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에정 칼럼] 권력공백인 내년 1,2월에도 위기 닥칠 수 있어
        2012년 11월 13일 05: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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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한국말로는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말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렇다. 버나드 쇼가 했다는 그 말이다. 원문의 오역이니 아니니 말이 많았지만, 오늘의 주제는 ‘잘못된 번역의 사회적 효과’가 아니므로 널리 알려진 그 뜻대로 해석하고자 한다. 필자는 기후변화와 핵에 대한 한국의 대응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이 말이 예언처럼 느껴지곤 하는데 다가올 1~2월, 진짜로 이 말을 되뇌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늘은 참 단순한 이야기를 길게 풀어본다.

    핵발전, 안전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원?

    근심을 안겨주는 원인 중 하나는 핵발전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적 관심과 감시의 눈길이 많아져서일까? 핵발전소와 핵발전 시스템의 노후화가 진행될 대로 진행되어서일까? 2012년 한 해는 정말 등골이 오싹해지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위기감이 고조되었던 2011년보다 사건은 더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다.

    2011년 한국에서는 이미 9개의 핵발전소(전체 21개 핵발전소의 43%)에서 12차례의 중단사고가 발생했고, 그 중 3건이 동절기 부하를 코앞에 둔 12월에 발생함으로써 핵발전의 안전 문제와 전력수급 위기에 대한 우려를 낳은 바 있다.

    그러나 2011년이 그저 국민적 ‘의심’을 낳은 정도였다면, 2012년은 그야말로 눈앞이 아찔한 상황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우선 아직 올해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숫자로 2011년을 능가한다. 2012년 현재 11개의 핵발전소(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추가 가동되어 전체 23개 핵발전소의 48%)에서 15차례의 가동 중단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특히 연초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나온 ‘사고 은폐/납품 비리/마약 투여’, 고리 1호기 3종 세트는 분노 이전에 충격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후한 고리 1호기가 아닌가. 더 충격인 것은 그 위험천만한 고리 1호기가 지금 재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뿐인가. 마약 사건이 드러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품질검증서 위조사건이 터졌다. 2003년에서 2012년까지 위조된 품질검증서를 통해 핵발전소에 납품된 부품이 7,682개(8.2억 원 상당)라는 것이다. 이 부품들은 고리‧월성‧울진‧영광 4개 원전본부에 모두 납품되었으며, 이중 대부분은 영광 5, 6호기에 설치되고 영광 3, 4호기 울진 3호기에도 일부 가는 등 무려 5개의 핵발전소에서 실제 사용되었다고 한다. 외부의 고발이 아니었다면 고리, 월성의 핵발전소들과 영광 1, 2호기에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핵발전소들 반경 30km에 살고 있는 시민들만 370만 명인데, 아찔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러한 예정에 없던 발전소의 정지는, 또다시 동절기를 앞두고 전력수급에 빨간 불을 켜고 말았다. 특히 내년 1월과 2월에는 예비력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며 영광 5, 6호기의 부품교체가 지연될 경우 그 수준은 30만kW로 떨어질 전망이다. 혹시라도 한겨울에 작년 가을과 같은 정전사태가 발생한다면, 산업은 물론이고 당장에 여러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이제 핵발전소가 안전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원이기는 커녕 전력수급 위기의 주범임은 알지만, 다가올 전력위기에 대한 대책과 실천이 없다면 찬핵 진영은 이 상황을 기회로 핵발전 불가피론을 역설할 것이다.

    기후변화, 먼 미래의 일?

    또 다른 근심거리는 기후변화에서 비롯된다. 정부와 재계의 반응을 보면 기후변화는 뭔가 먼 미래의 일, 경제적 규제, 피하고 싶으나 도덕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핵발전 사건‧사고가 작년을 계기로 새롭게 인식된 문제라면, 오히려 기후변화는 국민 대부분이 매년 체감하고 있는 문제다.

    2011년 우리나라의 이상기후 발생 현황(기상청 2012)

     우선 가뭄·홍수, 일조부족 등 이상기후 현상이 심화되어 동해안 남부는 기온이 급상승하였고, 태백고랭지 지역은 강수량이 급증했으며, 영남 내륙지대는 가뭄 발생이 빈번해졌다. 또한 한파와 폭설, 일조부족, 집중호우·태풍 등 기상재해 증가는 막대한 피해를 남기고 있다. 올해에도 정부가 적립해 온 농어업재해재보험기금이 6천억 원에 달하는 피해보상액을 지불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일조량 부족에 따른 시설작물의 고사 및 생육저하 등 과거에는 잘 없었던 비정형 기상재해로 인한 피해도 확대되고 있다.

    사실 정부 연구기관에서도 비슷한 결과와 전망들은 계속 내놓고 있다. 아래 표는 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제출한 ‘우리나라 기후변화의 경제적 분석’이라는 보고서에 제시된 미래의 기후변화 피해비용이다. 불과 10년이 남지 않은 2020년만 보아도 기후변화는 3조 6,195억 원의 피해를 남길 것이라 하니, 도대체 왜 이렇게 태평인가 싶다.


    게다가 이러한 피해는 위에서 언급되는 금액만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문제다. 단순히 GDP의 몇 %인가만 보게 되면 그 피해가 실제보다 축소되기 마련인데, 왜냐하면 피해는 언제나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 크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0년 한 달 가까이 지속됐던 한파와 작년에 찾아온 107년 만의 기록적 한파에 이어, 올 해 겨울에도 극심한 한파와 폭설이 예보되었다. 당장 11월부터도 기온이 급강하 한단다. 전 국민이 이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쫓아가기 바쁜 정치 이대로 쭈욱?

    2011년 리서치업체 IPSOS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 68%는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70%는 핵발전이 제한적이고 곧 시대에 뒤쳐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한 올 해 8월 초 식약청이 기후변화와 식품안전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전체 응답자의 98.9%(2010년 조사 시 88.1%)가 일상생활에서 기후변화를 체감한다고, 91.3%(2010년 조사 시 76.1%)가 기후변화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결과에 따른 식약청의 향후 계획이 재미있다. 소비자 인식 제고에 힘을 쓰겠단다. 하지만 위 조사결과는 핵발전과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하는 것이 적어도 국민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핵발전이나 기후변화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한 마디로 ‘지금 이대로’였다. 현재 국가경제를 뒷받침하고 수출을 주도하는 제조업, 그 중에서도 에너지 다소비 산업은 포기해선 안 되기 때문에 핵발전도 계속 해야 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규제도 피할 수 있는 만큼 피하는 것이 한국의 상황에 맞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인식 제고는 정부부터 해야 마땅하다.

    이렇게 늘 국민의 인식을 쫓아가기 바쁘거나 영영 외면해 버리는 정부. 언제까지 이런 정부를 받아들여야 하나. 그러나 국민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이 국민 여론에 가장 민감한 시기인 선거, 그 중에서도 ‘대통령 선거’가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아니나 다를까. 현재 예비후보로 등록한 8명의 후보 중 절반이 10대 주요 공약에 핵발전과 기후변화에 대한 공약을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센스 있는 중앙선관위의 후보자 공통질문(“원자력 발전소 증설은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에 대한 찬‧반) 덕에, 몇 십 년의 장구한 정치인생 속에서 한 마디도 찾을 수 없었던 박근혜 후보의 원전에 대한 입장을 최초로 들을 수 있었다.

    박근혜 후보의 입장은 “새롭게 원전을 추가 건설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약의 면면을 들여다보기 이전에 이러한 상황 자체는, 일단 국민의 생각을 파악하고 나름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명색이 국정을 총괄하는 대통령이고, 막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는 대통령인데, 여기에서 그친다면 선거가 끝나고 18대 정부가 17대 정부와 다를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권력의 공백기 1~2월, 그리고 지속적인 대한민국의 무사 안녕

    특히 이번 대선에서 흔히 빅3라 불리는 후보들의 정책은 상당 부분에서 하나로 수렴되는 듯한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어, 정책공약이 급조된 것은 아닌지 정말로 실행될 수 있는 것들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게다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새로이 선출된 대통령은 앞서 말한 1~2월, 즉 정식 취임하기도 전에 발등의 불을 꺼야 할 판이다.

    그런 면에서 예비후보들의 에너지‧기후 관련 공약은, 안타깝게도 딱 속 빈 강정이다. 그 내용의 수준이라는 것이 정책 제목만 있고, 구체적인 현실파악도 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은 없는 상태다.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 4년 중임제가 필요하다는 분들의 공약이라 보기엔 부실해도 너무 부실해, 4×2=8년은 고사하고 당장의 겨울도 버텨낼지 걱정이다.

    특히 탈핵과 기후변화 대응을 공약으로 한 후보라면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이 기간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면, 정책을 추진도 하기 전에 찬핵 진영의 거센 원전 불가피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력위기를 제대로 막지 못하고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예방 혹은 대처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남겨진다.

    따라서 후보들에게 질문하고 제안하고 싶다. 탈핵 또는 핵발전 비중을 축소하고 화석연료 역시 줄여가겠다는데, 그럼 올 겨울 위기가 조장되어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이나 신규 화력발전소의 건설 강행이 필요하다 한다면 어찌 대응하겠는가. 핵과 화석 에너지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강력한 수요관리만으로 이 겨울을 날 생각이라면, 그 책임과 부담은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만큼 나눌 것인가. 또다시 찾아올 수 있는 기록적인 한파나 국지적 이상기후로 농어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어떤 대비를 할 것이며, 그래도 막지 못한 피해가 있다면 거의 바닥 난 농어업재해재보험기금으로 이를 어디까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올 해 태풍피해에 대한 보상은 신청액의 12%에 그쳤다). 기본적인 단열 공사마저 힘든 취약계층들에게 이 추운 겨울, 국민들의 자발적인 나눔 외에 어떤 지원을 할 것인가.

    또 이 시기를 넘기면 2018년 이후에도 지속적인 대한민국의 안녕을 위해서, 아니 최소한 자신들의 공약에서 제시한 목표 달성을 위해서라도, 산업구조와 사회시스템을 포함해 어떠한 장기 비전을 제시하고 임기 내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어떤 포석을 깔 것인가.

    스스로 답할 수 있다면 답하고,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국민과 소통하고 전문가의 지혜를 모으며, 알맹이 없는 정치 쇄신이나 통합을 말하기보다 당장에 전 후보들에게 1~2월 국민안녕프로젝트라도 제안해봄은 어떻겠는가. 정말로 우물쭈물하다 다 같이 무너지기 전에 말이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비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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