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참은 낮고, 신입은 높은 인상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임금협약을
    [기고] 2012 대구건설 파업에서 배운다 : 의미와 교훈
        2012년 11월 06일 04: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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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 이슈로 부각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절박성과 시급함, 중요성을 다 강조한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는 하나’라고 선언한다. 하지만 그 선언을 현실에서 만들어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올 대구건설노조의 투쟁은, 어떻게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이 가능한지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 싸움의 의미, 노동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던지는 의미에 대해서 오민규 비정규노조 연대회의 정책위원이 기고글을 보내주었다. 얼마전 모언론의 칼럼에서 잠깐 언급된 내용들인데, 보다 더 풍부하게 담고 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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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전체 목수들에게 적용되는 임금 협약을 한번 만들어보자!” 대구지역 건설노동자들이 올해 초부터 1년 내내 외쳐온 슬로건이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노동조합이 취해야 할 당연한 구호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건설노동자들의 대중적 투쟁 목표가 되기까지는 험난하고 고된 여정이 있었다.

    임금 협약의 불균등한 적용

    대구지역에는 대략 2천명의 건설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지난해 말 현재 조합원은 400명 수준(조직률 20%)에 머무르고 있었다. 2006년 거의 대부분의 건설노동자를 조직해 총파업을 벌이며 대구 전역을 들썩이게 한 적도 있지만, 노무현 정권의 극악한 비정규투쟁 탄압으로 지도부 대다수가 구속되고 피해가 속출해 조직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 대구건설노조를 지켜온 것은 150~200명에 달하는 열성 조합원들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노동조합 지침에 따라 투쟁을 결의하고, 숱한 희생을 감수하며 민주노조를 사수해온 이들이었다. 2006년 파업의 후과로 이완된 조직력을 복구하면서 150~200명의 열성 조합원들 주위로 200여 조합원이 더 모여서 400명 수준의 조직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20%의 낮은 조직률보다 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임금 협약의 적용이 불균등하다는 점이었다. 우선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격차가 존재한다. 아예 임금협약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비조합원의 경우에는 조합원보다 1만 5천원 가량 낮은 일당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은가? 조합원 일당이 더 높다면 당연히 미조직 노동자들이 노조로 달려오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 비밀은 여기에 있다. 매년 단체협상을 벌이고 일당을 1만원 안팎에서 올리기는 했지만, 노조가 체결한 임금 협약은 열성 조합원들 150~200명에게만 적용되었다. 같은 조합원이라 할지라도 임금 협약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낮은 일당을 받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노조에 가입한다고 해서 곧바로 임금 협약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니, 비조합원들이 임금만 보고 노조로 달려올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올 6월 건설노조 총파업 당시 대구경북건설노조 모습(사진=건설노조)

    자본주의 계급사회에서 참으로 당연한 이치인데, 노사가 체결한 합의서는 노동자들이 힘이 있을 때에만 지켜진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만들라거나, 고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준수하라’며 몸에 불을 댕기지 않았던가. 아무리 멋들어진 법과 제도가 있다 한들, 그것을 지키고 이행을 강제할 대중적 힘이 있지 않는 한 공문구에 불과한 것이다.

    산업의 특성상 10~15명씩 팀으로 묶여서 움직이는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대다수가 조합원으로 구성된 팀의 경우에는 임금 협약을 강제할 힘이 있지만, 한 팀에 조합원이 1~2명 수준이라면 지켜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조직력을 배가한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그렇다. 답은 간단하다. 팀의 구성원 대부분을 조합원으로 조직해서 싸우면 된다. 물론 이 답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은 만만치 않은 과제이지만.

    조직률 20%의 노조가 과반을 넘어서기까지

    이를 위해 노조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올 해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한 것이다. 첫째도 조직화, 둘째도 조직화, 셋째도 조직화! 다음 순서는 이 투쟁의 실제 주체인 조합원들과 토론하고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아무리 지도부가 올바른 목표를 세운다 한들, 조직노동자 대중이 동의하고 결의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발이 닳고 목이 쉬도록 선전전과 현장 교육을 돌았다.

    포스코 건설현장에서 노조 교육을 못하게 막자, 3월 한 달에만 세 번 집회를 박으며 현장 교육을 쟁취하기도 했다. 안전교육시간을 쪼개어 회사 20분, 노조 20분 교육을 진행하던 것을, 단체협약에 보장된 교육시간 내놓으라 싸워서 1시간씩 안정적인 교육을 정착시켰다. 처음에는 조합원 위주의 직고용팀이 대상이었지만, 점차 현장 전체의 목수들을 모아 교육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함과 동시에 올해 투쟁의 쟁점을 ‘임금’ 항목으로 단순화시켰다. 노동안전, 유보임금, 고용안정 등 수많은 절실한 요구들이 있지만, 임금인상으로 단일화하여 이를 모든 목수에게 적용하는 투쟁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수많은 선전전과 함께 3월 한 달간 설문조사가 병행되었다. 총 585개의 설문지가 수거되었으니, 비조합원 상당수도 설문에 응한 것이다. 설문 결과 임금 인상에 대한 욕구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으니, 지도부의 올바름이 한 차례 입증된 것이었다.

    그 다음 순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미조직 노동자를 상대로 한 사업이었다. 우선 노동조합은 선언했다. “이번에는 모든 건설노동자가 뭉쳐보자. 목수들 전체에 적용되는 임금 협약을 만들어 보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조로 뭉쳐야 한다.” 물론 선언만으로 비조합원들이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새벽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상대로 다시한번 목이 터져라 집회와 선전전을 진행했다. 설득하고 또 설득하고, 토론하고 또 토론하고, 교육하고 또 교육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굳게 닫혀 있던 비조합원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400명이던 조합원 규모는 6월 25일 파업 돌입 시점에 550명, 1주일간 진행된 파업 기간에 700명으로 늘더니, 심지어 파업이 끝난 뒤에도 줄기차게 늘어나 1천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400명의 조합원이 1천명으로, 20%이던 조직률이 50% 이상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조직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

    6월 25일부터 1주일간 파업투쟁을 벌인 결과, 기존 협약보다 일당을 1만 3천원 올리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여기서부터가 대구건설노조가 올해 쓴 드라마의 클라이막스이다. 기존 임금 협약을 적용받던 열성 조합원 150~200명은 새로운 합의에 따라 일당 1만 3천원이 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기존 임금 협약이 적용되지 않던 신규 조합원은? 조합원에 비해 차별받던 1만 5천원에다 새로운 임금 인상 합의 1만 3천원을 합해 총 2만 8천원의 일당이 오르게 된다!

    참으로 이상한 노릇이다. 지금까지 각고의 노력과 희생·헌신을 감수했던 열성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폭이 가장 낮고, 올해 첫 가입한 신규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폭이 가장 높은 것이다. 그런데 이 잠정합의안에 대해 조합원들은 무려 82.33%의 높은 찬성률로 압도적 가결을 만들어냈다. 열성 조합원들의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란 말이 있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라 해도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천년만년 가는 권력이 어디에 있겠는가? 엄연히 임금협약이 있지만, 현장에 다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었다.
    현장에서 일당만 1만 5천원 가량 차이가 나고, 노동시간도 차이가 난다. 이를테면 조합원들은 5시 칼퇴근을 사수하고 있지만, 비조합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더해주고 있는 형편이다. 조합원들은 노동절·투표일·노조창립일에 유급 인정을 받고 있지만 비조합원들은 그렇지 못하다.
    어느새 노동자들 사이에 격차와 계급이 생겨난다. 조합원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부러움 대상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가다가는 열악한 조건의 비조합원에 둘러싸여 고립되고 말 것이다.
    이 고립감을 탈출하는 길은 뭘까? 조합원을 확대하고 모든 건설노동자에게 똑같은 임금 협약을 적용시키자. 조직화, 조직화에 모든 강조점을 두었고 고참 조합원들도 잘 이해해 주었다. 우리가 똘똘 뭉쳐 대구지역 전체 수준을 높이도록 만들고, 점차 다른 지역도 대구를 따라오도록 견인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구가 한발 더 나가고 또 다른 지역이 따라오고 이런 식이 되어야 한다.“

    파업을 이끈 대구건설 이길우 지부장의 설명이다. 애초 노동조합의 요구는 일당 2만5천원 인상이었지만, 절반의 성과(1만3천원 인상)에 만족할 조합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구건설 조합원들은 자신보다 열악한 미조직 노동자에게 손을 뻗어 단결을 확대하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올해 임금인상폭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영리하게도 이들은 1천명으로 늘어난 조직력으로 내년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챈 것이다.

    “파업 3일차인 6월 27일, 경산 부영아파트 현장에서 원청 사무실을 타격하고 돌아오는 길에, 관광버스 1대에 탄 48명 전원이 경산경찰서로 연행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현행범도 아닌데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연행한 것도 문제였지만, 검찰에서 48명 중 10명 구속영장 청구 방침이라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곧바로 전조합원이 경산경찰서 앞으로 집결했다. 오후 3시부터 밤 12시 넘게까지 항의투쟁을 전개했다. 우리는 단 한 명의 연행자도 남김없이 석방하지 않으면 물러설 수 없다고 버텼다. 정보과 형사들이 여러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우리는 일체의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 밤 12시 넘어서까지 농성과 집회를 진행하느라 조합원들도 힘들고 지쳤을텐데 단 1명도 움직이지 않았다. 동료들 전원을 석방시키겠다는 열의가 보였다. 정보과 형사들조차 무전으로 “얘기 안 통한다. 이 대오 끝까지 버틴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다음날(6월 28일)이 건설노조 총파업 상경투쟁이었는데, 만일 연행자 석방 없으면 상경투쟁 포기도 불사할 태세였다. 결국 밤 12시 넘어서 48명 연행자 전원이 석방되었다. 너무 기뻤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새벽에 귀가한 조합원들은 약속대로 다음날 상경투쟁을 위해 아침 일찍 모두가 집결했다.”

    조합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1주일간의 파업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세간에서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따라서 순수하게 이타적인 일을 벌일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대구건설 노동자들이 이타적 존재임을 입증할 의사가 없다. 그들의 올해 투쟁이 순수하게 ‘미조직 노동자들을 위해’ 벌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리하게도 좀 더 길게, 좀 더 멀리 내다보았을 뿐이고, 이 길이 진정으로 자신들을 위한 투쟁임을 체득한 것일 뿐이다.

    미조직 노동자들과 결합하면서 경산경찰서 앞에서 벌인 투쟁처럼 역동성이 생겨났다. 언제나 그렇듯 투쟁과정에서 생겨나는 역동성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이런 감동을 만들어 내는구나!” 그것은 지도부의 헌신과 희생만으로, 혹은 유능한 관료의 멋들어진 투쟁 기획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직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의 결합, 자본의 노동자 분할을 뛰어넘는 기획 속에서만 선물처럼 주어지는 항목이다.

    세간에 ‘귀족노조’라 비난받아온 대기업 노조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대기업 노조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성과라 항변하지만, 날로 늘어가는 비정규직에 둘러싸여 사회적 고립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올해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단체교섭에서 따낸 ‘돈’만 봐도 최저임금 노동자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니 말이다.

    그 고립을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대법원 판결조차 지키지 않는 현대차에 맞서 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30m 고공 송전탑에 올라 농성을 벌인지 2주가 넘었다. 단결된 힘이 없다면, 대법원 판결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비정규직 스스로의 힘을 모아내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만일 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다면 과연 정규직 단체협약인들 자본이 지킬성 싶은가?

    대구건설노조가 보여준 길처럼,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결합을 과감하게 선택한다면 그 속에서 새로운 역동성이 나타날 것이다. 자본가들이 오히려 혼란을 겪으며 연신 실수를 연발할 것이고, 그들의 실수 속에서 또다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감과 용기를 갖고 투쟁으로 솟구칠 기회가 열리게 된다.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 조합원만 정규직화 시켜달라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비조합원 포함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를 정리한 것 역시 이런 취지가 아니었던가!

    “불법파견·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다시한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겠습니다. 물론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그래도 갈겁니다. 정규직 노동자 동지들! 함께 파업을 벌이기 어렵다는 현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딱 한가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설 때 자본가들이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행하는 대체인력 투입을 함께 저지합시다!”

    현대차 울산·아산·전주공장에서, 고공농성 철탑 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길게 보면 이 싸움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절실한 문제이다. 이웃한 현대중공업에서 관리직 희망퇴직 칼바람이 시작되었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는 곧이어 현대차와 전산업으로 확대될 것임을, 평범한 노동자들도 직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 옆에서 일하는 비정규직과 어깨걸고 정규직 전환을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더욱 단결된 힘으로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서는 가장 영리한 길이 아니겠는가. 지난 몇 년간 젊은 노동자들을 수혈받지 못한 채 매년 평균연령이 한 살씩 늘어나며 고령화되고 있는 대기업노조의 현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더욱 강력한 민주노조로 거듭나야 하지 않겠는가.

    필자소개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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