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대통령 박근혜는 없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30여년전의 소녀가장에서 머물러 있어
        2012년 12월 13일 03: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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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주일 전에 홍기돈 선생이 보내온 글인데 사정이 있어 뒤늦게 게재한다. 양해를 구한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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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후보를 여성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미에서 “생식기만 여성”이라는 비난이 있었고, 여기에 대하여 새누리당에서는 당연히 격렬하게 대응하였다. 여성주의 입장에서도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섹스]이나 사회적으로 남성[젠더]인 경우에 대한 비하가 내재해 있다는 맥락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격한 논란 속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모친인 육영수 前영부인의 이미지를 끌어안으면서 ‘여성 대통령론’을 강조하는 양상이며, 김지하 시인이 여기에 동조하며 지지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아마도 최근 남성 출연자 문제가 논란되었던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치 않게 제작발표회 시기를 잡았을 것이다.

    새누리당의 이러한 선거 전략은 적절하게 들어맞고 있는 듯 보인다. 프레임이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인식에 맞춰졌던 이전 상황과 비교해 보면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9월 박근혜 후보는 인민혁명당(인혁당) 발언 이후 지지율이 하락하였으며, 10월 정수장학회 입장 표명 이후에도 지지율이 하락한 바 있다. 기실 박근혜 후보가 9월 24일 기자회견을 열어 5ㆍ16, 유신, 인혁당 등에 대하여 사과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그만큼 과거사 문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떠밀리는 모양새가 됨으로써 박근혜 후보는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그러니까 과거사 문제에서 성 정체성 문제로 프레임을 이동시켰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새누리당은 어느 정도 성과를 얻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에 관한 한 과거사 문제와 성 정체성 문제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박근혜 후보는 육영수 前영부인이 1974년 광복절 행사장에서 암살당하고 난 뒤부터 박정희 前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쓰러질 때까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한 바 있다.

    출생연도가 1952년이니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박근혜 후보의 나이는 22세였고, 구국여성봉사단 총재와 새마음봉사단 총재로 취임했던 1978년에는 26세였다.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봉사단은 유신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국민정신개조운동을 펼쳐나갔던 단체라고 한다. 그렇다면 유신 시절 박근혜 후보는 육영수 前영부인이 자처했다고 알려진 ‘청와대 내 야당’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 아니라, 부친인 박정희 前대통령이 펼쳐나갔던 폭압적인 독재정치의 한 축을 이루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이는 과거사 문제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새마음봉사단의 발족과 운영 과정을 살펴보면 다른 해석도 가능해질 듯하다. 지난 6월 21일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에 윤태곤 기자의 ‘박근혜, 퍼스트레이디 시절 무슨 일이?’라는 기사가 올랐다.

    이 기사에 따르면, 새마음갖기운동은 박근혜 후보가 1977년 1월 3일 MBC 신년특집 프로그램 ‘대통령 영애 박근혜 양과 함께’에 출현하면서 처음 제안하였고, 1월 19일 새마음갖기국민운동본부가 발족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바로 다음 구절이다. “같은 해(1979년-인용자) 5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명예총재에 추대되면서 새마음운동은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자신이 명예총재로 추대된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이 ‘요란하게 기세를 올리는 것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실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청와대 내부에서도 우려가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상황에서 박근혜 후보가 얼마나 자발적이고 적극적이었는가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문학비평에 가끔 ‘원형분석’ 방법론을 적용하는 나는 이 대목에서 조셉 헨더슨의 <미녀와 야수> 분석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이야기의 내용에서 중요한 사실을 몇 가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야기에서 ‘미녀’는 셋째 딸이며, 어머니의 존재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헌신적이고 착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딸들에게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미녀는 순결한 사랑을 상징하는 흰 장미를 원한다. 미녀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려던 아버지는 이로 인하여 큰 곤경에 빠지게 된다. 야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후의 전개야 널리 알려져 있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인다면, 미녀가 야수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눈물 흘리자 야수는 마법이 풀려 잘 생긴 왕자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자, 이제 조셉 헨더슨의 분석을 보자.

    여기에서 미녀(소녀가 되었든 부인이 되었든 마찬가지이다)는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적(靈的)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이 관계는 더욱 더 깊어지게 되어 있다. 미녀는 착해서 아버지에게 흰 장미 한 송이만을 소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하다기보다는 대단히 잔혹하다. 미녀의 무의식적 의도가, 미녀가 워낙 착하기 때문에 은폐되어 있어서 그렇지, 사실 이 미녀는 잔혹함과 친절함이 뒤섞인 어떤 원리(잔혹함과 친절함은 바로 야수의 속성이기도 하다)에 처음에는 아버지를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바치고 있다. 미녀는 지나치게 정숙하고 비현실적이다. 미녀가 이렇게 정숙하고 비현실적인 것은 그렇게 정숙하고 비현실적인 사랑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녀는 이러한 사랑으로부터 구원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수를 사랑하게 되면서 미녀는 동물적인(그래서 불완전한), 그러나 순수하게 에로스적인 모습 속에 은폐되어 있는 인간적인 사랑에 눈뜬다. 이것은 바로 관계성의 기능(function of relation)에 대한 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자각을 통하여 미녀는 그때까지 근친상간적(近親相姦的) 공포 때문에 억압되어 있던 근원적인 성적 욕망의 에로스적인 요소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미녀는 아버지에게서 떨어지기 위해 근친상간의 공포를 받아들여야 한다. 미녀가 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공포 때문에 환상 속에서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녀는 동물적인 인간을 알고, 한 여성으로서 그 동물적 인간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반응을 발견하게 된다. 이로써 미녀는 억압의 권능으로부터 미녀 자신과, 미녀의 내부에 존재하는 남성상을 해방시키게 되고, 사랑이라는 것은 영혼과 자연을 결합시키는 어떤 관계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조셉 헨더슨, 이윤기 옮김, ‘고대신화와 현대인’, [인간과 상징], 열린책들, 1996, 138~9면.

    박근혜 후보의 사례를 여기에 대입해 볼 수 있다. 육영수 前영부인의 피살로 인해 ‘미녀’ 박근혜는 어머니의 자리,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어있는 아버지의 옆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퍼스트레이디로의 역할 수행이 이를 보여준다. 박근혜 후보가 당시 퍼스트레이디로 나아갔다는 사실이 단지 어떤 자리를 대신 채웠다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조셉 헨더슨의 목소리로 이야기하자면, “미녀가 워낙 착하기 때문에 은폐되어 있어서 그렇지 사실 이 미녀는 잔혹함과 친절함이 뒤섞인 어떤 원리에 처음에는 아버지를 그 다음에는 자신을 바치고” 있는 듯하다.

    자, 보라. 이미 ‘아버지의 옆자리=흰 장미’를 차지한 “지나치게 정숙하고 비현실적인” 이 미녀는 아버지의 의중을 미리 읽고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당시 청와대 내부에서도 박근혜의 새마음운동 행보에 우려를 표했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때 주목해야 하는 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그 관계를 적절하게 끊어내지 않는다면 곤란할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미녀의 착한 마음씨가 아버지를 곤경에 빠뜨렸던 것처럼, 퍼스트레이디 박근혜의 심리구조는 그의 부친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물론 이는 결과적으로만 그러하다. 퍼스트레이디 박근혜와 박정희 前대통령이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방식까지가 여성성 문제와 연결되는 반면, 박정희 前대통령의 피살이란 이와는 별개로 역사의 흐름 층위에서 이야기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두 층위의 문제가 하나의 방향에서 수렴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착한 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독재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데로 이어짐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유신정권이 파국을 맞는 데 일조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박근혜 후보에 관한 한 과거사 문제와 성 정체성 문제를 분리하여 파악하기가 곤란하다는 판단은 그래서 가능해진다.

    자신이 착한 딸이었다고 박근혜 후보는 이야기한다. 자, 여기서 시작해 보자. 선거 국면에서 잠잠해졌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박근혜 후보의 가장 큰 문제는 불통(不通)이라는 비판이 내내 이어져왔다. 당연하다. 박근혜 후보의 내면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매개로 하여 겨우 존재 근거를 획득하게 된다. 짙은 선글라스로 자신의 표정을 가렸던 박정희 前대통령처럼 박근혜 후보가 의사소통의 지점에서 한 걸음 물러서 있는 것은 이로써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 후보에게 ‘수첩공주’라는 비난이 가해지기도 한다. 이 또한 당연하다. 그녀에게 드리운 박정희 前대통령의 그림자란 한낱 망상의 수준일 터, 이를 생동하는 현실 맥락 속에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의식적ㆍ무의식적인 준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수첩은 그러한 준비의 상징물이다.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부르는 실수를 거듭한 까닭은 무엇인가. 회피하고 싶은 무의식적 충동의 발로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후보는 이러한 지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버지인 박정희 前대통령의 부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고, 이는 다시 자신의 존재 근거를 뒤흔드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과거사 문제를 인정하는 데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까닭은 이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남동생 박지만 씨에 관한 의혹에 대하여 신경질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는 박정희 前대통령의 그림자 안에서 공인(公人)이면서 동시에 사인(私人)으로 완벽하게 결합해 있는 것이다. 박근혜 후보의 여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공허해지는 이유도 ‘박정희 前대통령의 그림자=박근혜 후보’라는 근본적인 사실에서 기인한다.

    오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 한 가지 사실은 덧붙여야겠다. ‘미녀’가 사랑을 느낀 순간 야수는 그녀에게 잘 생긴 왕자로 다가섰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박근혜 후보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비난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물론 결혼 여부가 스스로를 변화시킬 중요한 계기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성별의 차이를 떠나서 누군가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절대적인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함의한다.

    <데미안>의 유명한 문구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가 이를 집약하여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글에서 내가 주장하는 바는,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부모의 그림자로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왕자이고 공주인 ‘어린 아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1차 TV토론이 끝난 뒤 새누리당에서 박근혜 후보의 옹호 논리로 펼쳐나갔던 어법으로 얘기하건대, “전두환 前대통령에게 6억을 돌려받았던 불쌍한 소녀 가장”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여성대통령 박근혜? 글쎄, 당선 여부를 떠나서 그러한 존재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당선 여부를 떠나서 박근혜 공주가 계속 남아 있으리라고 판단할 수는 있겠다.

    필자소개
    가톨릭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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