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 만평 '수염난 여성' 유감
실재하는 젠더 다양성에 가해지는 폭력들
By 토리
    2012년 11월 23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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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히 거의 같은 시기에 비슷한 주제의 두 칼럼 글이 왔다. 여성성에 대한 사회적 폭력과 차별적 언어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고, 그 비판에서 진보진영도 전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토리씨의 논지와 유사한 칼럼 글을 이라영씨도 전해왔다. 같은 날 동시에 두 글을 싣는다. 두 글을 서로 링크한다. 이라영씨의 글은 여기.<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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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의 이창우 만평 <수염난 여성>를 읽은 것은 공교롭게도 ‘수염난 여자(?)’였던 한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의 가는 길을 추모하고 발인하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추모 자리에 모이고 발인을 함께한 이들 또한 트랜스젠더가 많았고, 이창우가 그렸던 소위 ‘수염난 여자(?)’에 가까운 이들이었다.

온 생애 여자/남자로 인정받기보다 그 규범들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애쓰고 떠난 그 트랜스젠더 인권활동가가 이 만평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지 씁슬해졌다.

아마도 이창우 만평은 박근혜를 비방한다는 명목으로 현재 회자되는 온갖 여성/젠더 혐오/풍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보진영이 다른 진영보다 대단한 젠더 다양성 공존 환경을 갖추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보진영에서도 박근혜 비방을 위해 거리낌없이 여성/젠더 혐오/풍자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는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레디앙 만평 '수염난 여자'

아마도 이창우는 ‘수염난 여자’는 여성이라 볼 수 없고 혐오/풍자/비하할 수 있는 대상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의 머리 속에서 남성/여성은 생물학적 외양으로 분명히 구분이 가는 것이며 수염이 나거나 나지 않거나 등도 중요한 척도일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물학적 외양에 들어맞지 않는 경우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생물학적 외양은 자연적인 거라기보다 사회적으로 구성되거나, 그마저도 항상 규범에 맞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규범에 벗어난 사람들은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축출당했고 고립되어 왔다.

100년 전만 해도 남성에게는 수염이 상징이었고 수염 깎은 남성은 (내시와 같은)비남성으로 상징되었었다. 수염난 여성은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 있을 법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 수염이 자라 괴로워하거나 부끄러워했던 여학생들은 매우 흔하게 접한다. 이후 성인이 되어 미용술로 수염을 깎거나 감출 뿐이며, 그마저도 하지 않는 성인들도 많다. (그게 뭐가 어때서?)

더 근본적으로는 남성호르몬을 통해 수염을 갈망하는 경우들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이창우는 박근혜가 수염을 깎는 장면을 통해 박근혜의 남성성을 수염으로 상징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남성성이 있는 생물학적 여성이 문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수염이 과연 남성성을 상징할 수 있는지, 과연 한 개인에게 수염이 남/수염이 나지 않음이 부끄러움과 비하의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았을지 의문이다.

비단 이창우 뿐만 아니라 대부분 현재 박근혜의 여성 여부를 문제삼는 논의들이 이러한 생물학적 여성의 상징들을 박근혜가 갖추고 있는지를 문제삼고 있다.

‘생식기만 여성이다’는 황상민의 발언도 대표적이다. 아마도 박근혜 쪽에서는 ‘뻔히 여성인 박근혜를 더러 생식기만 여성’이라며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생식기만 여성인 경우를 문제삼고 있는 것 자체가 트랜스젠더 등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고 있지 않는 발언이다. 여성이면 ‘생식기만 여성이다’라는 말을 당연하게 퍼부을 수 있다고 여기는 그 여성혐오도 놀랍긴 매한가지이다.

임신, 출산, 육아의 경험이 없으면 여성이라고 볼 수 없다는 민주당 쪽 레토릭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박근혜가 ‘여성 여부’가 아니다라는 발언들을 모아보면 한국 사회에서 협소하기 그지 없는 ‘여성의 기준/척도’가 그렇게 잘 드러날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해당 ‘여성의 기준/척도’에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폭력과 혐오이다.

본 글에서 박근혜를 둘러싼 여성대통령 논의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주제를 벗어난 거라 생략하기로 한다. 그에 관해서는 이미 레디앙에 실린 칼럼<박근혜, 안티그네, 안티고네>에서 잘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박근혜가 여성이 아니라고 기를 쓰고 말을 하는 (여성을 포함한) 남성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조금 더 여성스럽거나 젠더 규범에 벗어난 듯한 남성들더러 ‘남성이 아니다’ ‘남성의 대표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을 그리 쉽게 할 수 있는지. 혹은 왜 척도에 걸맞는 여성만이 여성의 대표가 될 수 있다면 남성의 대표는 과연 누구인 건지. 박근혜에 대한 알레르기적 반응보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심화시키는 게 이후 한국 정치, 혹은 진보정치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필자소개
LGBT 인권운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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