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요와 목적에 의한 얘기만 나눠
    [메모리딩의 힘-10] 아이와의 일상 교감이 중요
        2012년 11월 24일 04: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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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적인 독서 프로그램인 줄 알았어요

    윤정희 어머니는 시민단체 일을 하면서 잦은 야근과 바쁜 일상으로 아이들의 생활을 잘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6학년과 3학년 형제를 두고 있는데, 형은 만화책만 읽는다. <맹꽁이 서당>만 몇 년째 읽어 왔다. 책을 사달라고 했지만, 번번이 사주지 못하고 있어서 만화책만 반복해서 읽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100권 읽기를 하고 있어서 스티커 받는 재미로 책읽기에 재미가 붙었다고 한다.

    3학년 동생은 한 번 본 책은 절대로 다시 안 읽는 아이로 약간의 고집이 있다. 하지만 책의 내용에 대해서 물으면 곧잘 대답을 잘 한다. 둘째 아이와는 스마트폰에 대해서 갈등이 많았다. 형처럼 절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압수하거나 냉장고 위에 올려놓는 등 스마트폰을 하지 못하게 하는 과정에서 둘째와 다투는 경우가 많다.

    윤정희 어머니는 독서 프로그램에 대해서 약간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과제 제출을 잘 안 하고 소극적이었다. 형식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엄마 사용법>에 대해서 첫째 아이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엄마 생명 장난감이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서 굉장히 기분 나빠 했고, 엄마 장난감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사면 어떻게 되는지, 엄마 장난감을 산 현수는 도대체 누가 낳았는지 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인상적으로 고른 구절도 엄마에 대한 부분은 아니었다. 주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해 지붕 위로 도망가서 살고 있는 고릴라를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같이 놀고 싶어서 친구가 되자는 뜻이잖아”라는 구절은 고릴라가 친구가 되자는 표현을 못해서 불쌍했기 때문에 꼽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엄마 장난감>이 진짜 엄마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의 전개에 대해서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그것은 장난감이나 가전 제품이지 엄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아이가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느꼈다. <엄마 사용법>에는 엄마와 관련된 구절이 많이 있는데, 대개 엄마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엄마 관련 구절을 선택했고, 엄마 이외의 다른 것에 관심을 나타낸 친구는 애착이 어느 정도 채워져서 다른 주제로 넘어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애착이 강한 아이

    인터뷰 놀이에서도 아이의 엄마에 대한 애착은 계속 되었는데, 놀이를 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며 쓰레기를 치우고 깨끗이 정리해서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엄마와 하는 놀이나 작업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인터뷰 놀이에서 엄마에게 질문하는 내용이 있는데, 아이가 쓴 질문은 “엄마는 나 학교 가고 나서 몇 시에 나가?”와 “엄마는 무슨 일을 해?” 였다. 윤정희 어머니는 인터뷰 놀이를 하면서 아이와 일상에 대해서 공유를 안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이와 주고 받는 대화는 필요나 목적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었다.

    윤정희 어머니가 하는 일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를 하자 아이는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아, 그렇구나!” 하면서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한 달 정도 경과하고 나서부터는 윤정희 어머니의 가족에 생활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밤에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분위기가 생겼다. 아이들에게 팔베개를 해서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책을 가지고 여러 가지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큰아이가 뚜렷한 관점을 가지고 만화책을 읽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큰 아이가 쓴 나의 100점 책은 모두 만화책이었지만, 좋은 만화책의 이유와 나쁜 만화책의 이유가 뚜렷했다. 수십번 넘게 보았다는 <맹꽁이 서당>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내용이지만 그래픽이 우리 아이들이 보기에 좋지 않고 편마다 연결이 안 돼 감점시켰다”고 썼다. 엄마는 아이가 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지 알게 되어서 참 뿌듯하다고 썼고, 아이는 “그치? 나도 재밌었어.”라고 답변했다.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적극성을 띠었다. <엄마 사용법>으로 25칸 빙고게임을 하자, 이번에는 큰 아이가 좋아하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읽고 25칸 빙고게임을 한 번 더 했다. 그리고 다음날 또 빙고게임을 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이들이다. (시험때문에 하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고집이 센 대신 지적 능력이 상당했다.

    첫째는 전문가 못지 않은 비평 능력이 있었고, 둘째는 기억력이 비상할 뿐만 아니라 집중력이 강했다. <엄마 사용법>을 한 번 읽었을 뿐인데, 읽을 때 구석구석 의미를 이해하면서 정독을 했기 때문에 빙고게임에서도 디테일하게 단어를 잘 생각해냈고, 상황을 잘 표현했다.

    엄마들의 열정에 마음이 열리다

    윤정희 어머니가 마음을 연 것은 다른 어머니에게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어머니들은 준비된 프로그램에 맞게 아이들과 재미있게 독서활동을 하고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기 때문에 발표 시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게 윤정희 어머니의 마음을 움직였다.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서 감정이 흐르르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확인한 점도 주효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책은 없듯,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강의도 없다. 이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아이와 책으로 놀고 싶고 열정도 있는데, 방법을 몰라서 애를 태우는 엄마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나는 이런 수강생을 “2% 부족한 수강생”이라고 표현한다. 내 강의가 모든 것을 채워줄 수도 없고 채워줘서도 안 된다. 자기 품이 들어가지 않은 모든 행위는 자신이 이룬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이다. 2% 부족한 엄마들이 강좌에 얼마나 있는지가 전체 수강생의 강의 만족도를 좌우한다.

    다행히 수강생 엄마 중에서 열정적인 엄마들이 절반을 넘었다. 소개한 독서놀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아이와 재밌게 놀고 나서 그 효과를 상세히 설명한 엄마도 있었고, 아이를 독서놀이에 빠지게 하기 위해서 기회를 주시하고 여러 가지 제안을 하면서 시도를 하는 엄마도 있었고, 독서놀이를 통해서 자신이 이제까지 했던 교육 방법을 반성하는 엄마도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수업에 비교적 덜 열정을 보이는 엄마들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윤정희 엄마도 이런 열정적인 엄마들의 독서 활동 이야기를 통해서 큰 자극을 받았다.

    독서놀이 강의는 일종의 감기약과 같다. 감기약은 우리 몸에 있는 감기를 없애주지 못한다. 다만 우리 몸이 감기 바이러스를 상대할 수 있도록 특정한 기능을 자극해줄 뿐이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 머무를 때 기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강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수강생과 효과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고, 강의 만족도도 훨씬 좋아질 수 있다. 6주간의 강의를 하면서 엄마들이 효과를 보고 만족을 느낀 것은 출석률로도 확인할 수 있다. 강의 말미에는 수강생들이 줄어드는데, 독서놀이 강의에서는 오히려 중간에 2명의 엄마들이 참여하는 등 오히려 수강생이 늘어났다.

    아이들과 책으로 다시 친해지다

    아이들과 책으로 놀면서 윤정희 어머니는 지금까지 채워지지 못하는 것들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서로 놀고 소통하는 과정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런 과정을 늦게라도 하면서 서로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윤정희 어머니가 좋았던 것은 처음에 걱정했던 것이 걱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화책을 자주 보기 때문에 뭔가 도움이 될까 했지만, 만화책을 고르는 기준이 뛰어나서 이제는 아이가 어떤 책을 읽더라도 믿음이 생겼다는 점이 기쁘다고 한다.

    윤정희 어머니가 아이들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 걱정이 많았던 이유는 아이들이 어떤 책을 재미있어 하고, 어떻게 읽고, 읽는 수준은 어떤지 등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잘 몰랐기 때문이다. 독서활동과 각종 놀이를 통해서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되고, 궁금한 것을 이야기해주고, 책에 대해서 취향과 기준 등을 알게 되자 걱정은 자랑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윤정희 어머니가 아이에 대해서 자신의 생활에 대해서 성찰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밖에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과 동년배의 친구를 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몰랐던 것이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된 것이 변화를 이끌어냈다.

    엄마가 마음을 열고 아이들에게 다가가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어줄 준비가 다 돼 있다.

    윤정희 엄마와 독서프로그램을 하면서 새삼스럽게 느낀 점은 아이와의 일상을 교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아이들과 엄마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 계기는 ‘인터뷰 놀이’를 통해서였다. 놀이를 처음 만들 때 인터뷰 놀이와 칭찬놀이를 0단계, 즉 모든 단계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단계로 설정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만나게 되어 나도 참 행복한 경험이 되었다.

    필자소개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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