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종잣돈, 공감 연대 책임
[책소개]『사람인 까닭에』 (류은숙/ 낮은산)
    2012년 11월 10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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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여섯, 고집 세고 어떤 일에도 흔들림이 없던 인권활동가 은숙 씨

<인권하루소식>. 1993년부터 2006년까지 13여 년 동안 일주일에 5번 매일 A4 2∼3장짜리 분량으로, 주류 언론에서 외면한 인권 사건을 드러내어 끈질기게 보도해 각 단체와 언론사의 팩스로 전송한 전대미문의 팩스 신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신문을 3000호 발행했다면 그 사람들이 얼마나 독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테다. 류은숙은 그 <인권하루소식>의 중심에 있었다.

<사람인 까닭에>에 류은숙 인물평을 쓴 인권활동가 유해정은 류은숙에 대해 “사람들은 그를 인권운동의 산 증인이자 역사라 설명한다. 마흔여섯 먹은 사람이 듣기에는 조금 과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지난 21년 단 한 번의 곁눈질도 없이 인권운동의 외길을 묵묵히 걸어왔기에 류은숙에게 이런 수사는 결코 과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 류은숙의 두 번째 책 이 ‘사람’ 이야기라는 점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류은숙의 이번 책 주제는 누구나 기대할 법한 ‘인권’이 아니라, ‘연대’이다.

“2007년, 뉴코아-홈에버 노동자들이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강고한 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매장을 점거하고 80만원 인생의 설움을 토해 내며 생존권을 부르짖었는데 바로 그때, 매장 밖의 사람들이 ‘쇼핑할 권리도 인권’이라며 핏대를 세웠다.” 뿐만 아니라 입점 상인들과 자본가들까지 합세해 인권을 이야기했다. 이렇듯 “사회적 약자를 위한 언어인 인권이 이권이 되어 모두에게 되돌아왔을 때, 우리는 참담했다. 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개별화되고 이기주의화된 권리 의식을 뛰어넘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수많은 자유와 평등의 외침 속에서 유독 ‘연대’만은 속절없이 잊혀 있었다.”(262쪽)

그렇게 류은숙과 동료들은 ‘연대란 무엇인지, 한국 사회에서 연대는 어때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또한 100명을 대상으로 ‘연대에 관한 심층면접 조사’를 하였다.

“그때부터였다. 사무실에 있기를 좋아하던 류은숙이 오라는 연락 없이도 혼자서 거리에 나서게 된 것은. 시간이 될 때마다 촛불 집회에 나갔고, 부산행 희망버스를 탔다. 서울시청 앞에 자리 잡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분향소에 비가 온다며 온종일 부침개를 부쳐 슬며시 갖다놓고 오고, 봄바람이 난 것 마냥 강정 마을로 향했다. 딱히 부르는 이 하나 없었지만 그는 꼭 누가 기다리고 있는 양 그곳에 갔다. 딱히 하는 것 없이 온종일 앉아 있다 오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263쪽)

은숙씨는 왜 사람들에 대한 기억과 감흥의 잡동사니를 끄집어낸 걸까?

그렇게 연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수많은 논의를 했는데, 정작 이 책 <사람인 까닭에>는 연대를 그다지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인권활동가로 20여 년을 살아왔다는 내 삶속에서조차 연대를 경험하고 실천한 기억이 없었다. ‘나 참 한심하구나.’라며 좌절을 거듭하다가 문득 내가 미처 보지 못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은 건데 ‘연대는 없다’고 감히 선언하는 것이 죄스러웠다. 자신에게 좋은 것이 모두에게 좋은 삶, 그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쓰고 힘써 왔으며 또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 보여 줄 수 있는 가깝거나 먼 기억, 뚜렷하거나 희미한 감흥들을 죄다 끄집어내게 됐다. 이 글은 그런 기억과 감흥의 잡동사니다.”(13쪽)

그렇게 어렵사리 풀어 낸 이 책은 사람 에세이가 되었다. 또한, 이 책은 류은숙 개인의 감상보다는 그이를 스쳐간 사람들, 엇갈린 사람들, 울린 사람들, 뒤통수를 갈긴 사람들을 불러내고 있다.

오지랖 넓은 허세욱과 김진숙, 국제 인권활동가 앤지 젤터, 단 할아버지, 피터 할아버지, ‘길 위의 신부’ 문정현, 고문 피해자이자 화해자 강용주, 유가협과 민가협의 어머니 아버지들, 해군 기지 저지 투쟁을 하고 있는 강정 마을 사람들, 빈민 운동가 뱁티스트, 또한 잊힌 세계의 인권활동가들인 에리테리아의 아브라함, 나이지리아 오고니 족 출신인 바르디, 아프리카의 최빈국 차드의 델핀, 잠비아의 자네트, 팔레스타인의 테드, 남아공의 쿱스…… 들이다.

그들뿐만 아니라 스치듯 지나쳤던 인연 속에서 깨달음을 주었던 이들도 빼곡하게 그의 기억 속에서 길어 올려 불러냈다. 빈 소주병을 뒤지던 한 사내, 쪽방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던 노인, 류은숙이 만난 세 명의 장애인인 우동민, 이현준, 정태수, 학창 시절에 자주 보았던 껌을 팔던 세 사람인 땟국이 흐르는 소년, 아기 업은 엄마, 드센 할머니, 서울 변두리 강좌에서 만난 한 청소년, 홍콩에서 마주친 수많은 이주 노동 보모들,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인권을 내건 이주 노동자들, 학생 인권을 처음 제기한 한 청소년, 성소수자들, 유럽 어느 국경에서 불심 검문에 사라져 간 아랍계 청년, 류은숙의 일터인 식당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언니들……. 그렇게 류은숙은 “함께 살자.”는 시대의 호소들을 글 안에 최대한 담으려 했다.

함께 사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류은숙은 비슷한 처지의 두 어머니 모임을 기억해 낸다.

“하얀 머릿수건이 상징인 아르헨티나의 엄마들과 보랏빛 수건이 상징인 한국의 엄마들이 얼싸 안았다. 자식이 옥에 갇힌 일 때문에 하늘이 무너졌던 한국의 엄마들은 자식이 쥐도 새도 모르게 실종 당한 아르헨티나의 엄마들을 만나서 ‘그래도 나는 내 자식이 어디 있는지 알고 면회도 가고 재판도 할 수 있으니 감사할 뿐’이라며 ‘여태 당신들의 고통을 몰라서 미안하다.’고 말한다.”(197~198쪽)

함께 기억하고 행동하고 버티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많다. 가족, 집단, 개인 등은 자유와 평등, 연대 사이에서 늘 갈등을 던진다. 류은숙 역시 이러한 문제들로 고민했다. 그런데 결국 이 틈을 메우는 길은 두 어머니 모임의 만남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었다.

제도화된 연대라고 할 수 있는 복지의 딜레마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복지에 돈은 필요하다. 그런데 진짜 종잣돈은 한정된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공감과 연대가 아닐까? 앞섰다는 복지 국가의 이런저런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흉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복지의 생산 과정에 꼭 들어가야 하는 정서적, 정치적 공감, 연대 의식과 책임의 제도화는 빌려 쓸 수 없는 것들이다.”(83쪽)

그렇게 사람을 보기 위해서는 세대와 국경과 시간,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장소에서 내가 이익을 보고 싸고 편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 먼 장소에서 고통 받을 타인을 떠올릴 능력”(48쪽)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직접적인 혈연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가져야만 하고 또 가질 수 있는 ‘경계를 뛰어넘는 삶에 대한 경외심’에서”(53쪽) 미래에 대한 부채 의식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준비된 사회적 약자’라는 장애인의 이미지와 태도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는 장애인들은 계속 죽어 갈 것이 뻔하다.”(118쪽)라는 결연한 태도, 잊힌 세계에 대한 “기억의 의무에 해당하는 권리”(125쪽) 즉 함께하는 권리 역시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을 제대로 키우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류은숙은 그간 만나 온 수많은 사람 속에서 ‘기다림’을 이끌어 낸다. 절박한 사람들에게 더 이상 기다림을 강요하지 말고 지체 없이 싸우되,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을 갖고 싸우는 자세 말이다.

“‘이번에도 또 누군가를 껴안고 울고 계시는구나. 난 언제쯤 고통의 전염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군가를 안고 울 수 있을까.’ 마음을 고르게 된다. 그리 길지도 넓지도 않은 내 기억 속에서만도 기다림에 지쳐서 사라진 사람, 기다림을 안고서 세상을 등진 이들이 제법 된다. 해결책이 요원해서가 아니라 기다림에 대한 나의 비웃음과 냉대로 더 많이 아프게 한 사람들도 많다.”(242쪽)

“삶에는 늘 연기되는 것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노는 것, 즐기는 것도 연기되고, 실용적이지 않은 사귐과 나눔도 연기되고, 좀 더 고차원적인 자기실현과 기여도 연기된다. 지금 내 삶과 조건은 이쪽에 있고, 나누고 연대하는 삶은 저쪽에 있다. 어느 날 한 번에 몰아칠 수 있는 날이 있으리라 여기며 지금을 견디고 용서할 때가 많다. 지금 내 곁에 한 뼘을 내줄 수 없다면 아무리 여유가 많아져도 열 뼘을 내줄 수 있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각 사람의 몰두와 헌신이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기에 “연대는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사실”인 것이다.”(218쪽)

류은숙은 이야기한다. “연대의 전령이란 ‘나 같은 걸 누가 기다리고 있겠어?’가 아니라 ‘나라도 가 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신발을 챙겨 신는 사람이다. 도무지 알아주지 않을 것 같은 사연들을 퍼뜨리는 전령이요, 도무지 오지 않을 것 같은 지원대가 오리라는 희망을 앞서 건네주는 전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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