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사람과 행동이 있었다"
    [협동조합의 역사 미래 의미]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는 '변혁'에 주목
        2012년 12월 11일 04:57 오후

    Print Friendly

    J선생님께,

    이번 편지는 지난 편지에 이어 협동조합,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가 변혁운동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편지에서 제가 범주화했던 협동조합/사회적경제와 변혁운동, 구체적으로 사회주의운동/노동운동과의 관계는 여전히 유효한 부분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19세기말, 20세기 초반에 정립되었던 구도들입니다. 여기에는 20세기 초반 사람들이 생각했던 협동조합/사회적경제, 사회주의/노동운동 그리고 ‘변혁’에 대한 상이 투영되어 있지요.

    그러나 물질적 조건이 변화하고, 사람들이 겪고 느끼는 문제와 필요가 변화한 상황에서 ‘변혁’이 의미하는 것도 변하지 않을까요? ‘변혁’된 세상에 대한 이미지와 상상이 변화하면, 이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과 경로도 바뀌지 않을까요?

    연대경제, 또는 새로운 사회적경제

    오늘은 주요하게 프랑스에서 발달한 ‘연대경제’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시대의 ‘변혁’ 개념이 어떻게 전통적인 접근과 다를 수 있고, 종합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연대경제, 또는 새로운 사회적경제라 불리는 현상은 이론이나 사상이 아닌, 구체적인 실험의 형태로 먼저 나타났습니다. 이 실험들은 주로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의 사회운동 고조기를 경험하거나,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70년대 초반부터 유럽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조직된 운동이라기 보다는 다양하게 분출되었던 기존 체제에 대한 비판과 대안적인 사회에 대한 이상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결합되면서, 기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해법을 모색하는 실험으로 나타난 것이죠.

    이탈리아 사회적협동조합

    이들 실험들의 몇 가지 예를 볼까요? 이탈리아는 1970년대 중반 수용방식 정신병원의 폐쇄를 결정합니다. 이를 통해, 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통합될 것을 기대한 것이죠. 문제는 이들이 지역사회로 돌아가서 서비스를 받거나,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한 정신병원 의사가 발견한 것이, 많은 병원직원들이 주말이나 야간에 다른 직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의사는 직원들에게 폐쇄가 예정된 병원의 환자들을 나누어 데리고 자신들의 일터에서 함께 일을 하는 경험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 활동은 점차 발전해서 정신질환 환자들과 일반 노동자들이 함께 일하는 형태의 사회적협동조합의 원형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사회적협동조합. 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 노동하는 공간. (출처 www.cecop.coop ⓒ CECOP)

    벨기에 노동통합 관련조직

    70년대 중반, 경제위기로 실업이 급증하고, 기존 노동시장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의 벨기에에서는 건설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일을 하던 한 노동사목 사제가 거리를 방황하던 젊은 실업자들이 단순히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서, 자존감과 사회성을 상실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노동이야 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라 믿은 이 사제는 젊은 실업자들을 자신의 집에 묵게 하면서, 자신이나 건설노동자 동료들이 노동일을 나갈 때 이들을 조수로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일을 하는 공동체를 만들게 됩니다. 이 작은 공동체는 오늘날 벨기에에서 대표적인 노동통합 사회적기업 제도인 현장기반훈련기업의 모델이 됩니다.

    벨기에 현장기반훈련기업 “해야 할 일” (출처: www.qcaf.be)

    영국 급진적 노동자협동조합

    영국에서는 60년대 후반의 히피운동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유지하기 위한 필요 때문에 70년대 초반부터 채식주의 먹거리 생산 및 유통, 대안적인 도서와 팜플렛 제작 및 배포 등을 하는 기업들을 만듭니다.

    이 기업들은 개인들의 출자를 하지 않음으로서 기업과 생산수단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집합적인 소유로 간주되고, 급여는 차별이 없는 동일임금을 받으며, 종종 경영진을 별도로 두지 않고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영국 노동자협동조합 운동의 중요한 흐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영국 채식주의/유기농 식품 도매 협동조합 SUMA의 ‘마오주의식 로고’ (출처: www.suma.coop)

    프랑스 연대금융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은 프랑스에서도 곳곳에 등장했는데, 이러한 운동들을 지원하고 활성화시키려고 80년대 초반 만들어졌던 한 단체는 이들 활동들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때 제안된 아이디어가 사회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방식으로 해법을 찾고자 하는 활동들에 투자를 하는 투자자 클럽이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이긴 한데, 누가 투자라는 위험을 부담하면서 이런 활동들을 지원할까? 그래서 시작된 것이 이 단체의 활동가 5명으로 시작된 ‘연대예금의 대안적이고 지역적인 운영을 위한 투자자 클럽’이라는 불리는 대표적인 연대금융 운동입니다.

    연대경제의 개념화

    이러한 실험들이 새로운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실험들을 새로운 것이라 바라본 시선이 새로운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찌되었든 이러한 실험들은 당시 서유럽이 당면하고 있던 문제(경제위기, 실업, 소외, 사회해체 등)에 대하여, 60년대 사회운동 고조기 이후 널리 퍼져나간 가치(연대, 인간과 노동의 존엄, 참여/직접민주주의, 자율과 자조, 평화와 생태주의 등)를 바탕으로 대응하는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확산되기 시작하고, 뒤를 이어 연구자들에 의한 분석과 이해, 개념화의 대상이 됩니다.

    이중 ‘연대경제’라는 개념은 주요하게 프랑스의 학자 장 루이 라빌 등 일군의 연구그룹에 의해서 제안된 표현이었는데, 라빌에 따르면 서구가 직면했던 60년대 가치의 위기와 70년대 경제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 사람들이 조직되었던 이러한 실험들은, 19세기에 산업자본주의 형성 과정에서 등장하였던, 그러나 국가/시장이라는 양축의 조절기제에 수동적으로 통합되어 운동성을 상실한 결사체 사회주의의 전통이 새롭게 부활하는 현상으로 설명을 합니다.

    장 루이 라빌 (출처: www.babelio.com)

    근린 공공영역

    연대경제 논의에서 흥미로운 것은 ‘근린 공공영역’이라는 개념입니다. 하버마스의 ‘생활세계’,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코헨과 아라토가 제안한 ‘공적 생활세계’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근린 공공영역’은 자본주의와 근대국가의 발달을 통해 사회문제 해결의 장이 시장과 국가, 즉 생활자의 ‘지금여기’로부터 멀어져 가는 경향에 반발하여, 행위주체들이 서 있는 바로 지금여기에서, 바로 옆에 구체적으로 있는 사람들과 함께 문제와 욕구를 다룰 수 있는 합리적인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이를 확장 또는 다차원적인 근린 공공영역들 간의 연계를 통해 시장과 국가가 독점해가는 인간 삶의 문제를 다시 생활자 스스로의 손으로 되찾아야 한다는 규범적 프로젝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초기에는 주요하게 민간단체나 협동조합의 형태를 가진 시민사회 조직과 그 활동을 통해 구성되는 공간이 이러한 근린 공공영역을 상징했지만, 점차 분권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지역수준의 근린 공공영역이 다차원적으로 구성되고, 접합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수준의 참여적/민주적 거버넌스 강화가 새로운 과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접근이 전통적인 정치영역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2012년에는 프랑스 사회연대경제 운동의 연대체가 주관이 되어 사회당, 좌파당, 녹색당 대통령 후보 진영과 정책적 접합지점을 찾는 다양한 토론과 행사들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회연대경제 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좌파임은 분명하지만, 국가기구를 매개로 세상을 관리하는 입장에 서야 하는 좌파정당들과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바탕으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입장인 사회연대경제 주체들과는 근본적인 간극이 있기는 하더군요. 하지만, 둘의 관계는 역할분담에 가까운 것이지 대립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상과 해석, 현장과 이론의 관계

    연대경제 논의에서 찾아지는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현상과 해석의 관계, 현장과 이론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태초에 특정한 문제에 대해,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특정한 시점과 지점에서 행동에 나선 ‘사람(들)과 행동(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론이나 사상, 구조가 작동하면서 사람들을 조정한 것이 아니라, ‘보통’ 또는 ‘전통적’ 방식이 아닌 이를 거스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행동을 조직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고 의식화가 되어 현장으로 들어갔던 한국의 초기 사회운동 발생 과정과는 대조적이지요)

    연구자들의 역할은 이들의 행동을 기존의 틀에 끼워 맞추어 해석하거나, 이론적 방침을 제시하기 보다는, 이들이 보는 세상, 이들이 중시하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관찰하고, 이해함으로서 이를 보다 정제된 표현으로 해석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온 해석은 다시 행동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 확인되고, 수정되고, 재생산되면서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이런 점에서 연대경제 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80-90년대 일군의 사회과학 경향은 개념과 지식의 독점적 생산자로서 지식인 또는 지식공동체의 관점이 아닌, 행동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관점에 날 것 그대로 함께 하고자한다는 점에서 그 현상뿐만 아니라, 현상을 개념화하고 가공하는 과정 자체가 ‘근대’라는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비판과 변혁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협동조합/사회적경제는 변혁운동이 될 것인가?”

    처음의 질문을 조금 바꿔서 다시 자문해봅니다. “어떻게 하면 협동조합/사회적경제는 변혁운동이 될 것인가?”

    협동조합/사회적경제 자체가 변혁운동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도, 답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어진 문제에 대해,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소중히 발전시켜온 가치들을 접목하여, 처해있는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어떤 사상을 따르든 간에 이미 ‘변혁’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 우리에게 문제는 주류이데올로기에 쩔어있고, 전통적 거대담론에 사로잡히고, 가벼운 유행에 시달리는 가운데, 우리 가까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변혁’의 과정들을 발견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2012년 12월 리에쥬에서 보냅니다.

    필자소개
    엄형식
    대학생시절부터 진보정당의 꿈을 갖고 지역활동에 참여하면서, 소속되었던 정치조직에서는 개량주의자로, 활동하던 지역에서는 좌파꼴통으로 몰려 늘 소수파의 위치를 고수해옴. 노동자협동조합을 바탕으로 한 대안경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활사업에 참여하였으나,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실험에 참여함. 현재 벨기에 리에쥬 대학 사회적경제센터에서 박사과정연구원으로 있으며, 파트타임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국제노동자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연맹에서 조사통계담당으로 일하고 있음.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