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에게 권하는 불편함
    [서평] 『4천원 인생』(안수찬 전종휘 외 /한겨레출판)
        2012년 11월 17일 01: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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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 때 시간을 돌리는 작은 교실(이하 시작교실)에서 선생노릇을 잠시 동안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는 학교의 청소노동자 분들에게 컴퓨터 수업을 가르치는 곳으로 조합원 분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매주 월요일 4-6시까지 컴퓨터 수업을 진행합니다.

    당시 저는 여름방학 때 하는 활동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시작교실이 의미 있는 활동이라 생각해서 친구와 함께 강학(가르치면서 배운다는 의미. 조합원 분들은 학강이라고 불린다.)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실은 그렇게 시간도 많이 쓰지 않고, 어렵지 않은 활동이라는 걸 계산에 넣은, 어설픈 연대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컴퓨터를 사용할 줄만 아는 사람이면 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온 첫 OT 자리에서 생경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청소노동자 하루체험이라는 게 있어요, 조합원분들 나오는 시간에 맞춰서 새벽부터 함께 건물에서 청소도 하고 하는 일 똑같이 하는 거에요”

    솔직한 심정에서, 뜨끔했습니다. ‘뭐지? 이건 못 들은 이야기인데. 아니, 그래서 난 지금 이게 싫은 건가? 왜 싫은 거지?? 힘들까봐?’ 등등 몇 가지 잡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간략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같이 하기로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물론 당시 오리엔테이션에서 그것 말고도 갑자기 들은 말들을 묶어서 ‘이게 뭐야, 우리는 이런 이야기 못 들었는데, 그냥 갑자기 들어서 좀 당황스럽다.’ 라는 식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어쨌든, 다른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시작교실을 시작하기는 했습니다. (결국 시간문제로 방학기간만 하게 되어 체험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다른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도 갑자기 들었다는 것을 핑계로 이건 좀 아니지 않느냐며 희석하고, 에둘러 말하려 했지만, 사실 마음속에 가장 큰 짐으로 남아있었던 것은 그 하루 체험이었습니다.

    조합원분들에게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들인데, 저는 고작 하루도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런 몸 사리려는 태도에 대한 자각은, 스스로에 대한 다소간의 경멸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군대도 다녀왔으면서 세상에 이것보다 더러운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며 큰소리치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청소라는 일 자체는 많이 했던 것이라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그것을, 학교에서 그리고 수많은 학우가 보는 앞에서 같이 한다는 것이 왠지 부끄럽게 느껴졌었습니다.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만 하면서 정작 스스로는 다른 학우들의 시선과 전혀 다르지 않았던 셈이지요. 제가 했던 것이라고는 청소노동자분들과 마주칠 때 인사하는 것, 그리고 시위 두어번 따라간 것이 전부였습니다.

    나는 연대하는 척했으면서 실제로는 철저히 분리되고자 했던, 그저 옆에서 손 흔들어주는 게 전부인, 이기적인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고작 하루의 체험을 걱정할 정도로요. 학내 ‘언론’에서 글을 쓴다는 나는, 그런 불편함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4000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한겨레 사회부 기자 4명이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마트 정육점 코너에서, 감자탕 가게에서, 가구공장에서, 난로 공정에서 기자임을 속이고 기존의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은 처우를 받으면서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펜과, 키보드, 사진기와 친숙했던 손들은 뜨거운 냄비를 잡고, 무거운 짐을 날랐으며, 손님들에게 팔 양념 불고기를 구웠습니다.

    한 달 동안 기자들은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은 물론, 쪽방도 구해가면서 최대한 그들의 삶에 녹아들었습니다. 기자라는 신분을 숨기고, 스스로 체험한 것들을,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리고 목소리를 넘어서는 몸의 고통을 전달해 주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이들은 입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혹자는 ‘불편’ 하다고, 노동을 ‘선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비정규직이, 불법노동이 산적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노동현장의 단면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글에서, 그 현장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개개인의 인생사를 녹여낸 글에서,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불편함은 당신이 외면했을 뿐이지,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자들은 한 달간 외국인 노동자들과 ‘불법 사람’과 함께했으며, 누구나 볼 수 있으나 누구도 보지 않는 ‘투명 노동’을 몸소 보여줍니다. 시급보다 더 나가는 5000원짜리 ‘비싼 음식님’을 나르면서 ‘돌봄 노동’에 지친 이 사람들은. 당신이 보지 못했던 사람일 수도, 보지 않았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입이 없는 사람들’ 이었으니까요.

    <4천원 인생>은 솔직했고, 과장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더욱 아프게 와 닿은 문장과 단어들의 연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적절한 비유보다 힘이 센 것은, 누구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듣고 나면 ‘아-’ 라는 탄성과 찾아오는 진실을 담은 문장들입니다.

    하루의 체험에도 겁을 먹었던 저는 책을 덮고 불편함을 한 아름 얹어서 마음에 담아두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당신에게 감자탕 한 그릇 정도는 넉넉히 채울 만큼의 불편함이 생겨나기를.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왔을 때 두 손에 느껴지는 묵직함이 마음에도 얹히기를, 손가락에 잘못 박혀버린 공업용 못처럼, 노동현장에 잘못 박혀버린 잔인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필자소개
    연세편집위원회 banseok77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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