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이 행복한 세상은 언제?
    [책소개]『날아라 노동』 (은수미/ 부키)
        2012년 11월 10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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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난 김범 씨는 학비가 부족해 대학을 중퇴하고 모텔에 취직했다. 12년간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지금 다시 모텔에서 일하고 있다.

    “모텔에서 일하는 동안 급여가 통장으로 들어온 적이 없어요. 10명 중 7, 8명은 그럴걸요. 급여 기록이 없으니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고 그래서 사채를 쓰면 신용불량자가 돼요.”

    <날아라 노동>의 저자 은수미는 그와 인터뷰를 끝내면서 24시간 동안 일한 직후라 너무 피곤하다는 그에게 차마 미래를 물어볼 수 없었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 가족 생계 걱정 없이 잘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기본 전제이자 오래된 믿음이다. 그러나 ‘미끄럼틀 사회’를 만드는 피라미드형 노동시장 구조 탓에 일자리, 특히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고,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는 정리해고를 일상화시켜 900만 비정규직, 근로 빈곤을 양산하고 있다.

    노동자로서, 노동운동가로서, 노동문제 전문가로서 ‘노동’이라는 주제에 맞서 길고도 치열한 시간을 보낸 은수미는 19대 국회에 입성하여 심각한 노동 현안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기획 부도와 회계 조작의 의혹이 있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를 국회 청문회로 끌어오고,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민간 군사기업인 컨택터스의 실체를 널리 알리는가 하면, 노조 파괴 컨설팅 업체인 창조컨설팅의 활동을 저지하는 등 연일 노동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날아라 노동>은 쪼그라들고 설 땅을 잃어버린 노동과 노동권의 제자리 찾기를 위해 은수미가 마침내 오랜 연구와 고민의 한 매듭을 지으며 온 국민을 각성시키고자 내놓은 첫 번째 문제제기이다. 이 책은 그간 은수미가 노동문제를 연구하고 현장을 지켜 온 결과물이자 앞으로 만들어 갈 대한민국 일자리 지도 바꾸기 로드맵이다.

    은수미는 특히 지난 10여 년에 걸쳐 미래는커녕 오늘 하루 살기에도 벅찬 비정규직들, 아픈 청춘들을 만나 현장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았다. 그 과정에서 노동과 관련해 우리가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어떤 대안을 찾아가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담았다.

    왜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지,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아도 1년이나 2년 후에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왜 공기업마저 비정규직을 선호하는지, 왜 일하라는 의무만 강조되는지,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비정규직 증가가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근로 빈곤을 뛰어넘을 해법은 없는지, 이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는 노신의 말 그대로이다. 은수미는 이제 모두가 길을 찾는 과정에서 길이 열릴 것이라며 함께할 것을 간곡히 주문한다.

    노동’이지만’ 노동이 ‘아닌’수수께끼와도 같은 현실

    노동은 사람이 살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고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보편적 현상이자 행위인데도 지난 30년간 세계를 풍미한 주제는 ‘노동의 종말’이었다. 제레미 리프킨, 토머스 프리드먼, 다니엘 벨 등 세계적 학자들은 기술과 지식, 정보가 노동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종말이 온다던 노동이 전 지구적 화두로 떠올랐다. 근로 빈곤, 양극화, 비정규직, 저임금이 세계를 휩쓸고,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의 간극이 벌어지면서 학자들은 ‘이중화의 시대’를 언급한다.

    은수미는 이 같은 현상이 노동의 복원은 아니라고 일갈하며 거기에 수수께끼가 있다고 본다. “도대체 노동’이지만’ 노동이 ‘아닌’ 이 현상은 무엇인가? 사라진다던 노동이 다시 한 번 사회적 쟁점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 현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은수미는 그것을 노동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은수미가 말하는 노동 수수께끼는 우리 사회 곳곳에 무궁무진하다. 대표적인 수수께끼를 살펴보자.

    * 노동자인 시민이 경영 효율성을 좋아하면 바로 그 시민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노동자인 시민이 경비실 노동자의 최저임금 감액 적용에 동의하면 당사자 역시 나이 들어 월 90만 원 받고 일해야 한다는 연관 고리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 하청업체는 채용을 대행하는 것에 불과할 뿐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원청업체다. 하지만 중간에 끼어든 업체 때문에 실질적인 사용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사용자를 아버지라 부르라더니 이제 아버지의 가면을 벗긴 뒤에는 사용자가 사라지고 없다. 사용자는 어디로 갔을까, 사용자 찾기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 2011년 한 해 동안 10조 이상 이익을 올린 4대 은행을 비롯해 일부 대기업에서 경기 하락을 이유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기업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답변한다. 근로기준법 제24조에서 못 박고 있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경영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노동자가 경영상의 잘못에 왜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권리가 없으면 책임도 없다는 헌법 정신은 지켜진 적이 없다.

    * 선진국의 공공 부문은 모범적 사용자로서 좋은 일자리를 늘리거나 경쟁 압력에 대한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반면 한국의 공공 부문은 오히려 비정규직 활용을 권장한다.

    * 1997년을 전후하여 중심-주변 노동시장으로의 분리는 더욱 뚜렷해져 전체 노동자의 20퍼센트 정도만 중심부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80퍼센트는 주변부에서 일한다. 똑같이 대학을 졸업했다 해도 중심부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사람은 2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처음 일자리가 주변부인 경우,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라면 정규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약 10퍼센트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 국가의 이동률이 30, 40퍼센트 수준인 것과 현저히 차이가 난다.

    노동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

    그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노동’이나 ‘노동자’라는 인식이 부족한데다 노동에 대해 무척이나 부정적인 데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가고 노동은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함에도 천시되고 불온시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자 노동권이 자리 잡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11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일하는 사람의 71.8퍼센트가 임금근로자, 즉 노동자다. 일하는 사람 10명 중 7명이 노동자이니 대다수가 노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노동자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적다.

    ‘노동’이 붙은 제목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없는 반면 ‘~에 미치라’는 주문이 가득한 자기계발서는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아이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가 아이를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부모들에게 말하면 심지어 화를 낸다.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 사원이 되는 것과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월급이나 평판의 차이는 있어도 노동자라는 점에서는 같은데도 말이다.

    ‘노동’이라고 하면 붉은 띠 동여맨 공장 노동자를 떠올리거나 노가다(막일)를 떠올리기 일쑤라 자신이 노동자인지 아닌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처럼 지극히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서 모든 노동 문제의 해법이 시작된다.

    청년들은 스펙은 열심히 쌓지만 스펙 쌓기 이상으로 스펙 지키기가 중요하며 그것을 위해 노동권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은 들어 본 적도, 관심도 없다. 은수미는 노동이란 말의 태생부터가 노예나 농노의 노동을 일컫는 것이어서 그 흔적을 감추기 어렵다며 노동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추적하기도 한다.

    두 개의 노동이 미래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

    노동과 노동권이 약화되면서 가장 크게 부각된 것이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비정규직 문제다.

    현재 비정규직은 임금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900만 명 수준이 되었고 이들은 비정규직-실직-근로 빈곤이라는 악순환의 쳇바퀴를 돌고 있다. 은수미는 “비정규직은 노동권의 보유라는 기준에 비추어서 정확히 정체성을 알 수 없거나, 실재하지만 정의하기 어려워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라고 정의한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들며 노동시장에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순간 영원히 주변부를 맴돌며 근로 빈곤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여 준다.

    미국과 네덜란드의 비정규직 간호조무사의 현실을 비교하며 수년간 일해도 직업 훈련도, 승진도, 임금 인상도 저조한 미국식 비정규직 현실이 우리와 닮은꼴이라고 꼬집는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노동을 하지만 회사는 모호한 생산성 개념을 들이대며 정규직 임금의 60퍼센트를 지급한다.

    이런 식으로 같은 노동이지만 생산성을 고려하여 임금 격차가 40퍼센트나 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은수미는 묻는다.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두 개의 노동’은 자칫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대립으로 그려질 우려가 있지만 정규직 노동자도 언제 비정규직으로 밀려날지 모르는 상황을 고려하면 본질적으로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배후에서 ‘두 개의 노동’을 조장하는 사용자와 정부에 책임을 묻고 정책적인 압력을 가해야 한다.

    비정규직 중에서 파견직 근로자와 관련된 문제도 심각하다. 사용자가 애매해져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의 잣대가 되기도 하는 ‘노동 유연성’으로 말미암아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사회의 시한폭탄과도 같다. 기업은 당장의 단기적 이익만을 좇아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기는커녕 더욱 확대시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에게도 불리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은수미는 단순한 일자리 문제를 넘어서 일자리 질의 중요성을 제기한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노동 현안을 풀어가는 데 중요한 지점이자 사회 위기를 돌파하는 중요한 실마리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노동이 행복한 세상은 어떻게 오는가

    노동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올곧게 서지 않으면 우리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노동은 단순하게 효율성을 앞세운 시장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존엄한 것이라는 점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노동의 가치를 올바로 세우지 못했을 때 겪어야 했던 인류의 비참한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이는 노동권 개념과 곧바로 연결된다. 노동권은 노동의 정당한 자리를 찾아줌으로써 일하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은수미는 그간 노동권이 생존권으로 협소하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음을 아프게 지적한다.

    은수미는 이 책에서 노동자의 삶이 더 어려워진 원인과 책임을 묻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권리!’라며 발본적 고민을 끌어냄과 동시에 현 노동시장을 바꿔 나갈 ‘대한민국 일자리 지도 바꾸기’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함께 바꿔 나가자고 손을 내민다. 우리에게 노동은 무엇이며 현재의 불안한 노동을 즐거운 노동으로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각자의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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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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