턴에서 정치 컨설턴트까지 영입하고 세계를 상대로 정치활동을 펼쳤던 보좌진이 진땀 빼는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또 전직 대통령이 시장 선거에 나선다는 소식은 전국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생중계되니 상황은 갈수록 꼬인다(이를테면 콜이 샐리에게 키스하려다 거절당하자 신문들은 일제히 “전직 대통령, 수의사에게 차이다” 따위의 제목으로 대서특필한다). 게다가 콜의 전 부인이 무스포트로 내려와 해리슨을 지지하기까지 하니 선거는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웰컴 프레지던트>의 괜찮은 유머는 대부분 중앙 정치와 풀뿌리 정치가 대비되는 순간 발생한다. 콜은 워싱턴에서 써먹던 화법으로 선거운동을 펼치지만 해리슨은 생활밀착형으로 선거운동을 한다. 이를테면 어떤 집 앞에 정차 표지판을 세우는 일이 안되고 있는데 대책이 뭐냐는 주민의 질문에 대한 콜의 답은 “우선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서 문제점을 연구하고 교통 전문 변호사로부터 자문을 받고…” 같은 식이다. 하지만 해리슨은 해당 집 주인에게 뭐가 문제냐고 바로 묻는다. 그 주인이 표지판을 세우면 자동차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하자 그는 “빛을 차단하는 커튼을 다는 건 어떨까요?”라고 답한다.

    훈훈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 시시하지만, <웰컴 프레지던트>는 대통령이라는 거대한 덩치가 좁은 시골마을에서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쾌한 영화다.

    * 맨 오브 더 이어❘Man of The Year❘2006❘감독 배리 레빈슨❘출연 로빈 윌리엄스, 크리스토퍼 워큰, 로라 리니

    톰 돕스(로빈 윌리엄스)는 현실에서의 존 스튜어트만큼이나 잘 나가는 정치 코미디언이다. 그의 신랄한 정치 유머에 사람들은 통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차기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할 것을 선언한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던 적지 않은 수의 미국 유권자들은 그를 지지한다. 이를테면 그는 남을 웃기는 안철수인 셈이다.

    동시에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는데, 새로운 전자투표 시스템이 이 대선부터 채택된 것이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결정적인 오류를 갖고있다는 점이다. 그 오류란 득표수와 무관하게 당선자가 집계된다는 것. 개발자인 엘레노어 그린(로라 리니)은 이 치명적 오류를 지적하지만 사장은 도리어 그녀를 해고한다.

    이 두가지 사건을 겹쳐놓았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눈치가 아주 빠르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 오류로 돕스가 선거에서 엉뚱하게 이기거나 억울하게 질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영화의 선택은 전자다. 돕스의 신선한 바람은 유권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지만 공화당-민주당 양당 구도를 흔들 정도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선거 시스템은 그가 당선된 것으로 결론 내린다.

    <맨 오브 더 이어>는 양당 구도에 질린 미국인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동시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이용하는 영화다. 이와 함께 진실을 폭로하려는 그린과 그녀를 살해하려는 회사의 추격이라는 스릴러 또한 담고 있다. 하지만 한 그릇에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 했다. 정치와 추격전은 매끄럽게 섞이지 못하고 풍자와 정치적 어젠다는 조화롭지 않다. 물론 이 영화가 담으려 했던 정치적 지형의 변화라는 메시지만큼은 확실하게 신선하다. 영화가 끝날 무렵 톰 돕스가 연설하는 다음의 대사처럼 말이다. “정치인들은 기저귀 같은 존재입니다. 자주 바꿔줘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다음 투표할 때는 그것을 기억하십시오.”

    '캠페인'의 한 장면

    * 캠페인❘The Campaign❘2012❘감독 제이 로치❘출연 윌 페렐, 잭 갈리피아나키스, 딜런 맥더모트

    올해 대선을 앞두고 미국에서 개봉해 큰 흥행을 기록했던 배꼽 빠지는 정치 코미디. 한국에서는 불행히도 극장 개봉 없이 바로 DVD로 출시됐다. <캠페인>은 1998년 미국 대선에 출마했던 백만장자 무소속 후보 로스 페로의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전쟁에는 규칙이 있다. 진흙탕 레슬링에도 규칙은 있다… 하지만 정치에는 규칙이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5선 국회의원 캠 브래디(윌 페렐)와 그의 동창이자 정적으로 떠오르는 마티 허긴스(잭 갈리피아나키스)다. 브래디가 식상한 정치활동을 펼치며 6선을 노리자 이 지역의 억만장자이자 진정한 지배자인 모츠 형제는 말을 갈아타기로 한다. 형제가 택한 새로운 말은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지만 약간 모자란 인물 허긴스다.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누려왔던 허긴스는 브래디의 계략에 말려 고전하지만, 모츠 형제가 파견한 선거 전문가 팀 웨이틀리(딜런 맥더모트)의 트레이닝 덕분에 점차 지지율을 올려간다.

    문제는 허긴스 또한 브래디나 다른 정치인처럼 중상과 모략, 음모를 통해 정치에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허긴스 또한 점점 인간 쓰레기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캠페인>은 막가파식 코미디영화다. 섹스와 배설에 관한 유머가 수시로 튀어나오고 수준낮은 몸개그가 온 영화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쾌하거나 저질스럽다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미국의 정치는 과장되고 희화화됐을 지언정 현실과 동떨어진 게 니다. 영화의 초반 캠 브래디는 보좌관에게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다음의 세 단어, 그러니까 “Amrica, Jesus, Freedom”만 말하면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말한다. 브래디가 허긴스의 콧수염을 지적하면서 오사마 빈 라덴이나 후세인 모두 수염이 있다면서 색깔론을 펼치는 것이나 허긴스가 7살 때 브래디가 꿈꿨던 세상이 평등주의가 판치는 곳이라면서 공산주의자로 몰고 가는 것은 미국 정치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TV를 통한 근거없는 인신공격, 사생활에 대한 집요한 추적,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기 등 둘의 선거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데 실제 선거는 어쩌면 이보다 더 추악할지 모른다. 지금 우리도 똑똑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차마 입으로 옮기는 것이 낯뜨겁게 느껴질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결말로 마무리 되지만, 끝나기 직전까지 <캠페인>은 유쾌한 저질 유머로 무장한 흔치 않은 정치/선거영화다.

    필자소개
    중앙일보 기자로 있다고 영화가 좋아서 씨네21로 이직하여 현재 씨네21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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