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좌파, 분별정립 필요한 때
[말글 칼럼] '성향'과 '이념'을 가리키는 다른 언어
    2012년 11월 05일 10:1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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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좌파’? ‘진보좌파’?

한동안 뜸했군요. 쉬면서 깊이 고민한 게 하나 있습니다. 이제는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낱말을 내세울 때가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진보’니 ‘좌파’니 하는 낱말 아닐까 싶습니다. ‘진보’라는 말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도대체가 애매하지 않나 해서요.

민주당=전라도=왼쪽=진보, 새누리당=경상도=오른쪽=보수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주어지는 선택지는 셋이지요. ‘보수’, ‘중도’, ‘진보’. 상당수가 ‘진보’를 선택합니다. 그 선택의 기준이 뭘까요? 대체로는 ‘성장이냐, 분배냐’로 나누지요.

그런 다음 지지 정당을 물어봅니다. 그러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거의 다 차지합니다. 그 외에 진보정의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녹색당 같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당들이 고만고만하게 나눠 가지고요.

자기 정치 성향을 ‘진보’라고 한 사람들도 지지 정당 쪽으로 가면 대부분 민주당을 선택합니다. 그리하여 민주당은 ‘진보적인’ 정당 행세를 하게 됩니다. 그간 민주당이 표방한 이념이나 노선, 정책, 당의 인적 구성은 보수쪽에 훨씬 가까웠는데 말이죠.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민주당=전라도=왼쪽=진보, 새누리당=경상도=오른쪽=보수’. 이념으로 구별하기보다는 지역으로 분류하는 게 더 빠르다는 거죠.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의 정치적 성향은 각 정치세력이 표방하는 이념과 무관하다는 겁니다.

‘진보’, 그 잡식성이라니

진보를 영어로는 progress라고 합니다만, 이념으로 굳어진 낱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진보적인progressive‘의 뜻으로 더 많이 사용되지요. 이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성향‘을 일컫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liberalism’을 ‘진보주의’라 번역하는 경우가 더 많지요. 정확하게 하자면 ‘자유주의’라 해야할 것을요.

진보적이라는 것은 정말로 포괄적입니다. 가령 전두환의 과외금지정책은 진보적일까요, 보수적일까요? 김대중 정권이 IMF의 권유를 받아들여 채택한 ‘구조조정’은요? 박근혜가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나 사회보장정책은 어떤가요?

거창한 정책이 아니더라도 진보는 그 범위가 아주 넓지요. 가령 정치적으로는 분배 쪽을 선호하고 비정규직을 없애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정에서는 가부장적일 수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뒤섞인 거죠.

진보주의와 헷갈리는 ‘자유주의’라는 것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자유주의’라고 하면 시장에 국가가 개입하여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복지정책을 주장합니다. 지금 대선후보들이 대체로 이쪽 방향으로 갑니다. 이건 ‘진보적’이랄 수 있지요. 그러나 ‘경제적 자유주의’로 가게 되면, 국가의 시장 개입을 부정합니다. 철저한 시장논리로 치닫지요. 이건 확실히 ‘보수적’입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지금 한국의 양대 정당은 진보적이면서 보수적입니다. 시장주의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보수적’이지만, 국가 개입을 내세우는 점에서는 또 ‘진보적’이라는 겁니다. 아니 양대 정당만 그런 게 아닙니다. 흔히 진보로 분류하는 통합진보당도 ‘민족주의’를 앞세운다는 점에서는 ‘보수적’입니다. 녹색당처럼 생태를 중시한다 해서 무조건 진보가 되는 건 아닙니다. 생태환경을 정말로 잘 지키는 보수도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진보와 좌파, 가깝고도 먼 사이

정치 성향부터 가치관까지를 아우르는 ‘진보’와 달리 ‘좌파’라는 말에는 정치 이념이나 지향이 또렷하게 담겨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좌파도 오늘의 눈으로 보면 보수적인 측면이 있지요. 프랑스 혁명 당시의 좌파가 표방한 이념이 오늘날까지 좌파적인 것일 리는 없으니까요.

프랑스혁명의 시가전을 표현하는 연극의 한 장면

그러나 오늘날 좌파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분명해보입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반자본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를 넘어서는 것이 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 아니면 사회민주주의냐를 놓고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반자본주의’라는 것만큼은 좌파가 놓아서 안 될 핵심 주의라는 거지요.

이 좌파가 스스로를 ‘진보’라 규정한 데는 한국적인 특수성이 작용했지요. 분단 상황에서 좌파를 표방하는 것은 스스로를 ‘친북’으로 규정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 외에도 진보를 내세워서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좌파까지도 아우르는 세력화를 도모한 것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일전 남종석씨는 ‘레디앙’에 쓴 글, <진보좌파의 인지적 지도>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나는 아직은 좌파가 진보라는 수사를 포기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좌파가 진보를 전유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말에서 좌파가 진보라는 말을 고수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좌파의 확장성을 높이는 데 진보라는 말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좌파는 진보(적)일 수 있지만, 진보가 좌파일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좌파지식인들이여, 부디 나침반을!

저는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출마선언할 때 페이스북에 이런 바람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심상정 후보가 ‘반자본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서달라고, 말이죠. 그러나 심후보는 이전부터 펼쳤던 논리를 더 ‘현실적’으로 다듬는 데 머물렀습니다. 그래서야 어디 문재인이나 안철수의 ‘진보적’인 정책과 무엇이 다를까 싶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페이스북에 펼친 것으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좌파에게 없는 건 둘이다. 첫째, 이념. 둘째, 지도자.
돌아보니 80년대부터 언제나 누군가의 지령을 받았더랬다. 그게 딱 끊겼다. 최초로 반자본주의 노선이 사라졌다. 혁명을 말하는 게 낡아빠진 것이 되었다. 그건 옛날 얘기할 때나 할 말이다.
하여 지금보다 더 좋은 때가 없지 싶다. 무주공산이다. 아무도 좌파의 선장이 되려고 않는다. 누구도 나침반을 만들지 않는다. 허니 이보다 좋은 때가 어딨나.
나는 좌파 이론가 그룹, 그들의 학교, 그들의 기관지를 대안이라 여긴다. 나침반을 제시하라, 좌파 지식인들이여. 고색창연하여 아무도 못 읽는 논리 말고, 현실에서 펄떡이는, 그래 이 늙은 가슴도 같이 뛰게 하는 ‘공산당 선언’을 주시라.
보라, 진보와 좌파가 섞여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조차 못하고 있잖나. ‘진보좌파’라는 희한한 말이 떠돌고 있잖나. 노동이 숭고한 건지 넘어서야할 건지조차 모르잖나. 조합주의가 혁명을 대체하는데 그게 가장 혁명적인 대안이 돼 버렸잖나.”

 

 

필자소개
우한기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였고 지금은 진보 무당파이다. 거의 20년째 논술 전문강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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