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적 피라미드가 당연한 세상?
        2012년 11월 02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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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금 긴 글을 남길 힘은 없습니다. 어제 돌연히 심한 요통에 걸려 응급차에 실려 응급실 치료를 받은 바 있었는데, 몇시간 전에 퇴원했다 해도 지금도 진통제를 계속 복용하는 관계로 도저히 집중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도, 병원에서 느낀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토로하지 않고서는 안심하고 병상에 누울 수 없습니다.

    어느 층에 가도 청소하는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흑인이나 남아세아인 등 비서구 이민자들이었습니다. 뭐, 병원도 그렇지만, 제가 오슬로대에서 12년간 근무했는데도 “토박이” 노르웨이인이 청소 일을 맡아 보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다. 반대로는, 오슬로대 교수 중에서는 약간 명의 중국인과 인도인 등 아세아 “과학기술 대국”에서 커서 교육을 받고 온 사람들이나 저 같은 동구 출신자들도 있지만, 외국인 교원 중의 절대 다수는 서구인들입니다.

    직원 같으면 비서구 이민자들은 3-4% 정도로 섞여 있지만, 역시 노르웨이인과 서구, 북구, 남구 출신들은 절대 다수고요. 병원 같은 경우에는, 제가 본 간호사들 중에서는 간혹 노르웨이에 이민와서 살고 있는 비율빈, 월남 등지의 출신자들은 조금 보였습니다만, 역시 다수는 노르웨이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의사들 중에서는 백인이 아닌 얼굴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외국 출신자들이 있었지만 독일 등 다른 서구 국가 출신들이 주로 보였던 것이죠.

    종족들의 서열질서…인종적 피라미드

    “종족들의 서열질서”라고나 할까요? 그건 학교, 병원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의 어느 기관에 가도 당장 눈에 띕니다. 저의 딸 사라가 다니는 규모가 큰 사립유치원만 봐도, 역시 청소=비유럽인 이민자, 보모=남구/동구/소수의 중동 이민자, 관리인 및 소유주 = 노르웨이인, 바로 그런 식입니다.

    물론 (한국)국내에서도 “3D 직종이라면 외국인 노동자”라는 등식은 있긴 있습니다. 한데, 국내의 외국계 인구 비율 (2,5%)은 아직 노르웨이 (약 10%)보다 훨 낮은데다가 그 “외국계 인구”의 상당부분은 “눈에 띄지 않는” 조선족인지라 “인종 질서”를 쉽게 파악하기가 좀 힘듭니다. 그러나 오슬로처럼 비서구 계통의 외국계 인구가 약 17%나 되는, “글로벌” 도시라면 “인종적 피라미드” 구조는 당장에 확인되죠.

    과연 비서구 이민자들은 청소 이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너나 할 것없이 다 청소부로 취직하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청소하는 사람들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소말리아나 이라크에서 온 의사나 엔지니어를 아주 쉽게 발견되죠. 단, 그들은 아무리 졸업증은 있어도 많은 경우에는 극도로 어려운 의료 자격 시험 등을 통과하여 노르웨이에서 의사 등으로 활동하기 위한 면허를 얻지 못하거나, 유효한 자격증이 있다 해도 죽어도 전공대로 취업이 안되는 경우들입니다.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권리 박탈 집회의 모습(사진=참세상)

    보이지 않지만 너무나 공고한 이 사회의 인종주의는 그들을 저임금 고난도의 단순 육체 노동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죠. 즉, “인종적 피라미드’는 절대 자연발생적인 현상이 아니고 비서구적 뉴커머들에 대한 “주류” 사회의 배제와 하위 배치, 즉 사회적 폭력의 결과죠. 어떻게 보면 강제된 육체 노동이라고도 볼 수 있죠.

    우리 일상 속의 스딸린주의적 폭력

    이것 한 번 보시죠. 스딸린 시대 쏘련에서 예컨대 위대한 일본 문학 연구자 니콜라이 콘라드 박사 ,무고하게도 “일본 간첩” 혐의를 받아 몇년씩이나 공사장이나 벌목장에서 과중한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것을, 우리가 분노스럽게 여겨 “스딸린주의 폭력”이라고 지칭합니다. 이건 당연히 스딸린주의 폭력 맞죠.

    그렇다면 본인의 취향이나 꿈, 그리고 자격이나 전문, 전공과 무관하게 소말리아나 이라크 출신을 무조건 단순 육체 노동으로 내몰아 평생 노르웨이인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게끔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콘라드 박사는 그래도 3년 고생하고서 다시 학자라는 본업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노르웨이에 온 다수의 소말리아나 이라크 지식인은 평생 그들의 본업과 무관하게 살아야 합니다. “기술 강국”으로 인정되어지지 않는 제3세계 약소국 출신이라는 유일한 죄(?)로요.

    이런 폭력은 스딸린주의 폭력보다 몇 배 더하지 않는가요? 그런데 스딸린주의의 폐단에 대해서야 세상이 익히 다 알지만, “노르웨이”는 과연 이 세계에서 무엇을 상징합니까? 맞아요, 복지와 평화, 그리고 오바마와 유럽연합과 같은 위대한 평화주의자 (?)들이 운좋게 얻은 노벨평화상입니다.

    아아, 철사가 꼭 있어야 수용소인가요? 어떤 면에서는, 힘 없는 비서구적 타자에게는 이 화려하고 세계에서 제일 물가 비싼 오슬로라는 도시는, 철사가 없어도 하나의 커다란 강제 노동 수용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이들의 눈물들을 평화상쯤이나 주는 “주인님”들은 왜 이렇게 몰라보나요? 그리고 그리스 노동자들에게 마지막의 희망을 빼앗은 유럽연합에 평화상을 준 투르뵤른 야글란드 노벨위원회 위원장의 소속 정당인 노동당을, 왜 국내의 일부 자칭 ‘사민주의자’들은 지금도 “진보”로 쳐주나요? 아, 답답해요. 강자 위주의 인종주의적 “종족들의 서열질서”를 당연시하는 이 세상은 너무 답답해요.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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