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텔 등 전전하며 구인문자 기다려야
    [이주의 시대, 평등한 권리]차별과 폭력 등 근절되어야 사업장 변경도 줄어
        2012년 11월 06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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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노동자와 이주민들의 목소리로 한국 사회의 속살, 특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현실과 다문화사회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글을 기고한 사람은 이주인권활동가이고 베트남 이주여성인 원옥금씨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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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한국에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이주노동자에게 힘든 계절이다. 특히 사업장변경 허가를 받고 구직활동 중인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한국의 추운 겨울이 더욱 가혹하게 느껴진다. 언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불안과 점점 다가오는 강제출국날짜, 그리고 일정한 거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베트남출신 이주노동자 N씨는 2개월째 모텔과 친구집을 전전하며 구직을 위해 발을 동동구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구직을 위해 할 수 있는 활동은 그리 많지 않다. 언제 올 지 모르는 고용센터의 구인 사업장 알선 문자를 기다리는 것 뿐인다.

    고용센터는 그에게 평균 5일 정도에 한번씩 고용업체의 정보를 문자로 보내주는데, 한국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그는 업체와 전화 상담을 할 수 없어, 직접 업체를 방문하여 손짓 발짓을 섞어서 인터뷰를 하고 근로 조건을 협의해야 한다.

    한번 업체를 방문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다, 막상 고용센터에서 알선한 회사에 가보면 사람을 뽑지 않는 회사인 경우도 있고 아예 회사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N씨는 요즘 자신이 원하는 지역의 모텔에 머물며 고용센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연락이 오는 즉시 업체로 달려가야 한다. 알선 후 3일이 자나면 업주와 노동자가 서로 원하더라도 계약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한달이 더 지나가면 그는 미등록외국인노동자, 즉 불법체류자가 되거나 출국해야만 한다. 그건 N씨가 전혀 의도하거나 원치 않았던 상황이다.

    지난 6월4일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사업장변경 개선 및 브로커 개입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8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후 N씨처럼 곤란한 상황에 처한 외국인노동자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 대책의 목적은 고용노동부가 밝히고 있듯이 이른바 ‘잦은 사업장변경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영세업체의 인력난을 심화시키며, 성실한 다른 근로자까지 근로의욕 저하문제 유발’때문이라고 하여 사업장 변경의 원인이 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사업장변경을 원하는 노동자를 불성실한 노동자로 매도하여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향을 잃고 있다.

    또 고용노동부는 이 대책 시행의 다른 목적이 브로커 개입 차단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원래 제도 아래서도 사업장 변경시에 외국인노동자는 고용센터가 제공한 명단에 있는 업체에 한해서 구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브로커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노동부의 이주노동자 사업장변경 제한 지침 규탄 기자회견(사진=다산인권센터)

    고용노동부는 ‘브로커 개입 차단’을 명분으로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절차를 까다롭게 하여 사업장 변경을 최소화 시키려고 하고 있다. 물론 대책의 말미에 정당한 사업장변경을 방해하는 업주는 적발하여 처벌한다는 생색을 내고 있으나, 이번 조치는 누가 보더라도 사업장변경을 어렵게 하려는 취지임에 틀림 없다.

    “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사업장변경 대책” 철회하라!

    8월1일 시행된 대책에 따르면 사업장변경자에 대해서는 구인업체 명단제공을 중단하고 법정기간(3개월)내에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고용센터에서 적극적인 알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고용센터의 알선에도 불구하고 법정기간 초과자는 법에 따라 법무부 통보,출국조치를 하겠다고 한다.

    이전에는 외국인노동자가 사업장변경시 고용센터가 제공하는 업체 명단중에서 자기에게 맞다고 판단되는 업체에 지원하여 사업장을 짧은 기간안에 변경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구인 업체의 명단을 받을 수 없고 고용센터의 알선만 기다려야 하는데 고용센터의 알선이라는 것이 현재까지 드러난 바에 의하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10월28일, ‘이주노동자 노예노동 강요하는 고용노동부 지침 철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주최한 “사업장변경 권리 박탈지침 폐지 촉구 서명 발표 및 이주 노동자 피해 사례 증언 대회”에서 노동자들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자기의 지원 분야와 다른 분야의 업체를 알선하는 사례, 알선이 지연되는 사례, 알선한 업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외국인노동자를 구인하지 않는 업체를 알선하기도 한다.

    막상 알선을 받더라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업체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노동자는 전화상으로 업체와 상담을 할 수 없고, 대부분의 경우 직접 방문하여 업체와 상담하여야 하는데 막상 방문해 보면 구직을 원했던 업체가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이럴 경우 다시 고용센터의 언제 올지 모르는 알선문자를 기다려야만 한다. 대기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거문제, 생활비용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고, 심리적 압박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앓게 되어 귀국한 사례도 있다.

    더 나은 환경에서 노동하려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있다. 이건 나쁜 것이 아니고, 불성실한 것도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요구이다.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노동자라고 하여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정당한 사업장 변경을 억제하기 위해, 사업장변경 절차를 어렵게 하여 사업장 변경을 최소화 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브로커 개입차단이라는 것은 허울 좋은 명분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최소화하려면 영세 사업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주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근로계약을 위반하거나, 노동자에 대해 인종차별,폭행,위협등을 일삼는 사업주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집행이 이루어져 이런 사례가 근절되어야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을 줄일 수 있다.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면서 많은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경제의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리고 이들은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아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이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의 이번 8.1 대책 시행을 보면 이들을 단순히 영세 사업장의 노예적 노동을 참아내야만 하는 총알받이로 취급하고 있으며, 이런 노동부의 인식은 사업주와 노동자 어느 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외국인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사업장은 경쟁력이 높아질 수 없다. 변화 발전하지 못하는 사업장은 결국 경쟁에 뒤 쳐져 도산할 수 밖에 없다.

    고용노동부는 지금 당장 8.1 대책 시행을 철회하여야 한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와 사업주가 보다 자유롭게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여야 한다. 고용센터의 어설픈 알선을 통해 간섭을 하기보다 노동자와 사업주 양방이 구인구직 정보에 보다 자유롭게 접근하여 자율적으로 고용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필자소개
    이주인권활동가. 베트남 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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