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르친다는 것, 처음을 기억하는 것.
    [서평] 『가르친다는 것』(윌리엄 에어스 글, 라이언 앨린샌더 그림/ 양철북)
        2012년 12월 08일 12: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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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2학년 2학기 겨울방학이니까 임용고시 스터디를 꾸릴까 해. 같이 인강 듣고 일주일에 몇 번 모여서 서로 점검도 해주고 질문도 하고 그러자.”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아직도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다. 가끔은 이토록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브레이크도 걸어보며 ‘정말 내가 바라는 건 맞는지?’ 물어보기도 한다. 그만큼 선생님이라고 불리기를 갈망하면서 내심 두려운 것이다.

    선생님이란 성배를 찾기 위해서는 아주 크고 단단한 벽을 넘어야 할 것 같은 기분, 그리고 그 벽을 마주했을 때의 본능적인 무력감 때문이다.

    그 꿀꿀한 감정이 비단 임용고시에서만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두 어깨에 내려앉아 있는 고귀한 중압감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먼저’ 치러내야 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된 ‘다음’에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중압감이다. 선생님이 된 ‘다음’에 감당해야 할 그 고귀한 중압감.

    1.

    왜 이렇게나 먹먹해지는 걸까. 감동적인 이야기들이었다. 저대로 따라하는 것이 참 어렵겠다고 혀를 내두르다가도 ‘아, 저래야 진짜 선생님이지..’하고 마음이 촉촉해지는 이야기들. 내가 만나게 될 학생들의 눈망울을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계속 먹먹했다. 소화가 안된 것도 아니었는데, 무언가 꽉 막힌 듯이.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만화였는데도 말이다. 그 ‘동글동글’한 무언가가 계속 목에 걸린 듯이 답답했었다. 왜 그랬을까.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하다. 좋은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이다. 네모난 교실에서 강의식 교수법 위주로 가고 있는 한국 교육의 반대지점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파울루 프레이리의 페다고지가 생각이 났고 현 교육체제에 반발하셨고 내 학창시절의 기억을 이루고 계신 많은 선생님들의 한숨과 분노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분들이 ‘나름’ 시도해보셨던 방법들, 하지만 정작 배우는 학생들은 ‘뭐 이런 걸 다!’라고 외치며 툴툴거렸던 것들까지 모조리. 그러면서 두 배로 무력해졌다.

    내가 저런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저런 선생님이 되었을 때 내 학생들은 내 방식을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을까. 책을 덮을 때까지 나는 해답, 혹은 확신을 구할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감정이었다.

    저랬던 때가 있었을까. 혼자 답답해하기엔 뭔가 좀 억울해서 떠올린 질문이었다. 저런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쳤던 때가 있었을까. 소크라테스 선생님은 그랬을까? 플라톤 선생님은? 성균관 학생들의 스승님들은 저런 분들이었을까?

    글쎄, 없다고 확신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다. 노력했을 테니까. 좋은 스승이고자 노력했을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투쟁에 대해 멋대로, 여물지 않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 그래,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다. 결국 책의 내용이 너무 과한 요구라고, 이대로 지켰던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누가 그렇게까지 할 수 있겠냐고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던 마음마저 좌절되어 버렸다.

    참 못된 심보가 아닐 수 없는데 그 심보는 결국 자기모순에 걸려 타이타닉호가 그랬던 것처럼 서서히 시커먼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후 다시 책을 마주했다. 바뀐 질문과 함께.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처음으로 돌아가면 된다.’

    이제 임용고시를 준비하려고 한다. 임용고시를 시작하는 마음이라 하면 시험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선생님이 되고 싶은 간절한 소망으로 모든 걸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패기와 더불어 선생님이 되기만 하면 나는 금방이라도 교탁 위에 올라서서 카르페 디엠을 외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치를 임용고시는 선생님의 자격 내지는 품격을 이루는 아주 작은 요소에 불과하고 나는 더 큰 자질을 갖춘 선생님이 될 수 있으리라 자신하는 것이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공부 이외의 것들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내 삶을 통해 가르쳐주리라고 다짐하는 그 마음.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의 마음이다. 초심. 그 초심 속에 존재하는 나는, 선생님이 된 나는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학생 한 명 한 명을 사랑하고 그들의 자아실현에 관심이 있고 그들이 힘들어할 때 옆에 다가가서 토닥거리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커다란 인내심으로 빚어진 귀를 가지고 있다! 이 마음과 패기를 잊지 않는다면 책에 나오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결국 이 책은 지금의 마음을 기억하도록 내가 내 시간의 책장 사이에 끼워둔 책갈피 같은 것이다. 다시 그 책갈피를 건드리면 촤라락! 고운 텍스트로 아로새겨진 초심이 펼쳐질 것이다.

    3.

    자, 이제 의지를 다졌다. 네 덕에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을 다시 밝힐 수 있었다, 고맙다!를 외치며 돌아섰다. 꼭 좋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네가 일러준 대로 나는 그런 선생님이 되겠다고.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책이 그리고 있는 선생님 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들 아니었냐는 말이다.

    이번 학기에 듣는 과목 중 교수방법론이란 과목이 있다. 어떤 방법들을 사용해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지를 배우는 과목인데 이 과목을 듣다보면 교수학습 행위가 결국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수자가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의견이나 질문을 잘 듣고 그에 맞는 답을 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공감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는 것. 이것이 커뮤니케이션 혹은 의사소통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걸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락의 결론을 짓자면 교수학습행위 = 의사소통이다. 그리고 책에서 이야기했던 것들도 교사와 학생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 혹은 이상적인 의사소통에 관한 것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들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한 책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의사소통을 하면서 살아가는데도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들을 읽고 그것들에 기대어 나의 의사소통방식을 수정해 나간다. 아, 물론 저런 책들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은, 단지, 일상적일 수록 지침서를 더욱 필요로 하는 우리네 모습이다. 그리고 그 일상적인 일들의 본질이 뭘까 하고 생각해본다면 훨씬 쉽게 답이 나올 수도 있다고 조심스레 덧붙여 보면서.

    어쩌면 지금 우리학교에서는, 우리네 교실에서는 선생님과 학생 사이 의사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니, 의사소통이 있다는 그 자체도 잊어버린 건 아닐까. 교사는 생명체가 아닌 어떤 형상들을 앞에 앉혀놓고 죽어라고 소리친다. 학생들도 생명체가 아닌 어떤 스피커에 경청하거나 혹은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는다. 이제 이 예쁜 책이 우리 교실 문을 두드리면서 이야기한다.

    “저기, 지나가다가 봤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서요.. 여기는 의사소통하는 곳이에요. 사람과 사람이 의.사.소.통.하는 곳이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곳, 우리는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이 기억이 나면서 현상계는 점점 이데아여야 한다고 생각해본다. 그곳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나의 책임인 것이다. 앞으로 교사가 되고자 하는 나의 책임.

    0.

    책은 동글동글하다. 각이 살아있을 네모난 교실에 들어설 나에게 주는 동글동글한 메시지. 동글동글한 것치고는 제법 날카로워 아프기도 했던 메시지. 하지만 그것이 나의 꿈이 가진 본질이고 나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친구이자 이번 방학 함께 임용고시를 공부하자고 권할 친구에게 할 말을 다시 정리해봐야겠다.

    “2학년 2학기 겨울방학이니까 임용고시 스터디를 꾸릴까 해. 같이 인강듣고 일주일에 몇 번 모여서 서로 점검도 해주고 질문도 하고 그러자….그리고 우리 지금 마음을 절.대.로. 잊지 말자.”

    필자소개
    학생. 연세대 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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