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타오 장쩌민 시진핑, 최후 승자?
[중국과 중국인] 상하이방과 공청단의 20년 대결, 그 끝은?
    2012년 11월 12일 03:0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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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진행되고 있는 중국공산당 제 18차 전국대표대회가 종반을 지나면서, 차기 지도부 인선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중국 본토 언론을 제외한 홍콩, 대만 그리고 미국에서 운영되는 중국계 언론들을 비롯해 각국의 언론들이 거의 매일 서로 상이한 인물들로 구성된 정치국상무위원 명단을 보도하면서 향후 10년의 중국의 정치변화를 가늠하고 있다.

며칠만 기다리면 새로운 지도부가 공개되기 때문에 마치 파벌에 의한 권력투쟁 쯤으로 치부되고 있는 중국공산당의 차기 지도부 구성에 굳이 <레디앙> 독자들까지 끌어들일 생각은 없지만, 중국공산당의 권력 운용방식을 좀 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41명이라는 대규모 18차 전국대표대회 주석단 상무위원 명단이 발표되었다. 이전 대회와 크게 다른 점은 전임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원들로 구성되는 주석단 상무위원에 아직 정치국원이 아닌 인물 4명이 추가되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18차 당 대회 직전에 임명된 두 명의 중앙군사위 부주석(판창롱(范长龙)과 쉬치량(许其亮))이 주석단에 포함되었다. 신임 군사위 부주석은 새로운 정치국 상무위원이 선출된 후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번에는 당 대회 직전에 임명되었으며, 보시라이 사건으로 인해 군사위부주석 직의 하마평에 올랐던 태자당 인물들이 현직에 머무른 반면 후진타오의 측근들이 임명되었다는 점이다.

왼쪽부터 장쩌민 후친타오 시진핑

마찬가지로 후진타오의 최측근으로 중앙판공청 주임이었던 통일전선(统一战线)부 부장 링지화(令计划)와 중앙정책연구실(中央政策研究室)주임 왕후닝(王沪宁)이 주석단 상무위원에 포함되었는데, 신임 중앙위원과 정치국원 선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석단 상무위원에 후진타오의 측근 4명이 추가로 진입했다는 점이다.(만약 정치국 상무위원을 합의가 아닌 *차액선거(差額選擧)로 선출한다면 후진타오의 공청단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당 대회의 실무를 책임지는 비서장(시진핑)과 부(副)비서장 구성에서 당의 선전, 조직 부서와 함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정법위(政法委) 관련 인사가 빠졌다. 보시라이 사건 이후 끊임없이 진행된 중앙정법위의 권한 약화가 18차 당 대회에서 구체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오쩌뚱, 떵샤오핑, 장쩌민 등 중국공산당의 역대 최고지도자들이 마지막까지 유지했던 직책이 중앙군사위주석 직이었다. 심지어 모든 당직에서 물러나기로 약속했던 장쩌민은 15차 당 대회에서 총서기 직을 후진타오에게 넘겨주면서, 군부 직계들의 현장 발의라는 형식을 통해 중앙군사위주석 직을 유지하면서 권력을 행사했다. 이런 이유로 당의 진정한 최고 지도자는 총서기가 아니라 중앙군사위주석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퇴임을 앞두고서야 군부를 확실하게 장악한 후진타오가 현직 부주석들이 퇴임하지도 않았는데 당 대회 직전에 서둘러 두 명의 신임 부주석을 임명하고 각 군의 주요 책임자들을 교체한 것은, 중국공산당 안에서 군부의 특수한 지위와 역할을 지렛대 삼아 당에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한 예측은 언론사들마다 매일 서로 다른 명단을 발표할 정도로 혼란을 거듭하고 있으며, 이는 현재 중국공산당 내에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행사하는 정파가 부재하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평가해 보겠다.

우선, 장쩌민의 조카사위인 조우용캉이 책임자로 있는 정법위는 총서기를 제외하고 군과 무장경찰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보시라이 사건 처리에서의 부당한 행동으로 조우용캉 자신도 이미 정치국 상무위원이 갖고 있는 자신의 후임자 추천권을 박탈당했으며, 각 지역 당 위원회의 구성에서도 정법위 책임자들의 서열이 뒤로 밀리고 권한도 약화되었다.

시진핑과 리켜챵을 제외한 다섯 명의 신임 상무위원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사람이 광동성 서기 왕양(汪洋)이다. 주로 친 장쩌민계 언론들에서 그의 정치국 상무위원 진출에 대한 비관적 보도를 양산해 내고 있는데, 그 주요 이유 중의 하나가 왕양의 나이가 너무 젊어 18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 정치국 상무위원을 3차례나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시진핑 이후 구성될 당의 제 6세대 지도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따라서 이번에 중앙에서 부총리 직을 수행하고 5년 후인 19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을 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왕양은 총리로 지명될 것이 확실한 리커챵과 같은 나이인데 왕양에게만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뿐만 아니라 리커챵은 후진타오가 추천한 총서기 후보였다가 샹하이방과의 협상에 의해 총리 후보로 조정되었으며, 현 총리인 원자바오의 후임자 지명권은 아직 행사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있는 왕양의 정치국상무위원 선출 가능성은 상당히 크다고 판단된다.

중국 밖의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역시 샹하이방과 태자당에 대한 분류와 협력관계에 대한 분석인데, 그것은 샹하이방의 실세인 장쩌민과 쩡칭홍 그리고 태자당인 시진핑의 출신성분 즉 이들이 모두 혁명 원로들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확실시 되는 부총리 왕치샨(王岐山-부총리였던 야오이린(姚依林)의 사위)과 후진타오의 측근인 당 조직부장 리유엔차오(李源潮-아버지가 샹하이 부시장 역임)를 태자당으로도 분류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공산당 내에서 부모가 당과 정부의 고위 관료를 지냈던 사람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재계와 인민해방군에 포진한 숫자 만큼은 아니지만 정계에도 수많은 혁명원로들의 자녀들이 진출해 있는데, 이들을 모두 태자당이라는 단일 세력으로 분류하는 것은 지나친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혁명원로의 가족이라는 유대감은 어느 정도 형성하고 있겠지만, 이들이 공통의 목표와 이익을 위해 강고한 파벌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샹하이방은 장쩌민 개인의 권력 강화를 위해 형성된 집단으로 이미 그의 퇴임이후 기존 구성원의 노쇠화와 새로운 구성원의 충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해서 장쩌민의 존망과 함께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자당은 시진핑이 권력을 잡았지만 군부를 제외하면 당과 정부의 고위직에 활용 가능한 인물이 아직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후진타오로부터 상대적으로 빨리 독립하려는 시진핑과 공청단 세력의 확장을 저지하려는 장쩌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서로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시진핑은 장쩌민과의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당과 정부에 안정적인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그러나 장쩌민과 20년 동안 앙숙관계인 후진타오의 공청단과의 관계에도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로 대표되는 샹하이방과 공청단의 20년간의 대결로 인해 당의 규칙에도 성문화된 것이든 아니면 암묵적인 동의든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상대방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방법(예를 들면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七上八下 규정 등)들이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당의 정치적 변화를 견인하기도 했다.

이미 자본가가 공산당원이 되었고 마르크스-레닌과 마오쩌뚱의 혁명사상은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기계적인 잣대로 중국공산당을 평가하고 서구의 정치모델에 기대 중국정치의 민주화를 전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보다는 중국이 갖고 있는 틀과 그 틀 안에서 변화하고 있는 내용을 추적하면서 중국정치의 미래를 모색해보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해 보인다.

*차액선거(差額選擧): 어떤 기구의 간부를 선출할 때, 규정된 인원보다 많은 수의 후보자가 참가해 경쟁을 통해 일부를 탈락시키는 선거제도.(예: 정치국상무위원 수가 7명이면 8명 이상의 후보를 놓고 투표를 실시해 최저 득표자를 탈락시키는 방식)

필자소개
중국의 현대정치를 전공한 연구자. 한국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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