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의원, 요새 동네에서 안보이데"
    [진보정치 현장] 동네 사람들의 따끔한 목소리
        2012년 05월 28일 12:4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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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저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그리고 2010년부터 현재까지 진보신당 소속으로 대구광역시 서구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태수라고 합니다.

    대구 서구는 섬유산업이 한창 잘 나갈 때는 염색산업공단에 일하던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했고, 건설일용직노동자들도 많은 곳입니다. 또 가내수공업 등 소규모영세사업장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도 상대적으로 많은 곳입니다.

    현재는 섬유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전반적인 임금수준의 상승과 아파트를 선호하는 주거환경의 변화 등으로 노동자들이 많이 빠져 나갔습니다. 교육, 문화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고, 노후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이 밀집해있는 등 주거환경도 많이 열악해 젊은 층들이 떠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 선거구에는 특히 노인인구 비율이 높습니다.

    기초의원으로 두 번째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좌충우돌하고 있고, 특히 대구에서 진보정당 소속 기초의원으로서 당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형성하고,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좀처럼 당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좌충우돌과 고민, 당 지지 형성의 어려움 등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아 지역에서 진보정치활동을 실천하고 있는 여러 동지들과 고민을 나누고 저의 실수나 모자람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진보정치, 동네서 익숙해지기. 성장하기

    지난 4.11 총선 때 진보신당은 대구에서 한명의 후보를 출마시켰습니다. 대구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저는 있는 힘, 없는 능력 모두 선거운동에 쏟았습니다. 선거를 준비하던 기간과 공식 선거운동기간까지 합치면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총선에 매달렸습니다. 대구시당 사무실과 선거운동본부, 그리고 총선 출마 선거구의 거리에 있는 시간이 많았지요.

    서구의회의 다른 의원들도 모두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었으니 의회는 중단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의회일정은 없었지만, 서구의원이라는 자격은 정지되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이 기간에도 민원 전화와 이런저런 하소연을 갖고 만나자는 사람들은 여전했습니다. 물론 총선을 핑계로 민원 전화도, 만남 요구도 뒤로 미루었습니다.

    장태수 대구 서구의회 의원

    장의원, 요새 안보이데.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밤늦게 퇴근하던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난 직후 동네 마을금고 이사장이 전화가 왔습니다. 꼭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만나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을금고가 위치하고 있는 인근에 이제는 상가들만 남은 인동촌시장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시장을 등록시장으로 만들어달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 그 이야기를 다시 하시려는 모양이다고 생각하고 이사장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사장은 뜻밖의 말씀을 내놓으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요새 장의원보고 머라 카는지 아나?”

    “최근에 총선 때문에 동네 분들 잘 못 뵈었는데요, 와예, 뭐라 캅니까?”

    “동네 구의원이 동네 사람들이 카는 소리도 몰라가 되겠나. 장의원이 진보신당 대구 위원장인거는 나는 알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거 잘 모른데이. 그냥 동네 구의원이라고 알지. 동네 한 바퀴 돌아봐라. 지금 당장.”

    뜨끔했습니다. 대충 짐작은 갔지만, 더 이상 묻지 않고 이사장 말씀대로 동네 골목길을 나섰습니다. 우선 친한 사람들부터 찾았습니다. 동네에서 통장으로 계시고, 한복집을 하면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가게에 들렀습니다. 가게 문을 들어서는데, 가게에 계시던 부부가 평소 때보다 훨씬 더 많이 반기십니다. 그러더니 손을 잡아끌어 앉히고는 말씀하십니다.

    “안 그래도 의원님한테 연락할라 캤어예.”

    “왜요,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이고 그게 아이고, 동네 사람들이 요새 마카 장의원도 똑같다고 캅니다. 선거할 때는 동네 구석구석 다니면서 사람들 말 잘 듣겠다카디, 요새는 얼굴도 안보인다 안캅니까. 내가 바빠서 그렇다고, 그래도 구청에서 일 젤 마이 한다캐도 사람들이 일을 마이 하는지 안하는지 우째 아노 카면서 자꾸 싫은 말 해예. 동네 좀 댕기이소.”

    “제가 당에 대구 위원장인데, 수성구에 우리 당 후보가 출마해서 그 쪽에 일 본다고 요새 좀 뜸했습니다.”

    “아이고 수성구는 수성구 사람들이 알아서 하고, 의원님은 여기 서구 일을 봐야지예.”

    변명을 더 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 분들이 아쉬운 말씀들 하신다고해서 오늘 동네 한 바퀴 돌아본다는 말씀을 드리고, 기어이 내미는 박카스 한병을 마시고 다시 동네 길을 나섰습니다. 가게도 들러 말씀을 듣고, 경로당 어른들도 찾아보고, 평상에 앉아계시는 주민들도 만났습니다. 밤에는 자율방범대 초소에 들러 대원들도 만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랜만입니다” “요새 얼굴 안 보이던데요”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개중에는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듣고 있습니다”는 분들도 계셨고, “총선 때문에 많이 바빴지요”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저런 민원도 말씀해주십니다. 마을금고 이사장 말씀이 괜한 말씀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동시에 내가 할 일도 현장에서 몇 가지 찾았습니다.

    진보정당, 지방의원에게 어떤 역할을 배려해야 할까

    그 날 좀 늦은 시간에 제가 속해 있는 통의 통장님 가게에 들렀습니다. 몇 분이 맥주를 들고 계시더군요. 다들 아는 분들이라 반갑게 인사하고, 저도 앉았습니다. 몇 순배 잔을 돌리고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통장님이 말씀하십니다.

    “장의원예, 바쁜 거 알지만, 그래도 동네 자꾸 댕기이소. 젊은 사람들이고, 어른들이고, 전부 장의원한테 기대가 큽니다. 여서 민노당(아직도 간혹 저를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말씀하는 실수를 동네분들이 하십니다)으로 당선되는기 쉬운 일이 아이잖아예. 장의원님이 잘 하시는데, 동네 사람들이 요새는 장의원 얼굴도 안보이고, 딴데 이사 갔나 캅니다. 차곡차곡 기반을 다지나야 다음엔 더 큰 거 안하겠습니까. 이제 의원님은 우리 동네 사람이 되야되예.”

    한방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궁색한 변명과 핑계 몇 마디 올리고, 앞으로 잘 살피고 다니겠다는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혹시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당시에 당직과 공직을 겸하지 말자는 결정을 한 거 기억하시죠. 국회의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 원내정당화되는 것을 경계하며, 당이 국회의원단 활동을 지도하자는 등등의 취지로 그렇게 결정했지요.

    저는 당시 이 결정을 지지했는데, 제가 지지한 이유는 좀 달랐습니다. 국회의원은 자신의 주된 활동공간을 당에서 의회로 옮겼고, 당직자로서의 활동이 아닌 대중정치인으로서의 자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지지자, 당의 지지를 만들어야 하는데 당무까지 겸하는 것은 특히 대중적 기반이 취약한 우리 당의 국회의원들에게는 과도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생각은 제가 2002년부터 서구의원과 지구당 위원장을 겸하면서 체감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당원들 10번 만나 술 마실 때 동네사람들이나 지지자로 조직해야 할 사람은 1번 만나 술 마십니다. 내부 회의 준비하고, 회의 진행하고, 집회 쫓아다니는 시간이 차분히 의제를 구상하고, 정치화시키고, 관련 이해당사자를 조직하는 시간보다 많았습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기획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능력이 부족했다면 그 능력을 쌓는데 더 시간을 투자했어야죠. 의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지방의원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정치화시키지 못하는 당의 전반적인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역시 이 경우에도 그렇다면 당이 지방의원에게 더 집중적인 고민을 하게하고, 함께 대책을 마련했어야 합니다.

    지방의원은 생활밀착형, 지역밀착형 정치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생활에 밀착하고, 지역에 밀착하면서 지지자도 만들고, 또 동네사람들과 도서관 만들기 같은 대중적인 지역공동체 활동도 함께 펼쳐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합니다.

    선거 때가 되면 진보정당 당원들이 동네사람들에게 표 달라고 잘 못합니다. 잠만 자고 집에서 나오는 분들이 많으니 동네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형편인거죠. 끼리끼리 모여서 논쟁하는 일에는 선수지만, 새누리당에 시큰둥한 동네사람 찾아보고, 그들과 뭔가를 도모하는 대중정치활동은 아직 엄두를 못내는 것 아닌가요.

    물론 당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왜 없겠습니까. 동네사람들하고 친하게만 지내는 게 진보정치냐고 반론이 왜 없겠습니까. 저의 고민도 그냥 동네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자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진보정치의 역할을 찾으려면, 욕구조사라도 하듯이, 진보정치의 현장인 마을에서, 동네사람들에게서 진보정치의 역할이 뭔지, 뭐를 요구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 역할과 요구를 제대로 알아야지 우리 활동이 대중에게 호응 받는 기획과 실천으로 나타나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것이죠.

    그런 일을 최일선에서 해야 하는 지방의원에게 우리는 어떤 공간과 시간을 배려할지 당에서 고민해야하지 않을까요? 지방의원에게 당이 줘야 할 역할과 과제는 도대체 뭘까요?

    필자소개
    노동당 대구시 서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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