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
    그들이 읽는 세상: 캘러밴을 위해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 약자의 저항 전략은?
        2012년 11월 05일 11: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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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영화를 보거나 문학작품을 읽을 때 악당을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오는 주인공을 싫어한다. 나는 그런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는 용감하지도 않고 악당을 물리칠 힘도 없고 평화를 가져올 능력은 더더욱 없다.

    토마스 하디의 <더버빌가의 테스>에서 나오는 테스같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차이다가 결국 파멸하는 비련의 주인공이라면 애틋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런 주인공은 어쩐지 내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에 흔히 나타나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결말을 아주 싫어하기도 한다. 자기를 망친 사람들과 세상을 나로서는 용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학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내가 문학 작품의 주인공을 싫어하거나 작가가 제시하는 세상에 대한 전망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문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문학 선생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문학을 배울 때 우리는 작가와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의 입장에서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옳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소위 위대한 문학이라고 불리는 문학 작품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문학작품의 작가가 제시하는 세계관이 못마땅하고 그런 작가의 세계관을 구현하는 주인공이 못마땅해진다.

    이제 나는 영화나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거나 문학작품을 읽을 때에 아예 거꾸로 읽는 버릇이 생겼다.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한테 당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작가의 세계관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세계관이 나와 같은 독자를 현혹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작품에 나오는 인물로 주인공에게 당하지만 내가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태풍>에 나오는 캘러밴이라는 괴물이다.

    <태풍>은 프로스페로라는 주인공이 마술을 이용하여 태풍을 일으키고 요정을 부리면서 마음 나쁜 동생에게 뺏긴 공작의 자리를 되찾고 또 자신의 딸을 왕자와 결혼시키면서 사회의 질서가 나쁜 사람들에 의해 잠깐 혼란을 겪기는 했지만 다시 더 좋은 질서를 갖춘 사회로 회복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캘러밴은 그런 중심 줄거리로 볼 때는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캘러밴은 텔레비전 연속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요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가끔 재미를 주기 위하여 웃음거리가 되는 좀 모자란 인물과 비슷한 인물이다.

    <태풍>에서 동생에게 공작자리를 뺏긴 프로스페로는 바다를 떠돌다가 외딴 섬에 정착하게 된다. 이 섬에는 요정들도 있지만 사람으로서는 마녀의 아들인 캘러밴이라는 괴물이 혼자 살고 있다. 프로스페로는 이 섬에 살고 있는 괴물인 캘러밴을 제압하여 노예로 삼는다. 그러니까 캘러밴은 이 섬의 주인이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외부의 침입자에게 섬을 빼앗기고 외부 침입자를 위하여 일을 하여야하는 노예가 된 것이다.

    영화 '펨페스트(태풍)'의 한 장면 프로스페로와 캘러밴(맨 오른쪽)

    캘러밴은 프로스페로에게 앙심을 품는다. 주인공은 좋은 사람이고 주인공을 싫어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틀로 <태풍>을 읽으면 캘러밴이 프로스페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몰아내려고 획책하는 것은 캘러밴이 야만인이기 때문에 나쁜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신분이 높고 교양과 지식을 갖춘 사람을 본받는 것이라고 우리는 배웠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존중하는 태도로 문학을 읽어야 제대로 문학을 읽는 것이라고 교육받은 독자들은 <태풍>을 읽을 때 교양 없고 못생긴 야만인인 캘러밴이 자기의 섬을 뺏은 프로스페로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거두어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프로스페로에게 고마워해야 마땅하다고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문학작품을 읽는 정해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문학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과 사건들을 나의 입장에서, 즉 독자 자신의 입장에서, 읽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태풍>을 읽는 독자가 힘도 세고 돈도 많고 아는 것도 많은 권력자라면 주인공인 프로스페로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읽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입장에서는 야만인이던 캘러밴이 프로스페로를 알게 되어서 품위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배우게 되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도리도 깨달았다고 생각해도 된다. 이런데도 캘러밴이 프로스페로에게 앙심을 품는다면 캘러밴은 배은망덕한 인물이 된다.

    그러나 나는 독자가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그저 그런 보통사람이라면 <태풍>을 읽을 때 강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캘러밴의 입장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은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약자들이다. 약자들인 우리가 힘센 자의 입장에서 문학작품을 읽으면 힘센 자들이 약자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힘센 자들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우리들도 모르는 사이에 동조하는 결과가 나온다. 대부분의 문학 작품은 힘센 자들의 편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고 문학은 잘난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문학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살기 어렵다. 설사 우리가 글자로 쓰인 문학을 읽지 않는다하더라도 문학의 다른 형태인 영화, 텔레비전 연속극, 유명 인사의 성공담과 같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보고 들으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자인 우리들이 문학작품이나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듣거나 보게 될 때에는 과감하게 전투적으로 저항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태풍>에서 약자인 캘러밴은 힘이 없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프로스페로가 시키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한다. 그러나 캘러밴은 끊임없이 프로스페로에게 욕을 하면서 그를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캘러밴은 프로스페로가 자신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말을 곧이듣지 않는다. 캘러밴은 프로스페로가 이 섬에 처음 왔을 때 사이좋게 지내자는 프로스페로의 말을 믿고 이 섬의 어디에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있고 어디는 살기가 좋고 어디는 살기가 나쁘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을 내내 후회한다.

    캘러밴이 프로스페로에게 하는 말 중에 다음과 욕설이 있다. “넌 나에게 너의 말을 가르쳤지. 그 말을 배워서 내가 얻은 것이 뭐냐 하면 너에게 욕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야. 네가 하는 말을 내가 알게 되었다는 것 때문에 넌 염병이 나서 죽을 거야.”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약자이며 정복당한 캘러밴이 강자이며 정복자인 프로스페로에게 어떻게 저항하고 반란을 일으키는지를 알 수 있다.

    외부의 강자가 어떤 지역을 침략하여 정복하고 지배 체제를 구축할 때 그 외부의 침략자는 그가 원주민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기 위하여 그곳에 있다는 거짓말을 끊임없이 한다. 이럴 때에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외부의 정복자에 저항하면서 그를 몰아낼 과제가 생긴다.

    <태풍>의 캘러밴이 정복자의 말을 알아듣고 그 말로 정복자에게 욕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것은 외부의 정복자에 대항하는 원주민의 저항 전략이 구축되기 시작하였음을 뜻한다. 정복자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정복자의 거짓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거짓말 뒤에 숨어있는 진짜 이유도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서 그 정복자가 어떤 방식으로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태풍>은 우선은 외세의 침략과 저항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더 나아가서 하나의 체제 안에서 벌어지는 강자와 약자의 싸움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에서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프로스페로는 힘없고 무식한 캘러밴을 무력과 거짓말로 지배하고 농락하고 있다. 캘러밴이 말하는 저항의 방식을 이런 상황에 대입하면 힘 없는 자들은 힘 있는 자들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면서 그 이해를 바탕으로 힘 있는 자들에게 어떻게 대들 수 있는 가를 알려준다.

    문학은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문학작품에서 읽을 수 있는 세계는 우리가 직접 살아가는 세상과 비슷하다. 문학작품에서 주인공과 그 맞상대가 있고 그런 중요 인물들 말고 기타 등장인물들이 있듯이 현실 세계에서도 정치권력, 자본권력, 문화권력을 놓고 싸우는 주인공들과 그 맞상대들이 있고 그런 대단한 싸움과는 별도로 일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대다수 보통사람들도 있다.

    <태풍>에서는 프로스페로와 그의 동생이 공작이라는 큰 자리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가 중심 이야기지만 이 작품에는 프로스페로와 캘러밴 사이에 벌어지는 강자와 약자의 싸움의 이야기도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입장에서 이 작품을 읽는다면 주인공인 프로스페로와 그의 맞상대의 그의 동생 사이에 벌어지는 큰 싸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약자인 캘러밴과 강자인 프로스페로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크게 보아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학 작품을 읽을 때에는 우리들 약자의 입장에서 이야기에 나오는 약자를 편들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읽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작품을 약자의 입장에서 읽자는 나의 제안은 현실 세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현실 세계에도 강자와 약자의 싸움은 계속된다. 신문과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은 우리들 대부분과는 다른 강자들이다. 그들이 우리들 약자들에게 어떻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농락당하고 있는 지를 우리는 눈에 불을 켜고 긴장하면서 살펴야 한다. 그리고 싸움을 준비하고 또 싸워야 한다.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문학으로 읽는 우리 시대>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편집자>

    필자소개
    중앙대 영문과 교수, 민교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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