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 구글모델 환영할 것인가
    [안녕? 페미니즘!]돌봄의 가치 중심으로 사회관계 재정립해야
        2012년 12월 05일 03:3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가족 같은 직장, 또 하나의 가족?

    ‘가족 같은 직장’이란 말은 우리에게 매우 낯익다. 흔히 볼 수 있는 구인광고들은 “가족처럼 일하실 분”을 찾는다. 그런데 그 뒤에 꼭 따라붙는 말은 “급여는 협의 후 결정.” 사실상 무급 가족종사자에 가까운 임금을 준다는 얘기다.

    “사원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경영 방침을 내건 기업도 많은데, 이는 아버지-사장이 베푸는 시혜만큼 자녀-사원은 회사에 충성을 다하라는 가부장적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일하다 목숨을 잃은 젊은 여성노동자들을 나 몰라라 하는 “또 하나의 가족”은 어떤가.

    이렇게 우리사회에서 회사와 가족을 연결하는 수사는 비상식적인 노사관계를 확증해 주는 슬픈 코미디와도 같다. 그런데 유수의 글로벌 기업 구글이 ‘가족 같은 직장’을 표방하고 나섰다. 이 또한 웃지 못 할 한편의 코미디에 불과한가?

    구글이 2007, 2008년에 이어 2012년 포춘지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에 선정된 후 공동 창립자이자 현재 CEO인 래리 페이지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구글은 가족 같은 곳이 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실제 구글이 시행하는 복지제도를 들여다보면 빈 말이 아니다. 어린이집, 의료센터, 수영장 등 운동시설, 하루 세끼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드라이클리닝 시설과 세탁실, 마사지를 받거나 각종 게임을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춘 구글 사무실에서는 집에서 하는 웬만한 일들을 다 처리할 수 있다. 가정을 직장에 옮겨 놓은 듯한 이 모델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구글러(구글 직원)들이 직장 안팎에서 무엇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구글 뿐 아니라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이러한 근무환경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매년 구글과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를 다투는 사스(SAS)는 통계 프로그램 개발업체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곳 역시 일-생활 균형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사스도 5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과 의사가 상주하는 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당 35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며 출퇴근 시간은 개인 사정에 따라 조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들 기업은 탄탄한 복리후생 혜택을 갖춘 우리나라 대기업들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구글 모델’에는 일과 가족을 결합하는, 산업사회 기업 모델과는 다른 원리가 전제되어 있다.

    게임룸에서 연습하는 구글러로 구성된 밴드(사진=구글)

    세끼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 구글 식당(사진=구글)

    뒤섞이는 일과 가족과 놀이

    산업사회는 일터와 가정을 다른 영역으로 분리하고 남성과 여성에게 각각 할당해 왔다. 기업은 가사와 돌봄에 대한 책임을 배제한 남성 가장들만의 조직으로 유지되어 왔으며, 그 물질적·상징적 기반은 평생고용과 ‘가족임금’이었다. 이 맥락에서 기업의 복리후생제도는 노동자 가족의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자원, 예컨대 결혼을 앞둔 청년에게는 주택자금, 중장년기에는 자녀 학자금을 지원하여 가족 부양을 보조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앞서 본 글로벌 기업의 혜택은 오늘날 무너진 평생고용체계를 대체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문·관리직에서 직장을 옮겨가며 경험적 지식과 전문성을 축적하는 경력 모델이 확산되면서, 이들의 두뇌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떠도는 ‘우수 인재’를 유인하고 붙잡아 둘 방안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평생고용 대신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인 셈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 등 전통적인 제조업이 일하기 좋은 기업 상위권에서 물러나고 IT 기업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주목할 만한 차이점은 ‘구글 모델’이 노동자를 다중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여러 생활영역에서 다양한 욕구를 가진 존재로 인지한다는 점이다. 이전의 기업은 노동자를 일만 하는 사람으로 보고 돌봄과 여가생활은 개인이 알아서 할 문제로 배제했으며, 집안 일 때문에 일에 전념하지 못하는 사람은 노동자로서 부적합하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직원이 노동자이자 한 가족의 구성원이며, 취미활동도 하고 밥도 먹고 옷도 빨아 입는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생산성에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다중 역할 자체가 아니라 각각의 역할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발생하는 갈등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때문에 일과 돌봄, 여가, 여타 개인생활 간의 거리를 단축하고 갈등의 여지를 최대한 제거함으로써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기업의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과 놀이의 경계, 일터와 가정의 구분이 흐려지고 이를 엄격히 분리하던 산업사회의 규범들이 약화되고 있는 시대적 흐름과 관련되어 있다.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혹은 정해진 매뉴얼대로 임무를 완수해 내는 능력보다 자유로운 기업문화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실행에 옮기는 능력이 중시되면서 재미(fun)는 일과 결합되어야 할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성 역할 분리에 입각한 핵가족 단위의 일-가족 결합 모델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지 오래다.

    또 근대적 시공간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일터와 가정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여, 온라인상의 정보망에 접속하면 일터 밖의 공간도 언제든 일터로 변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로 인해 유연근무는 이미 글로벌 기업에서 전통적인 노동시간과 장소에 관한 규범을 대체하고 있다.

    누구나 구글러가 될 수 없다는 게 함정

    그동안 페미니즘은 일과 가족을 배타적으로 분리하고 각각을 남성/여성 영역으로 간주했던 산업 자본주의의 성별 분업체계가 노동자로서 여성의 지위,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의 노동을 주변화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로 일-가족 양립은 일 영역과 가족 영역의 상호의존성을 환기시키고 두 영역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 논의를 통해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적 돌봄의 확충과 더불어 가장인 남성노동자를 전제로 구성되어 온 산업사회 노동규범의 변화를 주장해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돌봄과 재생산에 대한 책임이 면제된 채 일에만 몰두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다중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하는 노동자로 이상적인 노동자 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구글 모델’은 페미니스트 논의와 몇 가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평생고용과 성별분업이라는 일-가족 조직 원리가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탈산업사회에서 구글 모델은 일터와 가정 사이의 시공간적 장벽을 없애고 노동자의 일-가족-개인생활을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하나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업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의 주장이 될 수 있을까?

    대답에 앞서 먼저 짚어야 할 건, 누구나 구글 같은 회사에 다닐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일과 일이 아닌 생활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지 여부는 정규직/비정규직, 고임금/저임금, 전문직/단순노무직과 같은 일자리 양극화의 또 다른 지표가 되고 있다.

    사회 시스템이 아니라 어떤 기업에 취업하느냐가 일-가족 양립의 가능성을 좌우하게 된다면, 일과 돌봄, 자기계발, 여가생활을 넘나들 수 있는 노동자와 가능한 모든 시간을 돈 벌이에 투여해야 하는 노동자 간의 격차는 확대될 것이다. 때문에 일-가족 양립이 더욱 계층화되는 상황에서 구글의 시도를 환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다소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구글 모델은 일-가족-개인생활을 왜, 어떻게 통합해야 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시장의 원리를 넘어서

    구글 모델은 일과 일이 아닌 다른 영역을 통합하는 원리로 시장의 규칙을 전면화한다. 일-가족-개인생활을 재조정하는 이유는 업무 효율성과 기업에 대한 헌신을 높이기 위함이며, 이 모델의 성공 여부는 기업의 재무 성과로 평가된다. 얼마나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는가를 묻지 않는 대신 업무 성과가 개별 노동자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되며, 여기에는 개인이 일, 가족, 개인생활을 얼마나 잘 관리해 왔는가에 대한 평가도 간접적으로 포함되는 것이다.

    어느 영역으로든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구조화 된 시공간 안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다중 역할을 가장 효율적으로 조정해야 할 책임을 넘겨받는다. 실패의 책임 또한 본인이 지게 되며 설사 일자리를 잃게 되어도 누굴 탓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에게 성공적인 일-가족 관리를 코치하는 자기계발서들은 일-가족 균형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마치 CEO가 적재적소에 자원을 배치하여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듯 끊임없이 주어진 임무들을 조정하여 스스로의 삶의 질을 관리하는 것만 가능할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 정답일 수 있다. 완벽한 평형상태를 이룬 양팔 저울처럼 일과 가족을 양립하는 건 애초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시장의 가치와 돌봄의 가치 중 무엇이 우리 사회에서 일과 가족을 결합하는 지배적인 원리가 되는가, 이것이 문제의 전부일 수 있다.

    산업사회는 개인의 일상과 공동체의 시공간을 유급노동을 중심으로 조직해 왔다면, 오늘날 보다 강력해진 시장의 주문은 효율성과 생산성의 원리로 일뿐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을 재조직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에 최적화된 모델을 제시하는 기업의 변화 앞에서 페미니즘은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동안 페미니즘은 돌봄/재생산을 유급노동/생산의 부속물로 여기는 일 중심 패러다임을 비판해 왔지만, 이 패러다임의 전복이라는 급진적인 가능성을 보여주기엔 충분치 못했다. 일-가족 양립은 노동시장에 기혼 여성을 보다 매끄럽게 편입시키는 전략에 가까웠고 최근에는 남성의 돌봄 참여를 포함하고 있지만 공고한 시장 질서를 흔들기엔 역부족이다.

    필요한 것은 돌봄의 가치를 시장에 개입시키고 일-가족 관계를 조직하는 보다 중심적인 위치에 놓는 기획이 아닐까. 자녀를 돌보는 노동자가 365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야근에 교대근무까지 해야 한다면 이는 시민으로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돌봄과 노동, 휴식과 교육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생애가 ‘이탈’이나 ‘단절’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이라 여겨지는 사회.

    이는 궁극적으로 일을 시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실현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최근 마을을 복원하여 돌봄 공동체를 만들고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이러한 사회적 관계망이 재생산과 소비뿐 아니라 대안적 노동을 포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일과 돌봄을 통합하는 가장 놀라운 모델이지 않을까.

    필자소개
    필자들은 페미니즘 속 세상, 세상 속의 페미니즘이 일으키는 불화를 열광하고, 성찰하는 연구자들이다. 관계와 소통을 본격적으로 통찰하는 매혹적인 학문이자 사상으로서, 농익은 진리 주장에 머물러 있기보다 설익은 질문에 열려있는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필자들의 관심사는 저마다 다르지만, 생계부터 정치적 안부까지를 함께 걱정하고 토론하는 생활공동체의 화학작용으로 인해, 각자의 사유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 엄혜진(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 연구원) 김원정(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 윤보라(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이선형(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이 차례로 글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