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드라마는 없고 미드에는 있고
그건... '경찰노동조합'
[미드로 보는 세상] '민중의 몽둥이'를 '민중의 지팡이'로 바꾸는 길
    2012년 11월 19일 11: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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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중에서 가장 종류가 많은 장르가 무엇일까? 아마 미드를 적당히 접해본 사람이라면 ‘수사물’이라고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사물이라는 장르는 꽤 인기 있는 장르다보니 미드의 세계에는 대단히 많은 종류의 수사물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CSI(Crime Scene Investigation) 과학수사대’시리즈가 아닐까 한다. 사실 한국에서의 미드열풍은 ‘CSI’ 시리즈가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드 특유의 ‘스핀오프’들도 대단히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CSI 마이애미, CSI뉴욕, CSI라스베가스 등 한 소재가 히트하면 그와 비슷한 스핀오프(외전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기존의 작품에서 파생된 작품을 말한다) 시리즈가 제작되는 것이 또 미드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많은 수사물이 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수사물은 ‘크리미널 마인드’시리즈와 ‘로앤오더 SVU(Special Victims Unit)’이다. 전자는 ‘싸이코패스’나 ‘연쇄살인마’등의 심리를 분석하는 ‘FBI 프로파일러’들의 이야기이고 후자는 성범죄를 다루는 수사물인데 특히 ‘로앤오더 SVU’의 경우 최근 한국에서도 문제시 되고 있는 성범죄와 관련해서 아주 진지한 딜레마들과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이를 수사하는 경찰관들의 고뇌를 매우 사실감 있게 다루고 있어 지인들에게 강력히 추천하는 드라마다.

미국 NBC의 장수 인기 드라마 '로앤오더 SVU' 성범죄를 둘러싼 각종 이슈와 고뇌를 아주 깊이있게 다루는 드라마

사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많은 경찰행정조직이 있는 곳이라 이외에도 해군수사대를 다룬 NCIS 시리즈, 미해결 사건을 다루는 ‘콜드케이스(cold case)’ 등도 있고 종류에 따라 등장하는 경찰조직도 주경찰, 연방경찰, 마약전담반, 대테러 전담 등 다양한 경찰조직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각 범죄의 성격과 분야에 맞는 다양한 경찰조직이 등장하는 미드가 한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끌자 최근에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앞서 언급한 ‘CSI 과학수사대’와 ‘로앤오더 SVU 성범죄전담반’을 합친 ‘한국판 CSI 성범죄전담반’을 만들겠다고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처럼 다양한 미드 수사물들을 보다보면 종종 흥미로운 장면들을 마주치게 된다. 한국의 수사물 드라마에서는 단 한 번도 마주치지 못한 것. 바로 ‘경찰노동조합’의 존재다.

일례로 최근에 시작해 첫 시즌이 마무리된 ‘언포게터블(Unforgettable)’이라는 드라마에서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주인공의 동료 중 한명이 흑인 슬럼가에서 밤중에 용의자를 쫓다가 총을 사용하여 범인을 사살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조금 애매하여 과잉진압이 의심되는 상황에 처한다. 이 경찰관이 다음날 오전에 불안한 마음으로 경찰서에 들어오자 다른 동료가 명함을 건네주며 일단 명함에 적힌 곳으로 찾아가 변호사를 구하고 상담을 받으라고 권한다. 그 동료가 건네준 명함은 바로 ’경찰노동조합(police union)‘의 명함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미드 ‘Unforgettable'에서 경찰노조가 등장하는 장면

생각해보면 미드에서 나오는 경찰관들이나 수사관들은 대단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일상적인 살해위협과 총격전, 그리고 조사 및 사무업무, 스트레스도 심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의 각종 법적 공방도 만만치 않다. 물론 공권력에 인권을 침해당하는 시민들의 문제도 있지만 과중한 업무와 때로는 조직 내의 부패, 권력의 압박 속에서 일하는 경찰들의 고뇌도 충분히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경찰노동조합이 이미 오래전부터 합법화 되어있고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이미 1978년 에 전국 약 4,000여개의 경찰노조의 연맹과 같은 조직인 전국경찰단체협의회(NAPO가 결성되어있고 약 22만5천명의 경찰들이 가입해있다.

미국의 경찰노조는 초창기부터 조직 내에서 마약조직이나 조직폭력과 연계된 부패한 경찰들을 몰아내는데 주력하기도 했으며 시민사회와의 소통 등에 노력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은 주별로 경찰노동조합이 허용되는 범위가 다른데 대부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보장되지만 단체행동권은 제한된다. 조직률은 현재 미국 전역 249개 도시 중 166개 도시에서 경찰노조가 조직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연방경찰(FBI)은 경찰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노동조합의 힘이 더 강력한 유럽쪽은 더 활발하게 경찰노조가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전체 경찰의 약 70%가 조직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찰들이 거리집회에 등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호주, 스웨덴, 남아프리카 공화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대부분의 OECD국가들은 경찰노조를 인정하고 있으며 다양한 활동들을 보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경찰노조 위원장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도 제작되어 방영되었다. 실제 토론토 경찰노조 위원장 ‘크레이그 브로멜’이라는 인물을 모델로 한 ‘더 브리지’라는 미드는 주인공이 자살한 동료 경관의 장례를 허락하지 않는 상부에 맞서 파업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경찰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해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경찰노조 위원장으로 경찰조직내의 부패에 맞서는 과정 또 경찰관들의 처우개선 문제와 시민들과의 소통문제 등을 두고 꽤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아쉽게도 필자 역시 본방사수를 많이 하지 못해 전체 에피소드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추천하는 드라마 중 하나다.

2010년에 한국의 케이블에서 방영된 경찰노조 위원장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더 브릿지’

최근 한국에서도 경찰관들의 자살사건이 연이으면서 경찰들의 처우개선 문제와 경찰노동조합 설립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찰관은 총 71명이다. 연도별로는 2007년 9명, 2008년 7명 이었고 2009년에는 20명, 2010년 22명으로 급증했고 2011년에는 13명의 경찰관들이 자살을 택했다. 이중 40%는 신변비관에 따른 우울증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경찰들도 미국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경찰관은 다른 직종에 비해 높은 청렴도를 요구받는데서 오는 압박감과 현장업무 과정에서 민원인들과의 다툼 등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직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경찰관 스스로 처우를 개선하고 조직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노동조합’의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다.

아직 대한민국은 공무원 노동자의 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라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에 경찰관들이 일단은 ‘경찰 직장협의회’를 구성하고 이를 장차 노동조합으로 발전시켜나가겠다는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고 이에 대한 정치권 및 노동계의 관심도 생기고 있다.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특히 갈등의 현장에 있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 경찰은 폭력을 행사하는 부당한 공권력에 불과하게 느껴질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경찰조직에 대한 개혁방안은 대부분 공권력의 폭력을 제한하는 부분에 치우쳐 논의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을 ‘민중의 지팡이’로 만드는 첫 걸음은 오히려 경찰들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이를 통해 자정능력을 갖추고 더불어 시민사회와 소통하면서 스스로 개혁하나갈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미드’에 자주 등장하는 경찰노동조합이라는 존재을 보며 아직 부럽다는 느낌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의 경찰들도 언젠가 당당히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이 때문에 곧 한국드라마에서도 경찰노조의 존재를 만날 날이 올 것이라고 희망하고 또 기대한다.

필자소개
청년유니온에서 정책기획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제민주화2030연대와 비례대표제 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술, 담배, 그리고 미드와 영화를 좋아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가장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대부분의 사업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미드나 만화에서 발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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