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 윙’과 람 이매뉴얼의 ‘더 플랜’
[미드로 보는 세상] "프레임이 아니라 비젼과 실천이 중요"
    2012년 11월 02일 02: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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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드로 보는 세상’이라는 주제로 미드 애호가를 자처하는 조성주(경제민주화2030연대와 비례대표제 포럼 공동대표)씨가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미드를 빙자한 세상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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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필자는 소위 ‘미드폐인’이다. 혹여 주말에 케이블에서 미드를 연이어 방영해주면 다음에 있는 중요한 회의나 집회들도 가볍게 패스하는 그런 인간이다. 백수시절에는 한 일주일을 한자리에서 미드를 연속으로 본적도 있다.

미드의 놀라운 점은 그 소재의 다양함과 예상을 뛰어넘는 전문성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달라붙고 또 제작시스템 역시 매우 정교하기에 가능한 일인데 여하튼 소재와 스토리에 있어서 무궁무진한 미드를 보면서 우리 살아가는 세상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연재를 시작한다.

물론 미드나 게임이나 영화나 스포츠 이런 것들은 전문가라는 명함을 들고 있는 사람들보다 일반 블로거나 매니아들이 월등히 높은 지식과 견문을 자랑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필자는 전문가나 이런 게 아닌 그냥 미드 애호가 정도의 위치에서 부족한 지식과 경험에 기초해 연재를 한다는 것을 감안해주기를 바란다. 지식의 양을 두고 겨룰 자신은 없고 다만 한번쯤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는 정도로 가볍게 시작해보고자 한다.

‘프레임’이 아니라 ‘비젼’이다.

대선이 한 달하고 반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지라 역시 세인들의 관심은 정치다. 미드에 대한 연재를 시작하면서 어떤 작품으로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정치의 계절에는 정치드라마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겠다 싶어 “웨스트 윙”을 골랐다.

이미 미드 중에서 작품성에 있어 최고라고 알려져 있으며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녹화까지 해서 챙겨보았다는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야 인터넷에서 블로그 몇 개만 뒤져도 알 수 있으니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자. 오히려 그 드라마를 둘러싼 배경과 또 연결되어 있는 사건들이 더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웨스트윙의 이야기는 ‘아론 소킨’이라는 천재 각본가가 작성한 이야기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 “머니볼” 등의 각본을 쓰면서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각본가지만 ‘아론 소킨’은 초보각본가 시절에도 정치 관련 영화의 각본을 쓴 적이 있다. 하나는 “어 퓨 굿 맨(1992)”이고 하나는 ”대통령의 연인(1995)“이다.

영화 “어 퓨 굿 맨”이 도대체 왜 정치영화인지는 영화스토리 자체를 보아서는 잘 모르겠으나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그 유명한 ‘정은임의 영화음악’ 첫 번째 방송에 나와서 이 영화의 주인공이 왜 클린턴을 의미하는 것이고 아론소킨이 어떻게 이 법정영화에 1992년 미 대선을 둘러싼 정치논쟁의 메시지를 담아냈는지를 화려한 말빨로 설명했기에 일단 그렇다고 믿자.

역시 아론 소킨이 각본을 담당한 “대통령의 연인”에서는 ‘마이클 더글라스’를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대통령으로 그려내는 실력을 보였는데(이 실력이 ‘지옥의 묵시록’의 마틴 쉰을 ‘웨스트윙’에서 가장 매력적인 대통령으로 그려내는데 발휘되었음은 당연하다)

그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아론 소킨의 기지가 발휘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대통령과 그의 연인(아네트 베닝)의 첫 번째 베드신인데 거기서 침대로 가면서 대통령은 굉장히 곤란해 하며 상대 연인에게 이런 대사를 날린다. “내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미 합중국의 통수권자이고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자라고 해서 나의 정력과 테크닉도 그럴거라고 기대하면 오산이오”

이런 식의 개그 코드가 아론 소킨이 그의 작품 전반에서 사용하는 개그 코드라 이해하면 된다.

다시 웨스트윙으로 돌아오면 드라마 웨스트윙은 7시즌을 마지막으로 2006년에 끝을 맺었다. 99년에 시작했으니 클린턴 2기때 시작해서 부시 1기를 지나고 ‘9.11테러’ 이후 혼란의 시기를 지나 다시 부시 2기 중에 마무리된 드라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는 내내 공화당을 비판하고 조롱하며 민주당의 진보파를 두둔한다. NBC라는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인데 미국이라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일견 부러운 마음마저 든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스포일러에 해당합니다) 이 드라마는 6시즌 마지막에서 민주당 차기 대통령 후보로 무명에 가까운 ‘히스패닉’ 하원의원이 당선되는 내용을 보여주고 7시즌 마지막에서는 미국 최초의 히스패닉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 과정이 마치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당선되는 것과 매우 유사해서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웨스트윙 시즌의 후반부를 담당한 작가는 오바마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오바마는 ‘웨스트윙’을 즐겨보지 않았고 오히려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흑인청년들의 삶을 가장 리얼하게 다루었다는 ‘와이어드’를 보며 밑바닥 흑인청년들의 삶에 고뇌했다고 한다.)

드라마 ‘웨스트윙’의 다양한 주인공들 중에서 눈에 띄는 주인공은 역시 백악관 정무보좌관 역할의 ‘조쉬 라이먼(브래들리 화이트포트)’이다. 주로 정무적 판단을 하는 조쇠 라이먼은 드라마 내내 가장 빛나는 정치감각과 전투성, 그리고 나름 진보적 입장을 관철하는 대통령의 심복 역할이자 차기 정권을 재창출하는 핵심 캐릭터다.

람 이매뉴얼 시카고 시장

그런데 이 캐릭터는 실제 모델이 있다. 바로 당시 미 하원의원이었던 ‘람 이매뉴얼’ 그러니까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든 소위 ‘시카고 사단’(오바마는 시카고 상원의원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의 핵심멤버로 1기 오바마 정부의 백악관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시카고 시장으로 있는 사람이다.

웨스트윙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백악관 비서실장은 사실상 대통령과 권력을 분점하는 공동파트너로 대단한 권력자라 할 수 있다. ‘람 이매뉴얼’은 클린턴 정권에서 백악관 정책보좌관이었으며 드라마가 연재되던 당시에는 하원의원이었다.

그는 공화당과 가장 전투적으로 싸우기에 붙은 별명이 이름을 패러디한 ‘람보’이고 또 다른 별명들은 “투견”, “암살자”, 스트리트파이터“ 등이다.(어떤 캐릭터인지 알만하지 않은가?) 실제 ‘람 이매뉴얼’은 ‘웨스트윙’에서도 카메오로 잠깐 등장하기도 하는데 자신을 모델로 한 캐릭터인 ‘조쉬라이먼’과 조우하는 장면은 공식적으로는 드라마의 연출자가 ‘람 이매뉴얼’을 모델로 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라 할 수 있다.(조쉬라이먼 역을 한 브래들리 화이트포트도 실제로 오바마 지지자이다)

한편 최근에 ‘람 이매뉴얼’은 시카고 소방관들의 삶을 주제로 한 드라마인 ‘시카고 파이어’의 시카고 시장역(현재 시장이기도 하다)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 유명한 웨스트윙의 오프닝을 패러디한 작품.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오바마와 한 차를 타고 가던 이매뉴얼에게 전화를 하자 지금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옆에 오바마 대통령하고 일단 통화하라고 한 사건은 매우 유명하다)

그런데 사실상 주인공 격인 ‘조쉬라이먼’의 모델이 된 이 ‘람 이매뉴얼’이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 쓴 책이 매우 흥미롭다. 바로 ‘더 플랜’(2006)이다.

이 책은 당시 민주당이 부시에게 선거를 연패하며 무너져가고 있을 때 민주당을 구제할 전략으로 떠오르던, 지금도 한국정치를 풍미하는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을 정면 반박하며 시작한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느냐 어떻게 소통하는가 같은 ’프레임‘ 같은게 아니라 어떤 비젼을 보여주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일갈하며 시작하는 이 책은 한국의 정치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

람 이매뉴얼은 ‘더 플랜’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워싱턴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을 반복하는 정책가들과 사기꾼이나 다름없는 비열한 정치꾼들이 활개친다’. 람 이매뉴얼은 그 이상한 사람들의 사이에 파묻히지 않으며 균형감각을 잡고 비젼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것,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자신이 한 말대로 오바마를 당선시키고 그가 ‘더 플랜’ 책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이라고 이야기했던 ‘메디케어’ 정책을 밀어붙였다. 드라마 ‘웨스트윙’과 그 작품을 둘러싼 인물들의 배경, 그리고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때로 드라마 같은 일이 현실이 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가 열기를 띄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가 정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우 가벼워졌다.

언론들은 대선후보들의 행보를 무슨 스포츠 중계하듯이 보도하고 갑자기 대거 등장한 자칭 정치평론가들은 바둑의 묘수풀이처럼 정치를 설명한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진보정치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그러는 사람들의 다수는 말잔치를 벌이면서 자신들만의 상상 속에서 마음대로 집단들의 위치와 역할을 조합하곤 한다. 뭔가 대단한 아이디어와 분석의 틀을 낸 것처럼 들떠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손에 잡히는 그 어떤 것도 내놓거나 바꾸지 못한다.

무슨 무슨 ‘프레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사실상 ‘정신승리’에 도취해 있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그것이 예능과 오락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정치마저 예능화 또는 스포츠화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대사가 너무 많고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어둠의 경로를 장악하고 있는 자막 제작자들에게 최악의 작가로 꼽힌다는 아론 소킨의 작품인 만큼 드라마 ‘웨스트윙’은 화려한 말의 향연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끝까지 정치인들이 주고받는 펀치라인이 아니라 그가 어떤 비젼과 정책을 실현하고 노력하는가를 주목한다. 람 이매뉴얼이 그의 책 ‘더 플랜’에서 호소하던 내용도 그것이다. 한국정치에서도 ‘웨스트윙’에서 제드 바틀렛(마틴 쉰)에게 조쉬 라이먼이 자신의 정치인생을 걸던 그 순간, ‘아이들의 우유값을 올리는 정책에 찬성할 수 없어서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배신했다. 미안하다’라고 말하던 그 순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필자소개
청년유니온에서 정책기획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제민주화2030연대와 비례대표제 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술, 담배, 그리고 미드와 영화를 좋아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가장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대부분의 사업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미드나 만화에서 발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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