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선투표제는 양날의 칼,
진보에게 마냥 유리한 것 절대 아냐
[기고] 찬성한다. 하지만 그 제도의 '독'에도 주의하기를...
    2012년 11월 16일 11: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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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개혁의 양면성

필자가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그렇겠지만 국민들에게는 아마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있는 쟁점들이 주로 눈에 들어온다. 소위 ‘정치개혁’이라 통칭되고 있는 헌법개정, 선거제도, 정당 “혁신” 등 말이다.

이러한 논의는 최근 안철수 후보를 중심으로 정치 혁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본격화되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제도 개혁’을 통한 ‘정치 혁신’이라는 한국 민주주의 담론의 주된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국 민주주의를 가장 빠르게 개혁하는 방법은 바로 제도 개혁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선거 제도를 바꾸고 권력 구조를 바꾸며 의원정수를 줄이고 지방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폐지하는 등등의 제도 개혁이 곧 민주주의의 질적 개선의 지름길이다.

다른 한편에서 최장집 교수를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은 “개헌이 지금 그렇게 필요한 것인가?”라고 질문하며, 제도 개혁 그 자체가 좋은 정당을 비롯한 정치 일반의 질적 개선으로 이어지리라는 낙관적 견해를 비판한다. 특히 제도 개혁이 더 나은 정당 정치를 위한 ‘정치적’ 접근을 우회하기 위한 것일 수 있음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하나마나 한 말이겠지만, 필자는 제도 개혁이 정치를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의도했던 결과가 아닌,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제도 개혁을 고려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도치 않은 결과의 최소화 즉, 그 제도 개혁의 장단점을 최대한 명료하게 파악하고 그 둘을 저울질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선거제도

민주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는 무엇일까?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필자의 개인적 견해는 ‘선거제도’이다. 이러한 주장이 족보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아마도 어떠한 정치제도도 선거제도나 정당제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적 지평을 형성하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제도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선투표제 도입 입법공청회(사진=노회찬 의원 블로그)

그리고 비교정치학의 고전 중 한 권인 <민주주의의 유형들>에서 라이프하트는 민주주의를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로 분류하며, 그 핵심적인 구별 기준으로 선거 제도와 그에 따른 결과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사르토리, 타가페라와 슈가트 모두 민주주의 체계의 특성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제도 중 하나로 선거 제도를 꼽고 있다. 요컨대, 선거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를 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아마 필자의 무지 탓일 수도 있으나, 정치적 담론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들이 제대로 답변되지 못 한 것 같다는 아쉬움때문이다.

첫째, 가장 좋은 선거제도는 무엇일까?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없다’가 정답에 가깝다. 예를 들어, 대통령제에서 결선투표제가 ‘진보’고 ‘개혁’인가? 반은 정답이고, 반은 오답이다. 어떤 ‘정치적인’ 논의에서 그렇지 않겠냐마는 특히 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장점은 과대평가되고 단점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 개혁의 ‘정치적’, ‘정파적’ 속성을 부정하고 그것을 금기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 자체가 조금 더 개방적인 형태로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할까.

둘째, 비례대표제에 대한 이야기가 진보진영을 중심으로 수십 번, 수백 번 나왔는데도 진보 진영/학계에서 합의된 개혁안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라는 식으로 통칭되어서 이야기되지만, 그 제도적 디테일에 대해서 무엇을 주장하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과연 의석은 몇 석이어야 하는가? 지역구/비례대표의 비율은 어떠해야 하는가? 초과의석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 것인가? 진입장벽(threshold)는 몇 퍼센트로 할 것인가? 비례의석을 할당하는 지리적 단위는 전국인가 아니면 광역단체 수준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독일식 비례대표제’라는 큰 제도 개혁보다 더 중요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답변되지 못 했다,

셋째,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선거 제도도 ‘내생적’이라는 학술적 주장이 많다. 즉, 선거 제도가 ‘독립 변수’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종속 변수’로 정치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반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규범적으로 올바른 선거제도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것의 구체적인 디테일을 완성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찾아내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그렇지만 ‘종속 변수’로서의 선거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렇게 좋은 제도가 왜 도입되지 않는 것일까? 단순히 기존 정치인들의 카르텔 때문이라고 답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질문이다. 선거제도를 ‘외생적’으로 처방할 때, 그 독립변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따라서 왜 지금의 선거제도가 유지되고 있는지, 그것을 가능하게끔 하는 구체적인 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만약 ‘외생적’으로 처방된 선거제도가 ‘내생적인’ 사이클에 속하게 될 때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를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결선투표제, 찬성한다. 그러나…

최근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진행되던 시점에 박근혜 지지자를 중심으로 “야합”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범야권 지지자들은 이를 비판하면서 그 둘의 단일화는 ‘가치 연합’으로, 정치적 야합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편, 11월 14일 두 후보의 협상이 잠정적으로 결렬되면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금 나오기 시작했다.

결선투표제는 단일화라는 ‘비공식적’ 제도가 가지는 불확실성과 선거공학적인 측면을 극복한다는 점에서 민주/개혁파들에게 매력적인 제도이다. 한편, 진보정당 계열에서는 결선투표제야말로 ‘비판적 지지’의 압력을 제도적으로 극복하게 해주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환영해왔다.

필자는 결선투표제 도입에 찬성한다. 적어도 필자가 알기로 대통령제를 사용하는 나라 중에서 결선투표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는 예외에 가깝다. 특히나 한국처럼 양당제가 완전하게 구조화되지 않고, 제3후보의 등장이 잦은 나라에서는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든 선거제도가 그렇듯이, 결선투표제에도 몇 가지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논쟁을 만들기 위해서, 아래에서는 필자가 생각하는 몇 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스케치해보고자 한다.

결선투표제는 약이지만 또한 강력한 독으로도 작용

첫째, 정치학에서 유명한 표현 중에서 ‘대통령제화된 정당’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대통령제 하에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모든 행동을 대통령 선거에 초점을 맞추는 정당을 의미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도 헌법 개정 이후 주요 정당들이 ‘대통령제화’되었다는 비판들이 많다. 한국에서 모든 정당이 어느 정도는 이 속성을 가지고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과거 정주영의 국민당, 이번 선거에서의 안철수(당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결선투표제가 다수의 ‘대통령제화된’ 정당을 양산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우선 단순다수제로 대통령을 선출할 때에 주요 후보들은 거대 정당에 속할 유인이 있다. 그들은 어떻게든 ‘1등’을 해야 되기에 기존 정당의 이름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선투표제에서는 굳이 1등을 하지 않아도 된다. 프랑스 국회의원 선거처럼 2차전으로 가는 득표율이 낮을 때(12.5%)는 더더욱 그럴 것이고, 프랑스 대선처럼 2등까지만 2차전으로 진출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경우, 유력한 정치인들 중 경선에서는 불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거나, 혹은 선거판을 뒤흔들고 나름의 정치적 ‘보상’을 취하려는 이들은 ‘대통령 선거용’ 정당을 만들 유인이 있다. 경선에 참여하는 대신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1997년 대통령 선거가 만약 결선 투표제로 치러졌다면, 아마도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2차전에는 김대중 대 이회창의 구도로 진행되었을 것이고, 그 때 이인제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입증한 득표력(아마 결선투표제라서 ‘사표 방지’ 심리가 덜 작용했다면 20%에 가까운 득표를 하지 않았을까?)을 2차전에서 ‘판매’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당선될 가능성이 크게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2차전에서 득표를 팔고 ‘한 몫’을 거두기 원하는 유력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제화된’ 정당의 출현은 막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정치학자 개리 콕스는 선거 제도의 효과로 M+1의 법칙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여기서 M은 각 선거구 당 선출되는 사람의 숫자이다. 흔히 소선거구제에서 유력한 두 명의 후보 간 경쟁이 발생한다는 ‘뒤베르제의 법칙’은 이의 특수한 형태이다. 이에 따르면 2등까지 2차전에 진출하는 결선투표제의 제도적 효과는 1차전에서는 유력한 후보 3명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결선투표제에서는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는 보통 좌-우 혹은 보수-진보의 양대 블록이 형성되고, 각 블록마다 최소 2개의 정당이 형성되는 것으로 이어지곤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그 이유는 좌파든 우파든 한 쪽 블록에 속한 ‘극단파’들은 2차전에서의 득표 동원력을 무기로 ‘협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의 협상은 1차전에서의 득표라는 확인된 자원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제도’를 활용한 ‘협박’에 의한 것이다.

물론 좌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득표 동원력을 무기로 정책적 약속을 이끌어 내는 것이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대선용 정당을 만들고 그것을 무기로 ‘장관직’이나 각종 수혜를 ‘약탈’하는 사람들은? 혹은 친북좌파 척결 따위를 걸고 나올 뉴라이트/기독교 우파 정당이 ‘정책적 협조’를 받아낸다면?

셋째,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들의 주요한 규범적 논거 중 하나는 결선투표제가 50% 즉, 과반수를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일단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이 있다면 2차에서 ‘만들어진 과반수’가 곧 단순 다수제의 ‘만들어지지 않은 상대 다수’보다 규범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는 우파 후보 시라크와 극우 후보 장 마리 르펜이 결선에 진출해서, 시라크가 82.2%를 받으면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 때 시라크가 국민들의 과반수를 훌쩍 넘는 80%의 지지를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결선투표제는 소수가 강렬한 지지를 보내는 이들보다는 더욱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이들을 당선시킨다는 제도적 특징이 있음은 분명하다. 즉, 아무리 40%가 ‘강렬하게’ 지지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선투표제에서 중요한 것은 50% 이상의 지지라는 것이다.

이를 조금 다르게 표현해보자. 한 사회 내에서 아무리 ‘만들어진 다수’라고 하더라도 50%를 얻지 못하는 정치 세력은 당선되지 않는다. 조금 더 다르게 표현하면, 50%가 넘는 비토 세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 세력은 결코 당선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공산당이 가장 강력한 나라로 유명하다. 때로는 지지율로는 제1당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공산당은 결코 집권하지 못했다. 아니, 더 나아가서 그 당시에는 훨씬 세력이 약했던 사회당에게 잡아 먹혔다. 그 이유는 사회당에는 50%를 넘길 수 있는 매력적인 후보(미테랑)가 있었지만, 공산당은 그들에 대한 비토 세력이 50%가 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좌파들의 바람과는 달리, 진보정당은 민주개혁파의 하위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국에서 좌파는 50% 이상의 비토 세력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단순 다수제에서는 ‘사표 방지 심리’ 때문에 약한 정치 세력이 표를 잃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민주/개혁 후보–진보 후보가 비슷한 지지율을 가지고 있다면 사표 방지 심리로 표를 잃는 것은 민주/개혁 후보일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20-30%의 지지를 가지고도 ‘전략적 투표’에 의해서 대통령에 당선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선 투표제는 ‘보수적’이다. 결선 투표제에서는 여러 가지 우연이 겹치더라도, 사회 내에서 50%를 받지 못 하면 결코 당선되지 않는 것이다.

필자는 결선투표제 도입에 찬성한다. 결선투표제는 1차전에서 진보정당이 그들의 목소리를 ‘비판적 지지’의 압력을 받지 않고 분명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진보정당이 1차전에서의 득표력을 바탕으로 2차전을 즈음해서 ‘좋은 협상’을 하게 해준다. 이는 아직까지 미약하고 미숙하기 짝이 없는 진보정당이 훨씬 더 좋은 정당이 될 수 있게끔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만이다.

적어도 필자보다 원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 즉, 진보정당의 ‘집권’과 한국 사회의 ‘변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결선투표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필자는 모든 정치 제도는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결선투표제는 앞쪽 날이 매우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반대쪽 날도 매우 날카롭다. 신중해야 될 시점이다.

필자소개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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