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은 보호소에, 임금은 체불돼
    ...이주노동자의 서글픈 현실
    [이주의 시대, 평등한 권리]체불임금도 못받고 쫓겨나
        2012년 11월 22일 04: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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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출입국사무소 화성보호소에서 보호 받고 있는 베트남인 노동자 3명이 나에게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찾아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이들은 모두 미등록 체류자인데, 두 명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양주출입국사무소의 직원에게 단속을 당했고 나머지 한 명은 수원출입국사무소 직원에게 단속을 당한 것이다. 하소연 할 데가 없는 3명이 나에게 번갈아가며 연락해오니 별로 도와줄 게 없는 내 입장도 매우 난처하고 힘들다.

    “누나! 빨리 돈을 받아 베트남에 돌아가고 싶어요. 여기 너무 힘들어요. 회사에 좀 독촉 좀 해주세요.”라고 계속 나에게 매달린다. 그렇지만 나로서도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주지 않고 버티는 사업주에게 돈을 받아낼 뾰족한 방법은 없다.

    이들 중 한 ‘탄’이라는 친구는 보호소 측에서 자신의 옷가방을 주지 않아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속옷을 갈아입지 못해 병이 날까 걱정하고, 또 보호소의 수용복도 일주일동안 한 벌만 계속 입어야 해서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잘 먹지 못하는 김치만으로 밥을 먹어야 해서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노동부의 사업장 변경 금지 지침에 항의하는 이주노동자(레디앙 자료사진)

    이 친구가 미등록 체류자가 되어 결국 보호소로 잡혀 오게 된 사연은 어찌 보면 현재 고용허가제 하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례 중 하나이다. 한국에 온 지 1년 반 남짓된 이 친구는 처음에 충북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채 두 달이 되기도 전에 상급자에게 폭행을 당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반격했지만 한국말을 할 줄 몰라 자기 입장을 회사측에 항변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사업장 변경을 해달라고 회사측에 요청했지만 사업주는 동의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외국인노동자는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사업주가 동의해줘야 가능하고 사업주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계속 참고 일하든지 아니면 체류자격 박탈이 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여 한국에서 살게 된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탄’이라는 친구는 아는 사람이 없고 이주노동자지원센터와 같은 지원기관도 몰라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다. 결국 그 회사에서는 더 이상 참고 일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한국에 올 때 입국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진 빚을 갚을 길이 없어 결국은 본의 아니게 미등록 체류자로 살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는, 운이 나쁘게도 한국에 온 지 1년 3개월이 된 무렵에 단속되었다. “몸이 아파서 밤에 다른 사람들이 잠을 못 잘 정도로 계속 기침을 해요.”라고 호소하는 이 친구가 보호소의 힘든 나날을 견딜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속 직전 근무하던 회사에서 밀린 임금 1개월 반치와 근무기간 1년 3개월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받을 희망으로 벼티는 것이다.

    그런데 사업주는 전화를 받지 않고 다른 직원이 받는데 아직 수금을 못했다는 핑계로 계속 약속만 했다. 내가 매일 두 세 번씩 전화해도 늘 같은 답변이다.

    체불임금 문제를 진정하려면 본인이 직접 노동청에 찾아가야 하는데 보호소에 있으니 찾아갈 수 없다. 보호소에서 일주일 한 번 방문하여 상담해주는 고용노동부에 속하는 노무사가 있기는 하지만, 이 노무사에게 의뢰하더라도 처리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노동청에 진정하게 되면 10일 내에 근로감독관은 사실 확인을 위해 우편이나 문자로 사업주와 노동자에게 출석 요구를 하는데 사업주가 출석을 계속 거부하면 또 다시 업무처리기간을 연장하여 출석을 요구한다.

    사업주가 출석한다 해도 줄 돈이 없다고 버티면 노동자는 임금을 받지 못한다. 특히 보호소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에는 사업주가 계속 시간을 끌면 노동자가 지쳐서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미등록 체류자이기 때문에 민사 소송을 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사업주가 일부러 임금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의 경우에도 보호소에서 3주 동안 매일 사업주에게 전화해 돈을 달라고 했지만 사업주가 주지 않아 나중에 노무사에게 의뢰했지만 더 이상 감옥살이 같은 보호소 생활을 견디지 못해 끝내 470만원을 포기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연락해온 나머지 다른 미등록 체류노동자 2명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한 명은 4년간 의 퇴직금을 못받았다. 4년 동안 일을 했지만 미등록 체류자니까 사업주가 통장으로 월급을 입금하지 않고 현금으로 주었으니 진정할 수 있는 서류가 아무것도 없다.

    사업주에게 연락했지만 줄 생각이 없으니 진정하라고 했다. 진정하면 또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돈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보장도 없으니 결국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한 명은 400만원의 임금을 못 받았는데 사업주에게 계속 전화해 한 달만에 100만원만 받고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미등록체류자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인권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단속이 된 이상 가능한 한 빨리 귀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노동자에게도 좋고, 한국 정부로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보호소에 있는 미등록 체류 노동자의 조기 귀국을 가로막는 체불임금 문제는 관할 노동청의 느린 행정 처리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출입국 사무소 차원에서라도 적극 해결을 돕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사업주에게 벌금을 부과할 때 체불 임금 여부도 조사하여 벌금과 같이 징수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사업장 변경 시 꼭 사업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관련 법을 하루속히 개선하여야 하며 사업주의 일방적인 이탈신고로 불법 체류자가 된 경우나 사업주의 인권 침해로 사업장을 이탈한 경우 등 부당하게 미등록체류자가 된 이주 노동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고 구제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필자소개
    이주인권활동가. 베트남 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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