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청장과 한판 붙다
    [진보정치 현장] 공무원, 지역주민...관계에 대한 고민
        2012년 12월 03일 11: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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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단체의 양대 기관인 집행부와 의회의 권한은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집행부의 권한이 절대적이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의회 소속 공무원 인사권이 단체장에게 있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의회 권한이 독립적․완결적이지 못한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지역주의정치가 구조화되어 집행부와 의회가 특정 정당이 독점하고 있다면 의회는 의결․감시기관으로서의 주민 대표성을 구현하기는커녕 단체장의 보조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조건과 환경이 이러하니 의원들이 단체장에게 작심하고 대들기란 쉽지 않다. 의회가 가진 권한 중 집행부가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이 예산 심의․의결권이다. 집행부서장은 자기 부서의 예산이 원안 그대로 의결되도록 무척 노력한다. 의원들에게 예산 편성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때로는 식사와 술자리로 달래기도 한다. 이런 광경은 의회의 권한이 상당함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의회가 예산 심의․의결권은 갖지만,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은 단체장의 몫이다. 그리고 예산에 편성되지 않은 예산을 신설하거나 편성된 예산을 증액하고자 할 때는 단체장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편성된 예산에 대한 삭감권한만 지방의회가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니 엄밀히 말해 의회의 예산 심의․의결 권한도 반쪽짜리다.

    의원들도 지역구 민원이나 자신의 정치적 소신 및 유권자와의 약속에 따라 필요한 예산이 있다. 그런데 의원이 필요한 예산은 일차적으로 단체장이 예산을 편성해줘야 성립이 가능하다. 정치적 소신과 견해가 다르고, 그에 따라 유권자에게 약속한 내용이 다르다면 단체장이 의원의 예산요구를 수용하기란 만만치 않다.

    게다가 예산사정이 어려운 광역시 자치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일부 광역시 자치구에서 의원들에게도 일정 금액의 예산을 소규모 주민편익사업비 등으로 포괄적으로 배정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단체장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단체장과 의원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밀고 당기기를 반복한다.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면서도 그 힘관계는 단체장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단체장의 권한이 훨씬 강할뿐더러, 개별 의원 한명과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돌아서더라도 다른 의원들을 통한 우회로가 단체장에게는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의원은 단체장과 돌이킬 수 없는 대립을 한다면 우회할 수 있는 길이 마땅치 않다. 지역 장악력도 단체장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의회와 집행부 공무원들도 인사권을 가진 단체장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의원들 모두가 똘똘 뭉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단체장과 맞장뜨기란 쉽지 않다.

    고민 고민하다 단체장에게 시비하다

    지난 11월 대구 서구의회 임시회에서 구정질문을 통해 단체장에게 시비를 했다. 출장처리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고 장시간 대구를 벗어나 관외 출장을 다녀온 것은 무단이석에다가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시비했다. 또 새누리당 대구경북 대선후보 연설회에 다녀오고는 다른 기관을 방문한 것으로 출장 처리하면서 출장비까지 수령한 것은 공문서 위조와 횡령이라고 주장했다. 구청장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추진하는 교육 관련 사업 중 선관위 내사를 받은 행사를 지적하며 구청장의 일방적인 독주가 빚어낸 과실이라고 공격했다.

    구정질의를 하고 있는 장태수 대구 서구의원

    그리고 이 구정질문은 한겨레신문과 대구에서 발간되는 주요 일간지에 모두 실렸다. 뿐만 아니라 질문하고 답변하는 과정에서 구청장과 얼굴을 붉히고, 가시돋힌 설전을 벌였다.

    예상했던 것처럼, 아니 예상보다 훨씬 더 구청장은 화가 났다. 자신의 근무태도 전반이 태만하거나 문제가 있는 것처럼 거의 모든 지역 일간지에 보도된 것에 크게 화를 냈다. 그것은 곧 나에 대한 분노였다. 사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구정질문을 준비하면서 집행부와 의논하고 있었던 두 가지 민원 처리 상황을 살피기도 했다. 구정질문을 하고 나면 구청장이 엄청 화가 날 것이고, 나와 관련된 업무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 수도 있다고 염려했기 때문에 민원을 빨리 처리하려고 살핀 것이다. 다행히 두 가지 민원 모두 정상적인 처리 과정에 있었고, 이미 그 순간에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척되어 있었다.

    그러나 구청장의 분노는 생각 이상이었고, 곧바로 나에 대한 제재가 시작되었다. 공무원노조에 발목이 잡힌 상태에서 공무원노조의 사주를 받고 구정질문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구청장에게 부당한 청탁을 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보복성 질문을 했다는 이야기도 회자되었다. 앞으로 나와 관련된 어떤 민원과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나와 친한 공무원들은 몸을 사려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까지 귀에 들어왔다.

    관계를 배려하지 못한 아쉬움

    이런 이야기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 보복성 제재는 그것대로 닥치면서 해결할 일이다. 그런 것 때문에 할 말 못한다면 그건 의원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고, 의회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구정질문이 끝나고 시끌시끌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고민과 아쉬움, 그리고 실수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관계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스스로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쩌면 구청장에게 지적했던,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하면 일을 그르친다는 지적이 나에게 필요한 말이 아닐까하는 자성이었다.

    구정질문을 하면서 제기한 문제점은 그 자체로 지적해야 할 문제였다. 그 점은 누가 뭐래도 분명하다. 그런데 그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과 표현하는 태도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 일과 관련된 공무원들과 평소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잘 협력해왔는데, 구정질문을 통해 구청장과 맞장뜨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제기해 결과적으로 그 직원들과의 신뢰관계가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주민과의 공감과 협력, 그리고 지지가 기본이요 으뜸이지만, 한편으로 일을 하는 직원들과의 이해와 협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해와 협력을 전제로 비판하기도 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해야 실질적으로 행정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이 깨어졌음을 알아차렸고, 그것은 구정질문이라는 방식과 단정적인 표현 등이 원인이었다.

    그러니깐 구정질문이 아니라, 구청장에게 찾아가서 직접 걱정과 우려를 전하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비했어야 한다는 것이 그네들의 생각인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 그네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성할 수밖에 없었다. 구청장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구청장 취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고, 민주노동당 창당 이전에는 특정한 일로 도움도 받았던 일도 있었으며, 구청장 취임 이후 개인적으로 부탁했던 일들도 있었다.

    이런 관계였기 때문에 아마 구청장은 구정질문을 통한 문제제기와 언론을 활용해서 대대적으로 자신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에 대해 불쾌했을 것이다. 업무추진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방식에서 구청장과의 관계를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좌충우돌 속에서의 성장

    그러면서 한달여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지면으로 말하기 곤란한 생각도 선택도 떠올렸고, 주위 몇몇 분들께 드러내기도 했다. 구청장과 얼굴 붉히며 싸우고, 가시돋힌 설전을 벌이면서 언론을 통해 활약상을 드러내려고 했던 게 혹시 의회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도 되돌아봤다.

    그리고 주민들과의 공감과 협력을 쌓아가는 생활의 현장보다 공무원과 일을 도모하려는데 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즉 직업적인 정치 관료로서 생각하고 있는 건지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다시 다졌다. 좌충우돌하면서 배운다고. 추운 겨울의 시련을 나이테로 새기며 단단히 성장하는 나무처럼, 여러 영역에서 실수하고 다치면서 나의 정치도 성장하는 것이라고. 그러해야 한다고…(오늘도 좌충우돌 일기를 보내는 것이 영 찜찜하다)

    필자소개
    노동당 대구시 서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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