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말을 찾아내기 위한
어느 ‘실천적 래디컬’의 시간
[책소개] 『내면 산책자의 시간』(김명인/ 돌베개)
    2012년 12월 16일 12: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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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민중혁명과 민중혁명의 문학을 희망했던 ‘실천적 래디컬’ 김명인. 그가 런던에서 홀로 보낸 2011년 가을과 겨울, 과거의 실패로 인한 죄의식과 부채감의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언어를 찾아내기까지의 여정을 기록했다.

그 6개월은 고통과 노스탤지어가 교묘하게 섞인 7,80년대의 시간과 작별을 준비하는 시간, 90년대 이후를 환멸하는 것을 그만두고 더 넓은 흐름 속에서 사유하기 시작한 시간이 되었다. 아내에게 편지 대신 보낸 블로그 일기를 바탕으로 한 책으로, 조언이나 훈계 대신 ‘저는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진솔하게 자신을 열어 보이는 이야기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남영동 이후, 31년.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입니다. 정권 심판을 외치며 특정 정치인에 대한 찬반 목소리를 높이기도 바쁜, 이 중대한 시절에, 개인으로 침잠하는 것도 모자라 관념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제목, ‘내면 산책자의 시간’이라니요. 대놓고 정세를 거스르는 책이냐며 의아해하실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책은 그러한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여느 책보다 정치적입니다. 한순간의 이벤트처럼 되어 버린 투표 행위로는 채워지지 않는 진짜 정치, 그러니까 투표 이전과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우리의 일상, 그리고 역사라는 말로 쉬이 화석화되는 시간이 아니라 한 개인이 구체적으로 경험한 그 생생한 시간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우리가 바라보고 해결하는 방식, 살아온 날들을 기억하는 방식, 이 모든 것을 둘러싼 시선과 태도와 실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이 바로 김명인이기 때문입니다.

저자 김명인. 그는 7,80년대에 군부독재에 저항하다가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한 학생운동가였고, ‘광주’를 공론화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등을 펴낸 출판사의 편집장이었으며, 80년대 후반에는 힘 있는 문체로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 문학평론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한편, 진보 계간지 <황해문화>의 편집주간으로 일하며 정치와 미학(문학)을 함께 고민하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2007년 평론집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이후 5년 만에 책을 냈습니다. 바로 이 책, <내면 산책자의 시간―김명인의 런던 일기>입니다. 문학평론도 정치평론도 아닌 일기입니다. 그것도 영국 런던에서 방문교수로 머무르며 6개월 동안 기록한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습니다. 인문학적인 시선이 담긴 런던 산책·여행 이야기를 예상하셨다면 조금 당혹스러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일기는 정말로 ‘내면 산책자’의 기록, “마음길을 따라 걸었던 기행문”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나는 몇 겹의 시간의 장막을 뚫고 31년 전 바로 이맘때의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15호로 잠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치욕의 시간, 그 치욕의 장소. 나는 거기서 죽음의 공포를 겪었고 예수를 세 번 부정한 베드로처럼 내 양심을, 내 의지를 부정해야 했다.
근태 형은 하지만 더 이상 그 공포와 치욕을 모면할 수단을 갖지 못했다. 나는 근태 형을 비롯해 이미 저들이 잘 알고 있는 명망 있는 선배 운동가들을 팔 수 있었지만, 그에겐 더 이상 팔 누군가가 없었다. 그는 내가 살아났던 그 515호실에서 그 치욕과 공포를 고스란히 견뎌야 했고, 그것은 모든 것을 그의 목숨과 맞바꾸는 일이었다. 그의 죽음은 그때 시작되었고 2011년 12월 30일에 끝난 것이다.
나는 그의 영전에 가서 수백 번도 더 뉘우쳐야 했다. […] 근태 형이 ‘2012년을 점령하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의 2012년은 내일 런던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내일부터 런던 한 모퉁이 서비튼의 집을 부수기 시작할 것이다. 서울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이다. 돌아가 나도 점령군의 하나가 될 것이다. 물론 점령할 것은 2012년만이 아니다. 그 30년, 그 60년, 아니 우리에겐 영원했던 그 시간을 모두 되찾아 와야 한다. 이처럼 원통한 생애와, 그 생애들의 연쇄로 이루어진 그 기나긴 시간들을.” _ 되찾아 와야 할 시간들

7,80년대, 지울 수 없는 기억들

<내면 산책자의 시간>은 젊은 날의 열망과 각오,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이의 ‘실존적 투쟁’의 기록입니다. 이 책은 지금의 그를 형성한 7,80년대의 기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힘겨운 싸움을 담아냅니다.

그는 젊은 시절 경험한 생의 충격으로 이런 방식으로밖에 살 수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경찰에게 개처럼 끌려가던 선배들”, “공장과 거리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던 동년배들”의 모습을 보며 “저 사람들을 두고 내가 행복하게 살 수는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가열차게 채찍질을 해 왔습니다.

“안락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에 대한 유혹,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제를 회피하거나 적당히 넘어가고 싶은 유혹, 혹은 온건하고 균형 잡힌 사람 소리 들으면서 살고 싶은 유혹, 나의 지식과 인맥 등에 적당히 기대서 명성이나 쌓고 미시권력이나 누리며 살다 가고 싶은 유혹”에 늘 시달리지만, 그를 지탱한 것은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향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의 경험 때문에 그는 ‘개인적 자유주의자’나 ‘탐미적 댄디’로 살 수는 없었지만, “이 욕된 세상에서 썩지 않고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는 데 감사합니다.

물론 “30년 동안 누가 굳이 지라고 하지도 않은 괴로운 짐을 지고 허덕이며” 살아오느라 그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세상에 진 빚을 갚겠다는 마음과 그러지 못하는 자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큰 병을 얻어 몸도 망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책에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뜨거운 화염 속 같았던 7,80년대에 20대를 보내고, 막막한 물속 같았던 90년대와 2천 년대에 3,40대를 보냈던, 그리고 이젠 50줄이 넘어 생을 지탱해 온 팽팽하던 닻줄이 어느새 삭아 헐거워진 한 자칭 지식인의 벌거벗은 내면”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초췌한 지식인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7,80년대의 망령에 붙들려 현재를 살지 못하고 과거의 시간에 갇혀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그는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전쟁이나 성폭력 등 치명적인 사건을 겪고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생존자들처럼, 어떤 이들에게 7,80년대는 헤어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삶을 뿌리째 뽑아 버린 충격적인 경험이 아니었을까요. 영화 <26년>의 ‘광주’ 생존자들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불의를 외면하는) 뻔뻔함과 (연대를 모르는) 자유와 (역사성을 상실한) 새로움이 미덕이 되어 버린 시대에, 우리는 ‘김명인’이라는 사람 내부에서 여전히 지속되는 7,80년대를 통해 “지울 수 없는 어떤 것들”과 대면하게 됩니다. 그 끈질긴 기억이 우리가 사로잡혀 있는 현재를 두드릴 때, 지금으로부터 빠져 나올 기회를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면 산책자의 시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혹은 잊고 있던 역사의 유령과 마주하는 시간을 열어 보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구태의연하다고 치부하는 감정들, 하지만 연대와 정치의 토대가 되는 근본 감정인 (타인과 세상을 향한)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끊임없이 자극할 것입니다.

“내가 만약 대학에 입학하고서 어쩌다가 학생운동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비록 약간의 양심의 부담은 지고 살더라고 기본적으로 개인적 자유주의자의 삶을 살았다면, 아마도 참 탐미적으로 살았을 것이다.
[…] 지금도 카메라와 클래식과 낡은 LP에 몰입하는 나 자신을 보면 지금도 그리 멀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긴 속물과 댄디가 종이 한 장 차이이듯, 댄디와 관조적 래디컬의 차이도 종이 한 장 차이고, 관조적 래디컬과 이른바 실천적 인텔리의 차이도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이다.
실천적 인텔리가 실천의 동력과 방법을 잃으면 관조적 래디컬이 되고, 관조적 래디컬이 래디컬한 관점을 잃으면 그저 세상이 마음에 안 드는 나르시시스트에 불과한 댄디가 되고, 댄디가 타락한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거리감을 잃으면 속물이 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넘는 것은 의외로 한순간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종이 한 장 차이가 생의 방향을 바꾸는 태풍의 경로가 될 수도 있고 영원히 건너지 못하는 심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게 알고 보면 그렇게 다 그 종이 한 장 차이의 틈을 넘지 못해 안간힘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거기에 삶 전체가 걸려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 차이는 생각보다 엄중하다.” _ 종이 한 장 차이의 삶

인터넷-일기-편지, 멘토링 이후의 민주적인 말 걸기

<내면 산책자의 시간>은 그가 런던에 머무르는 6개월 동안 꾸준히 인터넷에 쓴 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일기는 런던으로 떠나기 전 아내에게 한 말, “블로그에 일기를 가급적 매일 써서 어떻게 지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편지 대신 쓴 러브레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블로그 글쓰기, 일기, 편지를 한데 뒤섞은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 주고 있는 셈입니다. 블로그에 쓴 글이라는 출신성분(?) 탓인지 특정한 형식 혹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OTL’, ‘덕후’, ‘대박’ 같은 인터넷 언어를 거침없이 쏟아내며, 텍스트를 보완하는 사진 이미지도 풍부합니다. 일기이기 때문에 자신을 숨기지 않고 생활과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들려주고 있고요. 수신인(독자)의 존재가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편지의 특성상, 직접 말을 걸듯 조곤조곤 다정한 말투로 김명인이라는 개인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은 우리가 쉬이 떠올리는 중년 남성 지식인의 글쓰기와는 좀 다릅니다. 확신에 차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전문가적 글쓰기, 시대를 근심하는 비장한 감성의 글쓰기, 혹은 젊은 독자들에게 조언이나 훈계를 하는 ‘멘토’의 글쓰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글들은 무언가 깨달음을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신을 미화하거나 아예 지워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거나 이렇게 사는 게 좋다는 말 대신, ‘저는 이렇게 살아왔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조용히, 먼저 자기 이야기를 건넵니다. 나이(50대)나 직업(교수) 같은 사회적 위치가 만드는 기대치를 거부하고, 독자와 대등하게, 개인 대 개인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절대 아닌데 이제 어딜 가든 꼰대 나이다. 오늘로 이제 52년 9개월 26일을 살았을 뿐인데 어딜 가든 사회적 현역들이 모인 곳에서는 거의 언제나 최연장자의 자리에 서게 된다. 때론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도 꼰대 역할을 요구받을 때도 없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내가 빨리 자리를 비켜 주기를 바라는 분위기를 감지할 때이다.
[…] 하지만 이미 퇴역이거나 퇴역을 준비하는 선배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아직 이 중늙은이 역할, 상시 연장자 역할이 어색하고 힘들다. 아니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모르겠다. 목소리를 깔고 점잔을 떨고 공자님 말씀이나 하고 적당히 일찍 자리를 뜨고 하는, 바로 나이에 맞는 그 역할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설사 그렇게 보이더라도 중늙이로서가 아니라, 그저 조금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인 사람으로서 그런 것처럼 보이고 싶을 뿐이다. 이게 과욕인가?” _ 중늙은이 역할의 괴로움

<내면 산책자의 시간>에는 그가 홀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는 산책길에서 발견한 희망의 파편들이 담겨 있습니다(아울러, 희망의 말들을 구체화하는 그의 다음 작업을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가 절실히 적어 내린 일기-편지와 마주칠 때, 우리도 그가 보낸 두 계절, 아니 30년 그 이상의 시간을 함께 지나며, 우리 삶의 뒤엉킨 가닥들을 매만지는 시간을 맞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내면, 아니 시간들을 함께 걸어갈 든든한 벗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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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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