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적 경쟁만 난무…입법의지 없어
    [법안 베끼기 관행 왜 문제인가①] 실적 올리는 생색내기용 많아
        2012년 11월 19일 04: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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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안 베끼기 관행에 대한  기사를 2번에 나눠 게재한다. 첫째 기사의 사례에는 법률의 취약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어 부득이 해당 의원의 실명과 법안명은 거론하지 않는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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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안 베끼기 관행은 오래된 전통(?)이다. 19대 국회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7월 민주통합당의 이상민 의원이 18대때 새누리당 조윤선 의원이 발의했다가 이미 폐기된 법안을 마치 본인의 아이디어인 것인양 재발의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관행은 지금까지 쭉 있어왔던지라 이 의원이 다소 억울할 수는 있어도 자당도 아니고 경쟁 여당의 법안을 베낀것은 모양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폐기된 법률의 자구를 조금 바꾸거나 숫자 하나만 고쳐 재발의하는 것은 그나마 양반이다. 이런 경우 해당 법안을 조금 더 현대화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올리는 경우도 있어 오히려 국민들 입장에서 이득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개는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 큰 문제는 해당 법안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이 그저 ‘실적용’ 법안으로 생색내기용으로 끝나버린는 것이다.

    물론 꼭 통과된다면 좋은 법이 단순히 지난 국회에서 폐기됐다는 이유로 재발의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그를 위해 자당 법안을 재발의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할 수 없다. 경쟁 정당의 법안을 베끼는 것은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입법의지도 전혀 없는 의원이 해당 법률을 단순히 발의만 한 채 방기해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은 큰 문제점이다.

    기사에서 다루는 첫 번째 사례는 법률이 미비한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가 법의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지속되게 됐으며, 두 번째 사례는 특정 법률을 입법추진했던 당사자들과 논의없이 일방적으로 재발의해 법안이 사장될 것이 우려되는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사례.
    법안 베껴 발의만 하고 처리 결과 확인도 안 해

    18대 국회에서 의원보좌관으로 일하다 현재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김수정(가명)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18대 국회 재직 시절 김씨가 준비해 발의한 법안이 19대 국회 새누리당 모 의원이 그대로 베껴 발의한 것이다. 김모씨는 다른 정당의 국회의원 보좌관이었다.

    해당 법안은 법률 미비로 인해 성폭력 가해자가 무죄판결을 받고 피해자가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또다른 가해자가 악용할 우려가 높아 시급히 법을 보완해 추가 피해자를 막으려는 취지였다

    특히 김씨는 법의 허점으로 인해 가해자가 무죄 판결 받는 상황을 언론이 피해자와 추가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보도해, 언제든지 제2, 3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이라 판단했다.

    김씨는 해당 법률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제실 직원을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의 통계와 사례를 보내며 설득해 법률을 완성해 보도자료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입법을 추진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임기만료 폐지됐다.

    이에 김씨는 현재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법안 통과를 위해 19대 국회 개원 후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들에게 해당 법률의 취지를 설명하며 입법을 부탁했다. 타 상임위 의원이 아무리 좋은 법안을 발의하더라도 해당 상임위 회의에 참석할 수 없고 제안설명서만 서면으로 보내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입법 발의된 법안들의 사례

    그런데 새누리당 모 의원은 해당 법안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발의했다. 아동 성폭력 범죄가 빈번한 시기에 숟가락 하나 얹고자하는 심보인 셈이었다. 해당 의원은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으로 해당 법안 상임위(여성가족위, 법제사법위, 아동여성대상 성폭력 특별대책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9월 10일 본회의에서 통과된 아동여상 대상 성폭력 특별대책위는 성폭력과 관련한 법안을 담당했다. 이번 특별위 덕분에 해당 법안은 전문위원의 ‘검토의견’까지 거쳤지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3차례 진행된 소위에서 전자발찌제도나 신상공개 제도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법률에 대한 논의만 진행됐다. 그리고 11월 14일 해당 법안은 대안반영폐기 됐다.

    법안 베껴놓고 “우리 상임위 아니라 모르겠다”

    이에 김씨는 해당 법안을 베껴쓰기한 해당 의원실 담당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대안반영폐기 되었는지를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아 그랬어요? 우리 상임위가 아니라 모르겠는데요?”였다.

    발의한 법안 처리 결과를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는 김씨의 질문에 그는 “필요한 법안인 것 같아서 발의만 했지 신경 못 썼다. 우리 상임위가 아니라 어떻게 됐는지 통보도 못 받았다”고 답변했다. 김씨가 해당 상임위에 보낸 제안설명서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보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화 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김씨가 해당 법안을 만들고 추진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는데도 그는 문제의 심각성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는 최소한 처리 결과를 확인하고 연락을 주겠다는 말도 없이 해당 상임위에서 처리 결과를 확인하라고 할 뿐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이런 결과에 대해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필요한 법안이라면 누구라도 베껴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안에 저작권이 어디겠는가”라면서도 “하지만 최소한 해당 법안을 발의할 때는 통과를 위한 최선의 노력과 사후 결과까지 책임있게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대안반영폐기 됐다고 하니 최소한 어떻게 해당 법률의 취지가 잘 반영됐는지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책임있게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다른 의원실에 다시 부탁할 예정”이라며 “국회가 해야 할 당연한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니 현재의 직업과 상관없이 해당 법률 통과를 위해 나라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겠다”며 씁쓸해했다.

    다행히 19일 <레디앙>에서 확인한 결과 해당 법안은 입법조사관의 검토의견에 따라 자구를 정리해 보다 명확히 하는 수준에서 입법취지를 살려 대안반영폐기됐음을 확인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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