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법운동 당사자 상의없이 베껴 발의
    [법안 베끼기 관행 왜 문제인가②] 발의 수보다 법안 질을 중시해야
        2012년 11월 19일 04: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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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안 베끼기 관행에 대한 첫번째 기사 ‘실적경쟁만 난무…입법의지는 없어‘기사는 여기를<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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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째 사례: 통합진보당 차별금지법 발의 과정

    김수정씨가 겪은 일과는 다른 사례도 있다. 김씨의 법안은 최대한 언론에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추진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번 사례는 전 사회적인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법이었다.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은 17대 국회에서 당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발의한 법안으로 정부에서도 같은 이름의 법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임기만료폐지됐다. 다시 18대때 같은 당 권영길 의원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제정연대)’가 수정한 내용을 발의했지만 또다시 임기만료폐지된 법안이다.

    그런데 11월 4일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권영길 의원의 안을 그대로 베껴 발의했다. 문제는 김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김 의원이 해당 상임위(법제사법위/ 관련 상임위 국회운영위)가 아닐뿐더러, 공동발의자 9명 중에서도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왔던 제정연대와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발의됐다는 점이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의 평등이념을 실현하자는 인권기본법이자 포괄적 차별금지를 실현하는 실체법으로 발생하고 있는 모든 차별의 행위를 담아 그것을 방지코자 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입법 주체자가 내용을 곡해 하지 않고 포괄법인 만큼 단 하나의 누락 없이 법률로 담기 위해는서 차별당사자의 의견 청취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제정연대는 17대 국회 노회찬 의원의 안을 다시 첨삭하는 과정을 통해 18대 권영길 의원안에 반영시켰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은 그러한 과정 하나 없이 권영길 의원의 안을 그대로 베꼈다. 비용추계미첨부 사유마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이 상황은 현재 경남도지사 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권영길 의원실에서 해당 법안을 담당했던 보좌관도 모르는 상황이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된 제정연대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입법을 추진해왔던 당사자들과 단 한번의 소통없이 발의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진보정당의 입법안으로 실적올리기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법안 발의하고도 입법 배경 과정 전혀 모르고 있어

    이에 김재연 의원실의 김배곤 보좌관은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해당 법안은 지난 18대때도 이미 당에서 제출했던 것이라 다시 발의한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제정연대 측이 당혹스러워 한다는 지적에 대해 “그 이야기 처음 들었다. 향후에라도 말씀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연 의원이 상임소관위가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 “상임 소관이 아니더라도 관심있는 분야이기에 발의한 것이다. 의총에서도 김재연 의원이 발의하면 좋겠다고 했고, 정책실에서도 전략적으로 추진할 법안이라 발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법안 발의 과정에서 입법추진 당사자들과 논의했어야 됐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관련해서 그런 지적을 직접 듣지 못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법안을 발의하면서 제정연대측이 추진해왔던 것은 인지하지 못했다. 만약 공식적으로 문제제기 한다면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한 장면(사진=제정연대)

    하지만 통합진보당 최기영 정책기획실장의 설명은 다소 달랐다. 김재연 의원실에서 먼저 과거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않은 법률안 중 <차별금지법> 발의를 요청해 정책위에서 입법검토의견을 통해 당론에 부합한다고 판단해 의총에 회부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의를 추진했던 주체가 당 정책실인지 김재연 의원실인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제정연대 등의 요청으로 발의한 것은 아니라는 건 명확했다.

    최기영 정책기획실장은 “의총을 통해 당론 발의하는데 여력이 된다면 (지난 회기 때 폐기된 법안을) 재발의한다”며 “김재연 의원실이 과거 전후 과정을 몰랐기에 검토하지 않은 건 미숙했다고 본다. 하지만 앞으로 함께 해야 할 문제이지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진보정의당 핑계와 대선 핑계만 하는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이 법사위 등 해당 상임위가 아니라는 지적에 최 실장은 “분당전이었다면 서기호 의원이 발의하는 것이 당연한 진보정당의 절차적 과정이었다”며 소관 상임위 문제는 진보정의당의 잘못으로 돌렸다.

    통합진보당 내에 해당 소관 의원이 없더라도 공동발의에 참여한 민주통합당의 임수경, 장하나, 김광진 의원도 담당 상임위가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는 “여러 의원들이 동일 법안이나 유사법안을 제출할 것이라 보고, 해당 상임위에서 통과되기 위해 민주당이나 정의당에 계신 분들과도 논의하며 대체입법이 통과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고 답변했다.

    최기영 실장은 당사자와 소통 없이 진행한 점에 대해서는 “추후 공청회 등 함께 논의하면서 풀어나갈 문제”라며 “노동관련 법률도 상당히 많이 재발의했지만 민주노총이나 관련 단체랑 공청회, 토론회는 못하고 있다. 노회찬 의원도 보면 아시겠지만 결선투표제 하나만 공청회 하는 정도이지 대선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체계적으로 진행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소관 상임위 문제는 진보정의당의 분당으로, 당사자와 청취하지 못한 문제는 대선 시기를 핑계하는 답변 일색이었다.

    제정연대 측 “그간 입법 추진활동 했던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들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조혜인 변호사는 통합진보당의 재발의를 두고 “굉장히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활동해왔던 조 변호사는 “차별금지법 위상이나 취지가 인권과 차별전반을 다루는 인권기본법인데 이러한 위상과 취지를 비추었을 때, 어떤 개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발의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 의견을 깊이 소통하고 수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런 것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김재연 의원을 포함한 공동발의자 중 국회운영위나 법사위 소속 의원이 한 명도 없다.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발의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이 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김재연 의원실에 발의 과정의 구체적 경위와 법안에 대한 이해, 입법의지와 계획 등에 대해 질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조 변호사는 법안 베끼기 관행에 대한 문제점으로 “법이라는 것, 특히 차별금지법의 경우 시민사회단체들의 중지를 모아 만들었고 제정 과정에서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많은 의견을 담을 것인가 고민했던 건데 아무런 소통 없이, 그리고 어떻게 추진할지에 대한 고민도 없이 발의한 것은 그간 입법 운동을 해왔던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차별금지법>은 국가적으로 인권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법이고 통과되어야 할 법을 어떻게 제정하겠다는지 전략 없이 발의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안 베끼기의 가장 큰 문제, 입법 자체가 무산될 수 있어

    통합진보당의 최기영 정책기획실장은 <차별금지법>을 발의함에 있어 소관 상임위 의원을 염두하지 않는 등 전략이 전무한 것에 대해 다른 의원들의 동일 법안이나 유사법안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그를 통해 대체입법도 기대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같은 회기 내 동일법안을 제출할 수 없다. 유사법안 제출을 기대하는 경우도 가장 최적의 법률안과 그보다 질이 떨어진 법안과의 경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차별금지법>의 경우 인권이라는 부분이 양보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유사법안과의 경쟁은 단 하나의 차별 금지 문구라도 누락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이 대체입법을 먼저 염두한다는 것은 최적의 법률안을 가지고 최고의 결과를 도출할 의무를 미리부터 방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무책임한 태도이다.

    만약 해당 법률이 회기 내 부결된다면 다음 회기에 상정하면 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해당 법안이 계속 계류폐기 임기만료폐기되는 경우이다. 국회의원의 입법의지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아무런 전략없이 발의된 법안을 살리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법안 발의자가 아닌 소속 상임위원회 국회의원을 설득해야 하는 과정에 놓인다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될 시 본인의 공이 아닌 대표발의자의 공으로 갈 법안을 자기 법안처럼 나설 국회의원을 설득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법안 발의는 발의 시기, 전략 등의 계획을 세우지 않고 특히 당사자들과의 의견청취를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한다면 소관위에 접수만 되거나 심사까지만 거친 채 임기만료 폐기 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법안 베끼기 관행은 법안의 공익적 특수성을 고려해 ‘표절’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세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실적 경쟁으로 치닫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심사숙고해야 할 관행이다.

    이번에 전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투표시간 연장법>을 발의한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실에 황두영 보좌관은 “법안 발의가 국회의원의 기본 역할인데 이를 단순히 양적으로만 평가하다보니 묻지마 베끼기가 많아졌다”며 “투표시간 연장처럼 오랫동안 논의됐던 법안을 다시 발의할 수 있지만 시민사회와 협력해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민주통합당 김상희 의원의 이재호 보좌관도 “그간 국회의원, 특히 초선의원을 중심으로 실적 보여주기 식의 법안발의에 몰두한 나머지, 보좌관들로 하여금 부도덕한 법안베끼기를 사실상 강요해온 측면이 있었다”라며 “시민사회단체도 이젠 법안 발의 갯수 보다는 법안의 질적 측면을 검증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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