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용차는 모두의 미래다
    [기고] 연대로 절망과 죽음과 공포를 뛰어넘자
        2012년 11월 12일 10: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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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에서 함께 일하던 노동자들 중 둘 중에 한명은 공장 밖으로 내몰려야 했다. 그리고 4년, 공장 밖으로 떠밀린 노동자와 가족들 중 23명이 죽었다. 그리고 또 누가 더 죽을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울부짖던 쌍용차 해고자 김정우는 곡기를 끊은 지 한 달이 넘어간다.

    회사 경영상태가 어려운 줄 알았다.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임금삭감도, 복지축소도, 심지어 무급휴직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해고자 없이, 이미 늦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공장 밖으로 내몰리는 이들 없이, 모두가 함께 살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쌍용차 경영진들과 이명박 정부는 오죽 어려우면 정리해고를 하겠냐며 내민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고, 우리를 폭도로 몰아갔다. 전쟁과 같은 수많은 싸움 끝에 노동자들은 지쳐갔고 공장 밖으로 내몰려야만 했다.

    노동자들은 쌍용차노동자들처럼 싸워도 이길 수 없다며 체념했고, 자본과 정부는 쌍용차처럼 잔혹하게 짓밟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전국 방방곡곡 해고자로 넘쳐났고, 수많은 싸움에서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렇게 미국에서 불어 닥친 세계대공황을 극복하려는 자본과 권력의 공조 속에서 쌍용차문제는 정리해고와 노조탄압의 기준점으로 모두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렇게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지난 4년간 10만 명이다. 그 중에 쌍용차해고자와 가족들처럼 세상을 등진 소리 없는 죽음은 얼마나 될까? 가히 상상하기도 소름끼치는 계산법이다.

    단식 중 집회발언하고 있는 김정우 지부장(사진=노동과세계)

    그러나 쌍용차해고자들은 부당하게 쫓겨난 채로 소리 없이 죽을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릴지언정 포기하지 않았고, 무기력할지언정 멈출 수는 없었다. 수많은 동지들이 손을 맞잡아줬고, 시민들이 함께 울어줬다. 그런 힘으로 쌍용차 청문회가 4년 만에 열렸다.

    경영이 어려워 노동자 둘 중 하나가 해고되어야 했던 것이 아니었다. 검찰의 기술유출수사에 위기감을 느낀 상하이자동차가 기획 부도를 냈으며, 회계 조작을 통해 부채비율을 높이고, 그것을 정리해고의 근거로 삼았다는 의혹이 생생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여야 국회의원 모두 한목소리로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토로하던 모습은 그날 하루뿐이었다.

    수많은 죽음들이 있었고,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다. 경제적 어려움에 파산을 했고, 그로인해 이혼을 했다. 쌍용차해고자라는 꼬리표는 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살기 막막한 사회적 낙인이다. 죽음의 그림자는 아직 우리 주위를 일렁이고 있었다.

    그 위급함에 우리는 결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난 4년간 신기루 같던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던 순간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김정우지부장은 죽기를 각오한 채 곡기를 끊었고, 해고자들은 하루하루 말라가는 그를 지켜봤다.

    유력한 정치인들이 대한문 분향소에 왔다갔지만 쌍용차문제는 진전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는 나날들이었다. 그 메말라가는 날들이 길어지자 단식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럴 수 없었다. 눈물 나게 잔인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대로 이 싸움을 멈출 수는 없었다. 23명이 죽고 30일 넘게 생명이 소진되며 싸우는데 그 어떤 진전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릴 수는 없었다. 어금니가 깨물어졌다.

    그리고 싸우는 쌍용차해고자들은 미련하게도 집단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4년간 방법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왔다. 다른 일자리 찾아 다른 삶을 살아가라 쉽게 충고하던 주변의 목소리에 귀 닫고 미련스럽게 버텨왔다. 되지도 않는 뚝심으로 길거리에서 경찰한테 매 맞아가며 버텨왔다. 그리고 쌍용차해고자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곡기를 끊었다. 참 미련하게도.

    쌍용차는 모두의 미래다. 해고가 사람을 얼마만큼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 알 수 있게 해준 절망의 보고서다. 단절된 관계가 죽음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자본주의라는 구조 자체가 사람을 어떻게 쓰다만 폐기물로 만드는지 보여준 죽음의 습자지다. 또한 그 죽음들에 대한 무감각이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공포 그 자체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과 죽음과 공포를 뛰어넘는 희망을 품겠다. 우리는 미련하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 죽음과 절망의 미래를 바꿔내기 위해 우리는 방법을 찾겠다. 쌍용차노동자들의 싸움이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었던 것처럼,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들의 죽음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었던 것처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싸우겠다. 미련스럽지만 질기게. 미련스럽지만 악착같이. 손을 놓지 말아 달라.

    11월 24일 쌍용차문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대회 함께 해주길 간곡히 호소한다. 싸우는 자들이 희망임을 믿는 모두가 함께 나서주길 기대한다. 거칠어진 얼굴로, 퀭하지만 맑은 눈빛으로 동지들을 맞이하겠다. 그리고 이 싸움에 이기는 그 날 함께 외치자.

    쌍용차는 모두의 미래라고.

    필자소개
    쌍용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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