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계급 형성의 미스매치
    비정규 투쟁의 전략적 대안은?
    [책소개]『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략적 선택』(조돈문/ 매일노동뉴스)
        2012년 12월 01일 04: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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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 노동자들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비정규직의 차별성이 부각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와 뒤이은 경제위기가 전개되면서부터다. 노동시장 유연화 추세 속에서 사업장 단위로 정리해고가 추진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고용안정성뿐만 아니라 임금과 노동기본권의 법적 보호 측면에서도 열악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더해 고용불안정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 고용이 보편적 고용형태로 확산된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경제위기 이후 사회양극화의 핵심적 요인으로 지목되며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그간 비정규 노동자들은 엄청난 희생을 감내하며 투쟁했음에도 그 성과는 미흡했다. 비정규직의 존재조건은 개선되지 않았고 비정규직 주체형성도 진전되지 않았다. 비정규직의 확산은 노동계급의 균열을 낳았다. 이는 노동계급 계급형성의 미스매치(mismatch)로 귀결됐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미스매치’라는 규정은 다음과 같은 전제가 포함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에서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조운동은 이데올로기적 형성과 조직적 형성을 선도했다. 노동계급 계급형성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경제위기 이후 정규직 노동자들은 급격하게 보수화됐다.

    때문에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이 조직적 형성에서는 비정규직에 앞서지만 이데올로기적 형성에서는 계급형성의 미스매치 현상이 부각됐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저자는 노동계급 계급형성의 미스매치라는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비정규직 주체형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를 통해 노동계급의 내적 통합과 계급형성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국내 선행 연구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물질적 존재조건과 양극화 추세, 사회적 관계의 위계적·배제적 성격을 확인해 줬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계급균열이 극복되고, 노동계급의 통합과 계급형성 과정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로 발전되지 못했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이 책에서는 비정규직 주체형성을 어렵게 만든 변인들을 분석하고 전략적 대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해법을 제시한다.

    *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연대할 수 있을까.
    * 연대에서 적대적 관계로 가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 정규직 노동조합은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나.
    * 비정규직 주체형성은 가능할까.
    *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은 무엇을 남겼나.
    * 스페인 비정규직 정책과 노조의 전략은 성공했을까.
    * 비정규직 권리입법과 전략적 선택은 어떤 게 있나.

    이 책은 다섯 부로 구성돼 있다. 먼저 비정규직 노동자의 구성 및 실태를 살펴본다. 이어 제1부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의 계급균열과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정규직의 내적 이질성을 분석함으로써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가능성과 제약을 검토한다.

    제2부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 연대가 파기되고 적대적 관계로 전환되는 메커니즘과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를 통한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정치를 분석한 뒤 정규직 노동조합의 딜레마와 극복 가능성을 제기한다.

    제3부에서는 비정규직 주체형성의 시각에서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과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분석하고 실천적 함의를 도출한다.

    제4부에서는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비정규직 문제가 가장 심각한 스페인의 사례분석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대안들의 내용 및 성과를 검토한다. 또 사회적 행위주체들의 전략적 선택과 그 결과를 검토하며 정책적·실천적 함의를 찾는다.

    제5부에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중단기적 의제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관련법의 제·개정 방향을 제시하고 전략적 대안을 모색한다.

    ‘비정규직 주체형성과 전략적 선택’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저자는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우선, 비정규직 투쟁의 성과와 한계에 관한 대목이다. 저자는 이를 비정규직 주체형성 시각에서 분석했다. 이 책에선 비정규 노동자의 투쟁이 왜 조직력 위축과 조직 와해로 귀결됐는지 보여준다. 물론 저자는 비정규직 투쟁은 적어도 자본의 유연화 공세를 약화하거나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투쟁 과정에서 비정규직은 강경전략과 양보전략 사이에 딜레마를 겪는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정규직 내부 주체의 분열을 낳았다. 때문에 저자는 노동계급의 주체형성의 관점에서 비정규직의 투쟁 전략 목표는 당면 요구조건의 완전한 쟁취보다 조직의 보전·강화에 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런 판단은 투쟁을 이끌어 온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조합에게도 논쟁을 걸고 있다.

    비정규직 정책대안을 둘러싼 스페인의 사례분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페인 정부는 사회적 협약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스페인 정부의 노동시장 목표는 실업률과 임시직 비율을 동시에 낮추는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33회에 걸쳐 사회적 협약을 체결하며 노동시장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 비정규직 정책대안 가운데 임시직 ‘사용사유 제한여부’가 가장 큰 논란거리였다.

    스페인 노사정은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라는 규제강화와 탈규제 그리고 재규제를 되풀이하면서 타협과 갈등의 곡선을 그려왔다. 저자는 스페인 정부가 지난 20년 동안 시도한 비정규직 정책대안의 내용 및 효과를 분석하고 그 효율성을 검토한다. 왜 스페인에서는 비정규직이 감축되지 않았는지 설명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경제의 침체와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스페인 경제에도 먹구름이 드리웠고, 스페인 정부는 노동시장 탈규제 조치를 추진한다. 이에 따라 노사정 관계는 평화에서 대립과 갈등으로 전개되는데 저자는 이 과정에서 노사정의 선택과 실천적 함의를 살펴봤다.

    한국은 지난 2007년 7월1일부터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되고, 여기에는 기간제 비정규직의 사용기간 제한(2년)이 포함됐다. 기간제 비정규직의 사용기간 제한은 임시·일용직, 사내하청 노동자 등 간접고용의 증가로 이어지는 풍선효과를 불러왔다. 이런 가운데 스페인의 사례와 같이 사용사유 제한을 도입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저자는 스페인의 사례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노사정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론에서 저자는 비정규직 권리입법의 관점에서 비정규직 관련법의 재개정의 방향을 논의하되, 장기적 전략보다 중단기적 의제를 중심으로 제안한다. 비정규직 권리입법 방향에 대한 주요 정당들의 입장을 분석하고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사항을 점검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비정규직법 재개정 방향을 둘러싸고 진보정당들과 민주통합당으로 구성되는 규제강화 블록과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한 탈규제블록이 대립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총선거 당시 시행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공개질의서와 각 정당들의 답변서가 정치지형 분석의 준거가 됐다.(공개질의서에 대한 각 정당 답변서, 443∼468페이지)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고려사항을 제안했다.

    첫째, 기간제 비정규 노동에 국한된 규제강화(기간제한)는 간접고용 확대라는 풍선효과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전반에 대한 사용사유 제한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고도로 전문적인 직무들을 대상으로 특정 사용사유를 충족시킬 경우에 한해 파견노동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저자는 파견노동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일부 중간계급 정체성의 자발적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한 여타 파견노동을 실질적으로 소멸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파견법 폐지 구호의 유보는 간접고용 전반에 대한 규제강화를 실현할 힘과 명분을 강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셋째, 정규직 이기주의와 정규직-비정규직 관계의 적대성 강화 추세를 억압하기 위해서는 고용보험제를 확충해 계급내적 적대성의 구조적 조건을 해소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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