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의 마음치유 이야기-10
    "내 안의 상처 입은 어린 아이"
        2012년 11월 20일 03: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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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꿨나보다. 눈을 떴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꿈 속에서 뭔가 힘들었었나보다. 벌떡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누워 다시 꿈을 기억해본다.

    꿈에서 난 어느 모임에 간 듯하다. 모임에서 왠지 궁금한 마음에 집에 전화를 건 것 같다. 계속 전화벨은 울리는데 아무도 받지 않는다. 걱정이 된다. 무슨 일이 생겼나? 언니에게 전활 걸어본다. 한참 후에 전화를 받은 언니가 엄마 아빠가 크게 싸웠노라고 한다. 그 목소리에 두려움이 묻어져 나와 꿈인데도 가슴이 쿵 한다.

    어릴 적 내 기억 속에는 엄마가 일방적으로 화내고 짜증을 내곤 하셨지, 무던하고 조용한 아버진 그다지 엄마의 반응에 대응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두 분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무조건 엄마의 속상한 목소리가 울려나왔고 그래서 다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기억해보면 예민한 엄마 때문에 힘드셨을 아버지, 지금은 이미 돌아가셔서 그 마음을 다독거릴 수도 없는 아버지. 현실에서는 두 분이 소리 내어 싸우는 걸 본 기억이 없는데 꿈속에서는 항상 싸우셨던 것처럼 느껴진다. 걱정이 되고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조바심난다.

    ‘이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미 내 삶을 책임지고 사는데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이 막막한 무기력은 또 뭘까 ?’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한 참을 이불속에서 웅크리고 누워 뒤척거리다 일어난 아침이었다.

    어릴 적엔 누구나 부모에게 나를 온전히 내어놓고 맡겨버리게 된다. 홀딱 벗고 세상에 태어난 어린아이, 믿을 거라곤 나를 안아주고 먹여주고 키워주는 부모님밖에 없다.

    부모님이 날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내 속사정을 이해하고는 있는지, 내가 그네들에게 귀한 존재이기는 한 건지, 살피고 확인하게 된다. 게다가 부모님의 상황 또한 내 식으로 받아들여 오해하기도 하고 추측하기도 하고 혼자 힘겨워하기도 한다.

    그런 어린아이가 다 큰 어른 속에도 꼭꼭 숨어있어 불쑥 불쑥 내 감정을 좌우하기도 하고 삶 밖으로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치유를 할 때 ‘상처 입은 내면의 어린아이’를 잘 돌봐주라고 ‘그 아이와 친하게 지내’라는 이야길 하곤 한다.

    어렸을 때 받았던 마음의 상처로 방황하는 이들를 다룬 영화 '가족'

    내가 공부하고 있는 아리랑풀이연구소에서는 5박6일 집중 그룹상담 프로그램이 상시 열리곤 한다. 상한 감정을 풀어내어 생기 넘치는 삶을 신바람 나게 살게 하는 심리 프로그램이다.

    그 때 만난 얼굴들 중 내면의 어린아이가 불쑥 불쑥 삶 속에 나타나 힘들어 하던 기억나는 얼굴이 있다.

    그는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어느 지역의 큰 교회에서 일하는 담임목사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 시댁의 권유로 재가하신 어머니, 그리고 남겨진 자신과 여동생은 큰아버님 댁에서 맡아 길러주셨단다.

    작은 소읍, 큰댁 형편도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늘어난 식구 때문인지 큰아버님과 큰어머님은 항상 어두운 얼굴이셨단다. 어린 여동생은 별 어려움 없이 잘 지내는데 자신은 먹는 밥도 눈치 보이고 학교 다니는 것도 눈치 보이고 사방이 좌불안석이었단다.

    그러다 맘 붙인 곳이 교회. 교회만 가면 자신도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떳떳하고 그래서 신이 나곤 했단다. 교회에서 그를 영리하게 보고 계속 장학금을 줘서 어려운 형편인데도 대학공부를 하게 되었고 유학을 떠나 학위를 받고 돌아와 큰 교회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참 잘 자란 사람이고 자신은 항상 감사하며 사랑과 용서를 베풀며 살라고 말하는 사람인데 사실 그이 마음속에는 어릴 적 큰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가득차서 큰아버지 같아 보이는 교인만 보면 괜히 화가 나도 밉고 남모르게 때려주고도 싶어 그 마음이 자신을 지옥으로 만들곤 한단다.

    처음엔 거룩한 목소리로 별 거 아니라는 듯이 고백하던 그이가 나중에 감정이 들어가니까 어릴 적 자신이 불쌍하고 억울해서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다. 한 참을 토해내던 그에게 둥글게 모여 있는 사람 중 가장 큰아버지를 닮은 이를 고르게 하여 마주 보고 앉았다.

    큰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길 하라고 하자 한참을 울먹이고 노려보던 그이가 ‘왜 그랬어? 길에서 내가 인사를 해도 아는 척도 안하고 나를 왜 사람취급 안했어? 내가 우리 아버지를 죽였어? 내가 우리 어머니를 나가게 했어? 나도 우리 부모 밑에서 사랑 받으며 살고 싶었어. 당신 때문에 힘들어. 미워. 나가 죽어버려’ 소리를 지르고 분노를 내 뿜었다.

    큰아버지가 된 사람이 묵묵히 그 이야길 다 들어주고는 큰아버지가 되어 나지막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나도 힘들었단다. 내 식구 먹여 살리기도 버거운데 갑자기 내 책임이 된 조카 녀석들이 나도 부담스러웠단다. 네가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줄걸, 그 때는 내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버티기도 어려웠단다.’ 라고 말하자 그이의 울음소리가 더 격해졌다. 그걸 바라보는 그룹원도 같이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울던 그이가 울음이 잦아들자 ‘크고 거대해보였던 큰아버지가 지금은 자기보다 훨씬 작은 몸짓의 노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면 큰아버지에게 한 번도 자기 마음을 보인 적이 없었노라고.’

    ‘이 과정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꼭 큰아버지를 찾아뵙고 어릴 적 섭섭했던 마음도 내보이고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던 말, 키워줘서 고맙다는 마음도 표현하겠다.’고 이야기하며 자기 속에 이런 마음이 숨어있는 줄은 생각도 못해보았다고 깜짝 놀라했다.

    엉켜있던 마음 속 감정을 내어놓고 나면 어디에선지 모르게 힘이 생겨나 어찌해야 할지 모르던 것들의 방법을 알게 된다. 상황은 바뀌지 않지만 상황을 대처하는 지혜가 새록새록 생겨난다. 그 누구의 조언보다도 내 속에서 울려나오는 이야기가 가장 빠르게 날 변화시킨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어릴 적 내가 보물처럼 숨겨져 있다.

    그 아이를 불러내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도닥거려주면 오히려 내가 너무 아파 밀어놓았던 상처 입은 어린 내가 다시 나에게 힘을 준다. 나를 위로해주고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그 아이를 혼자 만나기 힘들면 편한 사람을 찾아가 기대어도 좋고 어린아이처럼 울며 징징거려도 좋다. 내가 나를 위로해주면 내 속에서 빗겨나 춥고 외로웠던 내 내면의 어린아이가 오히려 나를 도닥거려주게다. ‘힘내라고, 네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 줄 아느냐’고 ‘어려움 속에서 버텨내고 이겨낸 사람도 바로 너고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사람도 바로 너 자신이라고’ 내 어깨를 두들겨줄 게다.

    꿈에서라도 내 어릴 적 나를 만나게 되면 피하지 말고 반갑다고, 친하게 지내자고 용기 내어 손 내밀어 보자. 내 손으로 내 가슴을 토닥토닥 다독거려주자. 가끔은 혼자 말로 ‘너 참 장하고 또 멋져’ 그 아이에게 쑥스럽더라도 고백해보자.

    필자소개
    이수경
    홀트아동복지회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아리랑풀이연구소 그룹 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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