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운동은 변혁운동인가? ①
[협동조합의 역사 미래 의미] 원칙과 실사구시의 지혜
    2012년 11월 08일 11: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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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선생님께,

이번 편지는 좀 늦었습니다. 바쁜 일정도 있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다른 글 하나를 급작스럽게 써야 했거든요. 무려 3일 안에 써내려야 했던 글의 화두는 ‘유럽 몇 나라에서 협동조합의 형성과 발전에 관련된 사회적 배경’이었습니다.

‘사회적 배경’이라… 요즘은 원고 발주처들의 발주주제를 받고 나면, 고승으로부터 선문답의 화두를 받는 느낌입니다.

인간의 사회적 행위에 있어서 어디까지가 배경이고, 어디부터가 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는 영역일까요? 주체에게 인식되지 않은 요인도 사회적 배경일까요?

특정한 사건에 대해 주체가 인식한 잘못된 정보도 주체가 그에 따라 행위를 결정했다면 사회적 배경이 될까요? 주체와 다른 주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개되는 일련의 과정도 배경일까요?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규정된 배경요인들을 단순소개하는 것을 넘어서서, 제가 다시 구성하는 것은 배경요인에 대한 설명일까요, 이에 대한 저의 이해일까요? 객관적 배경이 존재하기 보다는 주체의 행위와 인식의 정도에 따른 사후적인 설명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저런 생산적이지 못한 질문 때문에 3일 만에 원고를 마치는 신공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며칠의 기일을 넘겨 원고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이번 편지에서 다루려고 했던 내용들에 대해서도 좀 더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편지와 다음 편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협동조합 운동은 변혁운동이냐?”입니다. 그리고 저의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입니다.

사회주의 운동이 동질적인 운동이 아니었듯이, 협동조합 운동 또한 동질적인 운동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협동조합 운동의 주류는 노동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고, 직간접적으로 사회주의 운동과 연결되어 발전했지만 이 연결고리에 있던 사람들이 사회주의 운동의 협동조합 프락션이었는지, 협동조합 운동의 사회주의 정당 파견그룹이었는지는 언제나 명료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잘 모르는 공산주의 국가와 제3세계 민족주의 국가에서의 협동조합 운동 경험을 제외하고, 비교적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었던 유럽 국가들의 경험을 도식적으로 살펴보면 협동조합과 노동운동/정치운동의 관계에 대한 태도는 대략 4가지 정도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협동조합 사회주의

먼저, 현실 정치운동과는 거리를 두지만 협동조합 사회 또는 협동조합 공화국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노동계급이 협동조합, 특히 소비자협동조합을 통해 자본에 의해 장악된 생산영역을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가끔은 협동조합 사회주의라고도 불리는 이 입장은 근대적 협동조합의 효시로 알려진 로치데일 공정개척자협동조합(1844년)을 기점으로 하여, 영국과 프랑스의 소비자협동조합 운동 그리고 오늘날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을 통해 주류의 이미지로 자리잡은 입장이지요. 우리에게는 그 아들인 앙드레 지드가 더 잘 알려져 있는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협동조합 지도자이자 학자였던 샤를르 지드 또한 이러한 노선의 대표적인 주창자였습니다.

로치데일 공정개척자 협동조합 설립자들 (출처= 영국 www.co-operative.coop)

벨기에 사회주의

두 번째로는 사회주의 정당, 노동조합, 협동조합을 노동운동의 3각축으로 규정하고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강조한 입장입니다. 벨기에를 중심으로 20세기 중반까지 번성하였기에 프랑스에서도 벨기에 사회주의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노선이기도 합니다.

레디앙에서 출간한 ‘민중의 집’ 모델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벨기에 곳곳에 세워졌던 ‘민중의 집’을 원조로 하는 것이죠. 벨기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상호공제조합과 금융기관도 사회주의 운동에 존재했습니다. 벨기에의 옛날 노동운동 역사를 보면 협동조합 빵집에서 파업기간 중 빵을 조달하고, 협동조합이 수배자와 해직자들에게 피난처와 일자리를 제공했던 흥미진진한 사례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사회주의 운동의 배타적인 방식만은 아니었습니다. 벨기에에서는 기민당과 자유당에서도 유사하게 존재했고,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공산당, 기민당, 사민당이 각각의 생활공동체를 중심으로 대중운동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협동조합은 사회주의 운동의 단순한 도구라기 보다는 그 자체로서 사회주의 운동의 실현체로서 인정받았습니다.

벨기에 겐트 민중의 집 홍보 엽서(1902년) 출처는 벨기에 사회당 리에쥬지부 홈페이지

사회주의 정당의 협동조합 활용론

그러나 두 번째 입장은 쉽게 세 번째 입장으로 흐를 수 있었는데, 바로 사회주의 정당에 의한 협동조합 활용론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에서 주류가 된 소위 정통 맑스주의자들에서 발견되고, 이후 사회주의 운동이 공산주의 운동과 분리된 이후 공산주의 경향 운동에서 협동조합 운동에 대한 도구적 태도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 입장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표현이 “협동조합은 사회주의 운동의 젖소다”라는 것입니다. 당운동에 물적, 인적 토대를 공급하는 물주라는 거죠.

노동자 협동조합운동 

마지막으로 협동조합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노동운동 모두에서 소수의 입장으로 남아있지만 협동조합 초기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온 노동자협동조합운동의 전통입니다. 노동자들이 생산방식과 소유방식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이 노선은 임노동 관계가 주류화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좌파와 우파 모두로부터 미션 임파서블로 조롱받다가, 임노동 관계의 구조적 모순이 다양한 차원에서 터져 나오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점차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가령, 유럽을 휩쓸고 있는 다국적기업들의 제조업 공장이전 정책에 맞서 현장 노동자들과 이들에 우호적인 정부/지방정부에 의해 이전대상 기업에 대한 노동자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입장들은 협동조합을 사회운동으로 이해하는 관점을 전제합니다. 세계 협동조합 운동에는 전혀 다른 시각도 존재하는데, 가령 협동을 통해 조합원의 경제적 이익만 증진시킬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쓰여진 어떤 글에서는 (참고로 한국에서 출간된 협동조합 관련 문서였는데…) 제가 위에 설명한 내용들을 ‘협동조합을 사회운동으로 생각하는 좌경세력’의 관점으로 일축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저는 네 가지 입장 모두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민을 풀어가야 할 주체의 입장에서 이모저모 검토해야 할 때 다양한 측면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입체적인 조명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협동조합 역사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강한 변혁의 힘을 느낀 것은 이러한 각각의 노선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노선들은 구체적인 대중과 현실의 경제활동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했고, 그렇기에 구체적인 선택의 순간에 최선의 결정을 이끌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보면) 선명한 노선도, 사회적 배경도 아닌, 원칙과 실사구시의 태도를 놓치지 않은 운동주체들의 지혜였습니다.

생각만 변혁적이면 무엇합니까, 현실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대중적으로 성공하면 무엇합니까, 이미 협동조합의 뜻을 잊었다면.

다음 편지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변혁운동이 아닌, 좀더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꾸는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의 실험들을 소개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변혁운동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를 묻고자 합니다.

추워지는 겨울 날씨에 몸 건강하십시오.

리에쥬에서 보냅니다.

필자소개
엄형식
대학생시절부터 진보정당의 꿈을 갖고 지역활동에 참여하면서, 소속되었던 정치조직에서는 개량주의자로, 활동하던 지역에서는 좌파꼴통으로 몰려 늘 소수파의 위치를 고수해옴. 노동자협동조합을 바탕으로 한 대안경제의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활사업에 참여하였으나, 뭔가 잘 안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에 대한 실험에 참여함. 현재 벨기에 리에쥬 대학 사회적경제센터에서 박사과정연구원으로 있으며, 파트타임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국제노동자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연맹에서 조사통계담당으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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