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백년 전 중국 장강이 들려주는
    ‘경이롭고 위험한’이야기
    [책소개] 『자연의 저주』(정철웅/ 책세상)
        2012년 12월 16일 12: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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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삶, 문명과 생태 · 환경 문제에 대한‘역사적’통찰

    ‘환경문제는 근대 산업화 이후 발생했으며 자본주의적 생산 시스템과 기술 문명이 그것을 악화했다. 자연 파괴적인 서양의 자연관과 달리 중국의 자연관은 자연 친화적이며 환경에 우호적이다.’

    이것이 동서양의 자연관과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일 것이다. 그러나 몇백 년 전이라고 해서, 동양이라고 해서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이 없었을까? 원시 시대로의 회귀나 동양의 자연관 회복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는 없으며, 현대 문명을 환경 악화의 주범이라고 보는 것은 순진하거나 단편적인 시각이다. “각 시대마다 고유한 환경문제가 있었다.”

    이 책은 장강長江 중류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명·청 시대의 환경사를 다룬 저작으로, 환경문제가 한 사회의 의식 및 제도가 환경과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하지 못할 때마다 발생했던 역사적 현상임을 드러낸다.

    호북·호남·강서성 그리고 경우에 따라 섬서성과 사천성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장강 중류 지역은 명·청 시대 격심한 인구 증가로 개발이 진행된 후 자연환경이 변화하고 환경 폐해가 속출한 곳으로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저자는 수천 년간 고요했던 이곳의 숲과 강이 개발을 통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지역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으며 이로 인해 인간과 동물의 삶 그리고 양자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는지 등을 살펴본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의 개발에 자연도 결코 침묵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자연의 공격에 맞서 인간은 사회를 조직하고 거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여하는 등 끊임없이 대응해야 했다. ‘인간이 초래한 자연의 저주’라고 압축할 수 있는 이러한 과정은 현대의 생태 및 환경 문제, 삶의 방식 등과 관련해 유의미한 역사적 통찰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드물게 환경문제와 역사학의 만남을 시도해온 정철웅 교수(명지대)의 그동안의 환경사 연구 성과를 결집한 이 책은 “인류가 역사와 문명을 형성해가면서 부지불식간에 초래한 환경문제를 차분히” 살펴봄으로써 환경문제에 대한 그 어떤 정치적 구호보다도 적극적인 메시지를 타진하고 있다.

    자연의 실체 및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성찰하게 하는 이 책에 담긴 “자연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곧 인간의 이야기이며, 자연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환경사는 엄연한 역사학의 한 분야”임을 확인할 수 있다.

    거대한 산과 하천의 공존, 근대적 환경문제의 등장

    인구 증가와 자연 개발의 확대로 대표되는 환경 변화 요인은 역사시대 어디에나 등장하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중국 명·청 시대 장강 중류 지역의 환경 변화는 역대 중국의 어느 시기·지역보다 훨씬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지역에는 산과 하천이 모두 있어서 산악 지역과 하천 지역의 문제가 서로 순환되는 양상을 보이며, 격심한 인구 이동이 발생한 탓에 산악 지역의 환경이 크게 악화되면서 광범위한 남벌과 개간, 수리시설 확대, 상업작물 재배, 첨예한 사회적 경쟁 등이 발생했다. 거대한 산과 중국 제일의 하천이 함께 존재하는 자연 조건에 격심한 인구 이동이 중첩된 양상이 명·청 시대 장강 중류 지역 환경 변화의 중요한 외적 원인인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환경 폐해와 ‘근대적 성격의 환경 악화’ 양상이 나타났다. 즉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환경문제와 마찬가지로 환경과 보존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 하천 오염으로 발생하는 질병, 자연 자원의 극단적인 개발과 이용, 광산 개발에 따른 폐수 유출과 분진, 동식물의 감소와 동물들의 인간 영역 침범, 산림 남벌, 토양 침식, 기후 변화, 어장과 어자원 감소, 식수 부족, 자연 변화에 따른 풍속 변화, 식물의 상품화 등 거의 모든 환경문제가 명·청 시대 장강 중류 지역에서 발생했다.

    또 환경 악화에 따른 공포심과 인간 능력에 대한 무력감을 확인할 수 있으며, 환경 악화나 변화의 일단이 국가권력과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자연 자원이 파괴되고 경관이 크게 변한 것은 물론이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전환기를 맞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 때가 바로 명·청 시대였다. 이 시기에 자연환경의 파괴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졌으며, 환경 악화로 자연계 자체가 재편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인간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삶의 조건과 양상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이는 단지 경제적·물질적인 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명·청 시대 사람들은 환경 악화에 대응하는 가운데 사회를 좀 더 탄탄하고 긴밀하게 조직해나갔으며, 따라서 이전의 평화롭고 한적했던 생활상이 서서히 사라졌다. 동물의 반격이나 농업 발달에 따라 자연에 예속되는 정도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사실도 인간의 삶을 어렵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었다.

    당시에도 환경 파괴에 따른 환경보호 운동이 존재했다. 그러나 환경 악화를 차단하고 천연자원 보호를 실현할 수 있는 이념, 기구, 제도, 인식 등은 사실상 전무했다. 민간신앙이 적극적인 의미의 환경보호를 실천했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것의 효력은 정서적인 영역에 머물렀으며, 그 범위도 넓지 않아 총체적인 자연보호 운동으로 확산되지 못했다.

    결국, 자연을 대상으로 한 신비주의가 사실상 사라지고, 합리성과 경제적 이익이 그것을 대체했다. 특히 한구의 난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등장한 풍수론은 민간신앙이 실용적인 도구로 전락한 예를 보여준다. 과거 시대 환경 악화 및 보호의 문제가 현재와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철저하게 사료에 근거하여 환경문제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노력을 통해 현실 문제를 과거에 투영하는 역사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중국 지방지와 개인 문집 등의 방대한 사료는 물론 프랑스에서 중국사를 전공한 저자의 이력을 반영하듯 구미어로 된 다양한 연구서와 논문 자료들의 인용, 해석은 우직하게 환경사 연구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학문적 열정과 연구의 치밀함을 확인하게 한다.

    자연은 정말 인간을 저주했을까?
    ― 우리가 자연의 근본적인 실체를 성찰해야 하는 이유

    명·청 시대 중국인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이었다. 자연은 단지 관상과 유람의 장소가 아니라 실질적인 이용 공간이자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되었다. 험난한 산은 깎아 다니기 편한 도로를 개설하고, 하천 중간에 솟은 나무는 베어냈다. 심지어 중요한 민간신앙의 대상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자연은 제거의 대상이었다.

    그런 방해물의 제거가 곧 정의를 실천하는 길이었으며, 권력자의 통치 업적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 시기에 자연에 대한 현실과 이상의 대립은 약화되거나 소멸되었다. 자연은 인간에 의해 바뀔 수 있는 대상이었으며, 나무, 산, 숲, 강, 소수민족 등이 함께 존재한 장강 중류 지역은 명·청 시대 중국인이 인위적 자연관을 실제로 행사한 무대였다.

    그렇다면 명·청 시대 장강 중류 지역의 자연은 정말로 인간을 저주했을까? 명·청 시대의 장강 중류 지역은 인간의 다양한 행위의 결과 거의 모든 종류의 환경 폐해가 속출한 곳이었다. 저자는 그런 인간의 행위에 대해 장강 중류 지역의 자연도 결코 침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위에 침묵하지 않았던 자연의 반응을 저주라고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사실상 인위적이다. 하지만 그 인위적 행위의 많고 적음이 바로 인간에 대한 자연의 태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 언급은 자연을 수동적 존재로 파악한다는 오해를 가져올 수 있지만, 인간이야말로 자연의 변화와 공격에 일일이 대응해야만 했던 수동적 존재였다.
    사회를 조직하고, 거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여했으며, 개발 이전보다 훨씬 더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환경 악화로 부지불식간에 자연이 인간을 지배했던 셈이다. 바로 이 점이 여기서 언급한 자연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이야기로 환원될 수 있는 이유다. 또 자연을 주제로 한 환경사가 역사학의 한 분야로 엄연히 자리 잡을 수 있으며, 우리 인간이 자연의 근본적인 실체를 여전히 심사숙고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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