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을 점령하라!”
    [책소개]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김삼웅/ 현암사)
        2012년 12월 08일 1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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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5년간 대한민국 국정을 이끌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한편 최근에 개봉한 두 편의 영화는 1980년대 ‘어두웠던 시대의 대한민국’을 다루어 화제다. <남영동 1985>와 <26년>이다. 영화에 대한 소감 중에 이런 말들이 있다. ‘용서할 수 없는 포악한 시대다.’, ‘믿기지 않게 참혹하다.’

    특히 <남영동 1985>의 고문 장면은 관객들을 무거운 침묵과 분노로 이끈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누구라도 몸서리칠 수밖에 없는 그 끔찍한 일들을 실제 겪은 현실의 인물이 바로 김근태라는 사실을,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알리는 역할을 해냈다.

    그처럼 역사가, 정치가 ‘기억의 제자리’를 찾는 작업이라면 ‘김근태’라는 기억은 우리에게 어떠한 좌표가 될까? 고(故) 김근태. 이제 12월 30일이면 서거 1주기를 맞는 김근태는 아직도 ‘남은 자’들에게 호소할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우리는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 김근태는 서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을 통해, 정확히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이렇게 외쳤다.

    “2012년을 점령하라!”

    민주화의 길에 몸 바친 한 투사의 생애

    김근태의 이력에는 두 가지의 굵직한 줄기가 있다. 민주화 운동가의 이력과 정치인의 이력. 1994년 새천년민주당의 부총재로 ‘야당 입당’하며 현실 정치에 뛰어들기 전까지, 김근태는 철저한 민주화 운동가였고 그 세력의 선봉장이었다.

    김근태가 자신의 생을 형극의 길이나 다름없는 ‘운동’에 바친 이유를 간명하게 설명할 방법은 없다. 주요 요인으로, 우선은 그가 겪은 시대가 그러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몇 해 전에 태어나 전쟁통에 자랐고, 이어 박정희의 쿠데타를 보았으며 유신 정국에 살았다.

    박정희가 죽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신변을 온통 강제하던 긴급조치 9호에서 벗어나지만, 곧바로 전두환의 신군부 일당이 광주를 피로 물들여버린다. 1982년에는 부인 인재근(현 국회의원) 사이에서 둘째가 태어나는데, 바로 다음해에 김근태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하고 초대 의장까지 맡는다. 그는 대학생 때부터도 이미 그랬지만, 한시도 자유롭지 못한 ‘구속의 삶’을 이어간다.

    1985년, 그 ‘구속의 삶’에 더 큰 비극이 닥친다. 김근태는 남영동에 끌려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문을 당하고 몸은 모조리 망가져버린다. 하지만 청년기 후로 쭉 품어온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진다. 또 잠시, 1986년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에 걸려 2년 10개월간 수감된다. 출옥 후 다시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창설에 참여하며 민주화 운동의 선봉 자리로 돌아오지만, 다음해 또 2년간의 구속이 그를 기다린다.

    그가 마지막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하자 세상은 1990년대 중반으로 가고 있었다. 이때 벌써 20년 넘도록 수배와 구속과 고문을 거듭 당해온 김근태였다.

    앞서 적었듯, 김근태는 1994년을 기점으로 현실 정치에 입문한다. 김근태는 정치 입문에 계속 신중한 입장이었다. 거의 10여 년 전인 1985년에 김영삼으로부터 총선 출마를 권유받았을 때 김근태는 거절했다. 1991년 김대중으로부터도 신민당 부총재직을 제의받았지만 또 거절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김근태는 스스로 말하길 ‘네루의 길’을 가기로 하고,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다.

    “간디가 가는 길이 있고 네루가 가는 길이 있습니다. 재야운동은 사회운동과 정치운동의 길이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말하면 사회운동의 길은 간디의 길이고 정치운동의 길은 네루의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서로 다르지만 지원하고 협력하는 길입니다”

    김근태 자신이 정치 입문의 변을 거창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러한 변화를 결심한 계기는 앞뒤 행적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간디의 길’에서 헌신하던 때부터 끊임없이 ‘민주대연합’을 외쳤다. 야권의 정치적 연대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온 몸으로 아는 이상 외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김근태의 정치인 생활은 애초부터 ‘대연합’을 소명으로 삼았던 성품처럼, 특히 삿되기만 한 정략과 기만들을 ‘정치’로부터 타파하는 일이었다. 더불어, 정의롭지 못한 기득권에 맞서는 투쟁의 연장이었다.

    정치인 김근태는 수차례나 ‘차세대 대통렴감’을 묻는 설문에서 선두에 언급되고, 몸담고 있는 야당에서 수장에 오르기도 여러 번이었으니 ‘성공적인 정치인’이라 평가해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김근태가 바란 것은 애초에 정치력이나 권세가 아니었기에, ‘김근태는 성공한 정치인’이라는 말은 지극히 어색할 수밖에 없다. 김근태는 정치에 품었던 높은 이상을 현실에서 못 다 펼쳤다는 점에서 ‘비운의 정치인’에 가깝다. 그러나 ‘민주화 투사 김근태’에 이어 ‘정치인 김근태’는, 한결 같이 따뜻하고 정직한 ‘인간 김근태’라는 뚜렷한 각인을 우리에게 새겼으니 ‘비운’이라는 말도 김근태에게 어울릴 수는 없다.

    이 평전은 책의 제목처럼, 김근태는 어느 길을 걷든 어느 노선에 있든 ‘민주주의자 김근태’로서 한결 같았다는 점을 그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에게 증명하고 있다.

    따뜻한 인간, 정직한 인간

    김근태가 자신을 ‘형극의 길’에 바친 이유를 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유력한 이유 중 하나는 다름 아니라 그의 ‘성품’이다. 김근태는 고등학생 때만 해도 사회의식이 미미했다. 당시에는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당시 “박 대통령의 말이 대단히 합리적”이라고 여겼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 김근태에게 새로운 결심은 심어준 것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 포악한 시대의 현실이었다. 김근태는 수배와 구속과 고문을 겪을수록 흔들리는 쪽이 아니라 더 확고해지는 쪽이었다. 무엇보다 김근태는 거짓을 용납할 수 없었다. 명백한 진실을 말하는 일에도 온갖 고초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 작은 신념이라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빤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도 김근태는 다른 길을 택하지 못했다. 1997년에 그가 엄연한 시대 현실 앞에서 어떤 자세를 가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저항할 수 있어야 꿈꿀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작은 일들을 위해 많은 것을 걸었던 것이다.”

    또한 사람들에게 더할 수 없이 따뜻했던 성품 또한, 그가 다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붙잡은 요인이지 않았을까 싶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에는 김근태가 가족 및 지인들과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가 자신과 인연을 나눈 사람들, 혹은 일면식도 없지만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던 서민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는 그가 고른 단어 하나하나에 생생히 새겨져 있다.

    이 평전은 김근태가 관통해야 했던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되살리면서, 그 시대의 한가운데서 ‘따뜻한 투사’ 김근태가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맞섰는지 잘 보여준다. 김근태 이력의 가장 도드라진 특징은, 언제나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했다는 점, 그러기 위해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의 크기가 한 사람의 몫을 초월하더라도 언제나 그렇게 했다는 점이다.

    남에게 온정을 베풀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김근태의 가치관은 일상생활에서 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 경력과 정치인 경력에서도 여지없이 이어졌다.

    저자 김삼웅은, 김근태의 삶을 상징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로 ‘인간의 존엄’을 꼽는다. 포악한 군사독재에 맞서고, 민주주의를 지키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앞장서 싸우는 데 헌신한 김근태가 추구한 궁극의 가치,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아니었을까.

    실로 평전이 기록하는 김근태의 생애는 그 자체로 ‘존엄한 인간’의 본보기를 보여주며, 모든 이의 존엄을 위해 싸운 한 민주주의자가 새긴 그 ‘희망’을 성찰하게 한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은 김근태 사후에 출간되는 첫 평전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전 전문 필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저자 김삼웅은, 이 원고 집필을 마치고 나서 며칠간 끙끙 앓았다고 한다. 김근태의 평전은, 그간 한국사의 굵직한 인물들에 대한 수 많은 평전을 작업해온 저자에게도 “어려운 숙제”였다고도 털어놓는다.

    김근태와 함께 한국의 민주주의를 올바로 지키고자 평생을 헌신한 또 한 사람의 ‘민주주의자’인 아내 인재근 여사(현 국회의원)는, 평전 출간을 기념하며 간곡한 말을 덧붙였다. 그의 말은 김근태를 기억하는 일이 단지 한 인물을 돌아보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준다. 우리에게 김근태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일은 ‘인간 존엄을 말살한 포악한 현실’과 힘차게 맞서는 일로서도 의미 있는 것이다.

    “(…) 김근태를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의 행적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와 인권의 퇴행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가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망각에 대한 투쟁이 권력에 대한 투쟁’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사에 대한 온갖 망언들은 과거의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발이고, 권력 투쟁의 일부입니다. 화해와 망각은 다릅니다. 가장 또렷한 기억 위에서만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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