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겨울, 미국에서의 계급투쟁
        2012년 12월 04일 10:10 오전

    Print Friendly

    최근 미국의 정치경제가 흥미롭게 돌아가고 있다. 버락 오바마의 연임으로 잠시 안정을 되찾아 가는 듯이 보였던 미국의 연방 정치가 다시 절박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해묵은 논쟁과 갈등 때문이다. 특히 부시 행정부 하에서 취해졌던 한시적인 조세 감면 조치(Bush-era tax cut)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현재 민주-공화 양당의 치킨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재정 절벽’(fiscal cliff)이라고 불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의 부유층 조세 감면, 2011년 부채 한도 협상, 그리고 2012년 재정 절벽

    2000년대 초반 제2기 부시 행정부는 경기 부양을 명목으로 대대적인 조세 감면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최상위 부유층과 기업가들에게 낮은 세율을 적용해 그들의 부를 증대시키면 경제 전체적으로 투자가 증대하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이 임시 조치가 올해 말로 만료된다.

    물론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와 미 의회는 다양한 임시방편 조치들을 마련해왔다. 예를 들어, 2010년 미 의회는 오바마 행정부가 제안한 ‘조세 감면, 실업 수당 수급 및 일자리 창출 법안’(Tax Relief, Unemployment Insurance Reauthorization, and Job Creation Act)을 통과시켰고, 2012년에는 ‘중산층 조세 감면과 일자리 창출 법안’(the Middle Class Tax Relief and Job Creation Act) 등을 연이어 통과시키면서 부시 행정부 하의 조세 감면 조치를 2년간 한시적으로 연장하는 조치들을 취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모든 임시 조치들도 올해 말로 끝이 나게 된 것이다.

    한편, 2011년 여름 미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 조정에 관한 논란이 불거질 당시 민주-공화 양당은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던 의회는 민주 공화 양당이 공동으로 재정 적자 감축 방안을 논의하는 의회 내의 특별위원회(일명 슈퍼 커미티)를 구성하는 데 합의했고, 이 위원회가 이후 마련하게 될 새로운 법안을 기초로 연방 정부의 예산과 조세 정책을 새롭게 편성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2011년 8월에 발효된 이 법안에 따르면 미 연방 정부는 향후 10년간 1.2조달러의 적자를 메우는 방안에 합의해야 하고, 2012년 11월 말까지 새로운 합의안을 마련해야 했다. 만약 새로운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 실패하면, 미 연방 정부는 이 법안의 다른 조항들에 의거하여 거의 모든 예산을 일괄적으로 줄여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재정 절벽이 야기할 파국적인 경제적 효과

    그러나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상한 바와 같이 민주-공화 양당은 새로운 조세 기준을 마련하는 데 실패해왔고, 특히 2012년에 접어들어서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 밀려서 제대로 된 법안 협상도 진척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불과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기간 안에 미 정부는 조세 감면 혜택에 관한 임시방편을 대체하고 미 연방 정부의 예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민주-공화 양당이 이 문제를 정해진 시한까지 마련하지 못하면, 미 정부는 2011년 8월의 법안에 근거하여 내년 초부터 자동적으로 모든 납세자들에게 크게 인상된 세율(평균 19.63%)을 적용해서 세금을 부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같은 법안의 다른 조항들에 의거하여 각종 정부 예산을 일괄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미 연방 정부는 향후 10년간 총 1090억달러의 예산을 줄여야 하고, 국방비를 제외한 총 547억달러의 예산 감축분을 메디케어 등의 각종 사회 지출 예산 항목에서 줄여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도래한다면 미 정부 부처의 거의 모든 예산이 줄어들 것이고 미 연방 정부가 각 주 정부에 보조하는 각종 교육 및 의료 관련 보조금도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경제 위기 국면에서 거의 10차례 정도 연장되었고 현재 2백만명 정도가 받고 있는 임시 실업 수당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장기 실업자들을 고용할 경우 기업들에게 제공되던 각종 조세 감면 혜택도 자동적으로 없어지게 될 것이다.

    미 의회 산하 예산국이 발행한 한 예측 자료에 따르면, 이 조치는 미국의 중간 소득 가계(median income household)로 하여금 평균 3500달러 정도를 추가적으로 더 세금으로 납부하게 만들고, 그들의 가처분 소득(disposable income)을 줄여 미국 전체적으로는 총 200억달러를 상회하는 규모의 총 소비 감소를 야기할 것이다.

    물론 이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인들의 집합적인 소비 감축은 다시 비금융 기업의 판매 및 이윤 감소로 이어지고, 미국 경제 규모가 더욱 수축되는 효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와 연동된 가계의 파산과 주택 담보 대출금의 미회수 및 은행 부분의 추가적인 부실화도 빼놓을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 가운데 하나다. 그렇지 않아도 이중 경기 침체의 위협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감안할 때 이 같은 상황이 초래할 궁극적인 경제적 효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파국적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미국의 언론들은 현재의 상황을 미국 경제가 소위 ‘재정 절벽’에 올라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이 절벽에서 끝을 모르고 추락할 것인가 아니면 기사회생할 것인가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다는 말이다.

    오바마의 대담한 제안과 민주-공화 양 당의 치킨 게임

    이런 상황에서 지난 주 오마바 대통령은 연간 250,000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부유층들의 조세 납부 부담율을 높이는 반면, 저소득자들에게는 소득세 납부 부담을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안을 공화당 측에 제안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같은 조세 개혁안이 관철되면 향후 10년 간 미 연방 정부가 총 1.6조달러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고, 현재 문제가 되는 정부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미 연방 정부의 부채 한도(fedeal debt ceiling)를 추가적으로 높이고 그 한도에 대한 최종 결정 권한을 현행 의회에서 행정부로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매년 의회 회기마다 정부 부채 한도 증액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경제 개혁의 발목을 잡는 것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또한 개인 소득세 납부 기준에 관한 논란과는 별개로, 2013년 한해 긴급 실업 수당 연장과 낙후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유지 보수 및 신규 투자를 위해 총 50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 기금을 조성해 줄 것을 공화당 측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과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심각한 재정 절벽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한마디로 장난을 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때 미 하원 공화당 대변인 존 뵈머는 8000억달러 상당의 세수 인상 방안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와 타협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그 이전에 비해 부유층에 대한 더욱 강력한 세금 인상 방안을 내놓자 그는 “완전히 비이성적인” 안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 등의 극우 보수 언론의 반응도 즉각적이다. 11월 30일자 사설을 통해 킴벌리 스트라셀은 자극적인 용어를 동원해 가며 오바마 행정부가 재정 절벽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녀는 공화당 측이 이미 여러 차례 타협안을 제안했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의 제대로 된 사회 지출 감축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 안에서 합리적으로 타협할 생각을 하는 대신 여전히 선거 운동을 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와 효율적 자본 시장이라는 야만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진로와 사회운동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 두 가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거대 기업들의 행태와 관련되어 있다. 이 기업들은 하루라도 빨리 기업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려고 안달을 하고 있다. 거대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현행 낮은 소득세율이 적용되고 있는 동안 가능한 한 빨리 주주 배당금을 지급해서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최고 경영자들의 기업 주식에 대한 소유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기업들은 조속한 배당금 지급을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까지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각종 사모펀드들의 적대적 인수 합병도 거침없이 빨라지고 있다. 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해만 사모펀드와 벤처기업들의 인수합병을 위한 총 자본액 규모가 353억달러에 달해 1995년 이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인수 합병 건수와 총 규모도 2011년 같은 기간에 비해 72%가 증가한 수치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거대 금융 및 비금융 기업들은 지난 5년 동안 경제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기업 채권 발행 증대, 기업 금융 자산에 대한 포트폴리오 관리, 그리고 이미 발행된 주식들에 대한 되사들이기 등의 행태를 보여 왔다.

    미 연준이 재무부와 모기지 전문 업체들이 발행한 채권과 주택담보대출 채권들을 사들여 해당 채권들의 장기 이자 부담률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정책(양적 완화 조치)을 취하는 동안, 미국 내의 거대 민간 기업들은 낮은 이자 부담률로 기업 채권을 발행하고 자산 가치를 증식시키는 등 재무 구조를 개선하는 일에만 몰두해왔다.

    저리의 이자율 환경을 이용하여 낮은 이자율로 신규 채권을 발행하고 이렇게 해서 조달한 현금으로 과거에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율로 발행된 채권이나 조만간 만기일이 도래하는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것이다.

    또한 이 기업들은 이미 발행된 기업 주식을 되사들여 주식 가격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거나 거대 주식 보유자들이 과거에 비해 보다 높은 가격으로 되팔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왔다. 당연히 거대 주주들은 이 기업 주식 되사들이기 조치에 힘입어 막대한 시세차익을 누리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거대 민간 금융 및 비금융 기업들은 막대한 현금 유동성을 바탕으로 미 정부 채권, 기업 주식과 채권 등의 각종 금융 자산들을 사들이거나 되파는 일에만 물두하면서 단기 금융 이윤을 높이는 일에만 신경을 써왔다.

    이처럼 미국의 거대 민간 기업들이 실물 자본에 대한 투자와 고용 증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금융 자산 관리에만 집중을 하고 있으니, 수천 조에 달하는 미 연준의 양적 완화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고용 및 노동 소득 상황은 조금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나마 정부의 공식 통계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고용율의 점진적인 증가 현상도, 식당 종업원이나 보모 등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특징지어지는 질 낮은 일자리가 부분적으로 증가한 데서 비롯된 것일 뿐 제대로 된 경기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자본 소득에 대한 조세 부담률이 높아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과 거대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우선 지급하겠다고 거대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가며 선언하고, 또 이를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까지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기업 최고 경영자와 거대 주주들의 이익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해당 기업과 소비자들의 이익에서 멀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런 기업들이 발행한 주식 가격이 주요 주식 시장에서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데 있다. 이것은 ‘기업의 미래 수익을 엄정하게 평가하고 희소한 사회적 자본을 효율적으로 할당한다.’는 미국식 자본 시장의 이상화된 가치가 현실에서 얼마나 허구적이며 과연 어느 정도까지 사회 전체의 복리 증진에서 멀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한 때 프란시스 고야가 ‘이성이 잠자고 있을 때 야만이 판을 친다.’고 말을 했던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적으로 선전되고 심지어 강요되기까지 했던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자본 시장 모델은 지난 5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미국 발 경제 위기의 핵심적인 원인이자 파급의 동력이었다. 오바마 행정부 하에서 소위 월 스트리트 개혁 법안이 입안된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야만의 체제는 거의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프란시스 고야가 희구했던 이성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고 있고 야만만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잠자던 이성은 깨어나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있다면, 그동안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이라는 몽상에 갖혀 있던 보통의 미국인들이 길고 긴 잠에서 점차 깨어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대표적인 징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형 할인 마트 체인 가운데 하나인 월마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 분쟁일 것이다.

    월마트 노동자들의 항의 행동

    월마트 노동자들은 최근 사상 처음으로 ‘빈곤 임금’과 악명 높은 노동관계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마트는 한국의 삼성처럼 악명 높은 기업이다. 월마트는 기업 창업주와 최고 경영자 가계의 기업 주식 보유 비중이 대단히 높은 기업이다.

    이 기업은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 및 가입을 체계적으로 분쇄해왔다. 개별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 수준도 수십 년 전에 제정된 최저 임금 가이드라인에 겨우 미치는 수준에 불과하다. 제 아무리 전일 노동자로 월마트 매장에서 일을 해도 결코 빈곤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월마트 고용 노동자들이 퇴직금은 물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올해 미국 전역에서는 12개 도시에 산재한 28개 월마트 할인 매장에서 총 3000여 명 이상이 참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시위는 추수감사절 당일 오후에도 매장을 열어 보다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겠다는 경영진의 방침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월마트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화 노력의 뿌리는 깊다.

    지난 2011년 겨울에는 월마트 매장의 한 판매원이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한 매장 안에서 수많은 쇼핑객들에게 깔려죽는 일이 벌어졌다.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 동안 최대의 할인 폭으로 물건을 사려고 물밀 듯이 밀려들어오는 쇼핑객들 앞에서 한 매장 직원이 떠밀려 넘어지고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월마트 경영진은 약간의 위로금을 그의 가족에게 전달하는 것 이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올해에는 추수감사절 당일에도 매장을 열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에 공분한 월마트 노동자들은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 동안 자신들이 얼마나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일을 하고 얼마나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고 있는지를 알리겠다고 선언했다. 추수감사절 연휴 동안 이들은 대대적인 피켓 시위와 거리 시위 및 캠페인 등을 벌였다.

    이와 함께 월마트가 하청을 준 창고 및 수송 업체 노동자들도 월마트를 상태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월마트는 수송 및 물류비용을 낮추기 위해 수많은 하청 기업들을 고용하여 이 업무를 분사시켜왔다. 당연히 이 하청 기업에 고용된 트럭 운전사와 물류창고 관리원 등은 월마트가 이중삼중으로 하청을 맺는 과정에서 줄어든 이윤 분매 몫 때문에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려있는 상황이었다.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에 소재한 월마트 하청 물류 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최근 월마트와 하청 기업들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개시했다. 그들은 소장에서 월마트와 하청 기업들이 자신들의 노동 조건과 임금 수준에 대해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아무런 처우 개선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동안 어리석을 정도로 둔감했던 미국인들의 각성은 비단 월마트에 국한되지 않는다. 뉴욕 시내에 소재한 맥도날드 등의 대형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최근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맥도날드, 웬디스, 타코벨 등의 점포에서 일하는 임시 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하는 데 힘써온 뉴욕 지역의 노조 운동 관계자들은 뉴욕시의 수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집합적으로 행동할 때 지난 수년 동안 시간당 8달러에 머물렀던 빈곤 임금을 인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임금 수준은 20여 년 전 미 연방 정부가 메긴 최저 임금에 해당하며, 전일 노동을 가정할 경우 대략 18,500달러의 임금 소득을 벌 수 있는 수준이다.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결코 절대 빈곤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수준에 해당되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에 대한 회고

    이 모든 현상들은 2011년 전개되었던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제기했던 핵심 이슈들과 맞닿아 있다. 아무리 죽어라고 일을 해도 절대 빈곤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것은 내가 못나고 잘못을 저질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는 각성, 재정 적자 감축이나 연방 정부 채무 감소 등을 핑계로 그나마 있으나마나 했던 각종 사회 보장 지출을 줄이라고 말하는 공화당과 거대 금융 기업들의 최고 경영자들 그리고 앵무새 같은 주류 언론들의 선동이, 그렇지 않아도 불평등한 미국이라는 야만적인 사회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가진 자들의 기만에 불과하다는 각성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각성의 시나리오 그대로다.

    물론 그 각성은 지극히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제대로 된 노동자정당이 없는 낙후한 미국의 정치 질서 하에서 이 각성과 투쟁 그리고 갈등은,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 폭과 세율 인상을 둘러싼 민주-공화 양당의 지리한 협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노동 계급의 이익을 조정하고 집약하며 또는 대리하는 제대로 된 정치세력이 없는 가운데 나타나는 기괴한 형태의 ‘미국에서의 계급투쟁’이 2012년 연말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미국은 지난 수년 동안 계속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국인들은 몇 년 동안 계속된 ‘스크루지의 크리스마스’에서 제대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동안 아무런 성찰없이 무식할 정도로 용감하게 미국식 체제를 모방해왔던 한국 사회는 과연 무엇을 배우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필자소개
    신희영
    뉴욕 뉴스쿨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